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 21장 욕정 [7]
(443) 21장 욕정 <13>
임수영이 응접실에 들어섰을 때는 오후 9시 55분이다.
만찬을 9시 10분에 끝냈기 때문에 임수영은 숙소에 들렀다가 바로 관사에 온 셈이다.
“장관 동지, 밤 늦게 죄송합니다.”
최성갑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선 임수영이 민망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오늘밖에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요.”
“괜찮습니다. 혼자 살고 있으니까 임 단장 같은 미인이 오시면 반갑죠.”
유병선이 들으면 투덜거릴 대답을 해놓고 둘은 소파에 마주보고 앉았다.
임수영은 만찬 때 40도짜리 금강산주를 대여섯 잔 마셨는데 지금은 말짱한 얼굴이다.
술이 다 깬 것 같다.
둥근 얼굴에 곧은 코, 눈은 반달 모양으로 눈꼬리가 조금 솟았다.
쌍꺼풀이 없었고 속눈썹이 드러나지 않았어도 또렷한 눈이다.
키는 170㎝쯤 되었을까? 날씬한 몸매가 유연성 있게 움직였다.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임수영이 입을 열었다.
“저, 만경봉 악극단에서 나온 인원으로 이벤트 회사를 차리려고 해요.
이벤트 회사 내에 악단, 무용단, 가수, 곡예단, 그리고…….”
힐끗 서동수의 눈치를 살핀 임수영이 수줍게 웃었다.
“룸살롱이나 유흥업소까지 경영해 보려고요.”
순간 숨을 삼켰던 서동수는 표시가 날까봐서 소리 죽여 숨을 뱉었다.
임수영의 말이 이어졌다.
“당의 허가도 받았고 인력도 충분히 확보되었습니다.
당에서는 몇 천 명이라도 인력을 공급시켜 준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요…….”
임수영이 정색하고 서동수를 보았다.
“합작 파트너를 구해야겠어요.
그래서 먼저 장관님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먼저 남조선 측하고 상의하는 것이 도리일 것 같아서요.”
서동수가 다시 심호흡을 했다.
만일 중국이나 일본 측이 이 제의를 받았다면 환장을 했을 것이다.
이것만큼 확실하고 안전한 장사가 있겠는가?
북한이 전문 인력을 얼마든지 댄다는 것이다.
북한이 마음만 먹는다면 ‘천리마운동’의 반의 반의 반만 노력해도 수천 명의 무희,
수천 명의 가수, 수만 명의 룸살롱 아가씨를 공급할 수가 있다.
라이브 쇼? 아주 무대에서 수십 명이 부르는 생음악 노래를 들려주마,
지금처럼 입하고 노래하고 맞지 않아서 금붕어가 깔딱거리는 것 같은 장면도 사라질 것이었다.
작게 헛기침을 한 임수영이 서동수를 보았다.
“장관님, 저는 장관님의 동성하고 파트너가 되고 싶어요. 괜찮겠지요?”
순간 서동수는 목구멍 안에서 손이 뻗어나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입만 벌리면 손이 빠져나와 임수영하고 악수를 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어금니를 물었다가 풀면서 이 사이로 대답했다.
“검토해 봅시다.”
“그럼 이야기는 된 거예요. 그렇죠?”
“그런 셈이네요.”
그때 임수영이 서동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청하는 것이다.
서동수가 손을 잡았더니 임수영이 흔들면서 웃었다.
“제가 밤 늦게 뵙자고 해서 긴장하셨지요?”
“아니, 그런 적 없습니다.”
정색한 서동수가 임수영의 손을 힘주어 쥐었다.
말랑하고 따뜻한 손이다.
순간 목구멍이 좁혀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서동수는 숨을 들이켜 숨길을 넓혔다.
그때 손을 뺀 임수영이 집 안을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집이 넓네요, 저, 오늘 여기서 자고 가도 될까요?”
웃지도 않고 말했으므로 서동수는 긴장했다.
(444) 21장 욕정 <14>
인간은 가끔 진심을 농담처럼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서동수는 그 짧은 순간 번민에 빠졌다가 대답했다.
“임 단장보다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실걸요?”
자리에서 일어선 임수영이 눈웃음을 쳤다.
반달 모양의 눈이 둥그레지면서 얼굴 전체가 웃는 모습이 되었다.
웃는 모습이 좋은 사람은 인상이 오래 남는다.
서동수의 머릿속에 임수영의 인상이 깊게 박혔다.
응접실 밖으로 나온 임수영이 현관으로 다가가다가 서동수의 옆에 바짝 붙었다.
현관에서는 최성갑이 기다리고 있다.
“언제 다시 집으로 초대하실 건데요?”
임수영이 낮게 묻자 서동수는 정색하고 대답했다.
“계약하고 나서.”
“기다릴게요.”
임수영이 발을 떼면서 슬쩍 엉덩이로 서동수의 몸을 부딪쳤다.
촉감과 후각이 동시에 발동된 것은 그만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강렬한 색향(色香)과 탄력있는 촉감이 또 서동수의 머릿속에 깊게 박혔다.
임수영을 현관 앞에서 배웅하고 돌아온 서동수가 곧 기다리고 있던 유병선을 응접실로 불러들였다.
밤 10시 45분이다.
앞쪽에 앉아 잠자코 시선만 주는 유병선에게 서동수가 임수영의 제의를 말해주었다.
“당신 말이 맞았어.”
서동수가 정색하고 유병선을 보았다.
“내가 실언했어. 당신은 대통령 비서실장 감이야.”
“지금 10시 50분이 되었습니다.”
손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하면서 유병선이 말했다.
“냉장고에 넣어둔 성경책을 지금 꺼내셔도 될 것 같은데요.”
유병선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가 심호흡을 두 번이나 했다.
그때 시선을 내린 유병선이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러더니 그 자리에서 버튼을 누른다.
단축 다이얼로 저장시켜 놓았는지 버튼을 한 번만 누르고 나서 기다렸다.
“네, 실장님.”
수화구에서 진윤화의 목소리가 울렸다.
“네, 제가 지금 장관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진 사장님.”
외면한 채 유병선이 말했고 진윤화는 대답하지 않는다.
“장관님께서 뵙자고 하시는데요. 괜찮으시겠습니까?”
“저기, 지금 옆에 계세요?”
진윤화가 되묻는 소리를 듣자 서동수는 손을 내밀었다.
“네, 바꿔 드리겠습니다.”
서둘러 대답한 유병선이 핸드폰을 서동수에게 건네주고는 응접실을 나갔다.
서동수가 핸드폰을 귀에 붙였다.
“전화 바꿨어.”
“웬일이세요?”
진윤화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여 있다.
“절세미인 셋을 데리고 식사를 하시더니 2차는 안 했어요?”
“그런 관계가 아냐.”
“갑자기 왜요?”
“왜? 싫어?”
“누가 싫대요? 갑자기 그러니까 놀란 거지. 거기 유 실장님 옆에 있어요?”
“전화기 주고 나갔어.”
“그럼 마음 놓고 말할 수 있겠네. 내 생각이 났어요?”
“항상.”
“그럼 지금 갈게요.”
그러고는 전화가 끊겼으므로 서동수가 소파에 등을 붙였다.
저절로 긴 숨이 뱉어졌고 저절로 말이 나왔다.
“역시 살던 대로 살아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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