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28

오늘의 쉼터 2014. 8. 20. 21:24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28

 

 

 

 

그로부터 두 사람은 은밀히 군사를 긁어 모으고 부대를 편성하여 모든 거사 준비를 끝마쳤는데,

이세민은 다만 그 아버지 이연이 허락하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한동안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였다.

이때 돌궐족이 태원에서 가까운 마읍 지방을 침략하였지만 이연은 이들을 막는 데 실패했고,

그러자 혹시 양광에게서 문책을 받지 않을까 침식을 잊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세민은 이 틈을 빌려 이연을 설득했다.

“지금 천자가 무도하여 백성들은 한결같이 곤궁에 빠져 있으며,

진양성 밖이 모두 싸움터가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만약 계속해서 작은 절개를 지키려고만 하신다면

아래로는 도둑 떼가 들끓고 위로는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될 뿐이올시다.

이는 의병을 일으켜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느니만 못합니다.

아버지께서는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이세민의 말을 들은 이연은 대경실색하였다.

 

곧 주위를 살피며,

“네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

다시 한 번 그런 망언을 입에 담는다면 너를 관가에 고발하겠다!”

하고 꾸짖었다. 이세민은 이연을 붙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재차 간청했다.

“저는 하늘의 때와 사람의 일을 두루 살펴보고 결심한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고발하시겠다면 기꺼이 목숨을 바쳐 죽겠습니다.”

아들의 눈물을 보자 이연도 마음이 약해졌다.

“어찌 너를 고발하겠느냐? 다시는 그런 위험한 말을 입 밖에 내지 말라고 한 소리다.”

이세민은 다음날 또 이연을 설득하였다.

“지금 도둑 떼가 나날이 전염병처럼 창궐하여 천하가 어지럽지 않은 곳이 없는데

아버지께서는 황제에게 적을 토벌하라는 명령을 받으셨으니 과연 천하의 수만이나 되는

적패를 모조리 평정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연은 아들의 날카로운 지적에 얼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세민이 다시 말했다.

“요즘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도참설에 따르면 다음에는 반드시 이씨(李氏) 성을 가진 이가

황제가 될 거라고들 합니다.

그 소문 바람에 지난번 이금재(李金才)라는 이는 아무 잘못한 일이 없음에도 하루아침에

3족(三族)이 몰살당하는 참화를 입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설사 세상의 모든 도둑 떼를 모조리 다 박멸하여 마침내 천하를 평정하신다고 한들

그 허국한 공로를 제대로 보상받고 황제의 칭찬을 들을 수가 있겠는지요?

오히려 황제는 아버지를 두려워할 것이며, 우리 일문은 장차 더욱 위태롭게 될 것이 뻔합니다.

오직 어제 말씀드렸던 계책만이 화를 면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저를 믿어주십시오!”

이연은 깊이 탄식하며 마침내 이세민의 뜻을 받아들였다.

“어제 밤새도록 고민해보니 너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할 수 있느냐! 이제 집안이 망하고 몸이 죽는 것도 너 때문이요,

나라를 세워 임금이 되는 것도 너 때문이다!”

정축년(617년) 5월, 태원 유수 이연은 고구려 원정을 위한 것이라는 황제의 조서를 위조하고

허전관령으로 태원 일대의 장정들을 징발한 뒤에 그해 11월, 이세민, 유문정의 군대와 함께

양광이 있는 수도 대흥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이에 수양제 양광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남중국 양자강변의 강도(江都)로 피신하게 되었다.

대흥에 입성한 이연은 양광의 나이 어린 손자를 신제(新帝:공제)로 옹립하여 잠깐 허수아비 제왕

노릇을 시켰다가 불과 넉 달 뒤인 무인년(618년) 3월, 양광의 심복이자 우문술의 아들인

우문화급(宇文化及)을 시켜 강도의 이궁(離宮)에 도망가 있던 양광을 죽이고,

다시 두 달 뒤인 5월에는 신제의 선위(禪位)라는 형식을 빌려 스스로 신요황제(神堯皇帝)라 칭하며

제위에 오르니, 이것이 바로 당제국(唐帝國)의 시발이요,

이연이 곧 당나라 시조인 당고조(唐高祖)이다.

이로써 수세기에 걸친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의 대분열을 하나로 통일했던 거대한 수제국(隋帝國)은

문제(文帝), 양제(煬帝), 공제(恭帝)의 3대, 38년 역사로 덧없이 막을 내렸다.

《북사(北史)》는 수의 멸망을 다음과 같이 평한다.

안으로는 부강함을 믿고 밖으로는 땅을 넓힐 욕심에 교만으로써 원한을 취하고 성을 냄으로써

군사를 일으키니, 이같은 형편에서 망하지 않은 것은 고래로 듣지 못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