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9
후미에 있던 복병 예비부대와 기병 몇몇이 지휘부의 장수들과 함께 응전하였지만
비명을 지르며 땅에 눕는 자들은 박박이 수군들이었다.
우문술은 형원항, 설세웅, 조효재, 최홍승 등과 죽을 힘을 다해 길을 열고자 했으나
시야가 흐리고 말굽이 자꾸만 진창에 빠지는 바람에 마음먹은 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한동안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던 우문술이 빗발이 성긴 틈을 타서 가까스로 성문을 빠져나오려는 찰나,
뒤따라오던 최홍승이 비명을 지르며 말에서 떨어졌다.
우문술이 고개를 돌려보니 최홍승의 왼편 허벅지에 맥궁에서 쏘아 보낸 화살이 꽂혀 있었다.
우문술은 즉시 말머리를 돌려 최홍승에게 달려드는 고구려 군사의 등을 베고 날렵한 솜씨로
그를 끌어올려 주인을 잃고 떠도는 말에 태웠다.
“어떤가?”
우문술이 묻자 최홍승은 죽을 상을 지으며 두 손으로 화살이 박힌 허벅지를 싸쥐었다.
“지금 빼면 오히려 위험하네. 그대로 두고 내 뒤만 따르게.”
그는 최홍승이 탄 말의 고삐를 자신의 말갑옷에 그러매고 칼과 방패를 휘두르며 사방에서
아귀처럼 달려드는 무리를 헤치고 나갔다.
성문을 빠져나가 한참을 앞만 보고 달려가서야 그는 겨우 한숨을 돌리고 뒤를 바라보았다.
최홍승은 아픔에 못 이겨 말잔등에 엎어진 채로 이미 혼절한 상태였고,
나머지 장수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최홍승의 다리를 거의 관통한 화살을 분질러서 뽑아내고 땅바닥의 진흙을 발라
피를 막은 다음 자신의 옷을 찢어 환부를 싸맸다.
그럴 동안에도 최홍승은 깨어나지 않았다.
우문술은 최홍승을 그곳에 둔 채 다시 안주성 쪽으로 말을 몰아갔다.
얼마를 갔을까.
문득 맞은편에서 한 장수가 기병 1백여 기를 거느린 채 허겁지겁 달려오는 게 보였다.
그는 위문승을 대신해 기병 부대를 통솔하던 왕인공(王仁恭)이란 장수였다.
“다른 사람들은 어찌 되었는가?”
우문술이 묻자 왕인공은 숨을 헐떡거리며 대답했다.
“설세웅 장군과 조효재 장군은 저기 오십니다만 형원항 장군께선 적들에게 사로잡혔습니다.
제가 구하려고 달려들었다가 오히려 기병을 모두 잃고 겨우 1백여 기만 남았습니다.
나머지 군사들도 얼마나 죽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우문술은 자신과 함께 전장에서 수발이 황락한 노장 형원항이 적에게 사로잡혔다는 말을 듣자
가슴을 치며 통탄했다.
“너는 시급히 군사들을 인솔하여 선군을 따라가라.”
“장군께서는 어디로 가십니까?”
“형원항 장군은 나의 오랜 지우요,
비록 전장에서 만났다고는 해도 일생을 두고 지란(芝蘭) 같은 우정을 나누어온 사이다.
어찌 그가 사로잡힌 것을 알고 그대로 있겠는가!”
우문술이 칼자루를 고쳐 잡고 달려가려 하자 왕인공이 황급히 옷소매를 부여잡았다.
“안 됩니다, 장군! 지금 가셨다간 장군의 목숨마저 위태롭습니다!”
두 사람이 잠시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저만치에서 세 사람의 장수가 말머리를 앞서거니뒤서거니
달려오는 게 보였다.
우문술이 보니 세 장수가 모두 빗물과 핏물을 뒤집어써서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었으나
가운데 있는 사람은 형원항이 분명해 보였다.
이윽고 우문술의 앞에 이른 세 장수는 설세웅과 조효제, 그리고 형원항이었다.
“무사하였네그랴!”
우문술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형원항의 손을 덥석 붙잡으니
형원항이 연방 된숨을 몰아쉬며,
“여기 두 사람이 죽음을 무릅쓰고 나를 구하였소.”
하고 설세웅과 조효제에게 공치사를 한 뒤에,
“천하의 형원항이 그따위 오합지졸들에게 당하는 것을 보면 과연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오.”
하며 겸연쩍게 웃었다.
이들은 말잔등에서 실신한 최홍승을 데리고 남살수를 향해 내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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