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341. 신천지(10)

오늘의 쉼터 2014. 8. 23. 12:10

341. 신천지(10)

 

 

 

 

(1277) 신천지-19

 

 “추위쯤은 아무것도 아냐.”

둘러앉은 수행원을 차례로 보면서 조철봉이 말했다.

“불모지도 상관없다. 땅만 있으면 돼.”

“사장님.”

정색한 최갑중이 조철봉을 불렀다.

 

임차지 문제는 갑중한테도 전혀 상의한 적이 없었던 일이었다.

 

갑중은 조철봉이 몰로토프의 호의에 흥분해서 충동적으로 임차지 문제를 결정한 것으로 보았다.

“아무르 산업에 필요한 목재는 조건이 좋은 임야 몇만 평방키로만 있어도 됩니다.

 

그만큼만 있어도 50년은 베어 쓸 수가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통장에 넣은 돈을 빼먹는 것 같군.”

조철봉이 다시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땅을 임차해준다는데 그 땅에다 공장 세우는 것이 낫지 않겠느냔 말이야.

 

땅을 50년 임차받으면 우리 다음 세대까지 주인 행세를 할 수 있지 않겠어?”

“그렇습니다.”

대답은 김재석이 했다. 긴장한 표정으로 김재석이 말을 이었다.

“임차지 안의 경제활동은 자유이며 연방정부에 기본세만 내면 됩니다.

 

임차를 받게 되면 주 정부보다 더 독자 권한이 있는 셈이지요.”

“조건은?”

조철봉이 묻자 재석이 서류를 펼쳤다.

“불모지여서 아직 아무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투자가로부터 외면을 받았지요.

 

그러나 임차하려면 임차지 운용계획을 제출해서 승인을 받아야 하고 담보금을 내야 합니다.”

그러고는 재석이 서류를 한장 빼내어 조철봉 앞에 놓았다.

“7개 구역중 서너개를 통합해서 임차해도 됩니다.

 

전체를 다 할 수도 있지요.”

서류에는 임차 예정지의 구역도가 그려져 있었는데 광대한 땅이었다.

 

시베리아 북부의 황무지여서 드문드문 마을만 표기되어 있을 뿐으로 제대로 된 도로도 없다.

 

그러나 아래쪽 한반도보다도 임차지는 더 컸다.

 

서류를 굽어본 갑중이 또 한마디 했다.

“이거 임차지를 할당받으면 길부터 닦아야겠구만.

 

어이구, 하바로프스크에서도 무지하게 머네.”

머리를 든 조철봉이 말했다.

“시베리아에 고려인이 몇명이나 살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임차지를 떼어 받아서 일자리를 만들었을 때

 

옮겨올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도 조사해 보도록.”

“예. 사장님.”

재석이 머리를 끄덕였다.

 

이제 조철봉의 결심이 굳은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조철봉이 갑중과 수행원들을 차례로 보았다.

“우리가 중국에서 조선족을 대거 고용했고 탈북자까지 받아들여서

 

사업에는 성공했지만 결국 중국땅만 기름지게 만들어준 형편이 되었어.

 

우리뿐만이 아니라 다른 한국 기업도 마찬가지야.”

조철봉이 턱으로 탁자위에 펼쳐진 시베리아 지도를 가리켰다.

“땅을 임차해준다니 외국에다 그냥 투자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

 

내땅에다 공장을 짓고 거리를 만들게 되는것이란 말야.”

“… ….”

“러시아 땅의 고려인들이 제 고향처럼 생각하게 될지도 몰라.”

“중국땅에서 조선족들이 몰려올 수도 있습니다.”

재석이 맞장구를 쳤다.

 

아까부터 재석은 조철봉의 반응에 호의적이었다.

 

정색한 재석이 말을 이었다.

“러시아 연방 각국으로 흩어진 고려인들도 지금까지 방황하고 있습니다.

 

임차지의 기반만 잡힌다면 그들이 몰려올 것입니다.”

재석의 목소리에 열기가 띠어 있었다.

 

 

 

 

 

(1278) 신천지-20 

 

 

 조철봉한테 사기꾼이란 단어는 욕이 아니다.

 

지금까지 수없이 그 소리를 들은 데다 스스로도 자신을 사기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조철봉은 사기성의 우열에 의하여 성공과 실패가 결정된다고 믿었다.

 

조철봉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사기를 치면서 살고 있는 셈이었다.

 

인생 자체가 사기극인 것이다.

 

인간은 인연을 맺지 않고 살아갈 수 없으며 그 인연은 타산에 의해서 맺어진다고 보았다.

 

남녀 관계는 물론이며 사업에서의 타산은 곧 사기(詐欺)인 것이다.

사기란 법률상 타인에게서 금전적으로 가치있는 물건을 빼앗을 목적으로 행하는

 

악의허위표시라고 정의되어 있다.

 

인간의 생존경쟁은 결국 사기의 경쟁이라고 조철봉은 믿었다.

 

조철봉에게 법률로써 사기를 판별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만원 훔친 놈은 죄가 아니고 만삼천원 훔친 놈부터 사기꾼이라는 말이나 비슷했다.

조철봉은 사물을 접할 때 먼저 이용가치를 계산했다.

 

그냥 무조건 빼앗을 생각부터 한다면 그것은 도둑놈이나 강도로 법으로 제재받기 전에

 

상대방한테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언급할 가치도 없다.

 

사기꾼은 내가 내놓을 물건을 그럴 듯하게 포장하는 것에서 거래를 시작한다.

 

바로 상행위의 기본이다.

 

역으로 상대방이 그럴 듯하게 내놓는 상품이나 조건을 바로 보는 것도 사기꾼의 기본이다.

 

이렇게 되면 정통 상행위를 설명하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마지막 단계에서 잠깐 정도를 벗어나는 것이 사기꾼의 특징이긴 하지만 조철봉은 깨달은 철학이 있다.

 

 큰 사기는 칭송까지 받게 되는 것이다.

 

위대한 사기의 과정은 대부분 무시되었다.

 

성즉군왕이요 패즉역적이라는 말과도 맥이 통한다.

 

따라서 사기꾼 조철봉이 사물과 조건을 보는 시각은 조금 다르다.

 

조철봉에게 임차지는 신천지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지금까지 중국과 베트남, 북한의 공단으로 뻗어나간 기업은 방랑자 같은 개념이었다.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지만 남의 땅에 세 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임차지라니, 내 땅에 내 기업을 세운다는 것 아닌가?

 

내 땅에 내 회사, 내 종업원, 이런 느낌을 최갑중이 이해할 리가 없다.

 

주인 의식이 없는 고용원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모른다.

 

그날부터 나흘동안 조철봉은 임차지를 인수하기 위한 조직을 갖췄다.

이번 일에 적극적인 김재석 상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키면서 하바로프스크에

 

인수 본부를 설치하고는 인력도 대폭 보강했다.

 

아무르 산업 인수와 함께 임차지 허가를 받고 운용 방법까지 기획하도록 한 것이다.

 

조철봉은 전문 경영인에게 일을 맡기면 조직까지 정비해준 다음에 전권을 부여한다.

닷새만에 서울로 돌아온 조철봉은 그동안 영일이 잘 지낸 것을 확인하고 안심했다.

 

영일도 닷새 만에 돌아온 아버지를 반겼다.

 

할머니가 어머니보다 더 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하고 떨어졌지만 집안에는 할머니와 이모 할머니,

 

친척 아주머니까지 셋이 주의를 집중하고 있다.

“애가 밝아서 걱정 안 시킨다.”

조철봉의 염려를 눈치챈 어머니가 소파의 앞쪽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저녁 7시가 되어가고 있었는데 영일은 조철봉이 사온 게임기를 갖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나하고 네 이모를 잘 따른다. 친구도 많아서 제 친구들을 많이 데려오는구나.”

그러더니 어머니가 정색하고 조철봉을 보았다.

“그 영일이 선생한테 연락해 보았어? 너 왔다고 말야.”

어머니는 둘의 사이가 잘 되는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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