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신성(新城)함락 5 회
이때부터 요동성은 사방으로 수십만 적병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각 성문을 지키던 군졸들은 안색이 백변하여 이 사실을 을지문덕에게 알렸고,
문덕은 급히 투구와 갑옷을 갖춰 입고 성루로 나가 사방의 형세를 확인했다.
이제 바라던 때가 서서히 닥쳐오고 있었다.
하지만 문덕은 최대한 시일을 끌기로 작정했다.
그는 우선 궁수들과 팔매꾼들을 성문마다 배치하고 비축한 화살과 돌을 아낌없이 퍼부었지만
기껏해야 몇 천으로 나뉜 군사들로 10만에 가까운 사방의 적병들을 상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방어력이 분산되자 수군들은 성곽 주변에 설치한 장애물들을 하나하나 제거하고 사방에서
일제히 성벽을 공략했다.
구덩이는 흙을 덮어 평지로 만들고, 책은 철거하였으며,
성벽마다 수십 개의 사다리를 엮어 개미 떼처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성이 위급함에 빠지자 문덕은 고신에게 말해 성중에 말 잘하는 이 두 사람을 뽑아 데려오도록 했다.
“양광은 본래 의심이 많고 뽐내고 과시하는 것을 좋아하여 장수들에게 만사를 일임하지는 않았을 게
틀림없다.
이를 이용하면 당분간은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너희는 오늘 날이 어둡거든 각기 성의 동편과 남편으로 줄을 타고 내려가
성의 위급함을 핑계로 항복할 뜻이 있음을 말하라.
적장을 만나거든 나의 부장이라고 속이고 투항할 사람이 성중에 많이 있다고 하라.
하면 적장은 너희를 틀림없이 도로 보내줄 것이다.
항복할 시기는 딱히 못박지 말고 대략 사나흘 후로 할 것이며,
성중의 동조할 세력을 규합하여 투항을 할 때까지 되도록 공격을 멈추어달라고 부탁해보라.”
문덕의 명을 받은 두 사람은 날이 어둡기를 기다렸다가 성루에서 가만히 줄을 내리고
요동성을 빠져나갔다.
이들은 각기 적장 우문술과 우중문을 만나 을지문덕이 시키는 대로 말했다.
우문술과 우중문은 이들의 진의를 의심하였지만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함부로 처리하지 말라는
양광의 엄명을 받고 있던 터라 육합성으로 사람을 보내 황제의 뜻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양광은 요동성에 항복하고자 하는 자가 많다는 말을 듣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항복하려는 자가 없다면 도리어 이상한 일이다.
뉘라서 우리의 대병을 보고 두려움을 갖지 않겠는가!”
그는 흡족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내 본래 요동을 정벌코자 하는 뜻은 천자 나라에서 백성을 양육하는 것이 소추의 그것과 다른 점을
증명하고 만인에게 덕치의 넉넉함과 제업의 따사로움을 보여주기 위함이었거늘,
어찌 스스로 항복하려는 자를 외면하겠는가?
잠시 공격을 멈추고 항복을 원하는 자는 남녀노소를 불문코 모두 받아들이도록 하라.
이들이 성을 빠져나온다면 옥석을 미리 가리는 것이니 후에는 마음 놓고 공격할 수 있지 않겠는가?”
양광의 뜻을 전해들은 우문술과 우중문은 하는 수 없이 공격을 멈추고 이들을 성으로 되돌려 보냈지만
요동성의 수비는 다시금 견고히 되고 항복하겠다는 자들은 약속한 날짜가 지나도 오지 않았다.
우문술과 우중문은 다시 육합성으로 사람을 보내어 공격 여부를 상신하였다.
“거참 이상한 일이구나. 장수들과 군사들이라면 모르되 성안의 백성들까지
우리 대군을 보고 아무도 두려움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요동성에는 전부 죽기를 각오한 미친 것들만 산다는 말인가?”
양광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앉았다가,
“하는 수 없지. 다시 공격하라!”
하고 일렀다.
이튿날 군사를 막 내려 하자 요동성에서 전날 나왔던 두 사람이 우문술과 우중문의 막사를 또 찾아왔다. 이들은 군사들의 감시를 피해 여러 사람들의 뜻을 한꺼번에 모아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음을
설명하고서,
“저희가 듣기에 수나라 황제께서는 하해와 같은 도량을 지닌 분으로 백성들의 목숨을 마치
친자식처럼 아끼신다 하더이다.
뜻이 없다거나 속이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시일이 부족하여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며칠만 더 여유를 주시기 간청합니다.
부디 저희를 불쌍히 여겨줍소서.”
하며 머리를 땅에 조아렸다.
우문술과 우중문은 이를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육합성으로 사람을 보내고 황제의 뜻을 품의하니
심부름을 다녀온 자가 말하기를,
“황제께서는 당분간 공격을 금하라 하셨습니다.”
하므로 다시 며칠간 군사를 거두고 출전을 미루었다.
이렇게 하기를 서너 번이나 되풀이하였지만 양광은 대병의 위세만 지나치게 믿은 탓에
을지문덕의 계책을 헤아리지 못했고, 따라서 성은 오랫동안 함락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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