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18
문덕이 고개를 돌려보니 죄수를 싣고 가는 옥거(獄車)에서 쇠줄에 묶인 자가 손을 흔드는데,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황문시랑 배구였다.
갈 길이 바빴지만 문덕은 쌍창워라의 고삐를 잡아당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대의 꼴이 어찌하여 그 모양이오?”
문덕이 묻자 배구가 허탈한 얼굴로 쓴웃음을 지었다.
“이것이 모다 공에게 속은 죗값을 치르는 게 아니고 뭐겠소.
지나놓고 보니 실로 우습구려. 그때 요동성에서 공이 황제의 제업을 칭송하며
벼슬만 청하지 않았더라도 내 어찌 오늘과 같은 변고를 당했겠소.”
배구는 다분히 원망하는 투로 말하면서도 입가에서 허탈한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비록 국운의 흥망을 앞에 놓고 권술(權術)을 겨룬 것이기는 하나 쇠줄에 묶이고
옥거에 갇힌 배구의 딱한 모습을 대하자 문덕으로서도 한가닥 처량한 느낌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장부는 비록 궁하여도 망국지세에 처하지 않고 위급함에 처하여도 난군지록(亂君之祿)은
받지 않는다고 하였소.
아무려면 내가 부형을 죽인 양제 따위에게 감동할 것이며,
무엇이 답답해 그가 주는 녹봉을 받으려 하겠소.”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문덕은 영 입맛이 개운치 않았다.
배구가 옥살 밖으로 사슬에 묶인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아무튼 나는 돌아가면 죽을 목숨이니 이쯤에서 하직 인사나 나눕시다.”
문덕은 배구가 내민 손을 붙잡았다가,
“내 지금 양광의 목을 가지러 가는 길이니 일이 성사되기만을 하늘에 비시오.
하면 그대의 목숨도 절로 구할 수가 있지 않겠소.”
하자 배구가 설레설레 고개를 가로저으며,
“어림도 없소. 황제는 추격군이 있을까 두려워하여 육합성을 철거하기 사흘 전에
선진을 이끌고 먼저 떠났소.
그들은 오래전에 북살수를 건너 이미 지금쯤은 여기(如祈)나 상곡(上谷:탁군 북쪽)
근방까지 이르렀을 것이오.”
하였다. 배구의 말을 듣자 문덕은 다시 한 번 깊은 좌절감을 느꼈다.
배구를 태운 옥거가 저만치 멀어지고 나서도 문덕의 쌍창워라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기필코 양광의 목을 베고자 했던 그로서는 낙담과 충격을 감출 길이 없었다.
“이같은 난리를 조만간에 또 치러야 한단 말인가……”
그는 패주하는 수군의 무리를 지켜보면서 한숨을 쉬며 탄식했다.
승전의 기쁨보다도 양광을 놓쳐버린 아쉬움과 그로 하여 곧 닥칠 수나라의 재침(再侵)이
염려스러웠던 것은 문덕에게는 도리어 당연한 일이었다.
'소설방 > 삼한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20 (0) | 2014.08.18 |
---|---|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19 (0) | 2014.08.18 |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17 (0) | 2014.08.18 |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16 (0) | 2014.08.18 |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15 (0) | 2014.08.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