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8
우중문이라고 우문술이 말하는 바를 몸소 느끼지 못했을 턱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알량한 서푼어치 자존심 때문에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계책도 없고 승산도 없는 싸움에 언제까지 고집만 부리고 있을 수도 없었다.
“후군들의 뜻이 정 그렇다면 장군이 인솔해 데리고 가시오.
나는 이곳에서 문덕의 말이 사실인가를 확인한 후에 돌아가도 돌아가겠소.”
우중문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우문술도 더 이상 그를 설득하려고 애쓰지는 않았다.
황제의 절도봉까지 받아온 중문으로서 실상의 철군 명령임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우문술은 곧바로 후군 진영으로 돌아와서 제장들에게 철군할 것을 지시했다.
퍼붓는 장대비 속에서 쳐놓았던 군막을 걷고 창삭과 배갑(방패)을 챙기던 군사들은
도리어 잘됐다는 축과 불평 불만하는 축으로 패가 갈려 진중이 꽤나 시끄러웠다.
검교우어위 호분랑장 위문승이 우문술에게 말했다.
“아무리 을지문덕이 항복하는 서찰을 보내왔다고는 해도 아직은 그 진위를 알 수가 없습니다.
만일 그가 거짓으로 항복하여 우리를 돌아가도록 만든다면 뒤에 반드시 간악한 계책을
세워두었을 게 분명합니다.
어찌 방심할 수 있겠습니까?”
우문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나 역시 바로 그 점을 염려하여 방진을 만들어 철군할 생각이네.”
방진은 적을 분산시키거나 상대의 세력을 단절시킬 때 흔히 쓰는 진법으로 중앙에는
병력을 적게 배치하고 좌우 양옆으로 많은 군사를 두며 지휘부는 뒤쪽에 있는데,
양쪽 옆을 강화하는 것은 기습에 대비하고 적의 대오를 끊기 위해서이며,
지휘부를 뒤에 두는 것은 전방의 변화를 폭넓게 관찰하여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서였다.
우문술의 말에 형부상서 위문승이 덧붙였다.
“그것만 가지고는 안심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비까지 내리고 있어 앞을 분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에게 2천 군사만 주시면 길을 앞서 나가며 전방의 동정을 살피겠습니다.”
우문술은 위문승의 말을 기특하게 여겼다.
곧 그에게 기병 2천을 내어주고 척후의 임무를 맡긴 뒤 나머지 군사들로 방진을 만들어 행군하였다.
평양성을 먼저 출발한 위문승의 척후군이 안주성을 지나쳐 북향하고 나서 20만이 훨씬 넘는
후군의 본진이 뒤따라 안주성에 당도했다.
성 부근에는 여전히 굵은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퇴각하는 수군들은 안주성을 이미 점령한 성으로 알아 마치 제집 마당을 지나듯이 안심한 채
오로지 내리는 비와 발목까지 빠지는 진땅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런데 본진의 절반 가량이 성문을 빠져나갔을 때였다.
홀연 성 뒤편 숲에서 우레 같은 북소리와 함성이 함께 울리더니
한패의 군마가 벼락같이 달려나와 길의 양옆을 포위했다.
“나는 고구려 장수 갑회다!
너희는 대체 뭣을 하는 자들이기에 쥐새끼가 쥐구멍을 드나들듯 함부로 남의 땅을 넘나드는가?
들어올 때는 너희 마음대로 왔지만 나가는 것은 그리 못한다!
정 가려거든 장수의 목을 내놓고 가라!”
퍼붓는 장대비와 자욱한 안개 속에서 문득 한 장수가 언성을 높여 준절히 꾸짖었다.
후미의 우문술이 사방을 돌아보니 흐리고 뿌연 시계(視界) 탓에 대관절
그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가늠할 수 없었지만,
수백 장의 깃발이 숲을 뒤덮고 귀청이 떨어져나갈 듯이 북소리와 고함소리가 요란한 것으로 미루어
결코 만만한 군사는 아닌 듯했다.
더군다나 질척거리는 뻘길을 걷기에도 목이 한 자나 빠져 있던 수군들이었다.
그들은 불시에 맞닥뜨린 복병 앞에서 아예 전의를 상실해 싸울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나는 수나라 장수 우문술이오! 그대 나라에 볼일이 있어 왔다가 을지문덕 장군의 서찰을 받고
서로 합의하여 물러가는 중이니 길을 열어주시오!”
자군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던 우문술이 치욕을 무릅쓰고 말하자
갑회가 문득 코웃음을 쳤다.
“수나라의 우문술이라면 종작없는 양광의 망석중이요,
군추(群酋)의 우두머리가 아닌가?
을지문덕이 우리 상장군의 존함인 것은 확실하나 그분이 적국의 괴수와 무엇을 합의하였단 말이냐?
나는 우리 상장군한테 쥐새끼 한 마리 안주성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라는 군령을 받고
기다렸을 뿐이다!”
말을 마치자 단검 부대와 장창 부대를 앞세워 단숨에 방진의 양쪽을 뚫고 맥궁을 든 기병들을 내어
미처 성문을 빠져나가지 못한 후미를 공략했다.
방진의 대오는 한순간에 크게 허물어졌다.
전곡(前曲)의 보졸들은 뒤에서 싸움이 나자 더욱 걸음을 재촉하여 달아났으며,
후곡(後曲)의 좌우부(左右部)는 숲과 도랑으로 줄행랑을 쳤다.
이 싸움에서 위력을 발휘한 것은 고구려의 단검 부대였다.
고구려의 칼은 말을 타고 달리면서 베고 자르기 유리하도록 칼몸이 뒤로 휘어져 있었다.
후곡 전후부(前後部)는 바로 이 단검 부대에게 포위되어 거의 궤멸되었다.
다만 대오의 한가운데인 중부(中部)의 군사들만 북과 징을 든 금고등대(金鼓等隊)와 더불어
도리어 내지 쪽으로 도망쳤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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