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14장 신성(新城)함락 21 회

오늘의 쉼터 2014. 8. 4. 19:55

제14신성(新城)함락 21

 

 

우중문은 당석에서 휘하의 장수들을 소견하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었다.

이때 장수들의 중론은 두 가지로 갈렸다.

어떤 이들은,

“을지문덕이 요동성을 버리고 급히 남향한 것을 보면

그곳에 반드시 화급을 다투는 볼일이 있기 때문이올시다.

이제 그가 우리를 속이고 달아난 것이 명백하여졌으므로 비록 그의 말한 것을 다 믿기는 어렵지만,

고구려왕 대원이 요동으로 온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떠돌던 말이었습니다.

만일 대원이 오골성에 온다면 그와 을지문덕을 한꺼번에 사로잡을 수 있고,

설혹 그 말이 거짓이라 해도 을지문덕이 오골성으로 간 것은 틀림없으니

그곳을 공격하면 십상팔구 적에게 낭패를 안겨줄 것입니다.

어찌 마땅히 오골성을 향해 군사를 내지 않으오리까?”

하고 주장한 반면 모사 자할과 같은 이는,

“이는 우리를 그곳으로 유인하려는 을지문덕의 간교한 술책이올시다.

전에 고구려 사신들의 말을 들어보면 본래 고구려왕 대원은 겁이 많고 심약한 자로

그가 도검과 과극이 난무하는 어지러운 요동으로 올 턱이 없습니다.

남평양의 구중궁궐에 깊숙이 처박혀서도 사지를 오그리고 새우잠을 잘 위인이 바로 대원입니다.

제 짐작으로 을지문덕은 오골성으로 간 것이 아니라

우리를 그곳으로 유인해놓고 자신은 압록수를 건너 내지로 들어간 것이 분명합니다.

만일 을지문덕의 술책을 헤아리지 못하고 오골성으로 군사를 낸다면

필경 큰 봉변을 당할 것이 뻔합니다.”

하며 반대하였다.

우중문은 자할의 말이 타당하다고 여겨 그에게 계책을 물었다.

자할이 평소에 가지고 있던 자신의 생각을 차분한 소리로 밝혔다.

“우리의 대군은 노하와 회원의 양진을 출발할 때만 해도

그 사기가 하늘을 찌르고 땅을 뒤덮을 만치 맹렬하였으나 요동에 오래 머물면서

목적이 막연해지고 기율이 느슨해져서 지금은 아무도 싸우려는 이가 없습니다.

장수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편한 자리를 찾아다니고 병졸들은

고향과 가족을 그리고 눈물과 한숨을 짓느라 손에서 무기를 놓은 지 이미 오랩니다.

더욱이 요동의 성곽들은 지세가 험준하고 방비가 워낙 철저한 까닭에 좀처럼 빼앗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지금 양쪽이 대치한 형국을 보면 각 성들은 우리 군사에게 사방으로 포위되었으니,

단지 성루에 우리 깃발만 꽂지 못했을 뿐 요동은 이미 장악한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굳이 난공불락의 성곽을 무너뜨려야 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또한 어렵게 성곽들을 취한다 하더라도 그 다음에는 다시 압록수를 건너 남평양을 공격해야 하고,

적의 도성인 장안성을 수중에 넣는 일이 남았습니다.

그래야 비로소 요동 정벌을 완수하는 것이요,

우리도 고향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대군을 두 패로 나누어 이곳 요동에는 약간의 군사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압록수를 건너 적의 도성을 공략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총력을 기울여 장안성을 친다면 흐트러진 군대의 사기와 기강도

바로 세울 수가 있을 뿐더러, 도성이 함락된 뒤에는 요동의 철옹성들도 결국은

사면초가의 신세를 면할 수 없을 것이므로 저절로 손을 들어 항복할 것입니다.

하물며 적의 군대는 거의 요동에 집결하여 오히려 내지는 텅텅 비었을 게 뻔합니다.

이는 병가에서 말하는, 강한 곳을 피하고 허한 곳을 친다는 피실격허(避實擊虛)의 계교로,

옛날에 제나라가 조나라를 포위한 위나라의 도성을 공격한 것이 그 좋은 예이올시다.

장군께서는 어찌 이같은 방법을 쓰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자할의 말을 들은 우중문은 크게 무릎을 쳤다.

하지만 군대를 움직이자면 황제의 품의를 받아야 했고,

사안의 중대함에 비추어 자신이 직접 육합성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자면 우선 을지문덕을 놓아 보낸 일을 말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서

선뜻 나서지 못하고 미적거렸다.

우중문이 고민하고 자꾸 보깨는 눈치를 보이자 자할은 단번에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장군께서는 조금도 근심하실 것이 없습니다.

을지문덕이 이미 신출귀몰한 사람이라는 것은 황제께서도 능히 알고 계시는 일이 아닙니까?

게다가 그에게서 빼앗아놓은 수레 서른 대분의 곡식과 마초가 있습니다.

장군께서는 그것을 가지고, 을지문덕이 죽인 장수들의 시신을 함께 거두어 육합성으로 가시면 됩니다.”

“그래서?”

우중문이 자할의 말하는 바를 금방 알아듣지 못하고 반문하자 자할이 싱긋 웃었다.

“을지문덕을 생포하여 곡식과 마초를 빼앗아두었는데,

그가 밤중에 오라를 풀고 장수들을 죽인 뒤에 몸만 빼내어 달아났다고 하면

 뉘라서 이를 의심하겠습니까?”

우중문의 표정은 금세 밝아졌다.

그는 곧 자할을 포상하여 자신의 책사로 삼은 다음 수렛짐을 이끌고

유사룡과 더불어 서편의 육합성으로 황제를 찾아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유사룡이 중문의 소매를 잡으며,

“장군께서 혼자 가는 것보다 우문술 장군과 함께 가서 아뢰는 것이 어떻겠소?”

하고 의견을 내었다.

“자고로 이런 일은 혼자서 나서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 권하는 것이 나중을 위하여 좋을 것이외다.

그런다고 나중에 일이 성사되었을 때 공이 반감되는 것도 아니요,

다만 책임을 져야 할 때는 허물을 나누어 질 수가 있으니

장군으로서야 밑질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게지요.”

우중문은 유사룡의 말뜻을 통연히 알아차렸다.

“과연 우승께서 저를 생각하시는 은혜는 하해와 같습니다.

번번이 이 신세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소.”

그는 유사룡과 수렛짐을 먼저 육합성으로 보내고

자신은 요동성 동쪽 진채로 우문술을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