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3
그리고 압록수에 이어 두번째로 군령을 내렸다.
“강 건너에는 필시 적군이 매복하고 있을 것이다.
장수들은 자신들이 거느린 군대가 건너갈 뗏목과 부교를 두 개 이상씩 설치하라.
부교가 완성되면 각 진에서 동시에 군사를 내어 북을 치며 벼락같이 강을 건너야 한다.
강물이 얕으므로 물길에 능한 자들은 헤엄을 쳐서 건너가도 무방하다.
건너편에 이르러 적군이 응전하면 방패를 든 기병을 앞세워 일제히 무찌르고
그사이 보졸들은 대오를 정비해 횡렬로 진군하되,
군과 군은 서로 밀착하여 떨어지지 않게 하고,
도검 부대를 양쪽 옆으로 배치하여 진형의 양 날개가 갈고리처럼 적을 에워쌀 수 있도록 하라!”
우중문은 건너편의 적들을 의식하고 동시다발의 횡렬식 도하를 지시했다.
이에 여덟 명의 장수들은 자신들이 이끄는 정병들을 통솔하여 진마다 2개 이상씩의 부교와
뗏목을 설치하고 요란하게 북소리를 울리며 남살수를 건너기 시작했고,
후텁지근한 날씨 탓에 물 속으로 뛰어들어 헤엄을 치는 자들도 부지기수였다.
시나브로 비는 내렸지만 강물은 아직 천천히 흘러갔다.
강의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우중문과 말머리를 나란히 하여 부교를 건너던 우문술이 말했다.
“비가 그치지 않으면 낭패가 아닌가?
군사들이 강을 건너며 속으로 돌아갈 일을 걱정하지나 않을지 모르겠네.”
우중문은 우문술의 말이 귀에 거슬렸다.
“장군은 여기까지 와서도 돌아갈 때를 걱정하시오?
우리는 적성을 차지하고 황제께서 이곳에 납시기를 기다릴 것이오.
그럴 동안 고생한 군사들에게는 매일 잔치를 열어 기름진 음식을 먹이고 빼앗은 재물을
골고루 나누어 고생한 보람을 느끼도록 할 것이오.
돌아가는 것은 그 뒤의 일이니 빨라야 가을일 텐데 무엇이 걱정이란 말이요?
설마하니 이 비가 그때까지 내리겠으며, 설사 그때까지 내린들 또한 무슨 상관이 있겠소?”
“글쎄, 일이 잘되면야 무엇이 걱정이겠나.
나는 다만 병서에 나오는 퇴필유반려(退必有反慮)를 말하였을 뿐이네.”
“잘못될 턱이 무어요? 볕이 쨍쨍 내리쬐는 무더운 날씨보다 오히려 이런 날씨를 만난 게
복이고 길조지요. 장군은 내지의 형편을 몸소 겪고도 아직 두려움을 갖고 계시오?”
우문술은 그만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평생을 싸움터만 전전한 이 백전노장은 어딘지 모르게 석연찮은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남살수를 건너는 동안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중문은 강기슭에 이르러 군진을 정비했다. 건너편에서 바라보았을 때 분명히 진을 치고 기다리던
적병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우중문은 그들이 자신들의 위세를 보고 겁을 내어 일찌감치 달아났다고 판단했다.
“이곳부터 군사를 선군과 후군, 두 패로 나눈다.
내지는 거의 무인지경과 같으므로 공연히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기운을 뺄 것이 없다.
우둔위장군 신세웅은 나와 함께 선군을 맡고 나머지 장수들은 후군이 되어 우문술 장군의 명을 받으라. 후군은 오로지 선군이 간 길을 따라가면 되는 것이니 척후를 따로 둘 것도 없고,
진형을 구축할 이유도 없다.
내일 중으로는 반드시 장안성에 이르러 술과 떡과 고기를 입에 넣을 수 있도록 하리라!”
우중문은 피로하고 지친 군사들을 걱정해주는 것처럼 말했으나 사실은 도성 입성의 제일 공로를
자신이 차지하고 싶었다.
우문술이라고 우중문의 이같은 마음을 모를 리 없었지만 그는 잠자코 후군으로 물러섰다.
우중문은 신세웅과 더불어 길을 열어 나갔다.
그렇게 남살수에서 10여 리쯤을 남진하여 왔을 때였다.
꺾여진 길의 모퉁이를 돌자 돌연 앞쪽이 소란스러워지며 과하마를 탄 한 패의 병마가
우중문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너희들은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 자들인가?”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에서 한 장수가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우중문이 보니 모두 합해야 3백여 명 남짓한 군사들이 대오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무리를 지어 서 있을 뿐이었다.
“너 따위가 그런 것을 알아 무엇하느냐?
나는 수나라에서 온 우익위대장군 우중문이다.
우리 황제의 명을 받들어 고구려왕의 벼슬과 작위를 폐하러 왔으니
잔소리 말고 길을 비켜라.
여차하면 단숨에 목을 베리라!”
우중문이 청룡도를 흔들며 위협하자 장수가 큰 소리로 꾸짖었다.
“너의 황제가 무슨 권한으로 우리 대왕의 벼슬과 작위를 뺏는단 말인가?
듣고 보니 방약무도하기가 이를 데 없구나!”
“네가 아무래도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 보구나.”
우중문은 시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고구려 장수가 칼을 높이 뽑아 들며,
“기다리던 수군들이 왔다! 모두 달려나가 본때를 보여줘라!”
하자 3백여 명의 고구려군이 함성을 지르고 장창과 칼신이 휘어진 환도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우중문은 기가 막혔다.
되도록 피곤한 군사들을 움직이지 않으려고 했지만 무기를 앞세워 달려드는 적을 보고
대적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죽여 없애라!”
그는 싸울 것을 지시한 뒤 스스로 청룡도를 꼬나 쥐고 장수를 향해 말을 몰았다.
길은 우마 두 대가 가까스로 비켜갈 만한 소로였다.
당연히 군사의 많고 적음이 별의미가 없었다.
우중문은 장수를 몰아세우며 눈으로 넓은 평지가 있는지를 계속 더듬었다.
다행히 고구려군의 뒤편으로 1백여 보쯤 거리에 널찍한 공터가 보였다.
“1백여 보만 밀어붙이면 쉽게 이길 수 있다! 사력을 다해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말라!”
우중문은 고함을 지르며 앞장서서 복병들을 무찔렀다.
고구려 장수는 우중문의 상대가 아니었다.
삼사 합을 겨루다가 문득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고, 다시 삼사 합을 겨루다가 달아나기를 반복했다.
우중문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반드시 그를 죽이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빗발이 굵어지는 바람에 자꾸만 시야가 가렸다.
한참 만에 원하던 장소 근처까지 복병을 밀어붙이자 감질나게 응전하던 고구려 장수는
별안간 군사들을 이끌고 등을 돌려 쏜살같이 달아났다.
우중문은 잔뜩 약이 올라 그를 뒤쫓으려 했지만 자할과 신세웅이 급히 뜯어말렸다.
“군사들이 기진맥진해 있습니다.
쓸데없이 힘을 허비할 까닭이 없습니다.”
가랑비에 속옷 젖는다고, 장창과 단검에 목숨을 잃은 자들이 1백여 명이나 되었으나
우중문은 분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추격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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