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14장 신성(新城)함락 22 회

오늘의 쉼터 2014. 8. 4. 20:04

제14신성(新城)함락 22

 

 

이때 우문술 진영의 사정은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우중문의 진채 근처에는 민가라도 있고 산에서 더러 짐승의 고기나 초목의 껍질이라도

구할 수가 있었지만 동쪽은 그야말로 허허벌판에 먹을 것이라곤 감질나게 흐르는 냇물과 길 잃은 들쥐, 그리고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개미 떼가 전부였다.

그조차 날씨가 더워지고 한여름의 건기가 오래 지속되면서 시내마저 말라붙어 군사들은

자신의 오줌을 받아 마시며 갈증과 허기를 채우고 있었다.

이런 판에 우중문이 찾아와 압록수를 건너가자고 말하니 우문술로서는 바이 난감할 따름이었다.

“그러잖아도 양식이 떨어져 나는 황제께 사정을 말하고 적당한 곳으로 군사를 물리려 하고 있었네.

이럴 줄 알았으면 무엇하러 신성을 쳐서 함락시켰느냐고 군사들이 모다 불평일세.

공을 세웠으면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지금 사방에서 우리만큼 고생하는 군대가 과연 어디 있는가?

그대의 뜻은 가상하나 우리 군사들은 무기를 들고 싸울 형편이 아님세.

밥구경한 지가 아래통 벗고 광대 굿 본 듯한 판국에 싸움은 무슨 싸움인가?

뙤약볕 아래 가만 서 있기만 해도 하루에 줄잡아 일이백 명씩이 픽픽 쓰러진다네.”

그는 거절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오히려 우중문을 설득하고 나왔다.

“지금 우리 군대의 형편으로 보아 용병과 지략으로 적을 토벌할 단계는 이미 지났네.

손빈이 병서에서 말한 패배를 초래하는 서른두 가지 사례 가운데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는 것이

거의 없을 지경임세.

게다가 막상 압록수를 건넌다고 쳐도 지형과 지세에 깜깜한 우리로선

소경이 밤길을 걷는 형국과 무엇이 다르겠나?

그대의 말처럼 을지문덕을 추격하여 공을 세우는 것도 좋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자신이 없으이.

기회가 이번에만 있는 것은 아니니 올해는 그냥 철군하였다가 금년의 실패를 거울삼아 명년쯤에

다시 군사를 일으키는 편이 여러 모로 우리에게 유리할 것일세.”

우문술의 말을 들은 우중문은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장군의 말하는 것을 듣고 있자니 기가 막혀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지금 9군의 군사들 가운데 피로하지 않고 굶주리지 않은 자가 하나라도 있소이까?

다들 힘들고 고생스러운 것이야 이루 말할 수가 없어도 오로지 황제의 대업을 완수하기 위해

장수부터 말단의 보졸에 이르기까지 죽을힘을 다해 견디고 있는 판에 나라의 최고 장수인

우문 장군께서 그토록 허약한 소리를 입에 담고 앉았으니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소이다!”

우중문의 살천스런 말투와 비꼬는 듯한 태도는 십수 년 연상인 우문술에게 무척 건방지고

되바라지게 비쳤다.

하지만 우중문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우리 대병은 말로는 이삼백만이라고 해도 그 가운데 잡역부, 짐꾼, 취사부가 포함돼 있고,

말을 먹이는 자와 기계를 다루는 자를 제하면 실제로 창칼을 들고 싸울 수 있는 자는 육칠십만에

불과하외다.

그 육칠십만 중에서도 도(刀)와 검(劍)의 차이를 모르고, 부(斧)와 월(鉞)에 생소하며,

수모(씐矛)와 과극(戈戟)을 분간하지 못하는 자를 빼면 정병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무리는 다해야

20만을 넘지 않을 것이오.

한데 그들 정병의 대부분은 바로 장군과 나의 휘하에 있지를 않소?

장군이 10만이나 되는 정병을 거느리고도 굶주림과 피로함을 핑계삼아 요동의 소적을

격파하지 못한다면 대체 누가 그 일을 할 것이며,

무슨 낯짝으로 황제를 뵙겠소?

나는 우리가 그동안 어찌하여 소추의 무리를 토벌하지 못하는가를 매양 불가사의하게 여겼는데

오늘 이곳에 이르러보니 그 내막을 알겠소.

장군 같은 사람이 나라의 최고 장수로 있는데 도리어 이기는 것이 수상한 일이지요!”

말을 마치자 우중문은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섰다.

“싫거든 그만두시오. 나 혼자서라도 황제께 품의하여 반드시 압록수를 건너갈 것이외다!”

우중문의 뜻이 이미 확고하게 섰음을 알아차린 우문술은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우중문의 언동이 고약하게 느껴졌지만 황제의 노여움을 사지 않으려면 부득이 동행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중문이 홀로 양광을 찾아가 무슨 험담과 중상모략을 할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허허, 나는 그대의 일을 걱정하여 의논조로 말하였는데 도리어 내게 역정을 내니 무참하구려.

내 어찌 그대 혼자 사지로 향하는 것을 방관하겠소? 같이 가십시다!”

우문술은 황급히 옷을 갈아입고 우중문을 따라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