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 19장 인연 [9]
(405) 19장 인연 <17>
“이 자식이 미쳤나?”
우선 그렇게 되묻고 난 서동수가 술잔을 쥐었다.
어느덧 상체가 세워지는 바람에 분위기를 눈치챈 소냐의 손이 떼어졌다.
정색한 서동수가 우명호를 보았다.
“야, 난 정치인에 맞지 않는다고 여러 번 공언했어. 너도 듣고 보았잖아?”
“그거, 공언(空言)이지, 정치인은 공언도 가끔 날리는 거야. 우린 익숙해.”
“허튼소리 마. 자식아.”
“넌 적당히 썩었고 적당히 정직해. 거기에다 융통성과 대중적 인기가 높아.
더구나 넌 남북한은 물론 중국 측의 호감을 동시에 받는 유일한 인물이다.”
열변을 토한 우명호가 손바닥으로 입가의 게거품을 닦았다.
두 아가씨는 긴장으로 굳어져 있었지만 서동수를 노려본 우명호가 말을 이었다.
“사람은 제 자신을 제가 잘 안다고도 하지만 제가 스스로 채점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냐.
남이 평가해서 공천 탈락도 하고 대통령도 되는 거다.”
“이게 웬 개똥철학이야?”
“네가 슬슬 준비를 할 때가 됐다는 말을 하는 거다.”
“시발놈아, 다 준비됐다가 너 때문에 내 거시기가 죽었어.”
“명심해라.”
술잔을 쥔 우명호가 소파에 등을 붙이면서 말을 이었다.
“넌 그걸 알아야 돼. 많은 한국 사람들이 너 때문에 꿈을 꾸게 됐다는 것을 말야.
이 상황까지 온 이상 넌 네 마음대로 네 미래를 정하면 안 돼. 그럼 넌 나쁜 놈이야.”
말을 그친 우명호가 한 모금에 위스키를 삼켰고 서동수는 시선만 주었다.
꿈을 꾸게 됐다는 대목에서는 감동을 받았지만 그 다음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마침내 서동수가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이 자식도 여론조사해서 이사 갈 집까지 정하는 놈이구먼.
야, 평안감사도 저 싫다면 그만이야, 닥치고 술이나 마셔.”
서동수도 소파에 등을 붙이고는 다시 소냐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요즘은 여론조사가 유행이라 별놈의 조사가 다 있다.
그래서 북한이 미사일을 쐈을 때 여론조사를 해서 대응해야 한다는 정치인도 생겨났다.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두렵거나, 그런 경험이 별로 없거나,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유형이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소냐의 허리 탄력이 조금 전과 달랐으므로 서동수는 입맛을 다셨다.
다시 문지르기 시작한 소냐의 손바닥 감촉도 서먹하다.
“소냐, 너하고 섹스는 어떻게 하냐?”
소냐의 귀에 입술을 붙인 서동수가 물었다.
“여기서도 다른 룸살롱처럼 밖으로 데리고 나가야 하나?”
그때 소냐가 머리를 틀더니 저도 입술을 서동수의 귀에 붙였다.
“건물 3층에 밀실이 있어요.”
“그렇군.”
만족한 서동수가 소리 없이 웃었다.
이곳은 1층이다.
소냐의 허벅지를 쓸면서 서동수가 다시 입술을 붙이고 물었다.
(401) 19장 인연 <18>
소냐를 한 꺼풀씩 벗길 때의 쾌감은 모든 것을 잊게 만들 수도 있다.
서동수는 겪어봐서 안다.
아름다운 여자를 둘만의 공간에서 벗길 때가 가장 감동적이다.
안을 때보다도 더 자극을 받는다.
그러나 서동수는 우명호만 3층으로 올려보내고 그냥 돌아왔다.
소냐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던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우명호가 꿈과 미래에 대해서 열변을 토할 때부터 성욕이 시들어 있었다.
서동수는 본성(本性)에 충실한 편이며 제약에 얽매이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또한 적응력도 강한 편이다.
대기업 사주이면서 신의주행정특구 장관으로서의 처신을 한 것이다.
팀원에서 팀장, 그리고 사장에서 대기업 회장까지 신분이 급속 상승을 해오면서
서동수의 처신도 빠르게 변모했다.
팀장은 팀장의 처신을 해야 하고 회장은 회장다워야 한다.
회장이 부자재값 따지는 사이에 다른 쪽 회사가 날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다음 날 오전, 회사에 출근한 서동수에게 비서 임청이 말했다.
“회장님, 오후 1시쯤에 장 교수께서 도착하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장치가 칭다오에 오는 것이다.
머리만 끄덕인 서동수에게 임청이 말을 이었다.
“공항에서 바로 출발하시도록 출발시간을 2시로 정했습니다.”
“잘했어.”
“이곳에서는 두 분과 유 실장님, 그리고 저하고 최성갑 비서가 떠납니다.”
다른 멤버들은 이미 나이지리아에 가 있는 것이다.
나이지리아 정부와 원유가공시설을 포함한 중화학공단 공사 계약을 하려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은 중국 동성건설이 60억 불짜리 공사를 따냈기 때문이다.
임청이 지시를 기다리는 듯 서 있었으므로 서동수가 불쑥 물었다.
“언론사들은 모두 가 있나?”
“예, 중국 정부 관리들하고 전용기 편으로 어제 출발했다고 합니다.”
중국 정부 대표는 저우정산(周正山) 부총리다.
중국 정부는 아프리카 지역에 경제협력을 확대하면서 각국과의 협력체제를 강화하는 중이다.
서동수가 정색하고 임청을 보았다.
“이봐, 임 비서, 그대의 한국관을 듣자.”
“한국관이라고 하셨습니까?”
질문을 확인한 것은 생각할 시간을 얻으려는 의도일 것이다.
머리만 끄덕인 서동수가 이제 4년째 비서로 일하는 임청을 보았다.
베이징대 출신의 미녀, 영어와 일본어, 한국어에도 능통한 재원이다.
이윽고 임청이 말했다.
“일반 중국인 입장으로 말씀드립니다.
2차 대전 이후 신생국 중에서 세계 제1의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죠.”
“그런가?”
“저도 어렸을 때는 경제발전을 이루고 중국에 공장을 세우려고 쏟아져 들어오는
한국과 한국인을 선망의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부럽지 않더군요.
아마 남북의 내부 상황을 알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중국도 경제성장이 빨리 되었고요.”
그때 임청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런데 갑자기 회장님이 등장하시고 나서 분위기가 바뀌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동수는 잠자코 시선만 주었고 임청이 말을 이었다.
“중국인 대부분도 회장님께 호의적이거든요.
더욱이 장 교수님이 파트너로 부각되면서 더욱…….”
그렇다. 장치는 서동수의 파트너 자격으로 나이지리아에 가는 것이다.
즉 부인 시늉이다.
서동수의 얼굴에도 웃음이 떠올랐다.
인간은 모두 자신의 관점에서 사물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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