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14장 신성(新城)함락 24 회

오늘의 쉼터 2014. 8. 6. 15:09

제14신성(新城)함락 24

 

 

우중문은 우선 각지에 흩어져 있던 9군의 장수들에게 사람을 보내 휘하의 군사 가운데

피로한 자와 병든 자, 허약한 자와 민첩하지 못한 자, 겁 많은 자와 무기를 다룰 줄 모르는 자를

추려내고 오로지 용맹하고 날쌘 자만을 선발해 압록수 강가로 모이도록 했다.

요동에는 황제의 친위대와 우문개, 장근의 군사들만 남겨둔 채 자신도 진채로 돌아와 엄선한 군사를

거느리고 압록수 북변에 이르니 이때가 바야흐로 6월 하순경이었다.

9군 장수 가운데 장근을 뺀 여덟 장수가 각지에서 데려온 맹졸들의 숫자는 모두 30만 5천 명,

장수 하나에 어림잡아 3만 5천에서 4만 가량의 정병이 배속된 셈이었다.

압록수 하류에 도착해 지세를 살펴본 우중문은 책사 자할의 보필에 힘입어 여덟 장수들을 모아놓고

양광에게서 받은 절도봉을 휘두르며 다음과 같은 군령(軍令)을 내렸다.

“압록에서 남살수(南薩水:청천강)에 이르는 길은 지세가 험준하고 높은 산들로 가로막혀서

도처에 복병을 설치하기 좋은 곳이다.

을지문덕이 압록수를 건너 내지로 들어갔다면 마땅히 방책을 세워두었을 게 뻔하다.

어찌 함부로 행군하여 낭패를 보겠는가?

제장들은 여기서부터 길을 세 갈래로 나누어 도강하고, 강의 건너편에 닿아서도

우선 기병을 앞으로 내어 돌파에 적합한 추행진(錐行陣)을 만들어 진격하라.

선두의 기병은 전기, 함기, 유기로 구분하되 전기와 함기의 간격은 2백 보로 넓히고

그사이에 날쌘 보졸을 배치해 삼성(三聲:징·북·피리)의 악기와 오색의 깃발을 갖추고 있다가

수상한 기미가 보이거든 즉시 신호로 알려 해를 피하도록 하라.

또한 적성에 이르면 대오의 간격을 좁히고 드러나지 않는 곳에 군사를 밀집시킨 뒤 칼로 무장한

도검 부대를 앞세운 수진(數陣)의 형태를 취하라.

이때 도검 부대의 수는 3백을 넘지 않도록 하여 적으로 하여금 절로 얕보는 마음이 생기도록 할 것이며, 저들이 성문을 열고 응전해오면 도검 부대는 거짓으로 패하여 진중 깊숙이 적을 유인하되

장수는 복병을 둘로 나누고 기다렸다가 북소리 한 번으로 적병을 참살하고 성을 취하는 일이

동시에 이루어지도록 하라.

전군은 세 갈래의 길을 행군하여 일차로 남살수 북변에 집결할 것이며,

그때까지 군과 군은 수시로 격고명금에 따라 긴밀히 연락해 아군간에 서로 진퇴를 알 수 있도록 하라.

다음 군령은 남살수 강변에서 내릴 것이다.”

우중문은 전군을 갑, 을, 병의 3군(三軍)으로 편성한 뒤 부대마다 전군과 중군과 후군을 정했다.

을군의 전중후는 형원항과 설세웅, 최홍승에게 맡기고 병군의 세 장수는 신세웅과 조효재,

위문승으로 삼았으며, 오직 갑군만 자신과 우문술이 나란히 앞장을 서고 뒤로 군사들을 따르게 하였는데, 이는 수나라 최고 장수 우문술에 대한 경쟁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소극적인 태도를

믿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한편 이보다 며칠 앞서 미리 압록수에 나와 대기하고 있던 우민의 3천 병사를 거느리고

압록수를 건너간 을지문덕은 그곳에서 남살수에 이르는 성과 역들을 차례로 지나치며

성주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곧 수나라 군대가 압록수를 건너올 것이다.

너희는 성안에 먹을 것을 콩 한 톨 남김없이 모조리 거두어 은밀한 곳에 숨기고,

성민 가운데 스무 살 이상 먹은 힘 좋은 장정들은 지금 즉시 징발하여 빠짐없이 남살수 상류로 보내라.

그리고 만일 적들이 당도하거든 군사를 내어 교전하되 한꺼번에 총력을 다해 치지 말라.

싸우다가는 그치고, 다시 싸우다가는 쫓기는 척하며 가급적 적군들을 피로하게 만든 뒤

복병이 나타나거든 항복하여 귀중한 목숨을 상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항복을 하라는 문덕의 해괴한 명을 받자 대부분의 성주들은 저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반문했다.

“저희들의 목숨을 염려해주시는 상장군의 뜻은 고맙기 이를 데 없으나 적의 침략을 받고도

결사항전을 포기하고 항복을 하라시니 도무지 그 진의를 헤아리지 못하겠습니다.

항복을 하면 나라가 망하는 것은 필지의 일이 아닙니까?

감히 그 명령은 따르기 어렵겠나이다. 구차하게 목숨을 지켜 패망한 나라의 성주가 되느니

차라리 힘과 지략을 다해 싸우다가 죽는 길을 택하겠습니다.”

만나는 성주들마다 사전에 미리 약속이나 한 듯 한결같이 결전의 의지를 천명하자

을지문덕은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대들의 충절이 이미 하늘을 찌를 듯한데 어찌 이 나라가 망할 수 있겠는가?

걱정하지 말라.

이곳에서 계책을 세워도 작게 이길 수는 있으나 항복을 하라는 것은 한꺼번에 크게 이기기 위함이다.

내 이미 수군 전부를 몰살시킬 계책이 있으니 의심하지 말고 명대로 행하라.

그대들은 곧 장관(壯觀)을 보고 신화(神話)를 듣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