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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19장 인연 [7]

오늘의 쉼터 2014. 7. 30. 13:57

<203> 19장 인연 [7]

 

 

(401) 19장 인연 <13> 

 

 

정오석이 한국 측 사무실로 찾아왔을 때는 오후 4시 반이 되어갈 무렵이다.

서동수가 북한 관리자 사무실을 나온 지 두 시간이 지난 후였다.

이번에는 서동수 일행 셋이 방으로 들어서는 정오석과 최봉주를 맞았다.

사무실 구조도 비슷해서 다섯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아까와 같은 배열로 앉았다.

이제는 간단한 목례만 나누고 나서 먼저 정오석이 입을 열었다.

차분한 표정이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문영규 부장관의 임명권은 장관께 있습니다.”

서동수에게 시선을 준 채로 정오석이 말을 이었다.

“내가 잘못 판단했습니다.

이런 일로 대업을 그르치면 안 된다고 믿습니다.”

입안의 침을 삼킨 서동수가 숨을 골랐다.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양보를 한다고 해도 조건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것은 무조건 승복이다.

이런 예가 있었던가?

그때 정오석이 말을 이었다.

“앞으로 행정청 인사는 우리가 전혀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여기 있는 최 동무하고 상의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제가 죄송합니다.”

마침내 서동수가 앉은 채로 머리를 깊게 숙였다.

바로 이것이 져주고 이기는 것이다.

서동수는 정오석에게 감동을 받았다.

설령 이것이 연출이라고 해도 그렇다. 어디 이런 연출이 쉬운가?

“제가 경솔하게 처신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아니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쓴웃음을 지은 정오석의 시선이 문영규와 유병선까지 스치고 지나갔다.

정오석이 둘을 향해서도 머리를 숙였다.

“아까는 실례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당황한 둘이 답례를 했을 때 최봉주가 서동수를 보았다.

정색한 얼굴이다.

“장관동지, 그럼 저를 인정해주시는 것입니까?”

어색해진 서동수가 쓴웃음만 지었을 때 정오석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 사람아, 그렇게 물으면 되나? 승인해 주십시오,

해야지. 시비 거는 것처럼 들리지 않는가?”

그때 서동수가 서둘러 말했다.

“승인합니다.”

정오석이 짧게 웃었고 유병선이 웃으려다가 얼른 그쳤다.

“그렇습니다. 주도권은 남조선 측이 쥐어야 되지요.”

생수병을 쥔 정오석이 말했으므로 모두의 시선이 모여졌다.

정오석이 차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중국이 중개를 해서 이렇게 신의주특구가 개발되기 시작했지만

결국은 북남의 인력과 자본이 투입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누가 먹는 꼴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그때 서동수는 옆에 앉은 문영규의 입에서 소리 죽인 숨소리가 뱉어지는 것을 들었다.

 길다. 서동수도 따라서 심호흡을 했다.

그 누구는 중국인이다.

정오석의 시선이 다시 서동수에게로 옮겨졌다.

“앞으로 이런 방식으로 추진해 나가십시다.

쉴 새 없이 갈등은 일어나더라도 특구개발은 중단되지 않는 것입니다.”
정오석의 두 눈이 번들거렸으므로 서동수는 숨을 죽였다.

“이번 일도 크게 다투고 마침내 부장관을 임명한 것으로 하십시다.”

“알겠습니다.”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적극적으로 협조하겠습니다.”

한쪽만 이득을 볼 수는 없는 법이다.

서동수는 문득 중국 측도 이런 경우를 예상하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들도 바보가 아니다.

 

 

(402) 19장 인연 <14> 

 

 

“희망이 보인다.”

신의주 경제특구를 나오면서 서동수가 유병선에게 말했다.

밝은 표정이다.

둘은 승용차의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있다.

오후 5시 반, 문영규와 왕창궈는 특구에 남아 있다.

“남북한 화해, 통일에 대한 희망 말이야.”

유병선이 시선만 주었으므로 서동수의 말이 이어졌다.

“이렇게 양보와 타협이 이뤄진다면 가능성이 있지 않겠어?”

그때 유병선이 입을 열었다.

“아직 시작단계일 뿐입니다. 회장님.”

“시작이 좋아. 안 그래?”

“일단 투자가 되면 입장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회장님.”

“그땐 이미 수십 만이 쌀밥과 고깃국에 익숙해져 있을 거야.

우리를 쫓아내고 공장만 갖고는 사업을 못 해.”

“그것까지 계산하셨습니까?”

“당연히.”

유병선의 시선이 앞쪽 운전사와 수행비서를 스치고 지나갔다.

“우리가 얻는 몫이 적습니다. 회장님.”

“알아.”

“일이 잘못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곳이 동성입니다. 회장님.”

“알아.”

“제가 회장님을 잘 압니다.”

힐끗 서동수에게 시선을 주었다가 뗀 유병선이 길게 숨을 뱉었다.

차는 이제 중국령을 달리고 있다.

행정장관이 탄 차를 알아본 중국 국경검문소에서 세우지도 않고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다시 유병선의 말이 이어졌다.

“회장님께서 정치적인 꿈이 없으시다면 지금의 특구 투자는 모험입니다.”

이제는 서동수가 입을 다물었고 유병선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회장님께선 다른 곳에서 몇 배의 이득을 올릴 수 있는데도 이쪽에 투자하고 계십니다.”

“이제는 그럴 때도 되었어.”

모호하게 말한 서동수가 등받이에 몸을 붙이더니 눈을 감았으므로 유병선은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 비서실장 유병선은 심복(心腹)이다.

즉 뱃속에 들어가 마음을 읽는 관계인 것이다.

서동수가 정치에 뜻이 없다는 것을 아는 유병선은 특구에 대한 투자가 무리라고 한다.

이윽고 서동수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10분쯤이나 지난 후였다.

서동수가 맑아진 눈으로 유병선을 보았다.

“설령 손해를 보더라도 이만한 명분이 어디 쉽게 얻어지겠냐? 오히려 영광이지.”

서동수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나에게 기업은 이런 때 나서라고 필요했던 거야. 미련도, 불만도 없어.”

“…….”

“내가 죽을 때 기업체, 재산 다 갖고 가는 것도 아니지 않나?

이런 좋은 기회가 어디 있어? 오히려 고맙게 여겨야지.”

“…….”

“자네한테 동성 주식 좀 떼어줄게. 그것만 가지고도 평생 비행기 1등석 타고 다니면서 살 거야.”


 “회장님.”

얼굴을 굳힌 유병선이 불렀지만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물이 흘러 내려가는 것처럼 사는 거야.

물이 제방에서 멈췄다가 넘치면 어쩔 수 없이 쏟아져 내려가겠지.

내 인생도 그렇게 되겠지.”

그러고는 다시 서동수가 의자에 등을 붙였을 때 유병선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서동수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유병선의 목소리에 열기가 더해졌다.

“오직 현실에 충실하고 내일은 운명에 맡기라는 말씀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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