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1
한편 건무와 나란히 장안성을 떠난 을지문덕은 도성에서 얻은 8천 군사를 거느리고
패수를 건너 남살수 강변까지 가는 동안 요소요소에 적당한 수의 복병들을 배치했다.
그는 우선 옛 대궐인 평양성에 이르자 성주 고웅(高雄)을 불렀다.
“나는 남서풍이 강하게 일어날 때를 대비해 적군을 바로 여기까지 유인할 작정이네.”
문덕의 말을 들은 고웅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 만큼 놀랐다.
“여기서 대궐이 불과 30여 리 길입니다.
애 업은 아낙네가 걸어가도 반나절이 채 걸리지 않을 터에 이토록 가깝게 적을 유인하였다가
혹 낭패라도 당하지나 않을지 두렵습니다.”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네.
적병이 이곳에 이를 때에는 그 숫자가 얼마이든 굶주리고 피로한 것이 극에 달해
종이호랑이나 진배없을 것이네.
내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어 여기까지 유인할 테니 그대는 조금도 걱정하지 말고 내 명에만 따르게나.”
문덕이 침착하고 의연하게 말하자 고웅은 비로소 약간 안도하는 얼굴이 되었다.
“하명하십시오. 어찌 장군의 명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평양성은 전날 임금이 거처하던 곳으로 그 성곽이 높고 굳건하기가 5부의 170여 개 성곽 가운데
으뜸일세.
그런데 이곳의 지세를 살펴보면 적이 도착하여 군영을 만들 곳이 북방 30여 리의 야산밖에 없다네.
적들은 반드시 북방 야산에 의지하여 군영을 만들고 여러 패의 군사를 내어 기습전을 펼칠 것이네.
그대는 내가 적을 유인해 이곳으로 돌아올 때까지 성안의 장정들을 동원해 야산 산자락 아래의
평지라는 평지는 죄다 없애도록 하게.
바위를 굴려 널브러뜨려 놓아도 좋고 나무를 옮겨 심어도 좋네.
아무튼 적군들이 군영을 짓기 곤란하도록 만들어서 가뜩이나 지친 자들이 더욱 지칠 수밖에 없도록
해야 하네.
또한 야산의 서남방과 동남방 사이에 깊은 구릉을 파서 군영을 짓더라도
여러 곳에 분산하여 짓도록 만들게.
그리고 성루에 깃발을 꽂고 궁수들을 배치해 기다리기만 하면 되네.
나머지는 내가 돌아오면 알아서 하겠네.”
“그것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고웅은 흔쾌히 명을 받았다.
문덕은 평양성에 1천 군사를 배치한 다음 나머지를 이끌고 북향하였다.
두번째로 문덕이 이른 곳은 평양성 북방의 안주성(安州城)이었다.
그는 젊은 장수 갑회(甲淮)에게 말했다.
“너는 안주성의 뒤편 숲에 3천 군사를 숨기고 있다가 적군들이 이곳을 지나쳐
평양성으로 향할 때는 나오지 말고, 패수를 건너 도주할 때 복병을 이끌고 나와 소탕하라.
적들은 반드시 방진(方陣)을 만들어 도망할 것이다.
방진은 중앙이 허한 대신 양옆으로 많은 병력을 배치하는 진법으로 지휘부는 후군에 있다.
너는 방진을 농락할 수 있는 의진(疑陣:일명 玄襄陣)을 만들라.
깃발을 즐비하게 세우고 북을 두들겨 북소리가 우렁차게 퍼져나가도록 하며 동시에 군사들로 하여금
쉴새없이 고함을 질러 마치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을 갖도록 하라.
군사를 내어 칠 때는 후군부터 먼저 공략하되 전광석화와 같이 내달을 것이지만 굳이 도망하는 자들은
10리 이상 뒤쫓지 말라.
너무 멀리 쫓아가면 살수에서 도리어 일을 그르칠 수가 있다.”
갑회가 명을 받고 물러나자 문덕은 나머지 4천의 기병을 이끌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그는 패수에서 남살수에 이르는 일곱 군데의 성과 길목마다 수백 명의 복병들을 배치하였다.
이들은 한결같이 수군(隋軍)들이 진격할 때 소로에서 싸움을 걸고 적이 쫓아오면 적당히 틈을 보아
도망하라는 이상한 명령을 받았다.
그런데 문덕이 평양성을 떠날 무렵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해 안주성에 이르렀을 때는
장대비가 쏟아졌다.
군사들은 모두 비를 피해 성안으로 달려갔지만 문덕은 도리어 활개를 벌린 채로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았다.
그는 만시름이 걷힌 듯한 밝은 표정으로 비가 퍼붓는 우중충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아, 과연 하늘님이 우리 고구려를 버리지 않는구나!
이제 양광의 군대를 토벌하고 나라의 오랜 근심을 없애는 일은 아침이 아니면 저녁이다.
이보다 더 반갑고 기쁜 손님이 세상에 또 있으랴!”
하고 빗속에 서서 어깨춤까지 덩실거렸다.
여름철에 접어들면서부터 더러 소나기가 내리는 날은 있었지만 그해 7월 초순,
강한 남서풍에 묻어온 장대비는 여느 때의 소나기와 확실히 다른 구석이 있었다.
때때로 맹렬한 빗발이 숙지근해지고 흑빛 구름장 사이로 언뜻언뜻 푸른 하늘과 밝은 햇살이
비치기도 했으나 그러다가는 이내 땅이 패일 만큼 세찬 폭우가 퍼부었다.
하루 이틀에 그칠 비가 아니요, 그것은 바로 문덕이 애타게 기다려온 여름철 장맛비였다.
그가 여러 해를 두고 유심히 관찰하여 속으로 점치고 있던 날짜와 불과 이삼 일 상간이었다.
내지에서 장맛비를 만난 문덕의 기쁨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그는 뿌리는 비를 맞으며 남살수 강변에 이르자 미리 준비해 간 음식으로 천신과 수백(水伯)에
제사를 지낸 뒤 적당한 장소를 골라 진을 치고 수군이 당도하기를 기다렸다.
'소설방 > 삼한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3 (0) | 2014.08.15 |
---|---|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2 (0) | 2014.08.15 |
제14장 신성(新城)함락 34 회 (0) | 2014.08.09 |
제14장 신성(新城)함락 33 회 (0) | 2014.08.09 |
제14장 신성(新城)함락 32 회 (0) | 2014.0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