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여자

59. 강한여자 (1)

오늘의 쉼터 2014. 7. 30. 11:37

59. 강한여자 (1)

 

 

"강한이라고 들었는데…."

하고 유진홍이 말한 순간 장미는 몸이 굳었다.

그러나 천천히 머리를 돌려 유진홍을 보았다.

앞쪽 TV 화면에서는 9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장미의 시선을 받은 유진홍이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회사에서 퇴근한 유진홍은 대부분 회사 사람들 하고 같이

저녁을 먹지만 8시 반이면 집에 돌아왔다.

오늘도 돌아와 씻고 말끔한 얼굴로 옆에 앉아 있다.

"당신의 동업자 말이야."

유진홍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고 장미는 여전히 입을 다문 채 바라만 보았다.

그러나 얼굴은 어느새 평정 상태가 되었다.

호흡도 고르고 표정도 평온했다.

그때 유진홍의 말이 이어졌다.

"큰 사업을 하던데, 실버타운 말이야. 벌써 자본금이 1000억 가깝게 투입됐더구만."

그때야 장미가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강한과 동업자는 맞다.

이번에 유진홍한테서 받은 돈까지 실버타운 건립기금으로 투자한 것이다.

머리를 돌린 유진홍이 TV를 향해 길게 숨을 뱉었다.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거야. 이건 정말 훈장이라도 줘야할 일이라구."

장미가 유진홍의 옆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지금까지 장미의 인생에서 이렇게 오래 동거 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

물론 결혼도 처음이다.

모두 유진홍의 등을 치려고 세운 작전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첫째, 유진홍이 이쪽 정체를 간파한 것이다.

어디까지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지만 꽤 깊게 알고 있다.

당연히 대비책까지 마련해 놓았을 것이다.

장미는 심호흡을 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눈다.

어젯밤에도 매일 밤 치르는 행사처럼 진한 섹스를 했다.

이젠 유진홍도 익숙해져서 꽤 오래 끌었는데 장미는 몰두해 있는 자신을 느끼고는

가끔 놀랄 때도 있다.

장미도 유진홍의 몸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하려는지 당신 다 알고 있지?"

불쑥 유진홍이 물었으므로 장미가 머리를 들었다.

"그래요."

시선이 마주치자 장미가 분명하게 말했다.

"들었어요."

"나, 미국으로 가면 돌아오지 못해. 도망치는 거야."

"알아요."

"주식을 팔면 2800억쯤 나올거야."

다시 외면한 장미를 향해 유진홍이 말을 이었다.

"이미 절반은 팔아서 미국으로 송금했고 나머지는 열흘 안에 정리될 거야."

"……."

"같이 가지 않을래?"

유진홍이 낮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신은 살인혐의로 수배 중이야.

한국에서는 양지에 나와 살 수 없는 입장이지.

미국에 가면 달라져, 얼마든지."

호흡을 고른 유진홍의 목소리에 열기가 실렸다.

"실버타운에 돈 투자한 거 내버려둬.

다 재단 명의로 되어 있던데 언제든지 와서 지분 요구할 수 있으니까.

 미련 가질 필요 없단 말이야."

"……."

"모두 당신을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같이 가자. 응?"

유진홍이 손을 뻗어 장미의 손을 움켜쥐었다.

손은 뜨거웠다.

머리를 든 장미는 유진홍의 번들거리는 두 눈을 보았다.

장미가 유진홍의 손을 마주 쥐었다.

"고마워요."

두 손으로 유진홍의 손을 감싸쥔 장미가 말을 이었다.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야."

"널 좋아해. 너하고 같이 있고 싶어."

"그러고 보면 당신은 내 첫 남편이야."

"돈쯤은 아무것도 아냐. 다 버릴 수도 있어."

유진홍이 소리치듯 말했을 때 장미는 아랫입술을 물었다가 풀었다.

"나, 당신 배신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다시 홍찬식이 시작했으므로 천상태는 저도 모르게 욕설을 뱉었다.

그리고는 힐끗 옆을 보았지만 등을 보인 채 강한은 움직이지 않았다.

잠든 것 같았다.

그때 스피커에서 이윤경의 목소리가 울렸다.

"오빠, 천천히."

"어, 그래?"

서두르던 홍찬식의 움직임이 늦춰졌다.

"지랄."

천상태가 다시 투덜거렸다.

긴장이 풀린 이윤경은 이제 즐기려는 듯 했다.

처음 이쪽 저쪽을 기웃거리던 이윤경의 시선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바람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천상태였다.

지금 이윤경과 홍찬식은 알몸으로 침대에서 두번째 섹스를 시작하는 중이다.

홍찬식은 이윤경의 부탁대로 엉덩이를 천천히 흔들고 있다.

이윤경은 두 팔로 홍찬식의 목을 감아 안고 있었는데 눈을 감았다.

화질이 선명해서 이윤경의 이맛살이 찌푸려져 있는 것도 다 보였다.

"으으음."

이것은 천상태가 뱉은 신음이다.

다시 힐끗 강한의 등판에 시선을 준 천상태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바지 속으로 손을 집어 넣었다.

"야, 상태야."

강한의 목소리가 텐트 안을 울렸고 질색한 천상태가 손을 빼냈다.

"아, 아, 아."

스피커에서 이윤경의 신음이 울렸다.

"아아, 나 죽어. 오빠."

"좋아?"

헐떡이며 홍찬식이 묻는다.

"응, 너무 좋아."

이윤경이 눈을 감은 채 헐떡이며 말했다.

"오빠, 나 못참겠어."

다시 이윤경이 두 다리로 홍찬식의 하반신을 감아안으면서 소리쳤다.

그때 강한이 몸을 돌려 천상태를 보았다.

텐트 안에는 불을 켜지 않았지만 화면의 빛에 반사된 강한의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내가 이 놈을 잡아놓고 있을테니까 넌 시내로 나가."

긴장한 천상태가 시선을 들었을 때 이윤경이 소리쳤다.

"아앗, 오빠."

그때 홍찬식도 소리쳤다.

"어어억."

그리고는 둘이 부둥켜 안은 채 앓는 소리를 냈다.

강한이 말을 이었다.

"내일이 금요일이니까 증권회사, 은행은 다 근무한다. 내일 중으로 끝내야 해."

"알았어, 형."

힐끗 모니터 화면을 본 천상태가 말을 이었다.

"얼른 일 끝내고 회포 풀어야지. 미치겠어, 정말."

"내일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유기호씨가 도와주겠지만 말이야."

"알았다니까."

그때 스피커에서 홍찬식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 씻고 올게."

그러더니 침대에서 일어난 홍찬식이 벌거벗은 채 욕실로 들어갔다.

"쟤 한테는 얼마 주기로 했지?"

천상태가 알몸을 이쪽에다 정면으로 펼쳐 보이고 있는 이윤경을 보면서 물었다.

팔 다리를 벌린 채 누워있는 이윤경의 자태는 요염했다.

"30퍼센트."

"뭐야?"

놀란 천상태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형, 너무 많잖아?"

"처음이니까 그렇게 주자구. 다음부터는…."

"아니, 그럼."

천상태가 다시 이윤경의 알몸을 노려보았다.

그때 이윤경이 눈을 뜨고 이쪽을 보았으므로 천상태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래서인지 천상태가 더듬거렸다.

"그럼 쟤도 우리 팀에 넣는다는 거야? 장미 보조로?"

"그렇지. 아, 아니…."

애매하게 대답한 강한이 이윤경을 보았다.

이윤경은 아직도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중이다.

"장미 보조가 아니라 대역이 될지 모른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홍찬식은 먼저 옆에 누워있는 이윤경을 보았다.

뺨을 베개에 묻은 채 이윤경은 아직도 깊게 잠이 들어 있었다.

어린애 같은 표정이다.

머리칼이 이마에 흘러내렸고 미끈한 등과 한쪽 엉덩이까지 드러난 알몸을 보자

홍찬식은 어깨를 들었다가 내리면서 깊게 심호흡을 했다.

이윤경의 몸과 반응은 훌륭했다.

더 바랄 것이 없을 정도였다.

이박삼일에 1000만원은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앞으로 이윤경을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는 단골로 만들어 놓을 것이다.

다시 불끈 욕정이 일어났으나 갈증이 급했다. 갈증 때문에 깬 것이다.

벽시계는 오전 8시5분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베란다 쪽 커튼을 내린 방안은 어둑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홍찬식은 알몸 그대로 침실을 나왔다.

그리고는 냉장고 쪽으로 몸을 비틀었다가 힐끗 반대쪽을 보았다.

느낌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어!."

그 순간 홍찬식의 입에서 외마디 외침이 터졌고 몸이 얼어붙었다.

두 사내가 보였기 때문이다.

한 사내는 소파에 앉았고 또 하나는 옆에 서 있었는데 손에 각각 무기를 쥐었다.

"그대로 서 있어."

말은 소파에 앉은 사내가 했다. 젊다. 앉아 있었지만 체격이 크다.

그리고 손에는 총을 쥐었다.

검고 투박하고 길다. 영화에서나 봤던 총이라

실감은 안 났어도 태연한 사내의 표정을 보자 온몸에 한기가 밀려왔다.

"움직이지 마. 인마."

하고 다가서는 사내는 손에 날이 흰 회칼을 쥐었는데 이게 더 끔찍했다.

"누, 누구요?"

겨우 홍찬식이 그렇게 물었지만 물론 발은 떼지 못했다.

몸이 얼어버린 것이다. 그때 다가선 사내가 우악스럽게 어깨를 움켜쥐더니

칼날을 목에 붙였다. 깜짝 놀랄 만큼 칼날이 차가웠으므로 홍찬식은 목을 움츠렸다.

"꿇어앉아."

홍찬식은 꿇어 앉았다.

"머리 숙이고 두 손 뒤로 돌려."

홍찬식은 시키는 대로 했다.

"손 붙여. 시발놈아."

하고 사내가 칼몸으로 등을 두드리는 바람에 홍찬식은 기겁했다.

오줌이 조금 나왔어도 홍찬식은 의식하지 못했다.

그때 사내가 테이프로 뒤로 돌린 손을 재빠르게 묶더니

엉덩이를 치켜들라고 해놓고는 발목도 함께 묶었다.

익숙한 동작이었다.

"자, 일어나."

이번에는 소파에 앉은 사내가 지시했다.

사내는 이제 총을 앞쪽 탁자 위에 내려놓았는데 차분한 표정이다.

"앞에 앉아."

사내가 다시 지시했고 뒤쪽 사내가 등을 밀었으므로 홍찬식은 껑충껑충 뛰어야만 했다.

두 발목이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세 번을 뛰고 나서 네 번째에 앞으로 엎어질 뻔 했다가 겨우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앞에 앉은 사내가 칼잡이에게 지시했다.

"침실로 들어가서 여자 묶어놓고 와."

사내가 몸을 돌리는 칼잡이에게 말을 이었다.

"입에도 테이프 붙여."

칼잡이가 침실로 들어서자 앞쪽 사내가 웃음 띤 얼굴로 홍찬식을 보았다.

"어젯밤에 다섯 번 뛰었는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홍찬식은 침만 삼켰다. 다섯번 뛴 것은 맞다.

머릿속이 복잡해졌으므로 홍찬식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침실에서는 아무 소리가 없다. 칼잡이가 먼저 기절을 시키고 나서 묶는 것 같았다.

그때 사내가 다시 말했다.

"너, 좀 변태더구나. 냄새 맡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많아. 하지만 넌 심해."

그리고는 사내가 입맛까지 다셨다.

"인마, 뒤쪽 냄새 맡는 놈이 어딨어?"

그순간 홍찬식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놈은 다 본 것이다. 집안에 들어와서 들여다 봤단 말인가?

그럼 이놈들이 보는 앞에서 그 짓을 했단 말인가?

그때 방에서 칼잡이가 나왔다.

"다 묶어 놓았습니다."

그날 오후 5시쯤 강한은 홍찬식의 별장을 나왔다.

홍찬식은 현금과 증권 등을 포함해서 85억원을 내놓았는데

하룻밤 외도한 값으로는 세계신기록일지 모른다.

물론 이윤경은 별장에 놔두었지만 오만 정이 떨어진 홍찬식은 보낼 게 분명하다.

천상태는 시내로 심부름을 나갔으므로 강한은 혼자였다.

별장 아래쪽 국도 입구까지 걸어내려 왔을 때 먼지를 일으키며 승용차 한 대가 다가왔다.

천상태가 마중나온 것이다.

강한이 뒷좌석에 오르자 차는 다시 출발했다.

"이윤경은 괜찮겠지요?"

천상태가 백미러에 대고 물었으므로 강한이 손목시계를 보았다.

5시 반이 되어가고 있었다.

"지금쯤 홍찬식을 풀어주고 있을 거다."

그러도록 이윤경에게 말해준 것이다.

침실에 묶여있던 이윤경은 죽을 힘을 다해 테이프를 이로 물어뜯어 풀고는

거실로 나와 홍찬식을 풀어준다.

감동적인 장면이었지만 이미 버스는 떠났다.

창밖을 내다보던 강한이 말을 이었다.

"이윤경이 누군지 안다고 해도 손은 못 대. 내가 이 테이프를 갖고 있는 한 말이야."

홍찬식에게 녹화 필름을 다 돌려줬다고 했지만 강한은 복사판을 갖고 있다.

홍찬식이 거금을 내놓은 것은 필름이 인터넷에 쫙 깔리는 것보다

생명의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테이프 회수는 그 다음이었다.

서울 시내로 돌아온 강한과 천상태가 늦은 저녁식사를 마쳤을 때는 오후 9시경이었다.

한식당의 방에서 숭늉을 마시던 강한은 휴대폰의 진동을 듣고 발신자를 보았다.

모르는 번호였다.

"저예요. 오빠."

이윤경의 목소리가 대뜸 울렸으므로 강한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래, 나왔어?"

"응, 용인 시내야."

이윤경의 목소리도 밝다.

"그 사람은 먼저 차 불러서 떠났어."

"너 혼자 남은 거야?"

"그렇다니까."

그러더니 이윤경이 물었다.

"나, 연기 잘했지?"

"거기서 택시 타고 영등포역에서 내려."

들뜬 이윤경의 분위기를 가라앉히려는 듯 강한이 차분하게 말했다.

"영등포역에서 다시 전화해."

매사 불여튼튼이다.

방심하는 순간에 모든 일이 허사가 된다.

강한이 이윤경과 만났을 때는 밤 11시10분이었다.

이윤경은 영등포에서 신촌까지 갔다가 다시 택시를 갈아타고

인사동 골목의 조그만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

강한과 시선이 마주친 이윤경이 활짝 웃었다.

천상태를 보내고 강한은 혼자 기다렸던 것이다.

5평쯤 되는 찻집 홀 안에는 일본인 손님 한 쌍이 인삼차를 마시고 있을 뿐이다.

"수고했어."

이윤경이 옆자리에 앉았으므로 강한이 팔을 뻗어 어깨를 감싸 안으면서 말했다.

"85억 작업을 했다."

"나도 들었어."

이윤경이 강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더니 길게 숨을 뱉었다.

"오빠, 흥분돼."

"진정해, 이제 다 끝났으니까."

"홍찬식은 정신이 나간 것 같았어.

 차를 불렀는데 기사한테 별장 위치를 알려주지도 않고 끊더라니까."

"그럴 만 하지."

"오빠, 흥분돼."

"글쎄, 진정하라니까."

웃음 띤 얼굴로 강한이 말하자 이윤경이 바짝 몸을 붙였다.

"오빠, 나 하고 싶어."

"뭘?"

했다가 강한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거 왜 그래? 어젯밤 그렇게 해놓고."

그순간 강한이 아차 하는 표정을 본 이윤경이 눈을 흘겼다.

"그래, 즐겼어. 오빠가 보는 줄 아니까 더 흥분이 되더라구,

하지만 오늘 밤은 진짜로 해. 쇼하지 말고 말이야."

천정을 향해 반듯이 누운 장미는 눈앞에 강한의 모습을 떠올렸다.

깊은 밤, 눈을 떴을 때 새벽 2시10분이었으니 지금은 2시반쯤 됐을 것이다.

방안은 어두웠지만 사물의 윤곽은 다 드러났다.

흑백 사진이 더 분명하듯이 옅고 진한 것이 선명했다.

그러나 눈앞의 강한은 얼굴이 뚜렷하지 않았다.

눈과 코, 입술을 차례로 떠올리려고 해봤지만 다 흐렸다.

답답해진 장미는 소리죽여 숨을 뱉었다. 옆에 누운 유진홍은 얼굴을 베개에 묻은 채 잠이 들었다. 저러다 숨을 못 쉬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될 만큼 항상 얼굴을 파묻고 잔다.

유진홍은 어제 보유한 주식을 모두 처분해서 총 2850억원을 만들었다.

그중 1700억원을 어제까지 미국으로 송금했고 나머지는 3,4일 안에 처리할 것이다.

이 사실은 이제 유진홍이 다 말해줬기 때문에 장미도 알고 있다.

장미가 살인혐의로 수배됐지만 아직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것은 백동그룹이 손을 썼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유진홍이 알려줬다.

죽은 조회장의 애정 행각이 보도돼 그룹 이미지에 손상이 갈까 봐 후계자인 자식들이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장미가 체포된다면 실제 범인이 틀림없는 나주댁 윤복주도 잡아들여 재조사를 받아야 한다. 그때 장미의 무죄가 성립된다고 해도 조사와 재판 등으로 백동그룹은 물론이고 장미도

만신창이가 될 것이다.

장미는 다시 가늘게 숨을 뱉었다.

유진홍은 어머니와 동생 장선까지 미국으로 함께 떠나자고 제의했다.

 LA와 플로리다에 각각 저택을 구입해서 철마다 옮겨살자고 했다.

어제 장미한테서 미국 가서 같이 살지 않겠느냐는 말을 들은 어머니와 장선은 둘 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펄쩍 뛰면서 반겼다.

그래서 장미가 떠나는데 지장이 없다고 한발 더 나갔더니 당장에 짐을 꾸릴 것처럼 흥분했다.

어머니나 장선은 장미가 무슨 돈으로 어떻게 미국으로 갈 건지는 묻지도 않았다.

그것이 장미한테는 개운하면서도 가슴이 아팠다.

둘은 장미의 행동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함께 도망쳐서 미국에서 살자고 한다. 미국에 가면 다 풀릴 것이라고 믿는 모양이었고

실제로도 그렇다. 한국 정부에서 장미를 인도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깼어?"

하고 옆에서 유진홍이 물었으므로 장미는 깜짝 놀랐다.

머리를 돌린 장미는 이쪽을 보고있는 유진홍의 시선과 마주쳤다.

어둠 속에서 유진홍의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유진홍이 아직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묻자 장미가 이번에는 소리내어 숨을 뱉었다.

"떠나는 생각."

"어머니하고 동생이 반긴다면 다 된거야. 망설이지 마."

유진홍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한테 효도 좀 하라구. 호강 좀 시켜드리란 말이야."

"다 좋아하지만…."

"그럼 강한이만 남았나?"

유진홍이 자연스럽게 물었지만 장미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렇다. 강한이 걸린다.

이제 그와는 돈 문제가 아니다. 인연관계가 끊기느냐 마느냐다.

그때 유진홍의 말이 이어졌다.

"그 친구를 미국으로 불러도 돼. 미국에선 언제든지 만나도 좋아."

"……."

"이렇게 살 수는 없어. 나도 그렇지만 장미도 말이야.

남자 상대로 작전 벌이는 것도 한계가 있어야 하는 거야. 목표는 말할 것도 없고."

"……."

"지나치면 중독돼. 병이 된다구.

장미같은 여자가 이런 일에 빠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만"

장미가 손을 뻗쳐 유진홍의 입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그만 해요. 당신을 따를게."

그때 유진홍이 장미의 손바닥에 입술을 붙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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