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14장 신성(新城)함락 32 회

오늘의 쉼터 2014. 8. 9. 20:38

제14신성(新城)함락 32

 

 

 두 장수의 검이 맞부딪칠 때마다 청아한 쇳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었다.

양자가 말머리를 하나로 아우르며 10여 합을 싸웠을까. 문득 건무가 등을 보이며,

“안 되겠다. 모두 외성으로 달아나라!”

하고는 말머리를 돌려 도망하자 고구려 군사들이 허둥지둥 건무의 뒤를 따라갔다.

내호아는 급히 휘하의 장수들을 불러모아 전군으로 하여금 대오를 갖추고

건무의 뒤를 쫓도록 명령했다.

주법상이 황급히 그런 내호아를 만류했다.

“아까 고구려 장수가 싸우는 것을 유심히 보았는데 그 검술과 몸놀림이 한 치의 허점도 없었습니다.

나는 그가 장군을 당하지 못해 달아났다고는 믿지 않소.

다행히 배에 붙은 불길도 잡았으니 예서 며칠 더 기다려봅시다.”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주법상의 말에 내호아는 크게 기분이 나빴다.

“네 감히 나를 조롱하느냐?

여지껏 나는 어금니가 부서질 정도로 너의 오만방자함을 참아 넘겼다만

더 이상은 불손하기 짝이 없는 그따위 태도를 용납하지 않겠다!

너 따위는 황제께서 내게 내린 권위로도 얼마든지 목을 칠 수 있음을 정녕 모른단 말인가?”

“나는 장군을 생각해서 말하였는데 그렇게 화를 낼 건 무어요?”

핏발이 곤두선 내호아의 고함소리에 주법상이 뜨끔하여 물러났다.

“하기야 모든 책임은 장군한테 있으니 알아서 하시오.

어쨌거나 나는 움직이지 않고 여기 머물겠소.

나를 데려갈 생각은 마시오.”

내호아도 사사건건 트집만 잡는 주법상을 데려갈 마음은 없었다.

“오히려 내가 바라는 바다!”

그는 고작 1천의 군사만을 주법상과 함께 해포에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동원하여

건무의 뒤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려가자 외길 끝에 석성이 나타나고 성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내호아는 잠시 의구심이 일었지만 곧 숫자만 믿고 그대로 진격하였다.

성문 안으로 들어서자 바른편 언덕 너머로 불에 그을린 흉물스런 절 한 채가 눈에 띄었다.

내호아는 말 위에서 껄껄 호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제군들은 들으라. 저기 불에 탄 절집 속에 틀림없이 적의 복병이 숨어 있다.

복병은 우리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활과 시석을 날려올 게 뻔하다.

너희는 여기서부터 복병에 대비하기 좋은 기러기 떼 모양의 안행진(雁行陣)을 만들어 진격하되,

진의 앞쪽은 원숭이처럼 민첩하게 움직이고, 진의 뒤쪽은 들고양이처럼 사방 경계를 하면서 따라가라.

어떤 경우에도 방심하지 말 것이며, 만일 대오를 벗어나는 자나 맡은 소임을 소홀히 하는 자가 있다면

군령에 따라 엄히 다스릴 것이다!”

내호아의 추상같은 명에 따라 수군들은 대오를 재차 정비하고 일사불란한 진의 형태를 갖추어

절터로 향했다.

언덕을 넘어 절마당에 들어서자 아니나다를까, 내호아가 이미 말한 대로 사방에서 화살과 돌이

쏟아지며 한 패의 복병들이 함성을 지르면서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리 예상하고 있었던 수군들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복병의 숫자가 기백에 불과하자 수군들은 도리어 코웃음을 쳤다.

진의 앞쪽에 배치한 선발대만으로도 능히 대적할 판인데 대오를 갖춰 순식간에 들이닥친

중군과 후군까지 가세하니 5백 명의 고구려군으로선 수많은 적군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모두 동문으로 피신하여 목숨을 구하라!”

말을 탄 고구려의 장수가 고함을 지르며 먼저 달아나자 복병들은 무기를 버린 채 뒤를 쫓아갔고,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수군들이 다시 그 뒤를 맹렬히 추격했다.

실은 그때까지 한 가닥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던 내호아였으나 두 번이나 거푸 비슷한 일을 겪고 나자

마침내 경계심이 말끔히 사라졌다. 해포에서는 1백 명 남짓의 군사를 보았고,

이제 다시 기백의 군사를 보게 되자 그는 고구려의 도성에 병력이 얼마 없음을 거의 확신하게 되었다.

“머저리 같은 부총관놈이 따라와서 이 꼴을 보았어야 하는 건데.

소국을 칠적에는 오히려 도성이 허약한 이치를 주법상과 같은 배냇병신이 무슨 수로 알겠는가?

지난번 북부의 서돌궐을 칠적에도 도성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거늘

지금이 꼭 그때와 같구나!”

내호아는 득의만면하여 부장들에게 흥분한 소리로 지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