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신성(新城)함락 9 회
상서우승 유사룡은 영문도 모른 채 양광의 말에 따라 우중문의 진채를 찾아갔다.
우중문은 묘저와 더불어 옷을 벗고 누웠다가 갑자기 유사룡이 찾아오자
허둥지둥 의관을 갖추고 그를 안으로 청해 들였다.
“우승께서 이토록 야심한 시각에 돌연 어인 일이십니까?”
유사룡이 우중문을 따라 안으로 들어서자 묘저가 황급히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옷깃을 매만지며,
“오랜만에 뵙습니다, 우승 어르신.”
수줍게 얼굴을 붉히면서 알은체를 하였다.
유사룡은 그제야 양광의 말하는 뜻을 훤히 알아차렸다.
그는 제법 친하게 지내던 우중문의 일이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일변으론 최홍승의 애첩으로 있을 때부터 자신이 연정을 품었던 묘저가
우중문의 진채에 있는 것을 보자 은근히 부아가 치밀고 질투가 일었다.
“큰일났소, 장군! 어쩌자고 전장에 여자를 데려와서 환란을 자초하시오?”
“왜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있다뿐이오. 그러잖아도 전공을 올리지 못해 폐하의 심기가 잔뜩 불편한 마당에
좋은 꼬투리를 잡힌 셈이올시다.”
유사룡은 궁금해하는 우중문에게 양광의 거소에서 있었던 일을 낱낱이 일러주었다.
유사룡의 입을 통해 실제로 있었던 것보다 상황이 더 부풀려 전해진 것은 물론이었다.
“장군은 그렇게 겪고도 폐하의 호색하시는 것을 알지 못한단 말씀이오?”
유사룡의 말에 우중문은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찌 황제 폐하의 호색함을 모르겠소?
그러나 육합성에는 이미 서경과 탁군에서 데려온 여인들로 가득한데
굳이 묘저를 탐할 까닭이 무어요?”
“허허, 장군이 진실로 그 이치를 몰라 물으시오?”
유사룡이 문득 허허롭게 웃었다.
“사내란 내 집의 열 첩보다 남의 집 종년 하나에 더 눈이 가는 법이오.
색이란 본래 그런 게 아니오?”
우중문은 비로소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하면 이 노릇을 어찌해야 합니까?”
우중문이 근심 어린 얼굴로 묻자 유사룡은 입맛을 다시며 한참을 앉았다가,
“달리 별수가 있겠소?
먹자는 사람은 먹어야 하고 하자는 사람은 해야 아무 탈이 없지요.
장군이 눈물을 머금고라도 묘저를 포기하고 황제께 상납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지 싶소이다.”
하며 묘저를 양광에게 바칠 것을 권하였다.
난데없이 날벼락을 맞은 우중문으로서는 억장이 무너지고 기가 막히는 노릇이었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다른 방법이 없어 보였다.
유사룡이 소리를 낮추어 귀띔하였다.
“장군이 직접 묘저를 데려가서 황제께 바쳐보시오.
그리하면 황제의 노여움은 단번에 풀릴 것이외다.”
묘저는 욕심이 많고 야심으로 가득 찬 여자였다.
두 사람이 소곤소곤 말하는 것을 듣고 내심 뛸 듯이 기뻤으나
부러 눈물을 뚝뚝 떨구며 비통해하는 척하니
그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던 우중문의 가슴은 칼로 도려내는 듯이 아프고 쓰라렸다.
하지만 우중문은 위문승과 더불어 자타가 공인하는 양광의 제일 심복이었다.
계집 하나를 지키는 것보다는 양광의 신임을 잃게 될까봐 두렵고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는 한참 만에 묘저를 불러 손을 잡고 말하기를,
“너는 오늘부터 황제의 은총을 입게 되었다.
이는 슬퍼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기뻐할 일이 아닌가.”
하고서,
“내 그간 너와 정이 들어 막상 헤어지자니 애운한 마음이 없지 아니하나
만난 사람은 언젠가는 헤어지는 법이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
이 일을 너무 깊이 말하면 곧 불충이 되는 것이다.”
하며 속마음 한자락을 털어놓으니 묘저가 울어서 꽉 잠긴 음성으로,
“황제도 싫고 은총도 싫습니다.
소첩의 마음속에는 죽으나 사나 오직 장군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하고서 다시 한참을 섧게 흐느끼다가,
“하오나 이 자리에서 칼을 물고 자진이라도 한다면 그 화가 반드시 장군께 미칠 것이니
소첩이 어찌 이를 두려워하지 않으오리까.
비록 황제가 만승의 위엄으로 소첩의 몸은 취할 수 있을지언정
마음만은 오로지 장군께만 묶어두고 살겠습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어서는 등촉을 끄고 다른 사람의 얼굴은 보지도 않을 것이며,
그러고도 다시 눈을 감고 장군과 보낸 날들을 떠올리겠나이다.
소첩의 몸을 더듬는 손길은 장군의 손길로 여길 것이며,
어떻게든 장군의 품으로 되돌아오기만을 일월성신께 빌고 또 빌겠습니다.
만일 소첩이 박복하여 향후 두 번 다시 장군을 뫼시지 못한다 하더라도
천지신명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죽는 그날까지 장군 한 분만을 마음속에 기리고 섬기겠나이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울먹이며 말하여 우중문의 마음이 더욱 찢어졌다.
그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그래, 내 어찌 너의 마음을 모르겠느냐.”
하고서 유사룡을 쳐다보더니,
“차마 묘저를 내 손으로 데려가지는 못하겠소.
기왕 우승이 심부름을 오셨으니 대신 데려가오.”
말을 마치자 벌떡 일어나 밖으로 휭하니 나가버렸다.
우중문은 묘저를 양광에게 뺏긴 그날부터 연일 폭음을 일삼았다.
요동성 남쪽에서 한동안 군사를 내지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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