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7
“우중문은 을지문덕을 지나치게 의심하여 일을 그르쳤습니다.
또한 짐작컨대 그는 자신의 부장들이 죽은 것에 깊은 앙심을 품고
그 사사로운 원한을 풀기 위해 우리를 이곳까지 끌어들인 게 틀림없습니다.
그가 무슨 말로 황제의 환심을 사서 우문 장군을 제쳐두고 절도사가 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곳까지 이르는 동안 그의 예상한 것이 어느 하나인들 들어맞는 것이 있었습니까?
무인지경에서는 공연히 어려운 진을 만들어 가뜩이나 지친 군사들을 종작없이 혹사시키더니
정작 을지문덕이 포진하고 있는 평양성을 만나자 힘과 궁리가 다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난감해 있는 형국이 아닙니까?
그에게 특별한 묘책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시급히 철군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올시다.”
설세웅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우무후장군 조효재가 말했다.
“저는 다른 것은 모르겠고 군사들이 남살수를 건널 때부터 돌아갈 일을 걱정해
지금도 둘만 모이면 오직 그 얘기만 하고 있으니,
기왕 돌아가자면 비가 더 와서 강물이 불기 전에 서둘러 철군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러나 이들 세 장수들과는 달리 탁군 태수 최홍승과 형부상서 위문승만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
탁군 태수 최홍승은 우중문에게 자신이 아끼던 애첩 묘저를 상납하고 그 덕택으로 검교좌무위장군에
봉해진 터라 함부로 우중문을 비난하기 어려웠고, 위문승 역시 양광의 충신으로 같은 처지의 우중문을
나쁘게 말할 수 없었다.
“두 장군은 어찌하여 의견이 없는가?”
우문술이 묻자 한참 만에야 위문승이 먼저 입을 열었다.
“승산이 있으면 싸우되 승산이 없으면 단 한 명의 군사도 내지 않는 것이 병가의 상규요 철칙이올시다.
지금 평양성의 험고하고 견고한 것을 보고 또한 우리 군사들의 피폐한 사정을 헤아리매
승산이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인 듯하니 돌아가서 후일을 기약하는 편이 옳겠습니다.”
그는 양광이 총애하는 지장(智將)답게 우중문을 탓하지 않고 오직 병법에 입각해서만 철군에 동의했다. 혼자 남은 최홍승도 제장들의 한결같은 공론을 반대할 수 없었다.
“사정이 딱한 것은 사실이므로 저는 그저 중론에 따르겠습니다.”
우문술은 제장들의 의견을 수렴해 서남방으로 우중문을 찾아갔다.
그리고 후군 장수들의 중론을 전한 뒤에 문덕의 서찰을 보여주었다.
“을지문덕은 비록 적장이나 그가 이윤(伊尹)과 태공(太公)의 지모와 맹분(孟賁)과
전제(專諸)의 용맹을 두루 갖춘 뛰어난 인물임에는 틀림없네.
게다가 그는 지금 우리 군사의 궁핍한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와 같은 서찰을 보낸 것으로 미루어 왕을 데리고 황제의 행재소까지
입조하겠다는 말은 의심하기 어려우이. 더 이상 승산 없는 싸움에 연연해하지 말고
이쯤에서 군사를 되돌려 돌아가세나. 이만하면 충분히 대국의 기량과 위엄을 과시했으니
소기의 목적은 이룬 것이 아닌가?”
우중문은 우문술이 내민 문덕의 글을 읽기 전만 해도 돌아갈 마음이 컸으나 정작 글을 읽고 나자
마음이 달라졌다.
만약 문덕이 자신에게 그와 같이 구구절절한 서찰을 보냈다면 마땅히 이를 핑계삼아 못 이기는 척
철군을 결심했을 것이지만, 우문술 앞으로 보낸 글을 읽고 순순히 따른다는 것은 애당초 일을
주동하고 황제의 절도봉을 휘둘러온 그로선 아무리 생각해도 위신과 체면에 먹칠을 하는 격이었다.
“하면 우문 장군은 여기까지 와서 이따위 서찰 한 통에 수십만 대병을 물리자는 게요?
그래, 이깟 진위도 알 수 없는 서찰 한 통을 받자고 그 고생을 해가며 예까지 왔더란 말씀이오?”
우중문은 잔뜩 못마땅한 얼굴로 미간을 찌푸리며 따지듯이 반문했다.
하지만 우문술도 이번만큼은 우중문의 설만한 태도를 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당장 얼굴에 노여움이 가득하여,
“그렇다면 자네에게 저 성을 함락시킬 묘책이 있는가?
있다면 얘기를 해보게. 나와 후군의 장수들은 철군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서 하는 말일세!”
하며 언성을 높였다.
우중문인들 묘책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어물거리자 우문술은 노장의 위엄을 갖추고
근엄한 낯으로 평소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싸움은 혈기나 분기 하나만 가지고 하는 법이 아니야.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설 때라야 비로소 군사를 내는 것이 병가의 지론일세.
내가 보기에 이번 전쟁은 시작부터가 크게 잘못되었네.
황제께서는 우리가 수백만 대병을 만들어 요하를 건너면 고구려의 군신들이
모두 두려움에 벌벌 떨며 감히 항전할 엄두도 내지 못할 것으로 믿었지만
오히려 저들은 우리 대군의 허실을 간파하여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시일을 끌었네.
또한 고구려의 지형과 지세를 미리 파악하지 아니한 탓에 대군이 체계 없이 움직였고,
군사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군량을 주니 이를 강에 버리고 땅에 파묻는 바람에
지독한 굶주림을 겪게 되었네.
우리의 군사가 비록 이삼백만에 달하는 공전절후의 대군이라고는 하나
그 가운데 창칼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자는 기껏해야 30만 안팎이요,
이는 처음부터 소수의 정병으로 부대를 만들고 치밀한 전략을 세워 나서는 것보다
훨씬 못한 결과를 낳고 말았네.
군사들이 더 상하기 전에 돌아가는 것이 상책일세.
돌아가서 후일을 기약함이 옳으이. 내 요동에 와서 겪어보니
고구려는 남녕이나 돌궐과는 그 세력이 판이한 무리요,
하남의 진국(陣國)을 평정할 때보다 오히려 힘이 드네.
결코 하찮게 볼 곳이 아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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