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신성(新城)함락 25 회
성주들은 문덕의 장담하는 말을 듣고야 궁금한 중에도 하는 수 없이 명령에 복종했다.
문덕은 남살수에 이르자 우민을 불러 말했다.
“너는 3천의 군사와 각 성에서 징발한 역부들을 데리고 강의 상류로 올라가서
수중보(水中洑)를 설치해 강물을 막고 기다려라.
비가 언제 올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늦어도 7월에는 반드시 우기가 시작될 것이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막아놓은 보에 물이 고이더라도 이를 성급하게 터뜨려서는
도리어 일을 그르칠 수가 있다.
고인 물이 주체할 수 없이 저절로 소용돌이를 치며 흡사 승천하려는 용처럼
꿈틀거릴 때까지 오직 기다리고 또 기다려라.
수군들은 강의 하류를 두 번에 걸쳐 지나갈 것이다.
한 번은 북을 울리며, 또 한 번은 징을 치며 지날 것이다.
북을 울릴 때 보를 터뜨려서는 절대로 안 된다.
반드시 징을 치며 퇴각할 때 보를 터뜨리되,
징소리가 나고도 한참을 기다렸다가 다시 와글거리는 말소리와 시끄러운 함성이 들리거든
비로소 막아놓은 물길을 방류해 쏜살같이 급류를 흘려보내도록 하라.”
우민이 군소리 없이 명을 받들고 강의 상류로 향하자 문덕은 단기필마로
남살수와 남패수(南浿水:대동강)를 건너 도성의 대궐로 돌아왔다.
이때 장안성은 남평양의 서쪽 해상을 구름처럼 뒤덮은 내호아의 수군(水軍)들로
한창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양광의 명에 따라 4만이 넘는 강회(江淮)의 수군들을 징집한 내호아와 주법상이
5백여 척의 대규모 선단을 이끌고 등주항을 출발한 것은 5월 하순의 일이었다.
일이 그처럼 늦어진 데는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내주와 등주에 흩어져 살던 동제인(東濟人)들이 수군들의 출항에 반대해
좀처럼 협조를 해주지 않은 탓이 컸다.
외백제의 유민들로 이뤄진 동제인들은 양광의 요동 정벌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이들은 비록 백제의 유민들이라곤 해도 본국 백제인들과는 정서가 판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 세월에 걸쳐 교관선이나 역선을 안내하는 해상의 길잡이로
생계를 꾸려가던 그들로선 전쟁이 일어나서 자신들의 생활 근거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을
좋아할 턱이 없었다.
게다가 대운하의 공역을 완수하고 주변국을 아우른 양광은 동제인들에 대해서도
많은 조세를 부과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자치제를 묵살하고 자신에게 맹종할 것을 요구했으므로 자연히 마찰과 반발이 심했다.
동제인들의 도움 없이는 대군을 움직이기 어렵다고 판단한 내호아와 주법상은 배와 군사를
준비한 뒤에도 달포간이나 해역에 머물며 수많은 재물과 온갖 감언이설로 그들을 설득했다.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뱃길을 안내할 몇몇 동제인들을 구한 수군은 그들의 안내로
선단을 이끌고 먼저 금주만 쪽으로 북향해 비사성을 공략했다.
하지만 비사성은 본래 사면이 바다에 면한 절벽이었고 공격할 수 있는 곳이라곤
오직 서쪽의 개펄뿐이었다.
항차 그곳을 지키는 성주 을사구는 지략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해역을 통한 수군의 침략에 대비해 갯가를 돌아가며 책과 보루를 쌓고
조수의 차를 이용해 물길 밑으로 여러 개의 돌제(방파제)를 설치하였을 뿐만 아니라,
돌제의 양옆으로는 날카롭고 기다란 창모를 촘촘히 박아놓아 배가 함부로 닿을 수 없도록 하였다.
처음에는 이를 모른 채 뱃머리를 들이밀었던 수군들이 한순간 난파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대패하자
내호아는 급히 해상으로 도망가서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야음을 틈타 다시 서쪽의 해안으로 접근하는 순간 이번에는 바닷길 한복판에서
일제히 수백 개의 횃불이 타오르며 얼마인지도 알 수 없는 고구려 군사가 나타나
사방에서 불화살을 날려댔다.
이때 내호아가 탄 배에도 여러 개의 불화살이 날아들어 송두리째 타버렸지만
그는 물로 뛰어들어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바다 한복판에서 배가 부서지질 않나, 밤에는 또 횃불이 켜지고 화살이 날아오질 않나,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구나!”
두 번이나 거푸 혼쭐이 나서 정신없이 바다 한복판으로 쫓겨간 내호아는
시종 귀신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이튿날 날이 밝고 간조 때가 되어 물밑에 잠겨 있던 돌제가 드러나자
비로소 전날 패배한 이유를 알아차렸다.
“바다 밑으로 제방을 쌓고 길을 내다니 참으로 지독한 놈들이다!”
내호아는 낭패로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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