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11

오늘의 쉼터 2014. 8. 16. 11:37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11 

 

 

 

하류의 강 복판에서 수군들이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을 무렵 상류에 매복해 있던 우민은

마침내 오랫동안 기다리던 때가 왔음을 알아차렸다.

그는 오골성에서 데려온 3천 군사와 살수 이북의 각 성에서 징발한 역부들을 모아놓고 가만히 일렀다.

“전에 상장군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하류 쪽에서 징소리가 울리고 다시 와글와글한 말소리와

고함소리가 들려오거든 보를 터뜨려라 하였는데, 좀 전에 징소리가 났고 이제 과연 사람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니 상장군의 말씀하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니겠느냐?

제군들은 묶어놓은 끈을 자르고 일제히 보를 터뜨려라!”

우민의 말이 끝나자마자 묘향의 남북으로 강물을 막아두었던 수중보가 한꺼번에 터져 달아났다.

터진 봇물은 완만한 경사를 따라 천천히 계곡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불과 잠시였다.

곧 가파른 경삿길을 만나자 사정은 한순간에 급변했다.

가속이 붙은 거대한 물줄기는 마치 승천하려는 용처럼 무섭게 꿈틀거리며 가공할 급류로 돌변했다.

사방으로 비늘 같은 물보라가 튀어오르고 강바닥의 뻘들이 부글거리며 하늘로 용솟음쳤다.

웬만한 계곡의 바윗덩이나 둑의 경계는 여지없이 물살에 휩쓸렸다.

여기저기서 둑이 터지는 소리로 땅이 송두리째 꺼지는 듯했다.

급류는 세상을 한꺼번에 집어삼킬 기세로 내닫기 시작했고,

그것이 폭포가 되어 험곡과 절벽을 타고 떨어질 때는 지축이 흔들리고 우레와 같은 굉음이

천지를 진동했다.

남북 양쪽 계곡을 동시에 흘러내린 상류의 두 지류가 서로 합쳐지는 곳의 풍경은 더더욱 가관이었다.

우리에 갇혀 광모(狂慕)하던 두 맹수는 만나자마자 앞발을 세워 으르릉거리며 서로 격렬히 희롱하다가

그대로 몸을 섞어 한덩어리가 되었다.

그리곤 허물어지는 산더미처럼 걷잡을 수 없는 기세로 맹렬히 둑을 따라 질주하였다.

순식간에 강물은 범람하였고 기슭 가까운 곳의 아름드리 장송고목도 굽이치는 소용돌이 속으로

맥없이 빨려들어갔다.

두 지류가 만나는 곳에서 패주하는 수군들이 도강하던 장소까지는 오솔길을 따라서도 불과 10리허였다. 그러나 수로(水路)는 이보다 훨씬 짧았고, 그 짧은 길을 무섭게 용틀임하며 흘러내린 물살은

어느새 수군들의 시야에 집채만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대체 이것이 무슨 소리냐?”

쉭쉭거리며 달려오는 물소리를 제일 먼저 들은 사람은 위문승이었다.

그는 천지를 요동하는 그 굉음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그것이 쏟아지는

강물 소리라고는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몇몇 부하들과 고개를 상류 쪽으로 빼고,

“어디서 산사태가 났느냐, 큰 바람이 부느냐?”

하고 중얼거렸을 뿐이었다.

하지만 소리의 정체가 그 가공할 모습을 드러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 저것 보십시오! 무, 물입니다!”

징을 치던 부하 몇 명이 돌연 사색이 되어 손가락질을 하는 곳에서 위문승은

비로소 굽이치며 흘러오는 장대한 높이의 물줄기를 바라보았다.

“수, 수공이다!”

그는 경악한 얼굴로 비명을 질렀으나 하도 엄청난 광경 앞에서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아, 안 된다. 안 돼……”

수나라 제일의 지장 위문승이 속수무책으로 서서 신음처럼 내뱉은 말이었다.

“이곳도 위험합니다, 장군! 어서 높은 데를 찾아 피해야 합니다!”

망연자실해 있던 위문승에게 부장들이 말했다.

위문승은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둑을 휩쓸어오는 강물의 기세로 보아

과연 그가 서 있는 곳도 안전하지는 않아 보였다.

하지만 정신을 차린 그는 부장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미친 듯이 강변으로 말을 몰았다.

“강물이 쏟아져 온다! 제군들은 서둘러 양쪽으로 대피하라! 상류에서 엄청난 강물이 밀려오고 있다!”

위문승은 손으로 강의 상류 쪽을 가리키며 한편으론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러댔다.

그러나 채 그 소리가 전달되기도 전에 강물은 밀어닥쳤고,

거대한 수마는 강 복판에 쳐놓았던 다리와 사람을 한꺼번에 집어삼켰다.

뗏목과 판자 부교가 단번에 실가지처럼 끊어졌다.

기슭에 다리를 묶어놓았던 나무둥치조차 뿌리째 뽑혀 강물에 휩쓸리는 판국이었다.

그 위에 서서 다투던 이십 수만의 군사들은 물길의 높이만큼 한 차례 수면으로

훌쩍 솟구쳤다가는 그걸로 그만이었다.

허우적거리는 자도 없었고 놀라거나 비명을 지를 겨를도 없었다.

헤엄을 쳐서 도하하던 자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북편 강기슭에 다다른 자도, 이제 막 강물로 들어선 자도 한순간 물길에 휩쓸려 그대로 사라졌다.

화를 당한 것은 비단 그들뿐 아니었다.

남편 강기슭에 늘어서 있던 군장을 실은 수레며 전차, 수천 마리의 말들까지도

범람한 강물에 뒤섞여서는 이내 그 형체가 없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