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13

오늘의 쉼터 2014. 8. 16. 11:49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13 

 

 

 

 

하지만 막상 나타난 군사들은 평양성에 남아 있던 우중문의 군대였다.

우문술은 저만치서 갑옷이 찢긴 채 피를 뒤집어쓰고 달려오는 우중문을 보았다.

그를 따라오는 군사는 기껏해야 5백 명 남짓이었다.

“아니, 장군은 어찌하여 몰골이 그처럼 흉악한가?”

우문술이 묻자 우중문은 한동안 숨을 헐떡거리느라

대답조차 못하다가 가까스로 된숨에 섞어,

“을지문덕이 추격병을 내어 쫓아오고 있소! 잠시도 여기서 머뭇거릴 시간이 없소!”

하며 다급히 응수하고서,

“수많은 군사가 적에게 사로잡혔고, 우둔위장군 신세웅은 을지문덕의 손에 죽임을 당하였소!

나를 따라온 책사 자할도 내가 보는 앞에서 온몸에 창이 박혀 고슴도치가 되었소!

나도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는지 모르오!”

하고 소리쳤다.

우문술은 을지문덕이 쫓아온다는 말에 살수의 참변도 설명하지 못한 채 제장들과 더불어

서둘러 강을 건넜다.

얼마나 혼찌검이 났으면 이들은 그로부터 남살수를 건너 압록수까지 450릿길을

불과 하룻밤 하루 낮 동안에 도망갔다.

그사이에 오골성 성주 우민이 3천 군사를 이끌고 뒤를 쫓았으나 위문승과 왕인공이

2천 기병으로 결사대를 만들어 덤벼들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물러섰다.

우민의 군사가 용맹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남은 수군 잔병들의 서슬과 독기는

가히 살벌할 지경이었다.

그들은 바로 코앞에서 강물에 흔적 없이 떠내려간 동료들을 떠올리며 입술을 짓씹고

죽기살기로 거세게 항전했다.

위문승과 왕인공도 눈에 핏발을 세우고,

“기필코 너희의 간과 뇌를 꺼내어 살수에서 죽은 20만 대군의 원수를 갚으리라!”

하며 양쪽에서 협공하여 달려드는 바람에 우민은 팔을 다치는 부상을 입었고,

고구려군에도 꽤 많은 사상자가 생기고 말았다.

이것은 을지문덕이 시키지 않은 일이었다. 도리어 문덕은 성급한 우민이 살수에서

살아남은 잔병들을 뒤쫓을까 걱정하여,

“본래 대승 뒤에 살아남은 잔적은 뒤쫓지 않는 법이다.

살수에서 얼마가 살아남건 개의치 말라.

나는 저들을 요서에서 또 한번 몰아죽일 큰 계책이 있다.”

하고 거듭 다짐을 두었지만 우민은 잔적을 소탕하여 공을 세울 욕심에

멋대로 군사를 내어 추격하였다가 그만 봉변을 당하고 만 것이었다.

어쨌거나 이때 내지에 들어왔다가 살아남은 군대는 형부상서 위문승이 이끄는 2천 기병뿐이요,

이들이 압록강변에서 우민의 추격군을 따돌린 싸움이 임신년 요동 정벌의 유일한 승전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압록수를 건넌 일곱 장수와 남은 잔병들은 저마다 목을 길게 늘어뜨린 채로

양광이 기다리는 육합성으로 향했다.

이들이 요동의 9군에서 정병을 추려 출발할 때는 그 숫자가 모두 30만 5,000명이나 되었는데,

퇴주하여 압록수를 건너갔을 때는 불과 2,700명에 지나지 않았고,

수만 기의 전차와 병거, 수십만을 헤아리던 기재며 공구들도 모조리 탕진되어 하나도 건진 것이 없었다.

근고에 출사의 성함이 임신년의 수군(隋軍)과 같은 예가 없었으나,

또한 대군(大軍)의 몰패함이 남살수에서와 같은 경우도 유사에서 예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