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14장 신성(新城)함락 29 회

오늘의 쉼터 2014. 8. 9. 17:53

제14신성(新城)함락 29

 

 

 

“전하께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말하라. 무슨 청인가?”

“내관 한 사람과 칼을 잘 쓰는 검사 한 사람을 불러주십시오.”

왕은 문덕의 돌연한 청을 궁금해하면서도 곧 좌우에 명하여 내관과 검사를 데려오도록 하였다.

잠시 후 두 사람이 어전에 이르자 문덕은 먼저 내관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대는 칼을 쓸 줄 아는가?”

내관이 칼을 쓸 리 만무했다.

“칼을 주면 나뭇가지 정도는 벨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쓰는 것은 쓰는 것이지요.”

내관이 흰소리로 대답하자 문덕이 손으로 검은 옷을 입은 검사를 가리키며 내관에게 다시 물었다.

“저 자는 궐에서 일하는 뛰어난 검사다.

만일 그대가 칼을 들고 저 자와 맞겨루어 열 합을 넘기도록 목이 달아나지 않는다면

내 전하께 말씀드려 그대에게 황금 한 말을 상으로 내리도록 약속하겠다.

어떤가? 해보겠는가?”

문덕의 말에 내관은 눈을 휘둥그래 뜨고 왕을 바라보았다.

왕이 그렇게 하겠노라는 듯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관의 놀란 얼굴에 한동안 복잡한 표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10합이라고 하였소?”

“그래, 10합이다.”

“좋소이다! 까짓 한번 죽기 살기로 해보지요!”

내관이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문덕은 내관에게 잠시 기다리라 말하고 이번에는 검사에게 일렀다.

“너는 칼을 쓸 줄 아는가?”

“물론입니다.”

“그 재주가 어느 정도 되는가?”

“눈을 감고도 날아가는 파리를 두 동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래?”

문덕은 어전에 날아다니는 파리를 바라보았다.

“어디 이곳에서 너의 재주를 보여줄 수 있겠느냐?

눈은 떠도 좋다마는 칼을 뽑아 열 번을 휘두르면 반드시 열 마리의 파리는 베어야 한다.

자신이 있는가?”

문덕의 말에 검사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그것을 무슨 재주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당장에 해보이겠습니다.”

말을 마치자 검사는 칼을 뽑아 순식간에 열 번을 휘둘렀다.

바닥에 떨어진 파리의 숫자는 눈대중으로도 족히 열 마리가 넘어 보였다.

“훌륭하구나.”

문덕이 칭찬하자 검사가 웃으며,

“별것도 아니올시다.”

하였다. 그러자 문덕은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하기야 칼 쓴다는 자가 그만한 재주는 재주도 아니지.

그럼 이번에는 똑같은 일에 신상필벌을 걸어보겠다.

네가 열 번 칼을 휘둘러 다시 파리 열 마리를 잡는다면

역시 황금 한 말을 상으로 줄 것이지만 만일 한 번이라도 실패한다면

그 자리에서 당장 너의 목을 치겠다.

자신이 없거든 미리 말하라. 어떤가? 할 수 있겠는가?”

문덕이 묻자 검사는 잠시 무춤하는 기색이더니 곧,

“늘 하던 짓을 상벌이 걸렸다고 하지 못하겠습니까?

간밤에 꿈자리가 좋더니 아마도 금 한 말을 상으로 받으려고 그랬던가 봅니다.”

하며 다시금 칼을 빼들었다.

문덕은 왕에게 말하여 어전을 호위하는 장수에게 칼을 들고 들어오도록 하였다.

호위장이 들어오자 왕은 문덕의 요청에 따라,

“너는 이곳에서 저 자의 칼 쓰는 것을 지켜보고 섰다가 만일 한 번이라도

헛칼질을 한다면 그 자리에서 목을 치도록 하라!”

하고 엄히 이르니 칼을 찬 호위장이 검사의 뒤로 가서 눈을 부라린 채 버티고 섰다.

검사는 먼저와 마찬가지로 칼을 휘둘렀으나 그 재빠른 것과 날카로운 것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한결 무디고 뒤떨어졌다.

그는 다섯 번을 휘두르고 이마에 흘러내린 땀을 닦았다.

회가 거듭될수록 검사의 손은 심하게 떨리고 허공을 가르는 칼끝도 무뎌졌다.

일곱 번을 휘두르고 나자 그는 다리마저 떨었다.

날것을 향해 칼을 겨눈 채 팥죽 같은 땀을 흘리고 섰던 검사가 마침내

여덟번째 칼을 휘둘렀을 때 바닥에는 아무것도 떨어지지 않았다.

당황한 검사는 황급히 칼자루를 고쳐 잡고 거푸 허공을 휘저었지만 아홉 번, 열번째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열 번 칼을 휘둘러 고작 일곱 마리의 파리를 떨구었을 뿐이었다.

안색이 백변하여 사지를 떨고 선 검사를 문덕은 웃으며 바라보았다.

왕명을 받은 호위대 장수가 목을 치기 위해 검사를 붙잡아 나가려 하자

문덕은 왕에게 보고자 하던 것을 모두 보았으니 그를 용서해달라고 간청했다.

왕도 듣고 싶은 말이 따로 있었으므로 모든 일을 없던 것으로 돌리고 검사와 내관을 밖으로 물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