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신성(新城)함락 4 회
“폐하, 고정하옵소서!”
그때 양광의 장탄식을 가로막은 이는 설세웅이었다.
“을지문덕을 두려워하여 제군을 모두 이곳으로 불러 모으자는
우문 장군의 말은 신이 듣기에도 실로 가당찮고 민망한 소리올시다.
을지문덕은 허명만 요란할 뿐 그다지 뛰어난 인물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아직 성을 얻지 못한 까닭은 저들의 방비가 워낙 오래전부터 있어온 터라
우리 군사들이 이에 적응하는 데 약간의 시일이 걸릴 따름입니다.”
설세웅이 말하자 양광은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공은 터무니없는 말로 나를 기만하지 말라! 장장 반년의 시일이 부족하더란 말인가?”
그리고 양광은 장수들의 얼굴을 하나씩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가만 보니 너희들은 벼슬과 문벌만을 믿고 나를 업신여기는 게 틀림없다!
대궐에 있을 때에는 짐짓 내 안위를 걱정하는 체하며 나를 이곳으로 오지 못하도록 만류하더니
이제 보아하니 그것은 너희가 낭패를 당하는 꼴을 짐에게 감추고자 함이었구나!
이것은 시일의 문제가 아니라 너희들의 재주가 부족하고
그나마도 목숨을 아껴 힘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려면 그것을 모를 줄 아느냐?”
성질이 불 같은 양광은 제풀에 화가 머리끝까지 뻗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장수들은 하나같이 대꾸할 말을 잃고 모두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한동안 길길이 설쳐대던 양광이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비웃듯이 말했다.
“이제야 말이지만 너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 굳이 예까지 온 까닭은
바로 그와 같은 자들을 가려서 목을 치기 위함이다!
너희들은 죽음이 두려워 힘을 다해 싸우지 않고 있는데 내가 과연 이를 용납할 거라고 믿는가?
혹시 너희는 벼슬과 문벌을 믿고 내가 너희를 죽이지 못할 줄로 여기는 것은 아닌가?”
말을 하는 양광의 얼굴에는 차갑고 희미한 웃음기마저 감돌았다.
수나라 장수 가운데 아버지와 형을 죽인 양광의 잔인한 성품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제장들은 모두 어깨를 움츠리며 사색이 되어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한참 만에 우익위대장군 우중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신은 여태껏 현도성에 나가 있던 터라 요동성의 일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이르러 성의 형세를 살펴보니 현도성보다는 요동성이 한결 치기가 쉽고
그 방비도 허술한 데가 있는 듯합니다.
게다가 우문 장군이 요동성을 집중해서 공략하자는 것은 폐하께서 이미 지적하신 바대로
이곳이 학익진의 심장임을 감안할 적에 그런대로 일리가 있는 얘깁니다.
다른 군대는 그대로 놓아두고 신에게 요동성의 남역을 맡겨주십시오.
그리하여 장근과 위문승, 우문 장군의 군대와 더불어 사방에서 동시에 진격한다면
제아무리 을지문덕이라 하여도 달리 뾰족한 수가 없을 것입니다.”
양광은 자신이 총애하던 우중문의 말을 듣고도 마음이 썩 흡족하지는 않았다.
“나는 탁군을 출발할 때 좌익위대장군과 우익위대장군 중 어느 한 사람만 데려가도 오히려 과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두 사람이 같이 오고도 을지문덕 따위에게 쩔쩔 매고 있으니
내가 그간에 사람의 능력을 잘못 판단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구나.”
그는 우문술과 우중문에게 똑같이 모욕을 주었으나 이 말에 더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은
양광이 평소 자신의 충복이라고 생각해 극진히 아끼던 우중문이었다.
우중문은 안색이 벌겋게 상기되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한참 만에 양광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좋다. 우문술은 동문을 치고 우중문은 현도성의 군사를 데려와 남문을 공격하라.
장근과 위문승은 각기 군사를 이끌고 서문과 북문을 공략하되 미리 때를 약조하고
신호하여 한날 한시에 일제히 군사를 내도록 하라.”
그리고 그는 황제의 위엄을 갖추기 위해 또 한번 엄포를 놓았다.
“재차 강조하거니와 모든 군사 활동은 품의하여 짐의 영을 받을 것이며,
제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임의로 처리하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하라.
만일 이를 어긴다면 벼슬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목을 벨 것이다!”
양광은 현도성에 둔거하던 우중문의 군대가 요동성 남쪽에 도착한 수삼일 뒤에야
수행원들을 이끌고 육합성으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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