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생존자 (5)
벌컥 생수를 마시고 난 최광규가 손등으로 입을 닦았다.
물을 마시는 동안에도 시선은 장세희한테서 떼지 않는다.
스커트를 내린 장세희는 흰 팬티에 브래지어 그리고 흰 양말 차림이 됐다.
"으음."
입안으로 신음을 뱉은 최광규가 말했다.
"브래지어를 벗어."
"네, 선생님."
장세희는 브래지어를 풀어 방바닥에 떨어뜨렸다.
이제는 장세희도 최광규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입안의 침을 삼킨 최광규가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팬티."
"네, 선생님."
흰색 팬티가 벗겨지고 장세희는 양말만 신은 알몸이 되었다.
알맞게 솟은 젖가슴, 엉덩이는 단단했으며 허벅지는 야생 사슴을 연상시킬 만큼 탄력 있게 보였다. 이윽고 아랫배 밑의 검은 숲과 붉은 골짜기에 최광규의 시선이 닿았다.
그 순간 최광규가 머리를 흔들었으므로 장세희는 긴장했다.
"선생님."
장세희가 최광규를 불렀다.
"저, 어떻게 해요?"
그때 다시 최광규가 머리를 흔들더니 이번에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침대에 누워."
갈라진 목소리로 말한 최광규가 한걸음 발을 뗐다가 헛디딘 것처럼 앞으로 엎어졌다.
그러나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로 침대를 잡아 넘어지는 것은 면했다.
"선생님."
다시 장세희가 불렀을 때 최광규는 또 머리를 흔들더니 이번에는 옆으로 쓰러졌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장세희가 한발짝 다가서며 묻자 최광규가 잇사이로 말했다.
"가만있어, 넌."
"저, 침대에 누워 있어요?"
"응…, 아니."
엎드린 최광규가 일어나려는 듯이 손을 휘젓다가 탁자 다리를 움켜쥐고 상반신을 겨우 세웠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장세희가 이번에는 침대에 앉아 물었다.
"제가 일으켜 드려요?"
"아니…, 응, 그래."
대답한 최광규가 다시 엎어지더니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는 입가로 침을 질질 흘리면서 앓는 소리를 냈다.
두 눈의 초점은 흐려져 있었는데 영락없이 죽은 물고기 눈이었다.
"선생님."
이제 장세희의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
그러나 최광규는 입을 벌린 채 가쁜 숨만 뱉을 뿐 움직이지 않는다.
몸을 일으켜 장세희는 차분한 동작으로 팬티와 브래지어를 다시 입었다.
그리고는 세일러복을 들고가 옷장에 걸어놓고는 평상복을 꺼내 입었다.
최광규는 머리를 모로 눕고 엎드린 채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탁자로 다가간 장세희는 물병을 들고 개수대로 가져가 비웠다.
그리고는 수돗물로 몇 번이나 물병을 씻은 다음에 제자리에 놓았다.
손의 물기를 닦으며 최광규에게로 다가간 장세희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내려다보았다.
최광규의 숨소리는 더 약해져서 잠이 든 것 같기도 했다.
그때 장세희가 말했다.
"선생님, 약 드셨거든요?"
최광규의 입에서는 아직도 침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 약은 마약이래요.
그만큼 먹으면 10분쯤 후에는 돌아가신다네요."
침대에 걸터앉은 장세희가 말을 이었다.
"네 모금 드셨죠?
세 모금이면 소도 죽는다고 했는데 선생님은 한 모금 더 드셨어요.
큰일 났네요.
선생님은 마약과용으로 돌아가신 거예요."
머리를 든 장세희가 벽시계를 보았다.
밤 11시 반이다.
"이대로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기를 기다렸다가
위층에 있는 선생님 쫄따구들한테 연락을 해야겠죠.
선생님이 이상하다고."
침대에 두 다리를 뻗고 기대앉은 장세희가 리모컨으로 TV를 켰다.
"그럼 걔들이 알아서 처리해 주겠죠."
"그것참."
입맛을 다신 문병호 형사가 앞에 앉은 강한을 보았다.
강남 경찰서 구내식당 안이다.
오후 4시여서 식당 안에는 구석에서 커피를 마시는 민원실 소속 여순경 둘만 있었다.
"천하의 최광규가 그렇게 죽을 줄 누가 알았어? 하긴 인과응보이고 자업자득이지."
문병호의 표정이 엄숙해졌다.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내려놓은 문병호가 강한을 보았다.
"정부 노릇을 해온 장세희란 애는 모델학원 출신인데 놀라서 울기만 하더구만.
겨우 조서 받아서 돌려보냈어. 스물 두살 짜리가 뭘 알겠어?
한탕 뛰고 나서 잠이 들었다가 최광규가 마약 먹고 죽어 자빠진 걸 보고는 시껍한 모양이야."
처음에는 조근조근 설명하던 문병호의 목소리가 차츰 높아졌다.
문병호는 인사차 찾아온 강한에게 어젯밤에 마약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최광규 이야기를 해주는 중이다.
"사망 시각은 밤 12시쯤인데 신고는 한시 쯤 했어.
장세희가 놀라 112 신고를 하고 나서 위층에 있는 부하 놈들한테 연락했는데,
만일 112 신고를 안 했다면 부하 놈들은 틀림없이 마약 처먹은 걸 숨겼을 거야."
문병호가 손까지 흔들면서 말을 이었다.
"112 구급대는 대번에 사인이 마약 과다복용인 걸 알고 우리한테 알린 거야.
마약반하고 곧장 출동한 우리는 집안에 숨겨둔 히로뽕과 헤로인을 2백g이나 찾아냈어."
"……."
"참 허무하구만, 그 새끼. 그 많은 재산을 남겨두고 졸지에 뒤져 버리다니 말이야. 시원섭섭해."
그러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강한을 보았다.
"자네도 그렇겠다. 안 그래?"
"하긴 그렇습니다."
입맛을 다신 강한이 쓴웃음을 지었다.
"시원섭섭하고 허무하기도 합니다."
"인과응보, 자업자득, 내 문자가 맞지?"
"그것도 맞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강한이 문병호를 향해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다시 뵙겠습니다. 문형사님."
"응, 그래."
문병호는 죽은 박용수의 동료다.
박용수는 최광규가 보낸 해결사한테 뺑소니 사고를 당해 죽었지만 증거가 없다.
심증만 있을 뿐이다.
강한의 손을 잡은 문병호가 정색하고 말했다.
"박용수 영혼이 있다면 한이 풀렸을 거야."
경찰서 안 주차장에는 천상태가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강한이 뒷좌석에 오르자 잠자코 차를 발진시켰다.
차가 대로에 나왔을 때 천상태가 앞을 향한 채 말했다.
"김마담이 형님을 장미 사촌오빠로 하객 명단에 올렸다는데요."
"……."
"장미 외삼촌의 아들입니다."
"……."
"장미 아버지하고 작은아버지는 대역을 쓴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천상태가 백미러를 보았다.
"저는 장미 작은아버지 아들이 되었습니다. 형님하고는 사돈 간이지요."
정색한 천상태의 표정을 본 강한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늙은 년이나 젊은 년이나 사기질에 열심이구만."
"장미가 김마담한테 한몫 주겠다고 했겠지요.
그러니까 이렇게 정신없이 달려드는 거 아닙니까?"
"……."
"그나저나 결혼식이 사흘 후인데 참 내, 이런 벼락치기 결혼은 첨 봅니다."
유진홍은 이미 장미에게 주식 양도 수속을 다 끝냈다.
결혼 신고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때 강한의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을 꺼내 본 강한이 심호흡을 하고는 귀에 붙였다.
장미의 전화다.
강한이 응답했을 때 장미가 대뜸 말했다.
"넌 내 결혼식에 오지 마, 불편해."
벨을 누르고 3초쯤 지났을 때 문이 열리더니 양민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셨어요?"
환하게 웃는 얼굴로 강한을 맞는다.
강한이 들고온 과일 바구니를 양민정에게 넘겨주었다.
"이런 건 들고 오시지 않아도 되는데."
바구니를 받으면서 양민정이 다시 수줍게 웃었다.
아파트 안으로 들어선 강한도 얼굴을 펴고 웃었다.
"마치 신혼부부가 사는 집 같다."
30평형 아파트는 깨끗하고 밝았다.
진주색과 연분홍빛 벽지로 장식된데다 가구는 모두 2인용이다.
소파도 2인용, 베란다의 의자도 두 개,
벽에 붙여진 한 쌍의 인형까지 보고 나서 강한은 다시 웃었다.
상도동의 이 아파트는 이제 양민정의 소유였다.
강한이 사서 명의이전까지 해줬다.
거기에다 양민정은 연봉 6000만원에 중형 승용차도 받았다.
소파에 앉은 강한의 앞에 양민정이 주스 잔을 내려놓았다.
미리 온다고 연락을 한 터라 양민정의 태도는 자연스러웠다.
강한이 벽시계를 보는 시늉을 하고 나서 물었다.
"오늘 밤 여기서 자고 가도 되니?"
"그럼요."
금방 눈 밑이 붉어진 양민정이 시선을 내린 채 대답했다.
그것을 본 강한이 장난기가 일어났다.
"자고 있는데 갑자기 어느 놈이 문 열고 들어오는 건 아니지?"
"농담하지 마세요."
양민정이 붉어진 얼굴로 눈을 흘겼다.
"전 그렇게 간이 큰 여자가 못돼요."
"간 큰 여자가 연애 잘하나?"
"씻으세요."
주방으로 다가가면서 양민정이 말했다.
"그동안 술상 차릴게요."
"누가 술 마신댔어?"
밤 10시 반이다.
장미의 전화를 받고 나서 곧장 차를 돌려 영등포 로터리 근처의 식당에서
천상태하고 소주를 마신 다음 택시를 타고 이곳에 온 것이다.
그래서 강한의 얼굴에는 술기운이 조금 배어 있기는 했다.
"바로 잘 거야."
자리에서 일어선 강한이 저고리를 벗으면서 말했다.
"너하고 섹스하고 싶어서 왔어."
양민정이 외면한 채 가만있었으므로 강한의 가슴이 거칠게 뛰었다.
양민정에게 상처를 주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몸을 돌린 강한은 심호흡을 하고 나서 욕실을 향해 발을 뗐다.
그쯤은 인내할 수 있다.
욕실 안으로 들어선 강한은 욕조에 물이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
양민정이 준비해놓은 것이다.
욕조에 몸을 담근 강한은 머리를 눕히고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가슴이 편안해지면서 머리가 맑아졌다.
장미는 유진홍과 결혼해서 거금을 챙길 것이다.
1500억원이면 강한이 평생의 목표로 삼고 있는 실버타운을 건설하고도 남는 금액이다.
그러나 강한은 그 사실에 조금도 감동을 받고 있지 않는 자신을 발견했다.
장미로부터 결혼식장에 오지 말라는 연락을 받고 나서 그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재물의 다소에 일희일비 하지 않았다.
재물에 대한 욕심도 크게 없었던 것 같다.
그저 가능한 한 많이 모아서 많이 베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때 욕실 문이 열리는 기척이 들렸으므로 강한은 눈을 떴다.
비키니 수영복 차림의 양민정이 들어서고 있었다.
붉은색 바탕에 흰 꽃무늬가 프린트된 비키니여서 욕실 안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강한의 얼굴에 저절로 웃음이 떠올랐다.
"비누칠 해드릴게요."
여전히 외면한 채인 양민정의 얼굴은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강한의 무거운 분위기를 느낀 것이 분명했다.
"이리 와."
강한이 부르자 양민정이 다가와 욕조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강한은 팔을 뻗어 양민정의 허리를 당겨 안았다.
그리고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 웃기는 옷을 벗고 욕조에 들어오지 않을래?"
강한이 양민정의 젖가슴을 가린 수영복 끈을 쥐었다.
"벗겨줄까?"
"내가 벗을게요."
몸을 비튼 양민정이 금방 가슴을 가린 수영복을 풀자
눌려져 있던 젖가슴이 용수철처럼 솟아올랐다.
"금방 벗을 걸 왜 입고 왔어?"
다시 수영복 팬티 끝 부분을 쥔 강한이 투덜대자 양민정이 눈을 흘겼다.
"그럼 벗고 들어와요?"
"그게 어때서?"
그러면서 팬티를 끌어내리자 양민정이 다리를 들어 올려 주었다.
"들어와."
알몸이 된 양민정의 허리를 당기면서 강한이 말했다.
그 순간 장미의 모습이 떠올랐고 지금쯤 유진홍과 비슷한 장면을
연출할 거라는 생각으로 이어지자 강한은 어금니를 물었다.
양민정을 끌어들여 다리 위에 앉혔을 때 욕조의 물이 넘쳐 흘렀다.
강한이 엉덩이를 건드리는 바람에 양민정은 허리를 비틀었다.
강한이 뒤에서 양민정의 허리를 두 팔로 감아 안았다.
"실버타운을 두 배 정도 확장할 거야."
불쑥 강한이 말했으므로 양민정은 몇 초쯤 지나서야 알아들은 듯 머리를 조금 돌렸다.
그러나 바짝 붙어 앉아서 강한의 얼굴은 볼 수가 없다.
양민정의 허리를 당겨 안은 강한이 말을 이었다.
"총 예산 600억 정도, 옆쪽 임야 10만 평쯤을 더 매입할 수 있겠어.
건물도 세 동쯤 더 짓고, 부대시설도 늘리고."
"자금이 그렇게…."
겨우 입을 연 양민정이 입안의 침을 삼키고는 말을 이었다.
"준비가 돼요?"
"그래, 내일 오소장님한테도 이야기할 거야."
"600억이라…."
혼잣소리처럼 말한 양민정이 몸을 비틀었다.
강한의 손이 그녀를 더듬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잡혀 있는 처지여서 곧 강한에게 몸을 맡겼다.
"이제 그만."
가쁜 숨을 뱉으면서 양민정이 말했다.
"여기서는 그만 해요. 응?"
하고 양민정이 몸을 비틀었다.
강한이 깊숙하게 그녀를 눌렀다.
욕실 안에는 잠시 양민정의 가쁜 숨소리와 몸이 부딪치면서 찰랑거리는 물소리만 들렸다.
이윽고 양민정이 신음했다.
"아아, 빨리."
양민정이 손을 뒤로 뻗쳐 강한의 머리를 감아 당겼다.
"어서."
몸을 와락 비튼 양민정이 강한의 목을 감아 안는 바람에 물이 튀었다.
양민정의 몸이 반쯤 돌려졌다.
양민정은 서둘러 강한을 세게 끌어 안았다.
"아아."
머리를 뒤로 젖힌 양민정의 입에서 높은 탄성이 터졌다.
양민정은 강한의 몸 위에 쪼그리고 앉은 자세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욕조의 물이 철벅거렸고 방울이 튀어 올라 둘의 얼굴을 적셨다.
양민정은 솟아오르고 있었다.
쉴 새 없이 거친 호흡과 함께 신음을 뱉으면서도 몸을 부딪쳤다.
"아아악."
마침내 양민정이 폭발했다.
온몸을 오그라뜨린 양민정이 절규하듯 외치더니 강한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강한은 양민정의 몸을 감싸 안고는 길게 숨을 뱉었다.
양민정이 긴 신음을 내지르면서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절정의 여운이 덮쳐온 것이다.
강한이 머리를 숙여 양민정의 귀에 대고 말했다.
"자, 일어나. 이제는 침대에서."
가늘게 앓는 소리를 뱉던 양민정이 잠깐 소리를 죽였다가 다시 거친 숨과 함께 신음했다.
강한이 양민정의 허리를 손으로 받쳐 올렸다.
"어서, 난 아직 안했어."
그 순간 양민정이 상체를 펴고 강한의 입술에 키스했다.
"당신을 사랑해요."
응접실로 들어선 천상태가 쥐고 있던 가방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잘 끝냈어."
말은 가볍게 했지만 천상태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앞쪽에 앉은 천상태가 턱으로 가방을 가리켰다.
"6개월짜리 양도성예금증서야, 5억에서 10억짜리로 모두 500억이 들어 있어."
천상태가 외면한 채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당분간 연락하지 말래."
지금 천상태는 장미의 결혼식에 다녀온 길이었다.
장미는 천상태에게 유진홍한테서 받은 돈을 건네준 것이다.
"대역들이 연기를 잘 하더구만. 장미 아버지 역할을 한 놈은 질질 짜기까지 했어."
"……."
"내가 식 끝나고 그놈한테 가서 도대체 얼마 받고 우는 연기까지 했느냐고 물었더니
150 받았다는구만."
"……."
"그 시불놈이 나한테는 얼마 받았느냐고 묻길래 욕만 바가지로 해줬지."
"근데 500억밖에 안돼? 나머지 돈은 아직 안받은 거야?"
불쑥 강한이 묻자 천상태가 머리를 들고 처음으로 강한을 보았다.
"그건 안물어 봤어, 형."
"나머지는 그 기집애가 갖겠다는 거야. 뭐야?
처음에는 1500억이라고 했단 말이야."
강한의 목소리가 굵어졌다.
"계산대로라면 내 몫으로 250억이 더 와야 돼. 그래야 절반이 돼."
"……."
"그놈의 가시내가 돈 욕심이 난 모양이구만."
씹어뱉듯이 말한 강한이 손목시계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후 4시 반이 돼가고 있었다.
"나, 내일 돌아올 테니까 네가 집 지켜."
"어디 가는데?"
따라 일어선 천상태가 묻자 강한은 쓴웃음을 지었다.
"걱정 마라. 이젠 최광규도 골로 갔고 날 쫓을 놈도 없어."
"형, 하지만."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형, 저건 어떻게 할까?"
돈 가방을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것이다.
"아무 데나 넣어둬."
"나아, 참."
뒤에서 혀차는 소리를 들으면서 강한은 현관을 나왔다.
방배동에 마련한 안가는 2층 저택으로 감시 카메라가 6개나 설치돼 있었고,
보안회사와 특급 경비계약을 맺어서 그야말로 철통같이 보호되고 있다.
뜨내기 도둑은 물론이고 떼강도가 습격해 오더라도 현관문을 열기도 전에 잡힐 것이다.
강한이 압구정동의 바 '아폴로'에 들어섰을 때는 저녁 7시반이었다.
아폴로는 회원제 클럽으로 가입비가 연 2500만원이나 되는 특급 사교장이다.
강한은 두 달 전에 가입했지만 꼭 한번 들렀을 뿐 오늘이 두번째였다.
"어서 오세요."
매니저 윤수정이 활짝 웃는 얼굴로 강한을 맞았다.
윤수정은 지금까지 세 번밖에 만나지 않았는데도 두 달 만에 찾은 강한을 금방 알아 보았다.
"어디 나갔다 오셨어요? 여러 번 연락을 해도 휴대폰이 불통이던데요."
안쪽 자리로 안내한 윤수정이 강한에게 상체를 기울이더니 소곤소곤 말했다.
"마침 오늘 잘 오셨어요. 저기 왼쪽에 셋, 기둥 옆에 둘이 있는데 모두 특급이죠. 골라 보세요."
"난 별로."
쓴웃음을 지은 강한이 윤수정을 보았다.
"여자한테 꼬리 흔들 기분이 아닌데. 술이나 주시죠."
"누가 꼬리를 흔들어요? 쟤들이 흔들어줄텐데."
다시 얼굴을 펴고 웃은 윤수정이 말을 이었다.
"천천히 감상하시면서 마음에 드는 애를 고르세요.
사장님 같은 초특급은 누구도 거절 못할테니까요."
강한은 벤처기업 소유주로 회원 등록을 했다.
그러고보면 유진홍과 같은 위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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