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 19장 인연 [6]
(399) 19장 인연 <11>
중국에 본부를 둔 다국적기업 동성이 신의주경제특구의 주도(主導) 기업이 됨과 동시에
동성의 사주(社主) 서동수가 행정장관으로 임명된 것은 다분히 정략적 결정이다.
북한 측으로서는 동성의 사주가 한국인 서동수라는 것이 중요했으며 서동수를 매개로
한국기업의 투자가 쏟아지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중국 측은 중국기업 동성을 내세워 남북한 양국의 ‘조정자’ 역할이 굳어지는 계기가 될 것이었다.
장치를 서동수의 옆에 붙여 주는 것은 중국화(中國化)시키려는 중국식 선의(善意)다.
한국 입장은 또 어떤가?
한국인 서동수가 중국을 등에 업고 북한 경제특구 행정장관이 된 것은 이이제이(以夷制夷),
즉 오랑캐로 오랑캐를 제어하는 경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즉 3국(國)이 제각기 윈윈의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서동수는 서둘지 않고 대리인인 동성 사장 왕창궈를 시켜 신의주특구 사업을 맡겼다.
왕창궈는 관리 출신의 경영전문가로 중국 정부와 호흡이 잘 맞을 수밖에 없다.
특구 행정장관에 임명된 지 3개월이 되었지만 서동수는 신의주에 가보지도 않았다.
임명장도 왕창궈가 대신 받았고 북한 측 요인들도 만난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업은 급속도로 진행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 광일그룹이 선두에 서자 순식간에 투자단이 결정되었고
지난 2002년 북한이 네덜란드 출신인 중국계 사업가 양빈을 행정장관으로 임명한 적이 있다.
그런데 양빈은 장관이 되자마자 여러 가지 범법 사실로 중국 정부에 체포되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고 특구 개발은 유야무야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오후 3시 반,
청양의 동성 본사 회장실에 네 사내가 둘러앉아 있다.
서동수와 동성 사장 겸 특구 사업본부장 왕창궈 그리고 비서실장 유병선과
오늘 처음 회장실에 들어온 사내, 문영규다.
서동수가 문영규에게 말했다.
“이 속도로 가면 올해 안에 신의주특구는 개성공단의 3배 규모가 됩니다.”
내일 서동수는 방에 모인 셋과 함께 신의주에 가는 것이다.
신의주경제특구 담당은 특구담당비서 겸 북한 내각 부총리인 정오석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여러 통로를 통해 한국과 접촉을 해왔지만 신의주특구는
내각 부총리 정오석을 신설된 특구담당비서로 겸임하게 하여 창구를 일원화시켰다.
그때 유병선이 말했다.
“이번 조직만 확정이 되면 특구의 행정 절차까지 마무리가 됩니다. 회장님.”
유병선은 여전히 서동수를 회장으로 부른다.
특구 장관보다 회장이 상위에 있다는 시위 같기도 하다.
머리를 끄덕인 서동수의 시선이 문영규와 왕창궈를 스치고 지나갔다.
서동수는 특구 행정청 장관 휘하에 부장관 둘을 조직한 것이다.
그중 하나는 북한 측에서 선임한 최봉수이고 하나가 바로 문영규다.
문영규는 행정청에서 사업총괄을 맡으며 최봉수는 인력과 관리 책임이다.
그러나 아직 문제가 남아있다.
북한 측이 행정청 사업본부장 왕창궈는 추인했지만 문영규의 승인은 보류시키고 있는 것이다.
서동수가 입을 열었다.
“특구가 정상적으로 운영이 되려면 한국 측 부장관도 받아들여야지.”
그래야 균형이 맞는 것이다.
서동수의 동성은 중국계 기업으로 치지만 정확하게 표현하면 세계적 기업이다.
따라서 균형을 맞추려면 남북한의 부장관 둘이 각각 대외, 인력관리 등을 분담하고
중국인 총괄 사업본부장이 투자기업들을 균형있게 관리하는 것이다.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그러고보니 나도 특구담당비서를 처음 만나는 셈이군.”
(400) 19장 인연 <12>
특구담당비서 정오석은 50대 중반쯤으로 보였지만 실제 나이는 65세다.
전연(前緣)지대로 불리는 휴전선의 북한군 제2군단장을 지낸 상장 출신으로 지금은 떠오르는 실세다. 방으로 들어선 서동수를 보더니 정오석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곳은 신의주 경제특구의 북한측 관리자 사무실. 아직 청사가 공사 중이어서 남북한은
따로 가건물을 짓고 업무를 본다.
“어서 오십시오.”
자리에서 일어선 정오석이 웃음띤 얼굴로 서동수를 맞는다.
서동수는 문영규, 유병선과 동행이었고 정오석은 북측 부장관인 최봉주와 함께였다.
각각 인사를 마치고 테이블에 둘러 앉았을 때 정오석이 지그시 서동수를 보았다.
“그 동안 중국 고위층을 수족처럼 부리시더니 이제야 뵙게 되는군요.”
“죄송합니다.”
웃어야 했지만 서동수가 정색하고 말을 이었다.
“사업에 바빴습니다.
이곳 일은 왕창궈 본부장한테서 수시로 보고받고 있었습니다.”
이곳 일이 아니더라도 할 일이 많다는 말이었으므로 유병선이 긴장했다.
“그렇군요.”
그러나 정오석은 웃음띤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
“이제 북남의 경제협력과 평화공존은 우리들한테 달려 있습니다. 잘 해나갑시다.”
“감사합니다.”
심호흡을 한 서동수가 정오석을 보았다.
“제가 한국측 부장관으로 추천한 문영규 씨 하고 같이 왔습니다.
제가 임명한 부장관을 인정해 주시겠지요?”
“문 선생은 통일부 국장을 지내셨더군요.”
정오석의 시선이 문영규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느덧 얼굴에 웃음기가 가셔져 있다.
“거기에다 대북 강경파에 속하시고,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이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서동수도 정색했다.
“한국에서는 문 선생 같은 분이 정상입니다, 비서님.”
“승인할 수 없습니다.”
“그럼 제가 장관 그만두지요.”
바로 말한 서동수가 조금 전의 정오석처럼 지그시 시선을 주었다.
“오늘 중으로 결정해 주시지요.
부장관부터 결정하고 다른 안건을 이야기하겠습니다.”
그 순간 정오석이 심호흡을 했지만 얼굴이 누렇게 굳어졌고 입술 끝이 눈에 띄게 떨렸다.
어금니를 문 듯 볼의 근육도 튀어나와 있다.
“그럼 저는 한국관에 가서 기다리겠습니다, 비서님.”
자리에서 일어선 서동수가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자
그때서야 정오석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동수의 시선이 꾸물거리며 따라 일어서는 최봉주에게로 옮겨졌다.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최봉주는 말쑥한 양복 차림에 건장한 체격이다.
최봉주에게서 시선을 뗀 서동수가 정오석을 보았다.
“여기 계신 최 선생은 현역 소장으로 4군단 참모장을 지내시다가 여기로 오셨더군요.”
정오석은 시선만 주었고 서동수의 말이 이어졌다.
“이 기회에 말씀드리는데 행정청 부장관부터 요원 인사는 내가 하지 않으면 장관 그만둡니다.
아울러서 ‘동성’도 철수할 것입니다.”
그러고는 서동수가 몸을 돌리자 유병선과 문영규가 뒤를 따른다.
방을 나온 서동수의 옆으로 문영규가 따라붙었다.
그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잘 하셨습니다. 체증이 팍 뚫린 것 같습니다, 장관님.”
문영규는 장관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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