소설방/강안남자

346. 신천지(15)

오늘의 쉼터 2014. 8. 23. 12:19

346. 신천지(15)

 

 

 

 

(1287) 신천지-29

 

 

 “저기요.”

하고 조미선이 입을 열었을 때 이대권은 긴장했다.

 

미선과 마주앉은 지 10분쯤이나 지난 후였다.

 

지금 미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으며 어떤 부탁을 해올지를 훤히 알고 있는 대권이어서

 

궁금하지는 않다.

 

그저 어서 진도가 나가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미선이 말을 이었다.

“저기, 제 친구가 지금 곤란한 입장이 되어있는 데요. 도와 주셨으면 해서요.”

“아아, 그러십니까?”

대권은 박성용의 후배로 부동산 사무실에서 미선을 본 순간에 첫눈에 뿅 간

 

연기를 하도록 정해져 있다.

 

그래서 상대인 미선의 부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자연스러운 연기가 된다.

“무슨 일이신데요?”

제법 걱정스러운 표정까지 지은 대권이 미선을 찬찬히 보았다.

 

조철봉의 말대로 미선은 괜찮았다.

 

대권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별로 외모에 기대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미선을 본 순간에 각본처럼 가슴이 뛰었던 것이다.

 

미선이 말을 이었으므로 대권은 정색하고 들었다.

“제 친구가 지금 전 약혼자한테서 협박을 받고 있거든요.”

하면서 미선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권은 잠자코 들으면서 조철봉이 말해준 사실과의 차이점을 찾았지만 거의 비슷했다.

 

미선은 줄거리를 꾸미지 않은 것이다.

 

저하고 이은지가 동성애자 사이라는 것만 빼고는,

 

 물론 그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는 것이기는 했다.

 

이윽고 미선은 그놈이 5천만원을 요구한 시간이 오후 1시라는 것까지를

 

말하면서 이야기를 마쳤다.

 

그 때 대권이 시계를 보았더니 12시15분이었다.

 

45분 남았다.

“알겠습니다.”

굳어진 얼굴로 머리를 끄덕인 대권이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섰으므로

 

미선은 눈을 크게 떴다.

“어, 어떻게 하시려구요?”

“처리해야지요.”

대권이 가볍게 말하더니 다시 손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했다.

“시간이 급한데 빨리 움직여야 되겠는데요.

 

장소가 대화동 에덴가든이라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떻게.”

따라 일어선 미선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대권의 표정이 단호해졌다.

“친구한테 말해서 약속시간에 그 놈을 만나라고 하세요.”

주위를 둘러본 대권이 목소리를 낮췄다.

“저한테 상의했다는 말을 하지 마시고 말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셨습니까?”

“그럼.”

“그 놈이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 됩니다.

 

그래야 그 놈이 마음 놓고 떠들테니까요.”

대권이 서둘러 커피숍을 나왔으므로 미선은 바짝 따라붙었다.

“저기요.”

하고 미선이 불렀을 때 마악 핸드폰을 귀에 붙였던 대권이 잠깐만

 

기다리라는 시늉을 해 보이더니 조금 떨어져 섰다.

 

그러고는 핸드폰에 대고 말했다.

“형, 다 됐어. 나한테 다 털어놓았어.

 

그래서 나한테 맡기라고 하고는 같이 커피숍을 나왔단 말야.”

힐끗 미선에게 시선을 주고난 대권이 말을 이었다.

“형, 잘 되겠지?”

그러자 수화기에서 조철봉의 웃음소리가 먼저 울렸다.

“흐흐흐, 니가 그 여자한테 마음이 동한 모양이구나.

 

잘 되겠느냐고 묻는 걸 보니까 말야.”

그러더니 웃음띤 목소리로 말했다.

“야, 크게 말해. 조형사, 빨리 움직여, 하고.”

 

 

 

 

(1288) 신천지-30

 

 

 “조형사, 빨리 움직여!”

하고 이대권이 소리쳤으므로 조미선은 움칫 놀라 머리를 들었다.

 

미선의 시선을 받은 대권이 핸드폰에 대고 낮게 말하고는 귀에서 떼었다.

“작업 아니,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다가온 대권이 정색하고 말했다.

“저도 현장에 가봐야겠는데.”

하면서 대권이 몸을 돌리는 시늉을 하자 미선은 한걸음 다가섰다.

“저기요.”

미선이 주저하며 말했다.

“이 신세를 어떻게 갚죠?”

“하긴, 그렇죠.”

그러더니 대권이 미선을 똑바로 보았다.

“전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한 성품이올시다.

 

이 일은 물론 범법자를 잡는 일이긴 합니다만

 

제가 미선씨를 좋아하기 때문에 발벗고 나서게 된 것이죠.”

대권은 심호흡을 하고나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일이 잘 끝나면 제 부탁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어떤 부탁인데요? 가능하다면 제가 다.”

“그럼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세요.”

그러자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는 시늉을 하고나서 대권이 말했다.

“하룻밤만 저하고 같이 지내주시죠.”

놀란 미선이 눈을 치켜떴을 때 대권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솔직히 저는 최근 이년동안 여자하고 같이 밤을 지낸 적이 없습니다.

 

그말은 성관계를 하지 못했다는 말씀이죠.”

그때 대권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사실인 것이다.

 

이년동안 갖은 수단을 다 써 보았지만 일어서지 않았다.

 

그래서 와이프는 성생활을 포기한 지 오래였다.

 

착한 성품의 와이프는 일년전부터 호스피스 간병인이 되어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는데 대권의 불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었다.

미선이 힐난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지만 대권은 작심한듯 말을 이었다.

“미선씨를 처음 본 순간에 뜨거운 감정이 솟아 올랐는데

 

그것이 어떤 욕망인지는 지금도 판단을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매일밤 미선씨를 안는 꿈을 꾸었지요.”

그러고는 대권이 땅바닥이 꺼질 듯한 숨을 길게 뱉었다.

“비극이죠. 일에 몰두하다가 어느덧 불능이 된 현실이 말입니다. 어쨌든.”

몸을 돌린 대권이 서두르듯 말을 뱉었다.

“일은 끝내겠습니다. 내 부탁은 강제성이 없는 것이니까 크게 부담 느끼지 마십시오.”

그러고는 대권이 지나는 택시를 세우더니 타고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거리에 버려진듯 서 있던 미선이 정신을 차린 것은 그로부터 1분쯤이나 지난 후였다.

서둘러 핸드폰을 꺼낸 미선은 현재 시간이 12시25분을 가리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은지가 집에서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버튼을 누르자 신호음이 한번 울렸을 때 은지가 전화를 받았다.

“응, 나야.”

은지가 응답을 하기도 전에 미선이 서두르듯 말했다.

“지금 나가, 나가서 만나.”

은지는 대답하지 않았고 미선은 말을 이었다.

“난 네가 무슨 입장을 취하건간에 네 편이 될테니까 나서서 그놈을 만나.”

이어서 지금 경찰이 그곳으로 출동했다는 말이 목구멍안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참았다.

 

이대권 경위가 부탁한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작전을 방해하면 안된다.

 

 

<다음 개척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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