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여자

58. 킹카 (5)

오늘의 쉼터 2014. 7. 30. 11:35

58. 킹카 (5)

 

 

 

"그놈 이름은 홍찬식."

침대에 나란히 누운 강한이 이윤경의 어깨를 감싸안고 말했다.

방안의 불은 환했지만 열기에 싸여 흐리게 보였다.

비린 정액 냄새가 호흡할 때마다 맡아졌고, 폐안에 쌓이는 느낌이 든다.

아직도 이윤경은 강한의 가슴에 볼을 붙인 채 가쁜 숨을 뱉는 중이다.

숨을 뱉을 때마다 강한의 가슴 위로 더운 바람이 쓸고 지나갔다.

"그놈을 상대한 여자 두 명 한테서 들었는데 꽤 밝혀. 하지만 연장 길이는 이 정도."

강한이 한 손을 세워 손가락으로 길이를 표시해 보였다.

이윤경의 시선이 손가락으로 옮겼다.

그러나 입을 열지는 않는다.

강한의 말이 이어졌다.

"평균 3분에서 5분, 애무는 거의 하지 않고 오히려 제 놈이 받기를 즐기는 편인데 특히…."

강한이 손으로 이윤경의 입술을 건드렸다.

"이걸로 해주는 걸 좋아하지."

"드러워."

이윤경이 볼을 가슴에 붙인 채 말했다.

"드런 놈."

"해줘."

그러자 이윤경이 얼굴을 들고 강한을 보았다.

"꼭 해야 돼?"

"해야 돼."

"싫어."

다시 강한의 가슴에 얼굴을 붙인 이윤경이 몸을 흔들었다.

알몸이어서 가슴이 옆구리에 닿았고 한쪽 다리를 들더니 강한의 하체를 감듯이 덮었다.

"나, 안할 거야."

"이거 왜 이러니?"

정색한 강한이 묻자 이윤경이 손을 아래로 뻗었다.

"하기 전에 작전을 하면 안 돼?"

이윤경이 묻는 순간 강한이 손을 떼어냈다.

"안 돼, 해야 돼. 그래야 약점을 잡거든."

"어떻게 할 건데?"

기분이 상한 이윤경이 새침한 표정으로 강한을 보았다.

"사진 찍을거야?"

"넌 몰라도 돼."

시선을 돌린 이윤경이 이제는 얼굴까지 떼고는 천정을 보았다.

강한이 시트를 당겨 이윤경의 알몸을 대충 덮어주면서 말했다.

"일 하는 거야. 그러니까 고민하지 않아도 돼."

"……."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가끔 싫은 일도 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지.

살기 위해서 또는 편해지려고."

"……."

"그런 경우라고 생각하면 돼.

너하고 나 사이의 개인 감정은 일 때문에 전혀 손상받지 않을 테니까."

"그럼."

입안의 침을 모아 삼킨 이윤경이 천정을 향한 채 물었다.

"오빠하고 나하고 관계는 일이야?"

"일로 만났지."

강한이 거침없이 대답했다.

"우리는 동업자 관계야. 서로 믿고 의지하는 관계라구."

"나하고 섹스한 것은 그런 의미야?"

"그렇게 생각해도 돼."

"좋았어."

기분이 조금 풀린듯 몸을 비튼 이윤경이 다시 강한의 옆에 붙었다.

한쪽 다리가 다시 감겼고 볼이 가슴에 닿았다.

강한도 이윤경의 어깨를 감싸안고 말했다.

"너도 참 좋았어."

"뭐가?"

분위기를 살리려는 듯이 이윤경의 손이 다시 남성에 닿았다.

목소리도 다시 나긋나긋해졌다.

"응? 뭐가 좋았어?"

"네 분위기, 신음소리, 그리고 움직임 그리고 몸매 그리고…."

"그리고 또?"

이윤경이 숨결이 뜨거워졌고 손에 힘이 실렸다.

 

 

 

 

응접실로 들어온 유진홍이 소파에 앉아있는 장미를 보더니 얼굴을 펴고 웃었다.

천진한 표정이었다.

"어, 영화보고 있었어?"

TV 화면을 본 유진홍이 옆자리에 앉더니 리모컨으로 볼륨을 높였다.

그러자 장미가 버튼을 눌러 화면을 껐다.

"어, 왜?"

눈을 둥그렇게 뜬 유진홍에게 장미가 웃음 띤 얼굴로 물었다.

"자기야, 미국 언제 가자고 그랬지?"

"이달 말. 30일이니까 앞으로 딱 열흘 남았구만."

그러더니 장미 옆으로 바짝 붙어앉았다.

"가자, 가서 한번 멋지게 살자."

말을 뱉고 난 유진홍이 제 말에 놀라 흠칫하더니 외면했다.

실언을 한 것이다.

멋지게 '놀자'고 하려다가 '살자'고 했다.

진심이 드러난 것이다.

장미가 모른 척 다시 물었다.

"LA로 간다고 했지?"

"그래, 거기서부터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거지.

돈만 있으면 그곳은 천국이야.

진짜 돈있는 사람이 대접받는 땅이라구."

"……."

"널 공주처럼 만들어 줄게."

"……."

"같이 가자. 응?"

정색한 유진홍이 장미의 손을 잡았다.

"장미야, 내가 너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알아."

"그럼 나 따라와. 같이 가서 놀게."

이제는 '살게'가 아니라 '놀게'로 바뀌었다.

그때 장미가 머리를 들고 유진홍을 보았다.

"자기 한테 말했지 않아? 아버지가 아파서 긴 여행은 못한다고."

유진홍은 시선만 주었고 장미의 말이 이어졌다.

"이번은 안돼. 자기야. 미안해."

"그렇다면 할 수 없지만."

어깨를 늘어뜨렸던 유진홍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동안 생각이 바뀌면 말해. 비행기표는 그대로 둘 테니까."

"도대체 얼마동안 여행가는 거야?"

장미가 정색하고 유진홍을 보았다.

"여행 가자고만 했지 언제 돌아온단 말을 안해서 그래."

"그게."

침을 삼킨 유진홍이 눈썹을 모으고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한 달쯤, 아니 그 이상이 될 지 모르겠다. 이번에는 푹 쉬고 올 작정이니까."

"회사 그렇게 오래 비워도 돼?"

"넌 모르는데…."

유진홍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컴퓨터만 들고 나가면 화상 통신으로 다 돼. 컴퓨터 회의, 결재까지."

"그래?"

"네가 같이 갔으면 좋겠다. 정말이야."

그리고는 유진홍이 소파에 등을 붙이면서 말했다.

"공항 나갈 때 걱정 안해도 돼. 넌 출국금지가 안 돼 있어."

놀란 장미가 숨을 멈췄지만 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눈썹도 깜박이지 않았고 이도 악물지 않았다.

앞쪽의 꺼진 TV를 본 채 3초쯤 가만 있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수배 상태이기는 하지만 출국금지는 돼 있지 않다고 했어."

유진홍도 차분하게 대답했으므로 장미가 머리를 들었다.

유진홍과 시선이 마주쳤다. 둘 다 차분한 표정,

눈도 똑같이 깊은 물처럼 가라앉아 있다.

그러나 장미의 가슴은 무섭게 뛰었다.

유진홍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장미가 다시 물었다.

"알고 있었어?"

짧은 순간 망설였지만 부딪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무슨 말이냐고 빼기만 했다가는 결론이 나빠질 것 같다는 본능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장미의 시선을 받은 유진홍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나도 정보로 먹고사는 놈이야.

결혼식에 온 네 부모, 친척도 다 가짜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

 

 

 

강한이 장미의 전화를 받았을 때는 오전 10시경이었다.

막 외출하려던 참이어서 휴대폰을 귀에 붙이고는 다시 소파에 앉았다.

"무슨 일이야?"

강한이 묻자 장미는 몇 초 동안 가만 있었다.

곧 유진홍과의 생활을 청산하고는 돌아오겠다고 한 터라

강한은 파주 교외의 별장을 준비해 놓았다.

장미의 새 거처였다.

유진홍과 좋게 끝날 것 같지가 않았으므로 보안에 신경을 썼고 파주 별장을 아는

인간은 천상태와 강한 둘뿐이다.

대답을 기다리던 강한이 이맛살을 찌푸렸을 때 장미가 말했다.

"쉽게는 안 되겠어."

"뭐가?"

"나오는 것 말이야."

이번에는 강한이 입을 다물었고 장미의 말이 이어졌다.

"이 사람이 다 알고 있어."

"뭘 말이야?"

"내가 수배 중이라는 것. 내 전력 그리고…."

"그리고 또 뭐?"

"내 배후에 누가 있다는 것까지."

"흐응."

코웃음을 친 강한이 휴대폰을 바꿔 쥐었다.

그러나 얼굴은 굳어졌다.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야?"

"같이 미국으로 가자고 해."

"무슨 재주로?"

"내가 출금돼 있지 않다는 거야. 알아 봤대."

"……."

"미국에서 몇 달간 만이라도 같이 지내자는 거야. 그러다 싫다면 보내주겠대."

"그래서?"

"생각해 보겠다고 했어."

그러자 강한이 심호흡을 하고나서 말했다.

"만일 같이 안 간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그것도 물어 봤어?"

"그건 물어보지 않았어."

"너 그럼 아직 결정을 안 한거야?"

강한이 묻자 장미는 다시 몇 초쯤 입을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에 장미의 목소리가 울렸다.

"갑자기 무서워졌어. 이 사람, 보통이 아냐. 다 알고 있는 것 같아."

"너, 지금 어디서 전화하는 거야?"

"수원 근처의 별장으로 옮겨왔어."

"행동은 자유로운 편이야?"

"그래, 그래서 이렇게 전화하잖아?"

강한이 쓴웃음을 짓고는 다시 물었다.

"위치를 말해."

"수원 아래쪽 오산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꺾어지는 길인데 용주사 근처야.

표시판이 있었고 별산리라는 마을 위쪽, 산골짜기의 2층 별장인데 찾기는 쉬워."

서두르듯 말한 장미가 전화기에 대고 길게 숨을 뱉었다.

"그 사람은 날 구속하고 있지는 않아.

이렇게 전화 마음대로 쓰게 하고 마음대로 나가도록 해.

어제는 수원 백화점에 가서 잔뜩 쇼핑을 하고 왔어."

"……."

"하지만 만일 안 간다면, 가만두지 않겠지? 넌 어떻게 생각해?"

"그놈도 뒤가 구린 놈이야."

차분하게 말한 강한이 소파에 등을 붙였다.

"주식 다 처분하고 미국으로 도망칠 놈이니 법으로 해결할 리는 없겠지."

그러자 장미의 목소리도 차분해졌다.

"우리가 이 사람을 좀 과소평가한 것 같아.

며칠간 이 사람에 대해서 더 알아보고 결정을 해야 할 것 같아."

맞는 말이었으므로 강한의 머리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그래, 그러는 게 낫겠다. 나도 알아볼 테니까 말이야. 경솔하게 처신하면 안되겠지."

"나한테 다 알고 있다고 말한 이상 내 반응에 대한 대비도 다 해놓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내 생각도 그래."

"지능지수가 높은 자야."

그러더니 장미가 입맛 다시는 소리를 냈다.

"쉬운 일은 없어. 그렇지?"

"그래."

그리고는 강한이 잊었다는 듯이 서둘러 말을 이었다.

"몸 조심해. 경솔한 행동은 말고."

 

 

 

 

홍찬식은 이른바 킹카였다.

자칭타칭 다 그렇다. 스스로 '나만한 남자 있으면 나와보라'고 큰소리를 쳤는데 그럴 만 했다.

나이는 40대 초반이었지만 헌칠한 키에 근육질의 몸매, 미남형 얼굴에다

옷은 언제나 코디가 골라준 수백만 원짜리 이탈리아제 명품만 입었다.

거기다 매너도 좋고 돈도 잘 썼다.

기혼에 나이가 좀 많았지만 겉으로 보면 30대 초반으로 밖에 안 보였다.

또 요즘 세상에 누가 미혼 기혼 따지는가? 기분 좋게 즐기면 되는 것이다.

세도호텔 라운지로 들어선 홍찬식이 이윤경을 보더니 활짝 웃었다.

오후 5시 정각,

홍찬식이 다가가 서자 이윤경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얼굴이 긴장으로 굳어 있다.

"만나서 반가워."

웃음 띤 얼굴로 말한 홍찬식이 먼저 앞쪽에 앉았으므로 이윤경은 따라 앉았다.

"나,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홍찬식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폴로에서 여러 번 봤어. 기회를 노렸는데 겨우 이렇게 일이 되는구만."

시선을 내린 이윤경이 홍찬식의 저고리를 보았다.

세련됐다.

목소리도 좋았고 얼굴도 봐줄 만 했다.

종업원이 다가와 주문을 받고 돌아갔다.

홍찬식은 커피를, 이윤경은 오렌지주스를 시켰다.

"윤마담한테 이야기 들었지?"

홍찬식이 날씨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물었으므로 이윤경도 바로 대답했다.

"네, 들었어요."

"이박 삼일. 오늘 밤부터 토요일 밤까지야."

그리고는 홍찬식이 빙긋 웃었다.

"부산에서 성형외과 세미나에 참석하는 거지. 알리바이가 완벽하게 조작돼 있다구."

"사모님이 그렇게 무서우세요?"

분위기에 휩쓸린 듯 이윤경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떠올랐다.

이윤경이 묻자 홍찬식은 소리내어 웃었다.

"가화만사성이야. 집안이 평온해야 일도 잘 풀리는 법이라구."

"근데 이박 삼일간 어디에서 뭐해요?"

"그건 비밀."

눈을 가늘게 뜬 홍찬식이 과장되게 목소리를 낮췄다.

"가끔 그런 충동이 일어나지 않나?

아무도 없는 곳에서 좋은 사람하고 둘이 있고 싶은 충동 말이야."

"아뇨."

이윤경이 바로 머리는 저었지만 얼굴을 펴고 웃었다.

"둘이 홀랑 벗고 말씀이죠?"

"잘 아는군."

홍찬식의 얼굴이 웃음으로 일그러졌다.

대화가 바라던 대로 진행되는 것 같으니까 만족한 것이다.

"어때? 미스리."

"이윤경이에요. 아시죠?"

"그래, 내가 누군지도 알지?"

"네, 킹카 홍박사님, 닥터 홍."

"근데 미스리, 섹스 경험 있느냐고 묻는 건 촌스럽고, 어때? 잘해?"

"별루요."

이윤경이 금방 대답하고 나서 정색했다.

"잘 모르겠어요."

"뭐를?"

"제가 잘 하는지를요."

"으음."

신음을 뱉은 홍찬식의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이곳이 둘만 있는 곳이라면 당장에 자빠뜨릴 것 같은 표정이다.

그러나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킨 홍찬식이 말을 이었다.

"그럼 좋아는 해?"

"그럼요."

정색한 이윤경이 머리를 끄덕였다.

"이제 겨우 섹스의 기쁨을 알 것 같아요."

"그 기쁨을 알려준 고약한 놈들은 누구였지?"

"지금까지 셋이 있었죠."

눈을 가늘게 뜬 이윤경이 잠깐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말을 이었다.

"첫 남자는 고 3때, 걔하고는 딱 두 번하고 헤어졌죠."

"으음, 그리고?"

"두번째는 대학 2학년 때 과 선배, 그 친구하고는 네 번, 그때도 뭘 모르고 지나쳤죠."

"으음, 그래서?"

"2년 전에 만난 남친, 걔하고는 다섯번, 그때 좀 알게 됐어요. 특히 마지막 두 번."

"그놈이 잘했나?"

"아니, 그보다 제 몸이 성숙해진 거죠."

그리고는 이윤경이 덧붙였다.

"물론 그 친구하고 6개월 전에 헤어졌으니까 전 6개월 동안 처녀였다구요."

 

 

 

 

"다 끝났어, 형."

안방에서 나온 천상태가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양손에 공구 가방과 쓰레기봉투를 나눠쥐고 있었는데 작업을 마친 것이다.

강한은 다시 집안을 둘러보았다.

벌써 세번째 살펴보는 것이다.

흘린 것은 없다.

응접실과 안방 두 곳,

복도까지 네곳에 카메라를 장착했고 잘 은폐해서 강한 자신도 어디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

"됐다. 가자."

마침내 머리를 끄덕인 둘은 뒷문으로 나왔다.

안의 잠금장치를 누르고나서 나온 후에 문을 닫자 찰칵 소리와 함께 문이 잠겼다.

오후 6시가 되어가고 있어서 골짜기는 어두웠다.

뒤쪽 담장을 넘어 골짜기 위로 오르면서 천상태가 투덜거렸다.

"그놈, 오늘 밤 이곳에서 신나게 방아를 찧겠구만."

둘은 지금 홍찬식의 별장에 들어가 카메라를 설치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아래쪽 200미터쯤 떨어진 농가에 관리인 부부가 살고 있었지만 낮에 잠깐 들러 살펴볼 뿐이다.

뒤를 따르던 천상태가 산비탈을 오르면서 허덕이며 말했다.

"형, 이놈한테 얼마 뜯어낼거요?"

"글쎄, 예상은 1백억인데."

나뭇가지를 잡고 비탈을 오르던 강한이 잠깐 멈춰서서 아래쪽을 보았다.

홍찬식의 별장은 이제 70, 80미터쯤 아래로 멀어졌다.

지붕이 발 아래로 내려다 보였는데 벼랑이 가팔라서 뛰어내리면 지붕위에 떨어질 것 같았다.

다시 발을 뗀 강한이 옆으로 이동하자 평평한 바위가 나왔고 곧 두 평쯤 되는 평지로 이어졌다.

이곳은 별장의 뒤쪽이다.

"이것 참. 여기서 하룻밤을 지내야 하다니."

입맛을 다신 천상태가 바위 틈에 기대놓은 커다란 배낭을 풀면서 투덜거렸다.

배낭 두 개에는 2인용 텐트와 침낭, 취사도구에다 식량까지 가득 들어있다.

강한이 먼저 구석에다 노트북을 꺼내놓더니 모니터를 켰다.

그리고는 공구함을 열고 별장에 설치한 카메라 장치와 모니터를 연결했다.

그러자 곧 화면이 밝아지면서 네 곳을 비쳤다.

그러나 집안의 불을 켜지 않아서 화면은 어두웠다.

"잘 나오는데."

힐끗 모니터를 본 천상태가 텐트를 치면서 말했다.

"이윤경이가 장치해 놓은 거 안다면 어색해서 제대로 흔들지 못하겠는데."

천상태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이 필름 녹화해서 팔아 먹읍시다.

홍찬식이한테 팔고 나서 말이야."

주위가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냉기가 몰려왔으므로 둘은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텐트 안은 아늑했다.

그때 강한의 주머니에 든 휴대폰이 울렸다.

이윤경의 번호가 찍혀 있었다.

"응. 어디냐?"

강한이 묻자 이윤경이 낮지만 또렷하게 대답했다.

"세도 호텔 한식당에서 밥 먹어요.

여기서 밥 먹고 여행 떠나기로 했어요."

"그래, 잘했다."

"오빠 지금 어딨어요?"

"그건 왜 물어?"

"무서워서."

"걱정마."

"별장에 갈 때 난 자야 한대요. 밖을 보면 안된다는데 혹시…."

"글쎄, 괜찮다니까. 내가 네 뒤에 따라붙을 테니까."

"정말?"

"그래."

"오빠만 믿어."

그러더니 통화가 끊겼으므로 강한이 쓴웃음을 지었다.

"젠장, 오늘밤 모니터 보면서 손장난이나 해야지."

바닥에 침낭을 깔던 천상태가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강한은 밖으로 나왔다.

밖은 벌써 짙은 어둠에 덮여 발밑도 보이지 않았다.

홍찬식의 용인 별장을 찾아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이 별장은 홍찬식 누나 이름으로 명의가 돼 있었다.

머리를 썼지만 강한이 누구인가?

사금융 채권회수 팀에서 일을 배운 몸이다.

 

 

 

 

밤 8시반, 이윤경은 식당을 나오면서 다시 한번 시간을 확인했다.

왠지 불안했기 때문이다.

홍찬식은 밥을 먹으면서 별장까지 가는데 눈을 감아야만 하는 이유를 20분 넘게

설명해주었지만 딱 세마디면 끝날 말이었다.

"증거 남기지 않으려고."

그렇게 말해주었다면 더 남자답게 보였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 시선이 거북하다느니 관리인 집 앞을 지날 때 체면이 안 선다느니 하더니,

와이프한테 누가 일러 바칠지도 모른다는 거짓말까지 했다.

빈약한 변명이었고 점점 홍찬식의 매력이 떨어졌다.

그 빌어먹을 별장은 마누라 모르게 만들어놓은 '떡방앗간'이라는 것을 강한한테

이미 들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홍찬식이 직접 운전하는 벤츠에 탔을 때 이윤경이 웃음 띤 얼굴로 물었다.

"저, 그럼 언제부터 눈 가려요?"

"그냥 자."

홍찬식이 핸들을 쥐고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톨게이트 지나면 의자 뒤로 눕히고 한숨 자면 돼."

"그럴게요, 다 오면 깨워줘요."

"그런데."

차를 발진하면서 홍찬식이 이윤경을 보았다.

"저기 말이야."

"뭔데요?"

"저, 팬티 벗으면 안될까?"

"네?"

눈을 크게 떴던 이윤경이 무의식중에 두다리를 오므렸다.

"왜요?"

목소리가 굳어졌고 한손으로는 위쪽 문의 손잡이를 쥐었다.

그러자 이윤경의 표정을 본 홍찬식이 입맛을 다셨다.

"그냥, 내 취미야."

"어떤 취미인데요?"

"운전하면서 거기 보는거."

"뭘요?"

했다가 말뜻을 알아챈 이윤경의 얼굴이 와락 붉어졌다.

그때 홍찬식이 말했다.

"그냥 보기만 하는거야. 절대로…."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킨 홍찬식이 말을 이었다.

"절대로 안 만져. 약속해."

"그래도 싫어요."

이맛살을 찌푸린 이윤경이 머리를 저었다.

"밑에는 홀랑 벗고 앉아있으란 말예요?"

"아. 아냐."

눈을 치켜뜬 홍찬식이 앞을 노려보면서 열심히 말했다.

"스커트는 입어. 그냥 밑에 팬티만."

"그래서요?"

"스커트를 들쳐서 거기가 보이게…."

"변태 아녜요?"

"그, 그럴리가…."

정색한 홍찬식이 머리까지 저었다.

"절대로 아냐. 난 정상이야."

"씻지도 않아서 냄새날 텐데."

"그, 그것이 더…."

갑자기 흥분한 홍찬식이 가속기를 밟았다가 황급히 브레이크를 밟는 바람에 차가 흔들렸다.

"난 그게 더 좋아."

"뭐가요?"

"냄새 나는 것이 말야."

"진짜 변태네."

"아니라니깐."

홍찬식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게 왜 변태야? 네가 몰라서 그래. 다 하고 싶은 일이야."

"싫어요. 그래도."

"제발 부탁이야."

그러나 이윤경은 외면한 채 대답하지 않았다.

차는 이제 톨게이트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그때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킨 홍찬식이 다시 입을 열었다.

"부탁이야. 응? 내 분위기 좀 맞춰줘."

"……."

"진짜 보기만 할게."

"보기만 할거죠?"

불쑥 이윤경이 묻자 홍찬식은 펄쩍 뛰듯이 반겼다.

"그래, 팬티만 벗고 누워. 스커트는 조금만 올리고."

그러더니 차의 속력까지 줄였다.

"반듯이 누우면 돼. 편할 거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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