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14장 신성(新城)함락 11 회

오늘의 쉼터 2014. 8. 3. 12:44

 

제14신성(新城)함락 11

 

 

요동성 남문에 이상한 자가 나타났다는 전갈을 받은 것은 두 사람이

 

주안상을 마주하고 막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차였다.

 

우중문은 급히 갑옷을 갖춰 입으며,

“야음을 틈타 혹시 기습을 하려는 것은 아니더냐?”

하고 물었다.

“백면서생의 몰골을 한 젊은이가 무장도 아니한 채

 

더욱이 수렛짐까지 달고 오는 걸로 미루어 그런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망을 보던 당보군이 숨을 헐떡거리며 대답했다.

“하면 투항을 하려는 자 같던가?”

“자세히는 모르오나 그렇게 보입디다.”

“어디 가보자!”

우중문과 유사룡이 둔영의 북변에 이르자 당보군이 말한 젊은 서생이라는 이는

 

어느덧 영내에 당도하여 우중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중문이 찬찬히 서생의 생김새와 입성을 살펴보니

 

이목구비는 단아하여 귀태가 흐르고, 백건을 쓰고 흰 저고리를 입은 차림은

 

글줄이나 읽은 선비의 풍모인데, 단단하고 강단이 있어 뵈는 체구와 사람을 압도하는 눈빛은

 

또 영락없는 무인의 것이라 도무지 외양만 가지고는 그 출신과 정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우중문이 입을 열어 점잖게 묻기를,

“너는 누구이며 무슨 연유로 이곳에 왔는가?”

하니 그 정체 모를 서생이,

“나는 석다산 사람으로 이름은 문덕이요, 성은 을지라 하외다.”

하고 예를 갖추어 대답하였다.

 

일순 우중문은 고사하고 뒷전에 서 있던 유사룡마저도 자신의 귀를 의심할 정도로 크게 놀랐다.

“바, 방금 뉘라 하였는가? 을지문덕이라고?”

우중문이 소스라쳐 말까지 더듬으며 반문하자 문덕은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중문도 유사룡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성루에 앉은 을지문덕을 먼눈으로 몇 차례 바라보았을 뿐,

 

가까운 거리에서 상면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정말 그대가 을지문덕이오?”

유사룡이 우중문의 어깨 너머로 고개를 들이밀고 물었다.

“그렇소.”

문덕은 여전히 자리에 꼿꼿이 앉은 채로 시선을 유사룡에게 향하였다.

“하면 여기는 어인 일로 오셨소?”

그제야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우중문이 예우하여 묻자 문덕은 사방을 살피고 나서,

“긴한 말씀을 드리기에는 장소가 마땅치 않소. 어디 조용한 곳으로 갔으면 합니다.”

하였다.

 

우중문은 문덕을 데리고 유사룡과 더불어 자신의 처소로 돌아왔다.

 

그곳에는 주안상이 아직 그대로 놓여 있었다.

“자, 이제는 말씀을 해보시오.”

우중문이 재촉하자 문덕은 술상 위에서 술병을 집어 들고 네댓 모금 벌컥벌컥 들이켜

 

목을 축인 뒤에 불만에 가득 찬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나는 본시 소국의 변방에 태어난 까닭에 천자를 모시는 대국의 신하가 되지 못하는 것을

 

가슴에 한으로 품고 살아왔지만 근자에 이르러 그대들 대국의 신하라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나서야

 

 대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이 여간 다행스럽지 않소.

 

하늘같은 천자 폐하를 모시는 대국의 신하란 자들이 어찌하여 고구려의 시정잡배들보다도

 

도리어 그 언동에 신의가 없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황제가 불쌍하고 측은할 따름이오.

 

내 진작에 그런 줄을 알았더라면 황문시랑 배구와 같은 자를 믿고 심중의 말을

 

털어놓지도 않았을 뿐더러, 당연히 오늘과 같은 곡경에도 처하지 않았을 것이오.

 

나는 배구의 인품과 됨됨이가 어떤지 알지 못하나 그가 황제의 긴한 심부름을 왔다기에

 

의심치 않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지 않을 소리를 하였더니,

 

결국은 그 바람에 일이 묘하게 되어 양쪽 모두에게 용납되지 못할 대역죄만 짓고

 

드디어는 이처럼 죽을 자리를 찾아다니게 되었구려.”

문덕은 처연한 음성으로 길게 탄식한 뒤에 홀연 자세를 고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