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14장 신성(新城)함락 27 회

오늘의 쉼터 2014. 8. 9. 17:42

제14신성(新城)함락 27

 

 

 

“어리석은 양광의 졸개들은 어서 오라! 우리가 이곳에서 너희를 기다린 지 아주 오래다!”

어둑어둑한 성루에 돌연 수나라 복장을 한 장수 하나가 나타나 대갈일성 소리를 높여 준엄하게 꾸짖자

이를 신호로 수백 명의 궁수들이 일제히 머리를 드러내고 층계를 내려다보며 활을 쏘기 시작했다.

안심하고 있던 수군들은 삽시간에 큰 혼란에 빠졌다.

성루에서는 곧 강노 부대까지 등장해 화살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고,

동시에 산지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아우성은 고막을 찢어놓을 정도였다.

하나가 층계에서 굴러 떨어지자 밑에서는 수십 명이 무더기로 추락했으며,

비사성의 모래밭은 졸지에 처참한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군사들은 서둘러 배로 돌아가라!”

내호아와 주법상은 큰 소리로 외치며 서둘러 바닷물로 뛰어들었으나 일은 그곳에서 끝난 게 아니었다.

해안의 보루 곳곳에서도 노포를 든 궁수들이 나타나 불을 매단 화살을 비오듯 쏘아대자

정박한 배 수십 척이 일시에 화염에 휩싸였다.

두 장수가 살아남은 군사들과 불에 타지 않은 배를 이끌고 간신히 아비규환 속을 빠져 나왔을 때는

이경도 훨씬 넘은 한밤중이었다.

요동의 무심한 유월 보름달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중천의 구름장 사이를 한가롭게 유영하고

있었다.

“내 어찌 너의 목을 베지 않으랴!”

내호아는 분기탱천하여 허리에 찬 칼을 뽑아 들고 부총관 주법상의 목을 노렸다.

하지만 주법상도 그리 호락호락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무엇보다 자신의 누이가 양광의 애첩으로 자식까지 낳은 일을 늘 자랑스러워하던 자였다.

“싸움터에서 용병을 하다 보면 이기고 지는 일은 매양 있는 것이오.

누가 복장과 깃발까지 위장한 저들의 간계를 짐작이나 했겠소?

장군도 아까는 나와 마찬가지로 저들의 위장술에 속지 않았소?

나를 죽이겠다는 것은 장군의 허물을 순전히 내게만 덮어씌우려는

비열한 수작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오?

만일 장군이 내 목을 친다면 장군의 목인들 온전할 줄 아시오?”

주법상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도리어 당당하게 대들었다.

이에 다른 장수들이 끼여 들어 두 사람을 만류하자 내호아도

그만 못 이기는 척 슬그머니 칼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렇게 벌어진 두 사람의 사이는 그 이후 수군의 용병과 작전에

계속해서 영향을 끼치고 차질을 빚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이튿날은 그렇게도 기다리던 비가 내렸지만 수군들은 비사성을 공략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등주를 출발할 때 5백여 척의 선박은 3백 척에 지나지 않았고 4만에 달했던 군사들도

1만여 명이나 잃어 채 3만이 되지 못했다.

신중하던 내호아도 사정이 그쯤 되자 쫓기는 심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확실한 공을 세우지 않는다면 훗날 양광의 문책을 피하지 못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는 난공불락의 요새인 비사성을 포기하고 대신 남평양을 점령하여 공을 세우기로 작심했다.

내호아가 생각하기로는 비사성이야 요동의 일개 변방에 불과하므로 힘들여 빼앗아도

그리 자랑할 게 못 되지만 적의 도성인 남평양을 수중에 넣는다면 그야말로 대공을 세우는 셈이었다.

기실 그는 등주를 출발할 시초부터 비사성이 아니라 남평양에 뜻이 있었다.

이번에는 부총관 주법상도 동진하자는 내호아의 말에 반대하지는 않았다.

수군은 3백 척 가량의 선단을 이끌고 동제인들의 길안내를 받아

황해와 남패수가 만나는 지점을 급습했다.

도성 주변의 해안을 수비하던 고구려 수군(水軍)들은 불의의 일격을 받은 셈이었다.

고구려에서는 부랴부랴 이 사실을 대궐로 알리는 한편 남패수 부근에 정박해둔

1백여 척의 선박을 끌어모아 해상에서 응전하였다.

광개토대왕과 장수대왕 이후 해상에서 꾸준히 힘을 길러온 고구려 수군들도 평상에는

막강한 힘을 자랑하던 군대였다.

하지만 워낙 갑작스레 습격을 받은 데다 능수능란하게 배를 모는 동제인들의 솜씨를 당하지 못했다.

사흘간에 걸친 치열한 해상전에서 고구려 수군들이 끝내 중과부적을 극복하지 못하고 북쪽으로 패주하자 기세가 오른 내호아는 파죽지세로 진격해 남패수의 하류와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닻을 내리고

해포(海浦)에 진을 쳤다.

그곳은 도성인 장안성에서 기껏 육칠십 리쯤 떨어진 곳이었다.

지도로 보는 요동8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