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342. 신천지(11)

오늘의 쉼터 2014. 8. 23. 12:15

342. 신천지(11)

 

 

 

 

(1279) 신천지-21 

 

 

 다음날 오전, 조철봉의 방으로 박경택이 들어섰다.

 

경택은 조철봉에게 머리를 숙여 보이더니 조심스럽게 앞 쪽에 앉았다.

 

조철봉은 잠자코 경택을 보았다.

 

닷새간의 시간을 주었으니 경택은 이은지에 대해서 샅샅이 조사를 했을 것이었다.

 

어머니의 성화로 시작된 일이었지만 은지를 만나고 나서 조철봉에게도 열의가 일어났다.

 

은지는 영일에게 새 엄마로 적합할 뿐만 아니라 여자로서도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경택이 입을 열었다.

“이은지씨는 애인이 있습니다.”

그 순간 퍼뜩 눈을 치켜뜬 조철봉이 곧 입술 끝을 비틀며 웃었다.

“흠, 그럼 그렇지.”

그러나 경택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상대는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교직원입니다.”

“그래?”

“이은지씨 아파트에 한달에 한두번 들렀다가 아침에 같이 출근한 적도 있는 것 같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소파에 등을 붙였다.

“알았어. 그 놈이 누구인지 말할 필요는 없어. 더 이상 관심 없으니까 말야.”

정나미가 떨어진 것이다.

 

전 같으면 그까짓것 상관하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머니의 강력한 추천 하에 영일의 새 엄마를 고르는 작업이 아닌가?

 

사귀는 남자를 떼어 놓는 작업부터 시작할 수는 없다.

“수고했어.”

더 이상 듣지 않겠다는 듯이 조철봉이 엉거주춤 일어섰을 때 경택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장님, 그 놈이 아니라 여자입니다.”

조철봉이 눈썹을 오므렸고 경택은 서둘러 말을 이었다.

“이은지씨가 만나는 애인은 여자입니다.”

“그럼.”

다시 자리에 앉은 조철봉이 경택을 쏘아보았다.

“이은지씨가 동성애자란 말야?”

“그런 것 같습니다.”

“확인했어?”

“예.”

하더니 경택이 가방에서 소형 녹음기를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그러고는 버튼을 누르자 대번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그만해.”

은지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숨이 가빴고 목소리는 비명처럼 높았다.

 

그 때 다른 여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젖꼭지는 그만 할까?”

“으응.”

콧소리로 대답한 이은지가 헐떡였다.

“그거, 하지 마.”

“그거라니?”

“기구말야. 기구 넣지 마. 아프기만 해.”

“그럴까?”

“손으로 해 줘.”

“입으로 해 줄게.”

하더니 곧 둘의 가쁜 숨소리가 방안을 메웠다.

 

힐끗 조철봉의 눈치를 살핀 경택이 녹음기의 버튼을 눌러 끄더니 시선을 내린 채 말했다.

“상대는 조미선 선생이고 역시 미혼인데 미인입니다.”

“흥.”

“둘은 동갑인데다 친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런 관계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

“사장님, 계속 할까요?”

하고 경택이 물었으므로 머리를 든 조철봉이 입맛을 다셨다.

“그래, 말해봐.”

그러나 얼굴은 아직 펴지지 않았다. 

 

 

 

 

(1280) 신천지-22 

 

 

 사람은 겉만 보아서는 모른다. 겪어봐야만 한다.

 

겪을 여유가 없으면 알아보는 수밖에 없다.

 

조철봉은 지금까지 공사를 막론하고 대인 관계를 시작하기 전에 그 방법을 사용해왔다.

 

지금 박경택으로부터 이은지의 조사 보고를 들으면서 충격이 금방 가라앉은 것은

 

그런 경우를 수없이 겪었기 때문이다.

 

겉 인상과 속이 다른 인간이 여기 또 있다. 경택의 말이 이어졌다.

“이은지씨는 3년전 약혼을 했다가 파혼했습니다.

 

상대는 제약회사 자금부 대리였던 강명식으로 공금 5억을 횡령해서 경마로 날렸습니다.

 

 2년형을 받고 작년에 출소했습니다. 그런데.”

경택이 머리를 들고 조철봉을 보았다.

“이 자가 직업없이 떠돌다가 바로 이틀전에 이은지씨의 아파트에 찾아왔는데요.”

그러더니 경택이 탁자위에 아직도 놓여져 있는 녹음기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잠시후에 사내의 목소리가 울렸다.

“5천만 내놔. 그러면 네 눈앞에서 사라져 줄테니까.”

사내가 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흘 여유를 주겠어. 그러지 않으면 넌 끝장이야.”

“정말 이러지마.”

은지가 사정하듯 말했다.

“내가 그런 돈이 어디 있다고.”

“이 아파트 전세금이라도 빼.”

“어떻게 사흘안에 빼란 말야?”

“전세금 담보로 빌리든지.”

“명식씨.”

이제 은지의 목소리에는 울음이 섞여 있었다.

“제발 그러지마. 부탁할게.”

“웃기고 있네.”

코웃음을 친 사내 목소리가 높아졌다.

“내가 지금 뵈는게 없단 말이다.

 

어머니 반지까지 빼다 팔아 먹은 형편이야.

 

그런데 네 비디오 필름이 박스 속에서 발견되었을 때 내 기분이 어땠는지 알아?

 

 하느님이 도와주신 것 같았단 말이다.

 

하느님이, 야, 내아들 명식아, 이걸 갖고 그 매정한 년, 지 약혼자가 빵에 들어가자마자

 

약혼을 파혼해버린 이은지란 년한테 네가 일용할 양식을 받아 오너라,

 

하신 것 같았단 말이다.”

사내가 이젠 잇새로 말했다.

 

눈도 치켜뜨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 진한 필름을 한 백개쯤 복사해서 네 학교 선생은 물론 학생들한테도 다 나눠줄거다.

 

 인터넷에다도 올리고, 아예 길거리에서도 뿌릴테니까.”

그때 경택이 녹음기의 버튼을 눌러 끄더니 조철봉을 보았다.

“이놈하고 이은지씨의 섹스 장면을 찍은 필름 같습니다. 그리고.”

경택이 다시 버튼을 누르자 잠시후에 가라앉은 여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내 통장에는 2천5백밖에 없는데 그거라도 가져가.”

처음에 이은지와 정사를 나눴던 여자의 목소리였다.

 

여자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내가 다른 곳에다 알아볼게.”

“그러지마.”

은지가 만류했다.

“내가 처리할거야.”

“돈을 줘야 되잖어? 돈 준비되겠어?”

“전세금뿐야. 통장에는 몇백밖에 없어.”

“그럼 그 작자 말대로 전세금 담보로 빌리려구?”

“아니.”

“그럼 어떻게 하려고?”

“나 그만둘거야.”

“그만두다니?”

놀란 여자가 묻자 은지의 목소리가 더 차분해졌다.

“그 자를 경찰에 고발할거야. 학교에는 사표내고, 난 이 상태로는 애들 못 가르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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