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생존자 (4)
유진홍이 침대로 올라왔을 때 장미는 눈을 감았다.
두 팔을 내린 채 반듯이 누워 있었는데 물론 알몸이다.
시트를 들친 유진홍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를 냈으므로 장미는 어금니를 물었다.
알몸을 보고 두 눈을 치켜뜬 표정이 보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으음, 정말 멋진 몸이야."
유진홍이 신음처럼 말했다.
가슴에 품고 있기에는 너무 벅찼기 때문일 것이다.
"무서워요."
장미가 눈을 감은 채 입술만 달싹이며 말했다.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그렇게 말을 뱉은 순간 장미는 얼굴 피부가 가죽처럼 뻣뻣해지는 것 같았다.
오그라드는 것 같기도 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뻔뻔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유진홍은 또다시 감동을 먹은 것 같았다.
"알았어. 걱정마."
유진홍이 부드럽게 말하고는 재채기를 했다.
장미의 배에다 침까지 튀기면서 재채기를 세 번이나 하고난 유진홍이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몸 위에 올랐다.
"저기, 다리를…."
꼭 붙여진 장미의 다리를 벌리면서 유진홍이 말했다.
"내가 살살할 테니까."
"난 할 줄 모르는데 어떻게 하죠?"
"그, 그냥 있으면 돼.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벌써부터 가쁜 숨을 뱉으면서 유진홍이 이제는 장미의 허벅지 위에 타고 앉았다.
"자, 그럼."
인사를 하는 것처럼 중얼거린 유진홍이 연장을 장미의 샘 끝에 댔다.
"무서워."
장미가 허리를 비틀면서 말했으므로 막 집어 넣으려던 유진홍이 당황했다.
"가, 가만 있어."
그러자 그때까지 눈을 감고있던 장미가 삼분의 일만 뜨고 유진홍을 보았다.
유진홍은 제 물건을 잡고 정신없이 겨누는 중이었다.
그때 유진홍이 안으로 진입해왔다.
"아앗!"
장미가 날카로운 고함을 지르면서 팔을 뻗어 유진홍의 어깨를 움켜 쥐었다.
"아앗! 아파."
유진홍의 물건이 깊게 진입한 순간 장미가 아랫배에 힘을 주면서 다시 외쳤다.
그 순간이었다.
"어어어어."
눈을 치켜든 유진홍이 입을 딱 벌리면서 긴 신음을 뱉었다.
"아유, 아파."
하고 장미가 다시 허리를 비틀면서 다리 사이에 힘을 준 순간이다.
"아이고."
유진홍이 폭발했다.
힘껏 분출한 유진홍이 학질에라도 걸린 것처럼 몸을 떨더니
장미의 몸 위로 털썩 엎어졌다.
"아, 이, 이런…."
헐떡이며 유진홍이 신음했다.
"내가 어, 어떻게…."
"아유, 아파."
하고 장미가 유진홍의 어깨를 움켜 쥐었다.
"그만해요. 그만."
이 말은 유진홍에게 복음이나 마찬가지로 들렸을 것이다.
가쁜 숨을 뱉기만 하던 유진홍이 그 말에 힘을 얻은듯이 상체를 세웠다.
그리고는 이미 시들어가는 물건을 빼내더니 옆으로 몸을 굴렸다.
"아유, 아파."
장미가 상체를 일으키며 말했다.
그리고는 베개 밑에 숨겨둔 작은 비닐백을 집어서 엉덩이 밑에다 꼭지를 비틀어 터뜨렸다.
그러자 안에 담긴 피가 침대에 스며들었다.
"나, 씻고 올게요."
몸을 일으킨 장미는 겨우 발을 떼는 시늉을 하고는 욕실로 들어섰다.
뒷모습을 유진홍이 보고 있을 것이었다.
욕실로 들어선 장미는 먼저 변기에다 비닐봉지를 넣고 물을 버렸다.
비닐봉지가 씻겨 내려간 것을 확인한 장미는 샤워기의 물을 틀었다.
지금쯤 유진홍은 침대시트의 피를 보았을 것이다.
PC방 안으로 들어선 장세희는 곧 안쪽에 앉아있는 김동훈을 보았다.
입구에 시선을 주고있던 김동훈도 장세희를 향해 손을 들었다.
PC방 안은 넓고 깨끗했는데 손님이 서너명 뿐이어서 조용했다.
오후 2시였다.
식곤증이 일어난 주인이 카운터에서 잠들었다가 장세희의 얼굴을 보더니 다시 엎드렸다.
그때 김동훈이 손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했다.
"미안해, 자기야."
옆 의자에 앉은 장세희가 사과부터 했다.
울상을 지어보인 장세희가 말을 이었다.
"큰아빠가 전화도 못받게 해. 정말 미치겠어."
김동훈이 눈만 껌벅였으므로 장세희는 말을 이었다.
"자기야, 미안해. 응? 쪼금만 참아. 우리 큰아빠가 미국 갈 때까지."
지금 장세희는 미국에서 잠시 귀국한 큰아빠의 비서가 되어서 지방 땅을 보러다니는 중이었다.
그래서 두달 전부터 김동훈을 만나 데이트할 시간도 없는 것이다.
물론 거짓말이다.
오늘도 PC방 옆의 피부 클리닉에서 마사지를 받는다는 핑계를 대고 살짝 빠져나와 김동훈을
만나고 있다.
장세희를 여기까지 데려온 경호원 셋은 지금 건물 앞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곳을 밀회 장소로 정한 것은 물론 장세희였는데 두번째 만났던 열흘쯤 전에
PC방 사장한테 방값을 냈기 때문이다.
"방 빌렸어?"
장세희가 묻자 김동훈이 잠자코 자리에서 일어섰다.
1m90 가까운 키에 날씬한 몸매는 주위의 시선을 끌만 했다.
그러나 무명 모델로 6년째 빈둥대는 중이었는데
본인의 말에 의하면 돈도 빽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앞장 선 김동훈이 안쪽 문을 열고 들어가 방안의 전등을 켰다.
따라 들어선 장세희가 재킷을 벗으면서 말했다.
"문 잠궈."
그리고는 스커트 지퍼를 내리면서 말을 이었다.
"오늘은 좀 일찍 끝내야 돼, 자기야. 3시 반까지 들어간다고 했거든."
그때 머리를 돌린 장세희가 기겁을 했다.
방안에 사내 하나가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사내는 김동훈과 나란히 서있었는데 키는 좀 작았지만 체격이 컸다.
어깨는 두배쯤 되는 것 같았다.
"누, 누구야?"
하고 장세희가 사내와 김동훈을 번갈아 보면서 물었다.
"잠깐 앉아서 이야기 합시다."
사내가 입을 열었고 김동훈이 거들었다.
"앉아. 잠깐이면 돼."
"누군데?"
옆쪽 침대에 앉으면서 장세희가 불안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때 사내가 말했다.
"김동훈씨한테 내가 대충 이야기 했어요.
그러니까 용건만 말하겠습니다."
그러더니 사내가 정색하고 장세희를 보았다.
"장세희씨, 최광규한테서 한달에 얼마 받습니까?"
놀란 장세희의 얼굴이 하얗게 굳었다.
그때 사내가 말을 이었다.
"김동훈씨는 다 이해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장세희씨는 그렇게 지내다가 최광규한테 실컷 이용만 당하고 버려지게 될 겁니다.
물론 같이 있는 동안 용돈쯤은 받겠지만요."
장세희가 어금니를 물고는 사내를 보았다.
아직 김동훈을 바라볼 용기는 나지 않는다.
사내가 똑바로 장세희를 보았다.
"내가 제의를 하지요.
그건 장세희씨와 김동훈씨 두 분을 위해서.
그리고 이 사회에서 기생충같은 사내를 제거한다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는 사내의 목소리가 굵어졌다.
"내가 30억을 드리지요.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장세희씨가 몇초만 일해주면 되는 겁니다.
최광규한테서는 그 십분의 일도 나오지 않겠지요."
최광규한테서 장세희는 월 500만원을 받아왔다.
밤 11시반이었다.
침대에 반듯이 누운 장미는 천정을 바라본 채 움직이지 않았다.
닫았던 커튼을 걷었지만 방의 불을 꺼놓았기 때문에 방안은 어두웠다.
그러나 눈이 어둠에 익숙해져서 사물의 윤곽은 다 드러났다.
밖의 정원과 그 건너편 골짜기까지 짙고 옅은 구분만 있을 뿐이다.
옆에 비스듬히 누운 유진홍은 고른 숨소리를 내며 깊게 잠이 들어 있었다.
첫번째 섹스를 3초도 안돼 끝낸 유진홍은 마치 실성한 것 같았다.
장미가 씻고 돌아왔을 때 불문곡직하고 끌어안더니 다시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두번째 섹스 역시 10초도 못 가 끝나버렸다.
유진홍은 아직 젊은 나이였지만 정력을 탕진해온 것이 드러났다.
눈이 뒤집힌 유진홍이 세번째를 시작하려고 기를 썼지만 두시간쯤 지난 후에야
겨우 발동이 걸렸다.
그러나 아깝게 세웠던 연장도 장미의 샘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죽어버렸다.
"나, 너같은 여자 처음이야."
그때 유진홍이 장미의 몸 위에 엎어진 채 헐떡이며 말했다.
"이런 몸은 처음 만났어."
이른바 '명기'를 처음 경험했다는 뜻이었다.
그 뒤 유진홍은 장미를 또 끌어안고 두시간이 넘도록 애무했지만
연장은 더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유진홍은 대만족이었다.
장미가 침실에서 나왔을 때 유진홍은 피에 젖은 시트를 벗겨내고
타월로 침대 바닥을 깔아 놓았다.
장미한테 뭐라고 말은 안했지만 얼굴 가득히 만족감이 덮여있었다.
장미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가운을 알몸 위에 걸친 장미는 베란다로 다가가 유리문을 열었다.
그러자 서늘한 밤 공기가 피부를 감싸안으면서 비리고 매운 듯한 숲 냄새가 풍겨왔다.
앞쪽 골짜기에서 울리는 소음도 그때서야 귀에 들렸다.
뒤쪽 유리문을 닫은 장미는 베란다에 놓인 나무 벤치에 앉았다.
곧 피부에 찬 공기가 닿으면서 추워졌지만 장미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유진홍은 잠이 들기 전에 계약을 변경하자고 했다.
3박4일 10억원에서 일주일로 시간을 늘이는 대신 20억원을 내겠다는 것이다.
장미가 대답하지 않자 유진홍은 더 내겠다고 했다.
20억원에서 더 주겠다는 말이었다.
베란다 문이 안에서 열렸으므로 장미는 머리를 들었다.
유진홍이 두꺼운 이불을 안아들고 밖으로 나오더니 장미의 몸을 감싸주었다.
"고마워요."
장미가 말하자 유진홍이 옆에 앉았다.
유진홍도 이불을 몸에 감고 있다.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어."
앞을 바라본 채 유진홍이 말했다. 금방 잠에서 깬 사람같지 않게 목소리가 맑았다.
"난 섹스가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었고, 어떤 때는 삶의 목적이기도 했어."
그리고는 유진홍이 힘없이 웃었다.
"그렇다고 섹스를 잘 한 건 아냐. 그건 나도 알아. 좋아했을 뿐이지."
유진홍이 머리를 돌려 장미를 보았다.
"그런 나한테 섹스가 얼마나 황홀하고 또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알려준 사람이 바로 장미야."
장미의 시선을 받은 유진홍이 말을 이었다.
"알아?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장미 몸은 특별해. 이른바 명기야."
"……."
"난 천하 명기인 장미의 몸을 맨 처음에 갖는 행운아가 됐지."
"……."
"그래서 말인데."
유진홍이 정색하고 말을 이었다.
"장미, 나하고 같이 지내면 안될까?
내 말은 계약 동거가 아니라 장미가 원한다면 결혼을…."
침을 삼킨 유진홍의 말이 열기를 띄기 시작했다.
"돈은 아무 것도 아냐. 내 재산은 모두 장미한테 넘겨준다는 유서를 만들어서 공증을 받아주지.
아니, 미리 내 재산 반을 넘겨줄 수도 있어. 내 아내가 돼준다면 말이야."
"뭐라구?"
이맛살을 찌푸린 강한이 전화기를 고쳐쥐었다.
서해안 고속도로는 한산했으므로 천상태는 차에 속력을 냈다가 가속기에서 발을 뗐다.
오전 10시 반, 강한은 지금 안면도로 가는 중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작전을 보류하자니?"
강한이 묻자 장미의 목소리가 울렸다.
"글쎄 내 말대로 해, 상황이 달라졌으니까 말이야."
"상황이 달라지다니? 어느 쪽이 달라졌단 말이야?"
"저쪽."
"유진홍이?"
"그래."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입맛을 다신 강한이 다시 물었다.
"돈을 더 내겠다는 거야? 그래서 놔두자고?"
"나하고 결혼하재."
"뭐?"
흘려들었던 강한이 휴대폰을 고쳐쥐었다.
"너한테 결혼하자고 했단 말이야?"
소리치듯 되물었을 때 천상태가 속력을 더 줄이더니 백미러를 보았다.
"그래."
장미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결혼하면 나한테 재산 반을 넘겨준다고 했어.
주식을 양도해주겠다는 거야.
그리고 유언장도 작성해서 공증까지 받아준다고 했어.
재산을 다 나한테 넘긴다고 말이야."
"……."
"듣고 있니?"
"그래."
"그러니까 작전 보류해."
"……."
"알았어?"
장미가 다짐하듯 물었을 때 강한이 심호흡부터 했다,
"너, 어쩌려고 그러는 거야?"
강한이 묻자 전화기에서 피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쩌자니?"
"정말 그놈하고 결혼 할거야?"
"전처는 이혼하면서 300억을 챙겼다고 했지? 나한테는 당장 반을 준다는데 뭐."
"……."
"그러니까 우리 첫 계획보다 몇배나 남는 작전이란 말이야."
"그래서 그놈하고 결혼하겠다는 거야?"
그러자 다시 백미러를 보았던 천상태가 하마터면 앞차를 들이받을뻔 했다.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던 천상태가 또 백미러를 보면서 말했다.
"미안합니다, 형님."
천상태에게 눈을 부릅 떠보인 강한이 휴대폰을 고쳐쥐었을 때 장미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래, 결혼할거야."
"승낙했어?"
"했어."
"잘했다."
쓴웃음을 지은 강한이 잇사이로 말했다.
이제는 속력을 잔뜩 줄인 천상태가 3차선으로 달리면서 귀만 세우고 있다.
"떠들썩하게 결혼식을 하다가 식장에서 경찰에 끌려 가겠군. 해외토픽에도 나오겠다."
"여기 별장으로 양쪽 가족하고 친지 스무명씩만 초대해서 식을 올리기로 했어.
내 제의에 이 사람은 대환영이야. 자기하고 생각이 같다고."
"벌써 식장하고 초대 손님까지 결정했단 말이지?"
"그사람 지금 내 앞으로 주식 이전하는거 알아보려고 나갔어."
"……."
"갖고있는 주식의 반인데 그게 얼만지 알아? 1500억이나 돼. 1500억."
"……."
"돈 욕심이 없는 사람이야. 참 순수해."
"얼씨구."
"내가 숫처녀고 자기한테 첫몸을 바친 것으로 믿어.
그리고 내 그게 천하 명기라는 거야.
자기는 행운아고."
그때 강한이 휴대폰의 덮개를 닫더니 천상태의 뒷통수에 대고 말했다.
"뭐해? 이 병신아. 돌아가자, 돌아가."
현관으로 들어선 최광규한테서 술냄새가 풍겨왔다.
눈의 흰자위는 붉게 충혈돼 있었고, 물기를 품은 눈동자는 번들거렸다.
그러나 컨디션이 나쁜 것 같지는 않았다.
"어, 오늘은 여고생이다."
응접실에 선 최광규가 소리치듯 말했다.
"세일러복 있지? 그거 입어."
저고리를 벗어 던지면서 최광규가 말을 이었다.
"흰 양말 신고, 알았어?"
"알았어요."
다소곳이 대답한 장세희가 방바닥에서 저고리를 집어들었다.
"먼저 씻으세요."
"씻고 나올 동안 준비해."
그러더니 바지를 벗다가 생각난 듯 말했다.
"난 선생님이다. 명심해."
"네, 선생님."
그렇게 되면 선생님이 학생하고 자는 셈이 된다.
바지를 벗은 최광규가 바로 앞에 서 있는 장세희에게 건네주었다.
"팬티는 흰색."
"네, 선생님."
"넌 오늘 선생님한테 당하는 거야."
"네, 선생님."
"오늘 처음 하는 거고."
"네, 선생님."
"너무 튕기지 마. 두어 번 튕기고 나서 시키는 대로 하란 말이야."
"알았어요. 선생님."
장세희는 최광규의 두 눈이 점점 더 강하게 번들거리는 것을 보았다.
팬티 차림이 된 최광규의 사타구니가 불룩 솟아올라 있었다.
"아프다고 발버둥을 쳐, 알았어?"
"네, 선생님."
장세희가 고분고분 대답하자 최광규는 만족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최광규가 욕실 안으로 사라졌을 때 장세희는 어깨를 늘어뜨리며 길게 숨을 뱉었다.
그리고 옷장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그러자 안에 걸린 수십 벌의 제복이 드러났다.
간호사복, 항공사 승무원복, 경찰 제복에다 군복까지 있다.
백화점 점원 가운이나 미용실 가운은 기본이고 구석에 걸려있는 승복을 입었을 때는
밤새도록 머리가 보이지 않게 수건으로 두르고 있어야 했다.
최광규가 욕실에서 나왔을 때는 10분쯤 후였다.
마음이 급했는지 몸의 물기도 덜 닦은 채 나온 최광규가 장세희를 보더니
만족한 듯 입술 끝을 올리며 웃었다.
"으음, 그럴듯하다."
최광규는 가운도 걸치지 않은 알몸이어서 부풀어 오르는 사타구니의 물건이 정면으로 드러났다.
"너, 몇학년 몇반이라고?"
침대 끝에 걸터앉은 최광규가 정색하고 물었다.
최광규의 시선을 받은 장세희가 방바닥을 내려다 보면서 대답했다.
"네, 2학년 3반입니다. 선생님."
만일 이때 웃기라도 한다면 최광규한테 귀싸대기를 맞는다.
지난달 머리에 수건을 쓰고 여승행세를 했을 때 웃었다가 발길로 배를 채였다.
머리를 끄덕인 최광규가 장세희의 위아래를 정색하고 훑어 보았다.
"너, 선생님이 왜 오라고 한지 알아?"
최광규가 엄숙한 표정으로 묻자 정세희는 어깨를 움츠렸다.
"모릅니다. 선생님."
여전히 최광규의 표정이 근엄했으므로 장세희는 웃지 못했다.
웃었다가는 얻어맞은 다음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어때? 한번 줄래?"
"무서워요, 선생님."
겁이 난 표정으로 장세희가 말했을 때 최광규가 다가와 어깨를 움켜쥐었다.
이미 곤두선 물건은 건들거리고 있다.
"벗어라, 그럼 혼내지 않을 테니까."
"선생님, 무서워요."
"벗어."
두어 번만 튕기라는 주의를 받았으므로 장세희는 먼저 상의를 벗었다.
앞에 서 있던 최광규가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키더니 탁자로 다가가 물병을 쥐었다.
그리고는 물병을 입에 붙이면서 말했다.
"다, 벗어. 홀랑."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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