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여자

60. 강한여자 (2)

오늘의 쉼터 2014. 7. 30. 11:39

60. 강한여자 (2)

 

 

 

 

강한과 시선이 마주치자 윤수정은 얼굴을 활짝 펴고 웃었다.

대한호텔의 스카이라운지에서는 한강과 천호동 지역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오후 3시쯤, 넓은 라운지 안에는 햇살이 환하게 비쳤고 강물 위로는 유람선 한 척이

상류 쪽으로 흘러가는 중이다.

강한이 앞 자리에 앉았을 때 윤수정이 상반신을 앞으로 굽혔다.

"오빠, 잘 끝낸 거야?"

윤수정의 시선을 받은 채 강한이 들고온 서류봉투를 내밀었다.

여전히 정색한 표정이다.

서류를 받은 윤수정이 이제는 얼굴이 굳어지더니 서둘러 내용물을 확인했다.

"어머나."

윤수정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더니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시선은 여전히 봉투 안에서 떼어지지 않았고 손은 내용물을 헤아리는 중이다.

이윽고 윤수정이 머리를 들었다.

눈은 크게 떠진데다 입이 반쯤 벌어져 있다.

"8억5천이다. 양도성 증서 5억짜리 한 장, 1억짜리 세 장, 그리고 천만원짜리 수표 다섯 장."

강한이 억양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약속대로 10%야. 85억을 뜯었거든."

"세상에."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윤수정이 긴 숨과 함께 말을 내놨다.

"난 이렇게 받을지 몰랐어."

"왜? 너무 많아?"

"그래."

머리를 끄덕인 윤수정의 볼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구두로 그렇게 합의했지만 오빠가 얼마 뜯었는지 확인 할 수도 없는 일이었거든.

그래서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이윤경이가 알아."

그렇게 말한 강한의 얼굴에 희미하게 웃음기가 떠올랐다.

"하긴 이윤경이한테 속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다간 결국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되지."

"고마워, 오빠."

봉투를 두 손으로 쥔 윤수정이 마치 상장을 받은 것 같은 자세로 말했다.

"잘 쓸게."

"그런데 작업건이 있다는 건 뭐냐?"

강한이 묻자 윤수정은 그때서야 정신이 든 것처럼 몸까지 반듯이 세웠다.

"돈 엄청 많은 여자야."

"그, 문지윤 말야? 놔둬."

손을 젓는 강한을 보더니 윤수정이 피식 웃었다.

"아냐, 40대 이혼녀야. 하지만…."

"미인이겠지."

"정말이라니까."

"글쎄, 정말이라도 관심없다."

강한이 의자에 등을 붙였지만 윤수정은 몸을 더 앞으로 내밀었다.

"강남에 빌딩을 다섯개나 갖고 있어. 전국에 있는 땅하고 건물을 합치면 1조가 넘는대."

"그 땅에다 빌딩을 부어서 잘 비벼먹고 살라고 해. 고추장도 넣고."

"참 착한 여자야. 남자 잘못 만나서 그렇지."

"다 좋을 수는 없지. 그래서 하느님이 공평하시다는 거야."

"글쎄, 잘 들어보라니까."

윤수정이 열심히 말했으므로 강한은 시선만 주었다.

다시 윤수정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 클럽 회원이지만 잘 안 나와. 일년에 한 두번 정도.

그런데 며칠 전에 연락이 왔길래 어제 만났어."

"……."

"남자 문제를 상의하는 거야.

나이트에서 남자를 만났는데 딱 두 번 잤다는 거야.

그런데 두번째 잘 때 맥주 몇 잔 마시고 나서 정신이 없었다는데,

물론 섹스는 했고, 그날 섹스는 꽤 좋았대.

그런데 며칠전에 그 남자한테서 메일이 왔다는 거야.

그 메일에 뭐가 들어왔는지 알아?"

"섹스 장면이겠지."

강한이 심드렁하게 말했지만 윤수정은 열이 났다.

"5분이나 그 장면이 찍혔대.

그러더니 곧 연락하겠다고 했다는 거야.

이걸 오빠가 한번 해결해 봐."

 

 

 

 

자물쇠가 풀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철문이 30cm쯤 열렸다.

강한이 문 안으로 들어서자 곧 철문이 스르르 움직이면서 닫혔다.

다시 쇳소리와 함께 자물쇠 채워지는 소리가 났다.

안쪽은 20평쯤 되는 정원이다.

소나무와 전나무 둥치가 30cm는 돼 보였는데

작은 연못에는 팔뚝만한 붉은 잉어떼가 노닐고 있었다.

강한이 현관으로 향하는 대리석 계단을 오르자 이번에는 현관문이 소리없이 열렸다.

이것도 철문이다. 현관 안으로 들어선 강한은 숨을 멈췄다.

눈앞의 응접실은 우선 넓었다. 겉으로는 평범한 2층 양옥이어서 안이 이렇게 넓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1층 건평이 100평은 넘는 것 같았고 응접실은 테니스장 반만 했다.

그 응접실 한복판에 여자 하나가 서 있었다.

바로 집주인 정현수일 것이다.

"어서 오세요."

조금 낮고 울림 있는 목소리로 정현수가 맞았지만 강한과 시선이 마주치자 얼른 외면했다.

가는 몸매에 얼굴 선도 가늘어서 여린 인상이었다.

그러나 눈꼬리가 조금 솟은 눈매와 얇지만 단정한 입술을 보면 성질은 있어 보였다.

속된 말로 표현하면 색기다.

"안녕하세요. 강한입니다."

강한도 건성으로 인사하고는 신발을 벗고 응접실로 들어섰다.

집안은 조용했다.

이 큰 집에 일하는 사람이 없을 리 없다.

오늘 만남 때문에 내보낸 것 같았다.

정현수가 권하는 소파에 앉은 강한이 집안을 둘러보는 시늉을 했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쓸데없는 인사치레를 나눌 만큼 정현수 입장이 한가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때 탁자 위에 놓인 여러 종류의 음료수를 정현수가 손으로 가리켰다.

"드세요."

"감사합니다."

그러나 강한은 손을 대지 않았다.

정현수는 숏컷한 머리에 얼굴에는 화장도 하지 않아서 눈 밑과 콧등의 주근깨가 드러났다.

입술도 메말라서 세로줄이 여럿 그어져 있었고 끝에는 껍질까지 조금 벗겨져 있다.

흰색 반소매 셔츠에 헐렁한 면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맨발이었다.

가지런한 발가락과 분홍빛이 도는 발톱이 보기 좋았다.

강한의 시선이 아주 잠깐 스치기만 했는데도 정현수의 발가락 끝이 놀란 벌레의 촉수처럼

움츠렸다가 다시 펴졌다.

시선은 이미 다른 쪽으로 옮겨갔지만 눈 끝으로 그것을 본 강한은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나서 정현수에 대한 호의가 구체적으로 일어났다.

괜찮은 여자라는 생각이 굳어진 것이다.

머리를 든 강한이 똑바로 정현수를 보았다.

"윤마담 한테서 대충 이야기 들었습니다.

그후로 그 작자한테서 연락 온 것이 있습니까?"

강한이 묻자 정현수의 볼이 눈에 띄게 붉어졌다.

시선을 강한의 가슴께에다 준 정현수가 대답했다.

"네, 어제 저녁에."

"그걸 볼 수 있을까요?"

"네?"

놀란 정현수의 시선이 마침내 강한과 부딪쳤다.

열기가 담긴 눈이었다.

눈 주위뿐만 아니라 눈도 뜨거워져 있다.

정현수의 시선을 잡은 강한이 차분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메일로 왔겠지요?"

"네."

"볼 수 없습니까?"

그러자 정현수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렸다.

그러더니 결심한 듯 강한을 똑바로 보면서 일어섰다.

"보여드릴게요. 이리 오세요."

따라 일어선 강한이 소리죽여 숨을 뱉었다.

메일을 본다는 것은 처음에 그 사내가 보내온 정사 필름까지 포함된 의미이다.

응접실 뒷쪽 계단을 올라 이층의 서재로 들어선 정현수가 테이블 위에 놓인 컴퓨터 전원을 켰다.

그리고는 선 채로 자판을 두드리더니 곧 비켜섰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치고 자신의 메일 박스를 열어보인 것이다.

"보세요."

정현수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좋지?"

사내가 소리치듯 묻자 정현수는 악을 쓰듯 대답했다.

"좋아!"

"정말?"

"좋아 죽겠어!"

그리고는 정현수의 열기 띤 얼굴이 화면을 가득 메웠다.

눈동자의 초점이 흐린데다 입은 딱 벌어졌다.

얼굴에 번진 땀까지 선명했고 가쁜 숨소리에 섞여 앓는 것같은 신음이 이어졌다.

그리고는 절정이다.

요란한 절정이었다.

강한은 뒤쪽의 정현수가 의식됐지만 자신의 몸도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관음증은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누구에게나 있다.

영화에서의 애정표현 장면을 보면서 즐기는 것도 관음이다.

정현수의 달아오르는 장면을 보면서,

그것도 출연한 본인이 뒤에 서 있다는 의식이 강한의 몸을 더 뜨겁게 만들어준 것이다.

이윽고 화면이 끝났으므로 강한은 밑에 있는 메일을 읽었다.

'즐거웠어, 그럼 다시 연락할게. 사랑하는 백동진.'

그것이 끝이다.

강한은 잠자코 다음 메일을 클릭했다.

어제 저녁에 정현수가 받은 메일이다.

이번에는 영상 화면이 없고 글만 쓰여 있다.

'아마 내가 보낸 화면을 보고 상의했겠지만 별방법이 없을 거야.

내가 그걸 인터넷에다 뿌리면 몇 시간 안에 수백만명이 보게 될 것이고 수습할 수 없어.

다 복사해 갈 테니까. 그림이 너무 좋아서 다 저장해 놓을걸? 내가 잡혀도 그만이야.

네 얼굴과 네 그림은 몇십년간 돌아다닐테니까.

자,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막아야겠지?

그러러면 5백억을 내라.

넌 그쯤 아무것도 아닐 거야. 돈 준비해.

현금으로. 기간은 5일 줄게. 전부 만원권으로 눈치 못 채게 모아.

여차하면 그림 내놓고 끝낼 테니까. 클릭 한 번이면 끝난다구.

그럼 5일 후에 다시 연락하지. 끝.'

 

메일을 읽은 강한이 컴퓨터 전원을 끄고 나서 일어났을 때

정현수는 창가에 서서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요."

강한이 부르자 정현수가 돌아섰다.

그러나 시선은 여전히 옆으로 비켜나 있다.

"그거 하실 때 저놈이 약을 먹였겠지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강한이 물은 것이 오히려 정현수에게 자극이 된 것 같았다.

퍼뜩 시선을 든 정현수가 똑바로 강한을 보았다.

"그런 것 같네요."

"그날 상황을 자세히 말해주실 수 있습니까? 장소하고 그놈 행동까지 말입니다."

"그게 무슨…."

거기까지 말한 정현수가 침을 삼키고 나서 침묵했다.

그게 무슨 도움이 되느냐는 말인지 무슨 상관이냐고 하려다가 말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강한은 잠자코 기다렸다.

이윽고 정현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들으셨겠지만 저놈은 나이트에서 만났고 이름이 백동진이란 것밖에 몰라요.

명함도 받지 않았으니까."

"……."

"서로 즐기자고 합의를 보았죠. 전 제 이름도 말해주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놈은 이미 정현수를 파악하고 낚시를 던진 것이다.

그리고 정현수가 걸려들었다.

정현수의 말이 이어졌다.

"첫번째는 그냥 끝났어요. 그냥."

"섹스가 밋밋했단 말입니까?"

"그렇죠."

이젠 정현수가 바로 대답했지만 시선을 주지는 않았다.

강한이 다시 물었다.

"그래서요?"

해놓고 강한이 생각난 듯 덧붙였다.

"제가 그런 놈들 행태를 들으면 어떤 수준이고 어떤 놈들인지 아는데 도움이 되거든요.

그러니까 자세히 말해 주세요."

"두번째는 나이트에서 한잔 마시고 바로 모텔로 들어갔어요.

그놈하고 교외로 나가서요."

"……."

"그때까진 괜찮았는데 제가 샤워하고 나오니까 맥주 마시라고 주더군요.

그래서 그걸 마셨더니 왠지 기분이…."

 

 

약을 탄 것이다.

최음제는 여러 가지가 있어서 무엇을 먹였는지 알 수 없지만 효과는 대부분 비슷했다.

강한은 써보지 않았어도 주변에서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정현수가 어떤 반응을 보였으리라 상상할 수 있었다.

몸이 뜨거워진 정현수는 사지를 비틀면서 사내에게 매달렸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건 오직 사내의 육체뿐이다.

정현수는 사내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을 것이다.

머리를 든 강한이 정현수를 보았다.

"돈은 절반만 준비해 주세요."

그러자 정현수가 외면한 채 대답했다.

"그놈이 그 그림만 지워준다면 다 주겠어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쓴웃음을 지은 강한이 말을 이었다.

"너무 쉽게 줘버리면 그놈은 또 요구할 겁니다.

절반만 준비하라는 건 그놈한테 보일 미끼죠. 난 한 푼도 안 줄 겁니다."

"어떻게 하실건데요?"

마침내 시선을 든 정현수가 강한을 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정현수의 눈 밑이 금방 붉어졌다.

"만나서 직접 돈을 주는 시늉을 하고는 놈을 잡을 겁니다."

강한이 차분하게 말했다.

"이쪽도 돈을 가져가니까 놈도 나타나야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안 준다고 할 테니까요."

정현수의 시선을 받은 강한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500억원을 싣고 가는데 그놈이 전화만 해댈 수는 없지요.

욕심에 눈이 뒤집혀 틀림없이 나타납니다. 그때 잡는 거죠."

"……."

"잡으면 손을 자르던지 눈알을 빼든지 할 겁니다.

그럼 자판을 두드리지 못할 테니까요.

아예 두 가지를 다 할 수도 있고."

그리고는 강한이 덧붙였다.

"시간이 좀 있으니까 그 나이트클럽에 가서 그놈에 대해 조사도 해볼 겁니다.

그런 놈은 꼭 흔적을 남기는 법이니까요."

발을 뗀 강한은 앞장서서 거실을 나왔다.

계단을 내려가 아래층 응접실로 들어섰을 때 뒤에서 정현수가 불렀다.

"저기요."

몸을 돌린 강한에게 정현수가 가슴께에다 시선을 준 채 물었다.

"사례비는 얼마 드리면 될까요?"

"글쎄요."

정색한 강한이 정현수를 보았다.

윤수정은 정현수가 40대 초반이라고 했지만 30대 중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일이 잘 끝나고 나서 받도록 하지요."

강한이 말했을 때 윤수정이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미리 준비해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여기 제 통장입니다. 도장하고 비밀번호도 적어 놓았어요."

윤수정이 통장을 내민 채 말을 이었다.

"찾아 쓰시기 좋도록 통장을 드릴게요. 10억 넣어져 있어요."

그리고는 서두르듯 덧붙였다.

"물론 이건 착수금이죠. 일이 잘 끝나면 사례비 드릴게요."

강한이 봉투를 받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저한테 어느 때건 연락하셔도 됩니다. 특히 그놈한테서 연락이 왔을 때 말이죠."

현관으로 나온 강한의 뒤에서 정현수가 말했다.

"꼭 좀 부탁해요. 지금도 몸이 떨려서 약 먹고 있거든요."

강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위로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택 밖으로 나왔을 때 아래쪽 공용 주차장에서 얼쩡거리고 서 있던 천상태가 강한을 맞았다.

"너, 천지 나이트에 가서 노는 놈 명단을 다 뽑아와. 가끔 원정 오는 놈들까지."

차에 탔을 때 강한이 천상태에게 말했다.

"그놈은 백동진이란 이름을 썼지만 보나 마나 가명일 것이고 40대 중반쯤에

키가 크고 피부가 좀 검다고 해.

머리는 올백 스타일에 기름을 바르고 콧날이 굵다는군.

입술도 두툼하고."

정현수한테서 들은 사내의 인상착의를 말해주자 천상태가 입맛을 다셨다.

"딱 제비 인상이구만. 여자들은 왜 그런 놈씨들한테만 넘어가지?"

 

 

"여행 가십니까?"

출입국 관리가 여권 사진에 시선을 준 채 물었으므로 장미는 긴장했다.

"네."

미국 입국비자는 받았고 왕복 티켓도 첨부돼 있다.

컴퓨터를 두드려본 관리가 머리를 들고 장미를 보았다.

무표정한 시선이었다.

"처음 미국 가시네요."

"네."

그러자 다시 컴퓨터 화면을 본 관리가 스탬프를 집더니 여권에 찍었다.

'철커덕.'

스탬프가 찍히는 소리였고 동시에 장미는 어깨를 늘어뜨렸다.

여권을 챙긴 장미가 출국장 안으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셋이 맞았다.

어머니와 동생 장선, 그리고 유진홍이다.

"아이구, 얘야."

눈에 눈물이 가득 담긴 어머니가 장미의 팔을 쥐었다.

먼저 출국 수속을 끝낸 셋은 장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장선의 얼굴도 상기돼 있었다.

"언니, 가자."

어서 출국 카운터에서 멀리 벗어나자는 것처럼 장선이 장미의 손을 잡고 끌었다.

"자, 다 끝났습니다. 가시죠."

유진홍이 앞장서며 말했다.

걱정할 것 없다고 자신했던 유진홍이었지만 마음이 이제야 놓인 듯

얼굴에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이제 미국으로 떠나는 것이다.

유진홍은 언제든지 돌아와도 된다고 했지만 LA에 어머니와 동생 장선까지

함께 살 대저택까지 구입해 놓았다.

아직 출발 시간이 남아 있었으므로 유진홍은 그들을 일등석 라운지로 안내했다.

모두 일등석 티켓을 끊은 것이다.

그러나 장미는 먼저 화장실부터 들러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버튼을 누르자 곧 강한이 전화를 받았다.

"응, 공항이야?"

강한이 대뜸 물었다.

출국 시각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안으로 들어갔어?"

"그래, 이젠 비행기만 타면 돼."

장미가 말하자 강한이 길게 뱉는 숨소리가 들렸다.

"잘 됐다. 난 그래도 은근히 걱정했는데 말이야."

"지금 어디야?"

"그건 알아서 뭐하게?"

강한이 웃음 띤 목소리로 말했다.

"이젠 신경 꺼. 네 일이나 해."

"좀 쉬었다 올게."

"그러지 마."

이제는 강한의 목소리가 차분해졌다.

강한이 말을 이었다.

"거기서 살아. 유진홍, 괜찮은 놈 같다. 사기꾼이긴 하지만 말이야."

"……."

"너한테 잘해주면 그만이지. 더구나 네 가족까지 다 보살펴 주는데."

"……."

"여긴 첫째로 네가 자유롭지 못해서 너나 가족이 불안하게 지냈어.

어머니 몸도 좋지 않으신데 말이지. 그러니까 거기서 마음 잡고 살아."

"……."

"아이도 낳고."

"넌 어떻게 할 거야?"

하고 장미가 묻자 강한이 낮게 웃었다.

"나야 끊임없이 일 만들고 있는 거지.

지금은 협박범 하나를 잡는 용역을 맡았어. 선금으로 10억 받았어."

"……."

"그리고 네 대타로 한 명을 키우고 있는데 아주 의욕적이야.

지난 주에 85억 벌었어, 그놈한테는 30%를 줬고."

"……."

"네가 그립다."

불쑥 강한이 말했으므로 장미는 휴대폰을 고쳐 쥐었다.

그때 강한이 말을 이었다.

"널 잊을 수가 없어. 넌 천사 같았다가 악마 같기도 했지만 내 우상이었지.

네 생각만 하면 가슴이 저렸다."

"……."

"하지만 이런 이별이 우리한테는 적당해. 잘 가라. 내 여신."

그리고는 전화가 끊겼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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