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신성(新城)함락 18 회
상기가 가시 돋친 철퇴를 매만지며 말하자
문덕은 팔을 뻗어 쌍창워라의 꼬리 부근에 묶어놓았던 예맥검을 가볍게 풀었다.
“글쎄다, 너의 재주를 보지는 않았다만 기껏해야 우중문 따위의 졸개가
과연 내 목을 가져갈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문덕이 예맥검을 손에 들고 웃으며 대답하자 상기보다도 장흔이 먼저 격분했다.
“네 감히 우리 대장군을 능멸하다니 괘씸하기 짝이 없구나!
그 못된 버르장머리를 당장에 고쳐놓겠다!”
장흔은 순식간에 쌍검을 뽑아 들고 무서운 기세로 문덕에게 달려들었다.
장흔의 쌍검이 아래위로 파고들며 문덕의 목과 배를 노렸으나 문덕은
갑옷도 입지 않은 맨몸으로 이를 가볍게 피했다.
그리곤 맥철로 만든 단단하고 예리한 칼날의 장검을 한 차례 휘둘렀다.
쉬익!
숲을 지나는 바람과 같은 소리가 한 차례 났을 뿐인데 장흔이 거짓말처럼 말잔등에서 뚝 떨어졌다.
미처 달려들 겨를도 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상기는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크고 작은 싸움에서 단 한 차례도 패한 일이 없었던 장흔이었다.
우중문도 평소 하북 출신의 장수 장흔의 무예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왔던 터였다.
그런 장흔이 을지문덕의 칼질 한 번에 장난같이 말에서 떨어지니
상기로선 천탈기백하여 벌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장흔보다 더 사납게 설쳐대던 상기였으나
홀연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한기를 느꼈다.
그는 장흔의 목숨이 붙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조심스레 말고삐를 당겨
장흔이 쓰러진 곳으로 가보았다.
그러나 굳이 확인할 것도 없이 장흔의 몸은 벌써 두 동강이 난 채로
냇물 같은 피를 흘리며 널브러져 있었다.
“왜 너는 덤벼들지 않는 게냐?”
갑옷도 아니 입은 평복 차림의 을지문덕이 상기를 보며 물었다.
상기는 자신보다 무예가 윗길이라고 믿었던 장흔이 단 1합에 저승 사람이 되는 것을 보자
이미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두고 보자. 언제고 후회할 날이 있을 것이다.”
그는 단단히 그러쥔 철퇴를 제대로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상기가 얼마를 아니 와서다.
돌연 앞쪽이 소란스러워지더니 달빛이 비치는 곳에서
한 패의 군마가 자욱한 흙먼지를 일으키며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앞선 장수는 문태와 곽사천이었다.
상기는 이들을 보자 지옥에서 부처를 만난 듯이나 반가웠다.
“그대들이 여기까지 어인 일인가?”
상기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묻자 곽사천이 우중문의 명을 받아 온 것을 말하며,
“을지문덕은 만났습니까? 장흔 장군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이에 상기는 장흔이 문덕의 칼에 죽은 것을 말하며,
“아무래도 장흔이 눈에 뭔가 씌었던 모양일세.
그렇지 않고서야 그토록 허무하게 죽을 수 있나?”
하고는,
“이제 자네들이 왔으니 됐네.
어서 가서 장흔의 원수를 갚고 그놈의 목을 대장군께 갖다 바치세!”
말을 마치자 앞장서서 다시 맹렬한 기세로 문덕을 뒤쫓았다.
하지만 금방 헤어진 을지문덕은 그로부터 족히 10여 리를 더 달려서야 간신히 만날 수 있었다.
월광에 비쳐 푸른 빛마저 감도는 문덕의 쌍창워라는 여전히 흰 엉덩이를 나부대며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을 옮겨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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