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15

오늘의 쉼터 2014. 8. 16. 12:03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15

 

 

 

 

 각상이 욱기를 추스르지 못하고 버럭 고함을 지르자

문덕은 가타부타 말이 없이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그따위 계집 하나를 죽이는 데 군사까지 낼 것이 있겠는가.”

하며 따로 계책이 있는 듯이 말하고서,

“당초의 계획은 이미 틀어졌으니 그대는 북살수로 갈 것이 없다.

대신에 비가 내릴 때를 기다렸다가 이곳에서 어린진을 만들어 백암성 북방으로 진격하라.

그럴 때쯤이면 양광은 아마도 군사를 이끌고 요하를 건너가려 할 것이다.

그대는 퇴주하는 양광의 후군을 들이쳐서 건안(建安), 건창(建昌), 백암(白岩), 창려(昌黎) 등

안시(安市)에 속한 제진(諸鎭)들을 평정하여 오래전에 잃은 나라의 구토를 회복하라.”

하였다. 문덕이 말한 지역은 당산과 갈석산 남쪽으로 모두 요서의 땅들이었다.

내지의 일을 알지 못하는 고각상이 물었다.

“요동성까지 빼앗은 양광이 과연 돌아가려 하겠습니까?”

이에 을지문덕은 남살수에서 일어났던 일을 상세히 설명하고서,

“남북이 모두 우리 땅인데 요동성 하나를 달랑 차지해봤자 저들에게 과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요동성은 우리에게나 요긴한 곳이지 이미 수십만 대병을 잃어 패색이 짙은 양광에게는

그저 쌓아놓은 돌무더기에 불과할 뿐이다.

그는 머지않아 반드시 돌아갈 것이다.”

하고 장담했다. 이어 문덕은 남살수에서 군령을 어긴 우민에게도,

“너는 내 명을 어기고 함부로 군사를 내어 아군을 상하게 하였으므로 군율에 따라

목을 베어야 옳으나 공을 세워 죄를 갚을 기회를 주겠노라.”

하고서 다음과 같이 일렀다.

“지금 즉시 비사성으로 가서 을사구에게 군사 5천을 빌려 배를 타고 먼저 북살수 남쪽의 금주로 가라.

그곳에 복병을 설치하고 기다렸다가 양광이 살아서 나타나거든 그의 목을 가져오되,

만일 양광이 요하에서 먼저 빠져죽었다면 너는 그 군사를 이끌고 그대로 서진하여 창평(昌平), 탁성,

신창(新昌), 용도(桶道)에 이르는 여기(如祈:하북성) 지역의 속진(屬鎭)들을 장악하고

그곳에서 나를 기다려라.”

두 사람에게 군령을 내린 문덕은 쌍창워라를 타고 곧바로 백암성의 해찬에게로 갔다.

해찬 역시 맨발로 달려나오며 문덕을 반갑게 맞았다.

문덕은 설세웅의 공격을 물리친 해찬의 노고를 치하하고 역시 내지에서 일어났던 일을

소상히 일러준 뒤에,

“추범동의 성급함이 일을 망치더니 이제 다시 고신이 해를 당했다고 하니

만에 하나 양광을 죽이지 못할까 걱정입니다.

양광을 죽이지 못하면 어찌 차제에 나라의 오랜 숙원인 중원을 병탄하겠습니까?

실로 걱정이올시다.”

하고 근심하였다. 요동성의 참변을 들어 알고 있던 해찬도 고신의 횡사를 원통하게 여기기는

문덕과 매일반이었다.

“장근이 고신의 시신을 육시하여 지금껏 성루에 걸어놓고 분을 씹고 있다 합니다.”

문덕은 고신을 추억하며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더니 곧 해찬에게 필묵을 청하여 단숨에 몇 자를 적어내려갔다.

이윽고 쓰기를 마친 문덕이,

“이것을 요동성에 전해줄 사람이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해찬은 백암성의 성민 가운데 요동성 안에 처족을 둔 사람 하나를 데려왔다.

문덕은 그에게 서찰을 내어주고 말했다.

“너는 이것을 가지고 요동성으로 가서 우화라는 계집을 찾아 은밀히 전하되

다른 사람이 보자고 해도 절대로 보여줘서는 안 된다.

만일 그랬다가는 큰 봉변을 치를 것이니 그리 알라.”

문덕의 명을 받은 성민이 서찰을 가지고 요동성으로 떠나자 해찬이 물었다.

“우화라는 계집은 고신을 죽게 만든 바로 그 요부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상장군께서 그 요부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그 요부에게야 달리 할말이 있습니까.

다만 장근에게 몇 마디를 일렀을 뿐이올시다.”

“방금 서찰은 우화에게 전하라 하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우화에게 전하라 한들 그것이 그리 되겠습니까? 장근이 먼저 보게 될 테지요.”

해찬은 그제야 문덕의 뜻을 알아차리고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화라는 년이 곧 죽겠습니다?”

그러자 문덕도 쓴웃음을 짓고 대답했다.

“그 계집을 골백번 죽인들 죽은 고신이 살아오지 않으니 딱하고 허무할 뿐입니다.”

그리고 문덕은 이렇게 덧붙였다.

“우화뿐 아니라 몇몇 사람이 더 다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