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신성(新城)함락 28 회
을지문덕이 필마단기로 대궐에 이른 것은 그럴 무렵이었다.
어전에서는 왕과 중신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한창 구수회의에 골몰하고 있었는데,
별안간 요동에 있어야 할 을지문덕이 나타나자 놀라지 않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문덕이 아닌가?”
대원왕이 깜짝 놀라며 묻자 문덕은 공손히 앞으로 나아가 국궁 재배하고 부복한 채로 말했다.
“신 우장군 을지문덕, 대왕 폐하의 명을 받들어 요동을 지키다가 이제 막 돌아와 문후를 여쭙습니다.
폐하께서는 그간에 만강하셨나이까?”
“오냐. 과인은 공이 힘써 요동을 지켜준 탓에 아무 탈 없이 잘 지냈느니라.
그런데 어찌하여 요동은 비워두고 이곳에 왔는가?
혹시 양광이 저희 나라로 물러가기라도 하였는가?”
왕이 묻자 을지문덕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대답했다.
“신이 미욱하여 아직 양광의 목을 베지는 못했나이다.
하오나 그런 날이 곧 당도할 것이니 폐하께서는 아무것도 근심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문덕은 궁금해하는 여러 신하들을 둘러본 뒤에 입을 열어 자신이 세워둔 계책을 말하였다.
이 무렵, 남진파가 주축이 된 조정의 중신들은 을지문덕이 지난 반년 동안 양광의 대병과 요동에서
대치하고도 밀리지 않은 능력과 공로를 인정해 아무도 그를 흠잡아 말하지 않았다.
특히 남진파의 좌장이자, 단귀유(段貴留)가 살았을 때부터 문덕을 별로 달갑잖게 여겼던
좌장군 건무조차도,
“을지문덕이란 자를 다시 봐야겠구나.
풍설에는 3백만도 넘는다는 양광의 군사를 요동에서 반년이 가깝도록 발을 묶어놓고 있으니
그가 좀처럼 보기 힘든 뛰어난 인물임에는 의심할 것이 없다.”
하며 여러 번 찬사를 내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중신들도 문덕이 적군을 임금이 있는 도성 근처까지 유인하겠다는 계책을 밝히자
미처 말도 끝나기 전에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비난하고 힐책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계책이 아니라 죽을 꾀요!
수십만 적군이 대궐 코앞까지 온다니 말만 들어도 등골이 오싹하외다!
장군은 어찌하여 그토록 위험한 짓을 벌인단 말씀이오?”
먼저 건무의 책사인 대로 사본이 입을 열자 내평 금태와 소형 맹진도 지지 않고
차례로 문덕의 계책을 나무랐다.
“일이 반드시 장군의 뜻대로만 된다는 보장이 어디 있소?
만일 한순간에 삐끗하여 일을 그르치는 날에는
과연 어떤 불상사가 초래될 것인지를 알고 하는 말이오,
모르고 하는 말이오?”
“패수 근처까지 적병을 유인하겠다는 것은 범을 잡자고 아가리에 손을 집어넣는 것과 무엇이 다르오?
장군은 요동의 그 광활한 강역을 다 놔두고 어째서 하필이면 폐하께서 계시는 도성 인근으로 적을
끌어들이려는지, 먼저 그 저의부터 소상히 밝히시오.
혹시 싸움에 져서 도망쳐온 것이거나 아니면 따로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니오?”
문덕은 이들이 하는 말을 잠자코 듣고 앉았다가 한참 만에 왕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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