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신성(新城)함락 7 회
성루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문덕은 고신을 불러들이려고 여러 번 징을 쳤지만
고신은 좀처럼 응하지 않고 싸우기를 계속하였다.
손에 땀을 쥔 채 한동안 안절부절 애를 태우던 문덕은 마침내 갑옷을 찾아 입고 쌍창워라에 올라탔다.
그리고 80근 무게의 예맥검(濊貊劍)을 비껴든 채 비호같이 말을 달려나갔다.
이를 본 수나라 군졸들이 세 겹으로 문덕의 앞길을 에워쌌으나 문덕의 눈에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우문술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는 벌떼처럼 막아선 적군 사이를 흡사 무인지경을 지나듯 순식간에 지나치며 작대기로
검불더미를 쑤시듯이 이리저리 칼을 휘저었다.
문덕의 칼이 번뜩이는 양쪽으로 수군들의 목이 우박처럼 후둑후둑 떨어져 내렸다.
실로 눈 깜짝할 사이에 우문술의 앞에 당도한 을지문덕은 짐짓 목소리를 높여 우문술을 꾸짖었다.
“적장은 들으라! 나는 석다산 사람 을지문덕으로 예도를 알지 못하는 너의 오만함과 방자함을
징벌하러 왔다!
보아하니 너도 낫살이나 먹은 처지로 남의 신하된 도리를 모르지 아니할 것인데,
어찌 임금의 어가를 호위하러 가는 장수를 막는단 말인가?
양광의 졸개들은 입으로는 효제충신을 말하면서 하는 짓은 시정잡배들보다 오히려 못하구나!”
우문술은 말로만 듣던 을지문덕을 가까운 거리에서 대하자
우선 그 풍모가 자신의 짐작과는 다른 것에 약간 실망하였다.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문덕의 이름이었기에 그는 막연히 태산처럼 기굴한 허우대에
범 같은 얼굴을 했을 거라고 믿었지만 막상 눈앞에 나타난 장수는 서글한 눈매에 보통보다
약간 큰 듯한 체구를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한마디로 무장(武將)보다는 글하는 선비에 가까운 외모였다.
“을지문덕이라, 어디서 한두 번은 들어본 이름인 것 같구나.”
우문술은 턱을 치켜든 채로 가소롭다는 듯이 을지문덕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즉각 응수하기를,
“요동의 애송이 하나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처럼 천방지축 날뛴다더니
네가 바로 그 자렷다.
하잘것없는 예맥의 무리에게 임금은 무슨 임금이며, 더욱이 효제충신을 운운하니
그 망령됨이 가히 실소를 금치 못하겠구나.
내 비록 나이는 먹었으나 젖비린내 나는 너의 목을 취해
다시는 그같은 망발을 입에 담지 못하게 하리라!”
하고는 말을 마치자 내처 칼을 휘두르며 문덕을 향해 달려들었다.
우문술의 칼끝이 문덕의 가슴을 파고들자 문덕은 예맥검을 뽑아 들고 우문술의 목을 노렸다.
양자가 번개같이 맞부딪쳐 한 바퀴를 돌 동안에 무려 오륙 합의 공격을 주고받았다.
허공에서 만난 두 자루의 칼날은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불꽃을 뿜었고,
그 움직임은 너무나 빨라서 눈에 보이지 않았다.
한 차례 교전이 끝나고 잠시 틈이 벌어졌을 때야 우문술은 자신의 뒷덜미에
문덕의 칼날이 스친 것을 알아차렸다.
손바닥으로 목덜미를 훔치자 붉은 피가 묻어나왔다.
우문술은 당황하지 않고 곧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칼을 쓰는 솜씨 하나는 제법이구나.”
그는 칼자루를 고쳐 잡고 다시 맹렬한 기세로 덤벼들었다.
문덕의 쌍창워라는 뒷발을 모아 한 차례 껑충 뛰었다가
곧 앞발을 곧추세워 우문술이 탄 말의 대가리를 짓눌렀다.
문덕이 그 틈을 놓치지 아니하고 예맥검을 휘둘렀다.
우문술은 재빨리 말잔등에 벌렁 드러누우며 칼날을 피했지만 말이 놀라 뛰는 바람에
마상에서 한바퀴 몸을 굴렀다.
그가 낙마하지 아니하고 가까스로 말 꼬리를 붙잡은 것은 실로 천행이었다.
문덕은 고신을 향해 군사를 이끌고 어서 성안으로 돌아가라고 눈짓을 보냈다.
그사이에 주변의 수군들이 무리를 지어 문덕과 고신을 덮쳤다.
문덕은 손잡이가 창처럼 가늘고 긴 예맥검을 앞으로 휘두르며 요동성으로 돌아가는 길을 열었다.
한 번에 대여섯 명의 목이 마치 광풍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후두둑 떨어져 길바닥에 나뒹굴었다.
“군사들은 모두 귀성하라!”
고신은 고함을 지르며 기병을 이끌고 문덕을 뒤따랐다.
문덕이 적병들의 사이를 헤집고 말을 달리자 퇴로를 가로막았던 수군의 무리는
바다의 뱃길처럼 양쪽으로 갈라졌다.
우문술의 맹렬한 추격을 따돌리고 무사히 고신을 구원하여 성안으로 돌아온 문덕은
성문을 굳게 닫아걸고 항전했다.
한 가지 다행한 일이라면 남문에 둔거한 우중문의 군대가 무슨 연유인지
여러 날째 잠잠한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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