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신성(新城)함락 30 회
“그래 문덕은 무엇을 보고자 하였는가?”
왕이 묻자 문덕은 한 번 절하고 허리를 편 채로 대답했다.
“신이 위험한 것을 무릅쓰고 대왕 폐하께서 계시는 도성 근처에까지
수군을 유인하려는 것은 저들로 하여금 욕심을 갖게 하고 마음을 들뜨게 하여
평상심을 잃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전하께서도 방금 보셨다시피 내관은 칼이라곤 써본 일이 없는 자로,
그가 만일 검사와 맞겨룬다면 누가 목숨을 잃을지는 불문가지의 일이올시다.
이 사실을 모르는 이가 누가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은 고사하고 누구보다 내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일이올시다.
이것이 바로 항심이요, 평상심입니다.
항심과 평상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은 좀처럼 허점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를 흐려놓는 것이 바로 욕심입니다.
신이 황금 한 말을 이야기하자 내관은 검사와 겨루면 자신이 죽게 된다는
뻔한 사실을 스스로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곧 그가 평상심을 잃었기 때문이요,
그렇게 만든 것은 황금 한 말에 대한 그의 욕심입니다.
욕심은 사람의 눈과 귀를 멀게 만들고 마음을 어둡게 하는 마력이 있습니다.
욕심이 생기면 시야는 절로 멀어지는 법이요,
이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평상에는 제아무리 현명한 이도
한번 욕심에 사로잡히면 터무니없는 행동을 하게 마련이올시다.”
문덕이 말하는 동안 좌중은 찬물을 끼얹은 듯이 잠잠했다.
문덕의 얘기는 계속되었다.
“검사의 일도 마찬가집니다.
그가 헛칼질을 한 것은 그의 실력이 모자라서가 결코 아니올시다.
만일 그에게 조건을 달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 하루 종일이라도 파리를 잡았을 것이며,
실수하는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 역시 상과 벌을 조건으로 걸어 그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탓입니다.
그는 회가 거듭될수록 상에 대한 욕심과 벌에 대한 두려움에 짓눌려 드디어는
자신조차도 이해하기 힘든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바로 그의 마음이 들뜨고 흥분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양광의 대군을 요동에서 막을 수는 있으나 무찔러 이기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만일 막기만 한다면 비록 올해는 그냥 돌아간다 하더라도
언제고 다시 쳐들어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신은 차제에 양광의 대군을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휩쓸어서 후환을 없애고
나라의 근심을 뿌리째 뽑아버리고자 합니다.
전하께서는 이 을지문덕을 믿고 조금도 의심하거나 염려하지 마소서.
신이 대궐로 온 것은 약간의 군사를 얻기 위해서일 뿐 다른 뜻은 추호도 없습니다.”
앞서 털을 곤두세워 떠들던 자들은 문덕의 당당한 태도와 자신에 찬 말투에 압도되어
아무도 다시 이의를 달지 않았다.
문덕의 맞은편에 앉아 시종 눈을 감은 채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던 좌장군 건무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신이 듣기로 우장군의 말에는 한 치의 빈틈도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그를 믿고 심신을 편안히 하옵소서.”
그리고 건무는 이렇게 덧붙였다.
“서해로 들어온 수군은 신에게 맡겨주십시오.
이제 우장군이 말하는 것을 보니 그는 수백만 군사도 흡사 손바닥에 올려놓은 개미 다루듯 하는데
불과 몇 만의 수군 때문에 만조의 백관들이 이처럼 근심하고 있었으니 오히려 부끄럽습니다.
신에게 도성의 군사 2천 명만 내어주시면 단숨에 달려가서 내호아의 군대를 물리치고 오겠습니다.”
그것은 평소 나라의 최고 장수로 자부해온 좌장군 건무의 자존심과도 상하는 일이었다.
왕의 표정은 삽시에 밝아졌다.
“두 장군이 있으니 짐은 아무것도 걱정할 것이 없도다.
어서 필요한 만큼의 군사를 데려가서 하루빨리 승전보를 전해달라.”
어전을 물러나온 문덕과 건무는 각기 도성의 군사들을 소집하여 길을 떠났다.
문덕은 도성을 지키던 보기병 8천 가량을 이끌고 남패수를 건너 북진하였고,
건무는 마군 1천에 보졸 1천 명만을 거느리고 서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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