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신성(新城)함락 26 회
이후로도 비사성의 군사들은 조수의 차를 적절히 이용해 만조가 되면 해안에 높이 쌓은 보루로
올라가서 응전하고 간조 때는 돌제로 빽빽이 몰려나와 기름 먹인 불화살을 마구 퍼부어대니,
수군들로선 단지 비가 내려 불화살을 쏘지 못할 때만 기다리며 하염없이 바다를 떠돌 뿐이었다.
그러구러 시일이 흘러가고 조화무쌍한 바닷물이 수시로 높은 파도에 일렁거리자
배를 탄 수군들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멀미에 시달려 뱃전에서 파리하고 핼쑥한 얼굴로 똥물까지 토해내는 수군들에게서
전의(戰意)와 사기를 논하는 것은 이미 공허한 일이었다.
“저들은 배 한 척 내지 않고 우리를 바다에 묶어놓아 꼼짝달싹도 못하게 만드니
이런 낭패가 어디 있는가?
더구나 등주에서 너무 시일을 허비한 탓에 황제께서 말씀하신 날짜를 훨씬 넘겼으니
비사성은 포기하고 곧장 남평양으로 가는 것이 좋겠네.”
내호아는 부총관 주법상과 의논했다.
“이곳에서 육로의 일을 소상히 알 수가 없으나 비사성이 견고한 것으로 미루어
아직도 우리 군사는 요동에 머물러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며칠만 더 기다려 보십시다.”
주법상이 반대 의견을 내자 내호아도 굳이 제 뜻대로 밀고 나가지는 않았다.
다만 근심 어린 얼굴로,
“자네 말도 일리는 있네만 만에 하나 황제께서도 비사성을 포기하고 압록수를 건넜다면
나중에 무슨 변고나 당하지 않을는지 그것이 걱정일세.”
하고 말했을 뿐이었다.
며칠이 더 지났다. 한동안 멀미로 고생하던 수군들도 차차 적응이 되어 회복 단계에 접어들 무렵
비사성의 움직임에 돌연 이상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해안의 보루를 새까맣게 뒤덮고 있던 궁수들이 어느 순간부터 일제히 자취를 감추더니
간조 때가 되어도 돌제에 개미 새끼 한 마리 나타나지 않았다.
바다에서 바라보니 흡사 성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내호아는 무슨 흑막이 있을지도 모른다 싶어 선뜻 달려들지 못하고 눈치만 살폈다.
이때 주법상이 재촉했다.
“대장군께서는 어찌하여 배를 움직이지 않습니까?
지금이야말로 비사성을 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올시다.
서둘러 갯가에 배를 정박합시다.”
“궁수들이 돌연 자취를 감추니 수상하지 않은가?”
“수상할 것이 조금도 없습니다.
궁수들이 자취를 감춘 것은 육지 쪽에서 드디어 우리 군사들의 공격이 시작되어
형세가 화급한 탓이올시다.
궁수들이 돌아오기 전에 서둘러 배를 정박하고 성루를 기어올라 양쪽으로 협공을 가한다면
비사성은 일시에 무너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내호아는 주법상이 채근하는 말을 듣고도 의심을 풀지 못했다.
“함부로 결정할 일이 아닐세. 더 두고 보세나.”
그렇게 반나절이 지나고 뉘엿뉘엿 해가 떨어질 무렵이었다.
돌연 까마득한 서쪽 성루에 몇 사람의 수군 복장을 한 군사들이 나타나더니
깃발을 바꾸어 꽂고 바다 쪽을 향하여 팔을 흔들어댔다.
이를 본 주법상은 볼멘소리로 내호아를 원망했다.
“저것 보시오! 우리는 황제께 쉽게 공을 세울 기회를 잃었습니다!
진작에 제 말을 들었으면 지금쯤은 비사성을 취한 일등 공신이 되었을 게 아닙니까?”
좌익위대장군 내호아도 그제야 주법상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자네도 나이가 들어보게나. 공연히 의심이 많아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네.”
그는 무료한 낯으로 변명한 뒤 어둡기 전에 서둘러 선단을 이끌고 돌제의 촘촘한 창모를 피해
가까스로 서쪽 해안에 닻을 내렸다.
근 스무 날 만에 육로를 밟고 선 수군들은 다들 기뻐 어쩔 줄을 몰라했다.
이들은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고 갯가에서 무리를 지어 돌층계를 밟고 서문(西門)으로 향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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