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4
그로부터 다시 15리쯤 행군했을 때였다.
이번에도 소로가 시작되는 곳에 이르자
장수 하나가 한 패의 기병을 거느린 채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웬놈들이 떼를 지어 몰려오느냐?”
하며 언성을 높여 물었다. 우중문은 대답을 하는 것조차 귀찮았다.
“비키지 않으면 죽이고 가겠다!”
“저런 발칙한 놈을 보았나? 이눔아, 내가 누군 줄 알고 감히 말을 함부로 하느냐?”
“너 따위가 누군 줄은 알아서 무엇하느냐? 냉큼 길을 열어라!”
그러자 이번에도 장수는 이삼백 명 남짓한 군사들에게,
“뭣들 하는가? 어서 저 방자하고 흉측한 화적패들을 단칼에 처치하라!”
하며 결전을 명하였고, 명을 받은 군사들은 두려움도 모르는 듯
장창과 환도를 휘두르고 맥궁을 쏘아대며 거세게 달려들었다.
사정은 지난번과 비슷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널찍한 공터가 한참을 가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자연히 선봉에 섰던 수군들의 피해가 컸다.
다시 수백 명이 고구려 복병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가까스로 넓은 공터까지 밀고 나오자
과하마를 탄 복병들은 미리 약속이나 한 듯 재빨리 등을 돌려 연기처럼 사라졌다.
우중문은 약이 올라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내 저것들을 결코 용서치 않으리라!”
그러나 이번에도 자할과 신세웅이 황급히 만류했다.
“군사들이 지칠 대로 지쳐 있습니다. 고정하십시오.”
그런데 이런 일은 그 뒤로도 끊임없이 일어났다.
소로만 시작되면 어김없이 장수 하나가 기백 명의 병마를 거느린 채 길목을 지키고 섰다가
공격을 해왔고, 불리한 장소까지 밀리면 황급히 등을 돌려 달아나곤 했다.
같은 일이 서너 번 되풀이되자 우중문은 고사하고 신세웅과 자할까지도 바짝 약이 올랐다.
언제부터인가 이들은 냉정함을 잃고 도망가는 복병을 맹렬히 추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길목이 좁아지면 여지없이 또 다른 복병을 만났으며,
먼저 도망가던 복병들도 전열을 갖추어 합세하고 나왔다.
이와 같은 일은 그날 하루 동안 무려 일곱 번이나 계속되었다.
그쯤 되었으면 능히 상대의 계략을 알아차릴 법도 하련만,
우중문은 적의 도성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과 어서 불세지공을 세우고 싶은 욕심에 사로잡혀
거의 분별력을 잃고 있었다.
그는 칠전칠승(七戰七勝)의 기염을 토하며 가뜩이나 허기에 지친 피곤한 군사들을 무리하게 내몰았다.
때문에 안주성을 지나서 평양성이 저만치 바라뵈는 곳에 이르렀을 때는 장졸 모두가
운신도 어려울 만치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우중문은 남을 탓하기에 앞서 우선 자신이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하루종일 비를 맞고 온 터라 저녁이 되자 으슬으슬 한기까지 느껴졌다.
그는 마상에서 내외 겹축으로 쌓아올린 장대한 평양의 석성을 바라보았다.
마치 한동안 애를 먹은 요동성을 연상케 했으나 그보다 훨씬 높고 견고해 보여 눈앞이 다 캄캄했다.
성루에는 비에 젖은 오색 깃발이 수도 없이 꽂혔고, 성루를 오가는 군사의 숫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우중문은 우선 사방을 둘러보며 군영을 설치할 장소부터 물색했다.
그의 눈에 성과 30리쯤 격한 야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그곳에 의지해 군영을 짓고 지친 몸부터 추슬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진을 칠 때는 반드시 물과 풀을 의지하고 숲을 등진다고 했다. 어찌 저곳을 피하겠는가?”
하지만 막상 군사들을 거느리고 야산에 이르러 주변을 살펴보니 군영을 지을 만한 마땅한 장소가
선뜻 눈에 띄지 않았다.
지형이 편평하고 경사가 완만하다 싶은 곳에는 박박이 바위가 박혔거나 크고 작은 나무가 있었고,
성을 관찰하기 좋은 서남방과 동남방 사이에는 족히 두 자 깊이의 폭 넓은 구릉까지 패여서
시뻘건 뻘물이 흘러내렸다.
“땅도 참 지랄같이 생겼구나.”
우중문은 양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투덜거렸다.
“그래도 하는 수 있느냐?
바위를 들어내고 나무를 뽑아 군영을 만들어야지.
구릉까지 다 메울 수는 없으니 천상 두 곳으로 나누어 머물 수밖에.
선군은 숫자가 적으니 서남방을 쓰고 후군이 당도하면 동남방을 내어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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