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17

오늘의 쉼터 2014. 8. 18. 16:12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17

 

 

 

양광은 신성과 요동성을 잠시 동안 장악했던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는 스스로 위안을 삼기 위해 이 일대에 요동군(遼東郡)과 통정진(通定鎭)을 설치하였는데,

과거 광개토대왕 때 철수했던 요동군을 다시 복구한다는 뜻이긴 했으나 실제로 관리를 두어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제멋대로 이름만 갖다 붙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양광은 육합성을 철거하고 돌아갈 적에 우문술, 우중문 등의 일곱 패장을 쇠사슬로 묶어 데리고 갔다.

그런데 바로 이곳에서 양광을 죽이고 수나라를 병탄하겠다는 을지문덕의 마지막 계책은 치명타를

입고 말았다.

양광의 운이 다하지 않은 탓이었을까,

아니면 남살수에서 시신도 남기지 못한 채 휩쓸려간 수십만 인마의 맺힌 원한 때문이었을까.

분명히 요하가 범람할 정도로 폭우가 쏟아져야 할 날씨가 오히려 구름이 걷히더니 볕이 나기 시작했다. 백암성 성루에서 육합성이 철거되는 것을 지켜본 을지문덕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아아, 나의 마지막 계책이 마침내 수포로 돌아가는구나……”

비가 오지 않는다면 요하의 상류에 마련해둔 방책도 허사였고, 어린진을 만들어 퇴주하는 적을

섬멸하겠다는 계획도 당연히 막대한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오래 머뭇거리지 않았다.

즉시 투구와 갑옷을 갖춰입고 쌍창워라에 올라 해찬과 나란히 백암성의 군사를 이끌고 도망가는

수군을 뒤쫓기 시작했다.

문덕이 적의 후군을 맞닥뜨린 것은 요하의 강둑에서였다.

그에게 후군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문덕이 예맥검을 뽑아 들고 무서운 속도로 쌍창워라를

달려나가는 뒤로 수군 졸개들의 목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수군은 올 때와 마찬가지로 부교를 설치하여 도강하고 있었다.

문덕이 무리의 사이를 무인지경으로 헤쳐 나가자 부교 위에서는 대쪽이 갈라지듯 길이 열렸다.

그가 눈에 불을 쓰고 찾는 사람은 오로지 양광이었다.

쌍창워라가 순식간에 부교를 건너 요서의 강기슭에 당도했을 때 문득 한 장수가 칼을 뽑아 들고

나오며 문덕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네 이놈, 배짱도 좋구나! 네 감히 어디를 헤집고 다니는 게냐?”

그는 요동성에서 후군을 이끌고 출발한 장근이었다.

“시끄럽다, 너 따위는 죽여봤자 공연히 칼만 더럽힐 따름이니

어서 길을 비켜라! 나는 양광의 목을 가지러 왔을 뿐이다!”

문덕이 귀찮다는 듯이 말하자 장근은 분함을 참지 못하고 칼날을 세워 덤벼들었다.

문덕은 쥐고 있던 예맥검을 한 손으로 휘두르며 장근을 밀어붙였다.

10여 합을 싸우고 나자 장근은 자신의 무예가 문덕에 미치지 못함을 알아차렸다.

그는 말머리가 잠시 떨어진 틈을 얻어 문덕에게 말했다.

“그대는 영웅의 기상과 호걸의 풍모를 두루 지녔을 뿐 아니라

그 이름처럼 문덕 또한 높아 병가의 예도를 능히 숭상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들었다.

어찌 군사를 거두어 스스로 돌아가는 황제를 해치려 드는가?”

장근의 말에 문덕은 코웃음을 쳤다.

“패주하는 적을 뒤쫓아 그 수괴를 참하고 후고를 없애는 것은 병가의 상규요 항칙이다.

너 따위와 입씨름을 할 여유가 없으니 어서 덤벼라!”

문덕이 예맥검을 고쳐 잡고 장근을 향해 돌진하자

크게 당황한 장근은 말머리를 돌려 북쪽으로 달아났다.

문덕은 장근을 쫓는 것을 포기하고 서쪽으로 양광을 쫓아갔다.

하지만 수군들이 워낙 빽빽이 길을 메우고 있어서 명마 쌍창워라가 마음껏 달릴 수 없었다.

조금 가다보면 병거며 전차 같은 것이 길을 막고 있었고, 또 조금 가다보면 부상자들을 실은

수레가 앞을 가로막았다.

요하를 건너 10리쯤 말을 달려갔을 때였다.

“그대는 문덕공이 아니시오?”

비지땀을 흘리며 수군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옆에서 문득 한 사람이 알은체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