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6
이때 평양성의 을지문덕은 우중문에게 시를 써서 보내고 다시 우문술에게도 서찰 한 통을 썼다.
우중문에게 보낸 짧은 글과는 달리 이번에는 제법 구구절절이 장문의 글을 적었다.
자신은 황문시랑 배구와 약조한 바대로 아직도 양광에게 항복할 뜻이 있으며,
대원왕이 요동에 오지 않았으므로 왕을 만나러 내지로 들어온 것뿐이라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울러 자신을 의심하여 대병을 이끌고 쫓아온 우중문의 처사를 원망한 뒤에,
만일 지금이라도 군사를 되돌릴 것 같으면 반드시 왕을 설득하여 양광이 있는 곳까지
입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평양성 성주 고웅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덕에게 물었다.
“설마 항복을 하시겠다는 말씀은 아닐 테지요?”
“왜 아니야? 항복을 하겠다는 말일세.”
“진심은 아니시겠지요?”
“물론일세.”
문덕이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우문술에게 거짓으로 항복하시는 뜻은 어디에 있습니까?”
고웅의 질문을 받자 문덕은 우중문의 요동성 진채에서 있었던 일을 상세히 일러주었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 까닭에 저들이 나를 쫓아 내지로 들어온 것이고 이는 바로 우중문이
주동한 일임을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네.
하지만 나이로 보나 지위로 보나 수나라 최고 장수는 우문술일세.
우중문의 주동으로 마지못해 따라 나선 우문술의 마음이 어찌 복잡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우중문은 덕이 없고 혈기만 앞선 자이지만 우문술은 제법 사려가 깊고 분별력을 지닌 사람일세. 저들을 돌아가게 만들자면 우문술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퇴로의 명분과 구실을 주어야지. 자고로 군사를 내는 것과 물리는 것은 오로지 명분일세. 이제 여기까지 쫓아왔는데 제아무리 군사들이 지치고 승산이 없다 한들 명분을 주지 않으면
저들이 어찌 돌아갈 수 있겠는가?
궁구물박은 모든 병서에서 이르는 한결같은 계칙이요,
진리일세.
비록 궁핍한 지경에 처해 있다고는 해도 저 많은 군사가 죽기 살기로 싸운다면
우리로서도 그다지 승산이 없는 일이네.
그러므로 우문술에게 거짓으로 항복하여 궁한 적들이 이를 명분으로 삼게 하고 결국은
그를 구실로 퇴로를 열어주고자 함일세.”
“장군의 깊은 뜻은 가까스로 알겠습니다만 하면 어찌하여 우중문에게는 빈정거리는
시를 적어보내셨습니까?”
“그건 두 적장의 마음을 서로 어긋나게 만들어 돌아가는 길을 어지럽게 해두려는 또 다른 계책일세.”
“퇴로를 주고 동시에 돌아가는 길을 어지럽게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때까지도 고웅은 문덕의 뜻이 오로지 수군을 쫓아내는 데만 있다고 믿고 있었다.
문덕은 대답을 잠시 미루고 성곽 아래로 수십만 수군의 무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두고 보게마는 저 숱한 사람들 가운데 요동까지 살아서 돌아갈 자가 과연 몇이나 될는지 알 수가 없네.”
고웅은 비로소 문덕의 심중에 또 다른 깊은 뜻이 있음을 깨달았지만 더 묻지 않았다.
문덕이 써서 보낸 장문의 서신은 야산 동남방의 후군 진채에도 전해졌다.
우문술 역시 잠을 설쳐 핏발이 벌겋게 선 눈으로 문덕의 서신을 읽어내려갔다.
그는 읽기를 마치자 제장들을 불러모으고 서신을 보여준 뒤 한 사람씩 의사를 타진했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우문술과 비슷한 연배의 좌효위대장군 형원항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하필이면 먹을 것이 궁한 이때에 압록수를 건너오는 것이 께름칙하였소.
기왕 압록수를 건너기로 들면 가을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군사들의 배를 불린 뒤에 왔어야지요.
여기 와본들 창고는 비어 있고 나락은 아직 여물지 않았으니 굶주린 자들을 구제할 방법이 없지 않소?
넉넉잡아 달포 뒤에만 출발을 했어도 이와 같은 곡경은 겪지 않았을 것이오.
나는 과문하여 그런지 자고로 먹지 못한 군사를 가지고 싸움에서 이겼다는 소리를 들어본 바가 없소.
더욱이 이제 적장 을지문덕이 항복하는 뜻을 밝히고 그의 왕과 함께 황제의 행재소(行在所)까지
오겠다고 하니 퇴로할 명분도 얻은 것이 아니오?
잠시도 더 여기 머물러 고생할 이유가 없소이다.”
형원항을 뒤이어 우효위대장군 설세웅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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