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19
한편 문덕의 명을 받은 성주들은 도망가는 수군의 후미를 들이쳐서 제법 전공을 세우고 소득을 얻었다. 안시성 성주 고각상은 안시(安市)에 속한 제진들을 아울러 요서의 일부 구토를 장악하였고,
오골성의 우민도 비사성에서 얻은 5천의 기병으로 금주에서 여기에 이르는 지역을 공취하였다.
요하 북쪽에서 수중보를 막고 기다리던 현도성의 낙우발과 개모성의 방고도 수군들이 요하를 지날 때
예병을 이끌고 내려와 화룡(和龍), 분주(汾州), 환주(桓州), 풍성(豊城) 등 임황(臨黃) 지역의 땅들을
아우르고 문덕이 이미 지시한 대로 진흙 수렁(遼澤)을 활용하여 오열홀성(烏列忽城) 주변에 집결한
수군을 대파했으며, 특히 신성을 뺏기고 낙우발에게 의탁해 지내던 추범동은 현도도와 부여도로
철군하는 신성의 수군 잔병들을 막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장광도를 휘두르며 실컷 분풀이를 했는데,
길에 널린 시신의 숫자가 족히 육칠백 구를 헤아렸다.
그래 놓고도 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그는 이튿날 요수로 내려와 도강하던 수군 후진을 습격해
다시 1백여 명을 참살한 뒤 말에서 내려 스스로 몸을 결박한 채 요동성에 입성한 을지문덕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복죄하였다.
을지문덕은 노기등등한 얼굴로 말했다.
“너를 용서할 수 없는 까닭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너 하나로 하여 대략에 차질을 빚은 것이요,
둘째는 군령을 어긴 것이며,
셋째는 네가 본래 나의 휘하에 있던 장수로 먼젓번 성주를 폐하고 그 자리에 앉혔기 때문이다.
내 만일 너를 용납한다면 이를 욕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앞으로 누가 과연 나를 따를 것인가?
당장은 이곳에 모인 성주들조차도 돌아서서 너와 나를 손가락질할 것이다.”
그리고 문덕은 추상같은 소리로 좌우에 명하여 추범동을 군법에 따라 참수토록 하였다.
이에 동석한 성주들이 하나같이 사색이 되어 만류하며,
“그의 죄가 무겁다고는 하나 전쟁에서 승리했으니 용서하여주십시오.”
“범동과 같은 장수는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 아니올시다.
앞날의 요동을 생각해서라도 상장군께서 너그럽게 선처해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하였고,
범동이 신세를 졌던 현도성의 낙우발은 노구를 이끌고 범동의 옆에 가서 같이 무릎을 꿇으며,
“범동이 오랫동안 자신의 죄를 뉘우쳤을 뿐 아니라 신에게도 다시는 군령을 어기는 일이 없을 거라며
여러 차례 맹세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가 워낙 혈기방장하여 저지른 일이니 신의 얼굴을 보아서라도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하고 빌었다.
낙우발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이번에는 5천 군사를 이끌고 여기 지역을 장악하여 장공속죄한
우민이 그 옆에 가서 엎드리며,
“군령을 어긴 죄는 저 또한 범동과 매일반입니다.
게다가 범동과 저는 이미 생사를 함께하기로 오래전에 맹약한 사이입니다.
상장군께서 만일 범동을 굳이 벌하시려거든 저도 함께 처벌해주십시오.”
하고 눈물로 호소하였다.
그러나 성주들의 한결같은 간청에도 을지문덕은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눈물을 머금고 아끼는 장수의 목을 벤 예는 고금에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만치 허다하오.
범동이 죽이기 아까운 장수임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아는 바이지만 고래로 출중하고
아까운 숱한 장수들이 군령과 군율을 어긴 죄로 벌을 받은 데는 모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승전한 것은 승전한 것이요,
그것으로 죄인에게 죄를 묻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신상필벌의 지엄함이야말로 국법의 으뜸이요,
병가에서도 이보다 중히 다루는 일은 찾아보기 어렵소.
만일 범동을 용납하여 그것이 범동의 일로만 끝난다면 백 번, 천 번이라도 용납할 테지만
세상의 일은 결코 그리 되지 않습니다.
내가 범동을 아끼는 마음도 사사로운 것이요,
공들이 범동을 생각하는 것도 사사로운 정립니다.
사사로운 것은 아름답기는 하나 이 때문에 법도의 큰 틀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법이오.”
문덕은 근엄한 낯으로 말하고 단하에 꿇어 엎드린 범동을 내려다보았다.
“너는 내가 진실로 아끼던 장수였으니 죽음도 의연히 받아들여라.”
문덕의 말에 추범동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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