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340. 신천지(9)

오늘의 쉼터 2014. 8. 23. 12:08

340. 신천지(9)

 

 

 

 

(1275) 신천지-17

 

 점심을 마쳤을 때 둘은 이층 베란다로 옮겨와 정원을 내려다 보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4월 초순의 날씨는 따스했으며 담장가에 심은 진달래가 화사했다.

 

둘은 나란히 앉아 진달래와 앞쪽 동산의 노란 개나리, 마악 푸른 잎새가 돋아나는

 

정원의 잔디를 둘러보았다.

 

조철봉은 시가 15억7천짜리 저택에 대한 자긍심이 바탕에 있었지만 당연히 내색은 안했다.

 

겸손한 표정으로 진달래와 정원 구석의 개집에 매어놓은 6개월짜리 진돗개를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월세집에서 이런 경치는 못보겠지만 기반이 든든해야 풍경 감상도 되는 것이다.

 

배가 불러야 제대로 사물이 보이는 이치와 같다.

 

이은지가 아이 딸린 남자 집안의 초대에 응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15억7천짜리 저택뿐만 아니라 수백억대의 재산이 후광처럼 비치고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때 은지가 머리를 돌려 조철봉을 보았다.

“솔직히 영일이 아버님은 특급 남편감이에요. 요즘은 성품이나 용모보다도 재력을 우선으로 쳐 주거든요.”

은지가 차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용모나 성품도 그만하면 뛰어나시고, 저한테는 과분한 분이시죠.”

그러고는 은지가 어색한 듯 한쪽 볼에 보조개를 만들면서 웃었다.

“하지만 어쩌죠? 전 결혼할 마음이 전혀 없거든요.

 

그냥 이대로 지내고 싶어요, 아이들 가르치면서.”

그럴 줄 알았다.

 

조철봉은 담장의 진달래로 시선을 옮기고는 머리를 끄덕여 주었다.

 

처음에 노골적으로 추어줄 때부터 맺어질 이야기가 대충 예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왔다가 결론에서 ‘하자’한다면 실성한 여자다.

 

조철봉은 힐끗 은지를 보았다.

 

제가 내린 결말에 스스로 감동을 받은 모양으로 은지의 볼은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영일 아버님께 이 약속은 해드릴 수 있어요.

 

영일이를 자식처럼 돌봐 드릴게요.

 

학년이 바뀌고 담임이 안되더라도 제가 신경쓰겠어요.”

“…….”

“마침 영일이도 절 잘 따르고, 애가 성격이 참 밝고 솔직해요.

 

누구한테라도 귀여움을 받을 만해요.”

그 순간 조철봉은 코가 막히는 것 같더니 눈이 흐려졌으므로 긴장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숨을 들이쉬면서 눈을 한번 끔벅이자 눈물 두 줄기가 주르르 볼을 타고 흘렀다.

 

그것을 은지가 보았다.

 

마악 입을 벌렸던 은지가 그 꼴을 보더니 입을 다시 닫았는데 눈은 동그래졌다.

 

조철봉은 개집을 노려보고 있었지만 은지의 반응을 샅샅이 감지하는 중이다.

 

다시 숨을 들이쉬면서 눈을 슬쩍 감았다가 떴을 때 눈물은 또 쏟아졌다.

 

구차하게 돌아간 어른이나 억울하게 잃은 돈 따위를 생각하지 않아도

 

마음만 먹으면 내리 쏟을 수가 있는 것이다.

“영일 아버님.”

하고 은지가 조심스럽게 불렀으므로 조철봉은 놀란 듯 머리를 들었다가 외면했다.

 

이럴 때 우는 얼굴을 정면으로 들이대는 게 아니다.

 

시청률 10%도 안되는 드라마에서나 그런다.

 

외면한 채 손바닥으로 얼굴을 닦은 조철봉이 은지에게 비스듬한 시선을 준채 말했다.

“아, 미안합니다.”

목소리는 차분하다.

 

시청률 10%대 드라마나 이럴 때 울먹이며 말한다.

“자, 그럼 산책이나 하실까요? 그러고는 제가 모셔다 드리지요.”

될 수 있는 한 길게 빼지 않는 것이 낫다.

왜냐하면 작업을 하기로 했으니까.

 

은지가 영일이의 성품을 칭찬할 때 감동이 오면서 그렇게 마음이 굳어졌다.

 

 

 

 

 

(1276) 신천지-18

 

 다음날 오후에 조철봉은 하바로프스크의 러시아 호텔에서 주지사 몰로토프와 마주앉아 있었다.

오후 3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는데 조금 열려진 창으로 들어온 바람결에 비릿한 물냄새가 맡아졌다.

 

창 밖으로 아무르 강이 내려다 보이는 것이다.

장방형 테이블 건너편의 중심에 앉은 주지자 몰로토프는 체격이 컸다.

 

회색 머리칼에 눈동자도 잿빛이어서 곰이 연상되었다.

 

그러나 몰로토프는 시종 웃었다.

 

조철봉과 시선만 마주치면 웃었는데 그것이 꾸민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성실한 인품으로 느껴졌다.

 

성실한 곰이다.

“아무르 산업의 고용원은 그대로 일하게만 해준다면 밀린 임금은 받지 않겠다고 합의를 했습니다.”

몰로토프가 열심히 말했고 고려인 통역이 한국어로 통역했다.

 

조철봉은 최갑중과 기조실의 김재석 상무, 그리고 팀장급 수행원 3명까지 동행이었고

 

몰로토프도 대여섯명의 보좌역과 함께였으므로 방 안에는 10여명의 인원이 둘러앉았다.

 

다시 몰로토프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아무르 산업에 시베리아 북부의 임야 2만㎢에 대한 벌채 허가권을 드리겠습니다.

 

거기에다.”

통역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몰로토프는 열심히 말을 이었다.

“토지를 임차한다면 연방정부의 승인을 받도록 도와드리죠.

 

그것도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자 조철봉이 머리를 돌려 김재석을 보았다.

 

김재석은 해외 투자 전문으로 러시아 사정에 정통했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재석이 눈치빠르게 대답했다.

“임차기간은 대개 50년입니다.

 

기간 연장은 가능하고 석유나 가스 발굴도 되지만 이 경우는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임차지 내에서의 공장 설립이나 상업 활동 등은 거의 러시아 당국의 구속을 받지 않습니다.

 

준 독립지역 형태로 운영이 되는 것입니다.”

조철봉은 머리를 끄덕였다. 지금 몰로토프는 아무르 산업의 원료로 쓰일 삼림의 임야 허가권

 

 문제를 이야기 하다가 대지 임차 문제까지 설명해준 셈이었다.

 

그러나 골칫 덩어리로 남아있는 아무르 산업의 처리가 당면 문제였다.

 

이윽고 머리를 든 조철봉이 몰로토프를 보았다.

“좋습니다. 내일 오전에 이 문제를 결정하겠습니다.”

통역의 말을 들은 몰로토프가 활짝 웃더니 테이블 위로 몸을 숙여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합니다,

 

미스터 조. 아무르 산업을 인수해 주시기만 한다면 적극 협력해 드리겠습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악수를 나눈 조철봉이 몰로토프 일행을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했다.

 

방으로 돌아온 조철봉이 김재석에게 말했다.

“아무르 산업 인수와 함께 토지 임차를 추진해 보도록.”

“임야 벌채 허가권과 함께 말입니까?”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였다.

“임차지에 공장을 세우고 도시를 건설해 보겠다.

 

2만㎢면 한국의 1개도 만한 면적 아닌가?”

그러자 김재석이 대답했다.

“러시아 연방정부는 시베리아 북부에 15만㎢ 정도의 영토를 임차지로 공시했지만

 

아직 아무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얼어붙은 땅입니다.”

15만㎢면 남한 면적보다 훨씬 큰 땅이다.

 

재석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결심한듯 말했다.

“가능한한 넓은 땅을 임차받도록.”

“예, 사장님.”

재석의 얼굴에도 생기가 떠올랐다. 이것은 모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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