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신성(新城)함락 8 회
한편 문덕에게 크게 곤욕을 당한 수장 우문술은 즉시 육합성의 양광에게로 사람을 보내
고구려왕이 곧 요동의 북평양으로 행차할 것 같다는 소식을 알렸다.
양광은 사방의 장수들에게 긴급히 밀지를 내려 만일 고구려왕이나 을지문덕이 가까이 오거든
반드시 이를 사로잡으라는 훈령을 전했다.
수나라 제장들이 황제의 밀지를 받은 며칠 뒤였다.
동편으로 달이 떠오르자 굳게 닫혔던 요동성 남문이 소리 없이 열리고
말을 탄 옥골선풍의 선비 하나가 뒤로 역부 몇 사람과 서른 대 가량의 수렛짐을 이끌고
성문을 가만히 빠져나왔다.
수군 진지에서 적의 동정을 살피던 당보군(塘報軍)은 곧 눈이 사발만해졌다.
우선 횃불과 당보기를 흔들어 진영의 경계를 굳건히 하도록 신호하는 한편
나는 듯이 막사로 달려가 우중문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런데 이 무렵 우중문의 막사에는 상서우승 유사룡이 황제의 위무사(慰撫使)가 되어 머물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된 데는 양광과 우중문 사이에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었다.
우중문은 먼저 탁군 태수 최홍승에게서 얻어둔 묘저한테 온 정신이 팔려 요동으로 와서도
늘 탁군에 두고 온 묘저 생각뿐이었다.
묘저는 인물도 고왔지만 특히 잠자리에서 남자의 혼을 빼놓는 기술이 탁월하였는데,
우중문은 묘저와 헤어져 회원진과 현도성에서 여러 달을 머물게 되자
탁군에서 보낸 나날들이 그리워 견딜 수 없이 되었다.
게다가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춘정마저 발동하니 궁리 끝에 사람을 탁군으로 보내
묘저를 몰래 수레 속에 감추어 데리고 왔다.
그는 묘저가 당도하는 그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밤마다 어울리며
그간에 쌓인 회포와 객고를 푸느라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한 것은 우중문의 군대가 현도성에서 요동성 남쪽으로 옮겨오면서부터였다.
우중문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던 양광의 눈에 그만 숨겨두고 지내던 묘저의 존재를
들키고 만 것이었다.
본래 색을 탐하기로 조명이 자자했던 양광이 이를 그냥 지나칠 리 만무했다.
그는 묘저를 보는 순간 한눈에 회가 동하고 욕심이 생겼다.
밤이 되자 양광은 자신을 수행해온 우승 유사룡을 불러 짐짓 혀를 차며 탄식했다.
“작금의 어려움이 실은 다 까닭이 있는 것일세.
대저 우리가 고구려에 비해 부족한 것이 무언가?
군사의 숫자는 열 갑절이 넘고 강노와 전차, 병거 등의 기계들은 진마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흘러넘치는 데도 반년이 다 가도록 얻은 것이라곤
겨우 요서의 무려라를 빼앗고 엊그제 신성 하나를 취한 데 불과하네.
이는 소 잡는 칼을 휘둘러서 파리 한두 마리를 잡은 것이니
세상에 알려져서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그런데 이제 와서 곰곰 돌이켜보니 우리가 고구려에 비해 단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긴 있으이.”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무언고 하면 바로 장수들의 충절일세.”
황제의 돌연한 소리에 유사룡은 일순 말문이 막혔다.
“그러니 우리가 이번 전쟁에서 이기기는 아무래도 힘들겠네.
이기기는커녕 목숨이라도 건져 서경으로 돌아간다면 큰 다행이지.
어쩐지 날이 갈수록 그와 같은 느낌이 드네.”
유사룡은 침통히 말하는 양광의 앞에 황급히 엎드려 고하였다.
“폐하의 말씀은 듣자옵기 너무나도 민망합니다.
어찌하여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9군의 장수들이 뚜렷한 전공을 세우지 못하는 까닭은
요동의 지세와 성곽이 험준하기 때문이지 충절이 부족한 탓이 아니올시다.
신이 보기에는 고금을 통틀어 폐하만큼 휘하에 충신들과 훌륭한 장수들을 많이 거느린 예가 없습니다.
부디 통촉하시어 방금 전의 그 말씀은 거두어주옵소서.”
“그것은 공이 모르는 소릴세. 나의 곁에는 입으로 충절을 논하고 의리를 나불거리는 자들이야
셀 수도 없을 만치 수두룩하지만 과연 그들이 어디까지 짐을 생각하고 걱정하는지는 두고두고 의문일세. 만일 내가 위급함에 빠졌을 때 저 촉나라 장수 조운처럼 만사를 제하고 달려올 신하가
과연 누가 있을 것인가?
모두가 저 살기에나 급급할 따름이지.
심지어 내 사람이라고 믿어온 우중문이나 위문승 같은 자들도 황제의 일보다는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판에 다른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우중문이나 위문승이 폐하께 무슨 서운한 일을 하였는지요?”
유사룡이 조심스럽게 묻자 양광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한 가지를 미루어보면 열 가지를 아는 법일세.
공이 정 궁금하거든 지금 이 시간에 우중문의 거소에를
기별 없이 찾아가서 직접 눈으로 보고 오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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