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생존자 (2)
조재일은 대구로 옮겨져 뇌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정상적인 활동을 하려면 반년 이상이 걸린다고 했다.
이로써 강한의 행동 요원이 또 하나 줄어든 셈이 됐다.
강한은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조재일을 찾은 지 닷새째 되는 날이었다.
닷새 동안 대구에서 조재일의 옆에 있었던 것이다.
밤 10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강한은 영등포역 근처의 카페로 들어섰다.
혼잡한 길가에 자리 잡은 카페 안은 혼잡했다.
손님 대부분이 20대 초반의 남녀였다.
강한은 안쪽 테이블에서 손을 들어 보이는 사내 앞으로 다가갔다.
"좀 늦었어."
앞쪽에 앉으며 강한이 말하자 사내는 씨익 웃었다.
20대 후반쯤으로 특징없는 용모에 옷차림도 수수했고, 강한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았다.
치켜뜬 눈이 맑은데다 웃는 모습이 깨끗한 사내였다.
"일감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내가 앉은 채로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사내 이름은 박현태, 27세로 강한의 대학 후배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2년 동안 백수로 지낼 때 강한이 가끔 일을 맡기고 용돈을 주었다.
지금은 밤에 야간학교의 영어 선생 노릇을 하는데 교통비만 받는다고 했다.
박현태가 탁자 위에 놓인 대형 봉투를 강한 앞으로 밀면서 말했다.
"유진홍이를 조사하다 보니까 제 신세가 딱하다는 생각이 들더만요."
말은 그랬지만 박현태는 다시 밝게 웃었다.
"하지만 유진홍이 부럽지는 않았습니다. 실제로도 행복한 표정이 아니었구요."
"돈이 많다고 행복한 건 아니야."
다가온 종업원에게 커피를 시킨 강한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버릇이 되어서 언제나 주위를 경계하는 것이다.
그때 박현태가 말을 이었다.
"수원 교외에 1백억대가 넘는 대저택에 살고 외제 승용차가 다섯 대,
별장이 세 채 있는데다 재산 총액은 2천8백억입니다.
그걸 단 7년 만에 벌다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그보다 더 번 놈들도 있어."
"아직 나이가 서른다섯밖에 안된 놈이 말이죠.
작년에 이혼한 전처한테는 현금 부동산 합쳐 3백억을 주었다는군요."
"그건 신문에도 났지."
"강남 최고급 룸살롱 두 곳에는 일주일에 한번씩 꼭 갑니다.
가서 월 평균 6천을 뿌리죠. 각각 3천씩 말입니다."
"그쯤은 약과 아닌가?"
"그렇습니다."
심호흡을 한 박현태가 눈으로 앞에 놓인 봉투를 가리켰다.
"데리고 노는 애가 현재 넷입니다.
각각 오피스텔, 아파트를 얻어 주었고 한달 생활비로 월 1천씩 줍니다.
모두 외제차 한 대씩 빼주었구요. 거기 사진 다 들어 있습니다."
"또 있을 텐데."
그러자 박현태가 정색하고 강한을 보았다.
"형님, 이놈은 도대체 어떻게 돈을 번 겁니까?
진짜 합법적으로 모은 겁니까?"
"그런 셈이지."
쓴웃음을 지은 강한이 의자에 등을 붙였다.
벤처기업인 샤니 텔레콤은 휴대전화의 영상 통신 장치를 개발해
재빠르게 국제 특허까지 획득해 주가가 1만 배로 뛰었다.
유진홍은 영상통신장치를 개발한 연구원 출신 기업가다.
"이놈은 5년 동안 피땀 흘려 영상 통신 장치를 개발했어. 그건 사실이야.
아마 몇 년안에 재산이 열 배 이상 늘어날 거야."
"하지만."
입맛을 다신 박현태가 머리를 저었다.
"아무리 제가 번 돈을 쓴다고 해도 이렇게 쓰면 안되죠."
"그럼 어떻게 써야 하는 거야?"
강한이 정색하고 묻자 박현태는 어물거렸다.
"글쎄, 좀 생각 해봐야겠습니다."
"아마 유진홍이도 지금 생각 중일 거다."
가져온 커피잔을 쥔 강한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을 이었다.
"지금은 그런 기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미친놈처럼 돈을 뿌리고 있는지도 몰라."
현재 유진홍에게 섹스는 유일한 취미이자 생의 활력소였다.
그는 지금까지 취미생활을 해본 경험이 없었다.
하다못해 독서, 운동, 바둑, 영화감상 등 남들이 보통 즐기는 그 어떤 오락도 해보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틈만 나면 연구를 했다.
연구가 취미였고 오락이었다.
전자파나 전기 관련 연구를 하다가 집에 불을 낸 것도 여러 번이어서
겨우 3류 지방대학에 들어간 후부터는 폐가가 된 농가에서 혼자 살면서 연구에 몰두했다.
그러다 대학 졸업 무렵 영상장치를 개발했고, 발 빠르게 국제 특허를 획득하면서
벤처기업을 설립했는데 한치의 빈틈없이 처리했다.
지금 샤니텔레콤 주식의 95%가 유진홍의 소유다.
연구에만 몰두했던 유진홍이 경영자의 자질을 보인 것이었다.
그러나 샤니 텔레콤이 전 세계가 인정하는 영상 장치의 개발 공급자가 된 지금,
유진홍은 방황하고 있다. 연구에 몰두했던 그 집중력이 여자에게 옮겨진 것 같았지만
열정적이지는 않았다.
그것이 강한이 유진홍을 분석한 결과였다.
박현태를 시켜 조사해본 유진홍의 사생활은 엉망이었다.
현재 넷인 애인 중 가장 오래된 여자가 4개월짜리였고 셋은 모두 3개월 미만이다.
석 달 이상 함께 지낸 여자는 드물었다.
애인 대부분이 룸살롱에서 만난 여자들이었으니
유진홍한테서 한몫씩 잡고 떨어져 나갔을 터였다.
유진홍이 논현동의 오피스텔로 들어섰을 때는 밤 9시반이었다.
20평형 원룸식 오피스텔은 호화로웠다.
장식이 요란했고 색깔도 현란해서 유진홍의 애인집 네 곳 중 가장 정신없는 곳이다.
그러나 집 주인 오희라는 애교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연기가 일품이었다.
연기는 침대에서의 쇼를 말한다.
오희라는 유진홍의 연장이 들어오기 전부터 냅다 고함을 지르는 버릇이 있다.
과장이 심하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지만 익숙해지자 법석을 떠는 분위기가 오히려 편해졌다.
섹스를 어설프게 끝내버려도 저쪽은 죽는다고 소리를 질러대는 상황이니 덜 무안한 것이다.
"오빠, 케이크 사왔어?"
방에 들어선 유진홍에게 오희라가 물었다.
이미 유진홍의 빈손을 보고나서 묻는 것이다.
"아참."
쓴웃음을 지은 유진홍이 오희라를 보았다.
"배달 안되냐? 배달 시켜라."
"제과점에서 배달하는 것 봤어?"
오희라가 눈을 흘겼다.
유진홍이 온다는 전화를 하자 오희라는 제과점에 들려 케이크를 사오라고 했던 것이다.
저고리를 받은 오희라가 투덜거렸다.
"도대체 정신을 어디다 빼놓은 거야? 한시간 전에 한 약속도 잊어먹고."
유진홍에게 대놓고 이렇게 불평하는 애인은 오희라 뿐이다.
"미안, 미안해."
오희라의 엉덩이를 쓸면서 유진홍이 말했다.
"내가 그대신 좋은거 사줄게."
"돈으로 줘."
"얼마줄까?"
"다다익선."
"십만원?"
"치이."
"네가 오늘 뒤로 해주면 백만원 주지."
"좋아."
오희라가 웃지도 않고 끄덕이더니 유진홍의 바지를 벗겼다.
"욕실에 물 받아놨어. 목욕해."
"좋지."
"나도 들어갈까?"
"당근이지."
오희라는 스물넷으로 룸살롱에 6개월째 나왔을 때
유진홍을 만났다고 했지만 거짓말이 분명했다.
3년 이상이다.
또 전문대를 졸업했다는 말도 유진홍은 믿지 않았다.
고졸일 것이고 고등학교 때 제대로 수업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유진홍이 룸살롱을 섭렵한지 4년이다.
연구처럼 몰두하지는 않았지만 분석력은 그대로다.
욕실로 들어간 유진홍이 욕조에 누워 있는데 오희라가 들어섰다.
알몸이었고 음부를 가리지도 않고 거침없이 다가온다.
"나 어때?"
오희라가 유진홍 앞에 서더니 한쪽 다리를 욕조 끝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다리 사이가 벌어지면서 안쪽까지 드러났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아 모든 게 선명하게 보였다.
"좋아."
정면을 응시하면서 유진홍이 입술만 달싹이며 말했다.
두 눈은 어느덧 이글거렸고 입안에 침이 잔뜩 고였다.
"들어와, 어서."
유진홍이 갈라진 목소리로 말하자 오희라의 다리가 더 벌어졌다.
"욕조에서 하려구?"
"하면 어때?"
"싫어, 물 들어가."
"어쨌든 들어와, 어서."
오희라가 애를 태우려고 그런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유진홍은 말려들었다.
이 재미로 오희라를 자주 찾는지도 모른다.
다른 애인들은 대체로 고분고분했고,
유진홍의 눈치만 보기 때문에 이런 자극은 없다.
그때 오희라가 말했다.
"5백만원만 줘."
"뭐하게?"
"엄마가 수술해야 해. 위암 초기래."
"그래?"
"줄 거지?"
"줄게."
그러자 오희라가 활짝 웃더니 욕조 안으로 들어왔다.
얼굴에 물이 튀겼으므로 유진홍은 눈을 감았다.
그는 지난달에도 오희라가 생활비 1천만원 외에도 6백만원을 더 가져갔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때는 오빠가 차 사고를 내서 합의금이 모자란다고 했다.
"안 섰네?"
오희라가 유진홍의 연장을 잡고 떠들썩하게 외치더니 두 손으로 주물렀다.
유진홍을 바라보며 무릎 위에 앉은 자세여서 바로 행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때 눈을 뜬 유진홍이 물었다.
"지금 몇 시냐?"
"몰라."
"몇 시 됐나 봐."
"싫어."
연장 세우기에 열중한 오희라가 말했을 때 유진홍이 몸을 일으켰다.
그 서슬에 오희라가 뒤로 넘어져 얼굴까지 욕조의 물속에 빠졌다.
"아유! 씨."
눈을 치켜뜨고 일어선 오희라가 유진홍을 노려보았다가 시선이 마주치자 금방 외면했다.
"물 먹었잖아."
금방 애교 섞인 목소리로 변했지만 유진홍의 머릿속에는 조금 전에 노려보았던
오희라의 시선이 생생하게 입력됐다.
욕실 밖으로 나간 유진홍이 서둘러 몸을 닦고 옷을 걸치고 있을 때 오희라가 나왔다.
"왜 옷 입어?"
놀란 오희라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유진홍은 양말을 신고 바지를 입던 중이었다.
"급한 일이 있는 걸 잊었어."
서둘러 셔츠를 입으면서 유진홍이 말했다.
저고리를 집어드는데 오희라가 다가와 물었다.
"갔다 올거야?"
"아니, 바빠서 안돼."
외면한 유진홍이 현관으로 다가가면서 말했다.
"그럼 내일 돈 보내줄 거야?"
다시 오희라가 물었으므로 유진홍은 신발을 신다 말고 허리를 폈다.
"내일 연락할게."
유진홍의 시선을 받은 오희라가 머리를 끄덕였다.
"알았어, 기다릴게."
밖으로 나온 유진홍은 심호흡을 했다.
내일 총무부장 백종호를 시켜 오희라의 방을 비우게 할 것이다.
오희라하고는 석달째였는데 아직 집은 얻어주지 않았다.
천만다행이었다.
거리로 나온 유진홍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밤 10시20분이다.
그때 문득 한여사가 소개해주겠다는 수녀가 떠올랐다.
엄밀하게 말하면 수녀를 그만두고 일반인이 됐다는 여자였다.
대단한 미인이었다.
이춘식이 들어서자 최광규는 머리를 들었다.
허드슨 빌라의 응접실이다.
"조재일이 대구 제일병원에 있더구만."
최광규가 흐려진 눈으로 이춘식을 보았다.
눈동자의 초점이 잡히지 않은데다 흰자위가 붉게 충혈돼 마치 물고기 눈 같았다.
이춘식이 최광규를 똑바로 보았다.
조재일을 내다버리기 전에 다시는 정상 생활을 할 수 없게 해놓으라는 지시를 받았던 것이다.
이춘식이 강한에게 조재일을 넘긴 것도 따지고 보면 최광규의 지시를 이행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다만 확실하게 조재일에 대한 뒤처리를 하지 않았을 뿐이다.
"수술을 받았는데 완치되려면 6개월이 걸린다는군."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은 최광규가 말을 이었다.
"명이 긴 놈인 갑다."
"보통 놈 같았으면 거의 죽었습니다."
이춘식이 말했을 때 최광규가 다시 흐린 눈으로 보았다.
오전 8시 반이다.
전날 밤에 최광규는 과음을 한 것 같았다.
"해장 먹으러 갈 테니까 준비해."
"예, 회장님."
"참."
잠깐 잊었다는 듯이 최광규가 말을 이었다.
"서초동의 애플을 네가 맡아라, 매달 임대료만 내는 걸로 해."
"네?"
놀란 이춘식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서초동의 애플 클럽은 월 순이익이 3000만원 가깝게 나오는 특 A급 업소 중 하나다.
지금까지 애플은 바지 사장을 고용했고, 순이익은 모두 최광규가 차지했다.
이춘식의 시선을 받은 최광규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내가 요즘 생각을 많이 했어. 이젠 그만 챙기고 나눠주려고 그런다."
"회장님, 저는…."
얼굴이 붉어진 이춘식이 말까지 더듬었다.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이렇게 업소를 떼어 받은 인물은 지금까지 서너명 뿐이다.
그들은 모두 최광규와 형님 동생하는 사이였고 조직의 공신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현역이 아니다.
모두 은퇴한 노장들이다.
그때 담배를 비벼끈 최광규가 일어섰다.
"해장 먹어야겠다. 그런 줄 알고 애플 인수할 준비를 해."
당황한 이춘식은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최광규가 탄 승합차를 앞뒤에서 호위하는 차량 대열은 마치 대통령 경호 행렬 같았다.
하지만 외부에서는 눈치 채지 못하도록 차종을 달리 했고,
옆으로도 배치해 더 교묘했다.
이춘식은 맨 뒤의 승용차에 올랐다.
차 안에 탄 셋은 모두 심복이다.
차가 시내로 들어섰을 때 이춘식이 뱉듯이 말했다.
"아무래도 눈치가 이상해."
옆에 앉은 한대식이 잠자코 머리를 돌려 이춘식을 보았다.
한대식은 고향 후배였고 친구 동생이기도 하다.
익산에서 상경시킨 것도 이춘식이었으므로 속을 다 털어놓는 사이였다.
"회장이 나한테 애플을 맡긴다는데, 날 떼려는 수작인 것 같아."
"떼다니요?"
앞에 앉은 유석준이 머리를 돌려 물었다.
유석준은 한대식의 친구였고 운전을 하고있는 박수곤과는 외사촌 간이다.
힐끗 앞쪽을 쏘아본 이춘식이 잇사이로 말했다.
"날 방심시켰다가 잡으려는 모양이야."
"아니, 왜요?"
유석준이 눈을 부릅떴다.
공수도 5단인 유석준은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간다.
그래서 폭력 전과가 4범이었고 3년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어깨를 늘어뜨린 이춘석이 말을 이었다.
"회장 눈치가 비상해. 아무래도 날 의심하는 것 같아."
조재일을 놓아준 것은 유석준과 한대식이다.
그들은 강한과의 거래 내용을 모두 알고 있다.
그때 한대식이 말했다.
"그럼 우리가 먼저 손을 써야 하는 것 아닙니까?"
"글쎄."
이춘석이 아랫입술을 물었다가 풀었다.
그리고는 이춘식이 머리를 들었을 때였다.
옆구리에 갑자기 뜨거운 불기둥이 밀고 들어오는 것 같은 충격이 오더니
금방 머리끝이 곤두설 정도로 통증이 왔다.
"으윽!"
저도 모르게 신음을 뱉은 이춘식이 옆구리를 움켜쥔 순간 한대식의 어깨와 부딪쳤다.
한대식의 얼굴이 바로 옆에 떠 있었는데 눈을 부릅뜬 험악한 인상이었다.
그때서야 이춘식은 상황을 알았다.
한대식이 찌른 것이다.
일초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춘식에게는 오랜 시간처럼 느껴졌다.
"어, 너…."
이춘식이 다른 손을 뻗어 한대식의 어깨를 움켜 쥐었을 때였다.
이번에는 앞에 앉은 유석준이 두 손으로 이춘식의 목을 감아 안았다.
"어윽."
이춘식은 몸이 젖혀진 상태에서 다시 한대식의 칼을 맞았다.
이번에는 가슴이다.
"어어어…."
폐 안에 담긴 숨을 뿜어내면서 이춘식의 몸이 늘어지기 시작했지만
유석준은 목을 감은 팔을 떼지 않았다.
한대식도 가슴에 박은 칼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때 휴대폰의 벨소리가 차 안을 울렸다.
"예."
하고 운전을 하던 박수곤이 마이크를 귀에 붙이고 대답했다.
"나다."
최광규의 목소리였다.
"예, 회장님."
박수곤이 대답하자 잠깐 뜸을 들인 최광규가 물었다.
"이춘식이 바꿔라."
"지금 죽어가는데요."
힐끗 백미러를 본 박수곤이 말했을 때 최광규가 다시 물었다.
"내 말을 못들을 정도냐?"
"그건 모르겠습니다."
"누가 처치한 거냐?"
"한대식이 찌르고 유석준이 잡았습니다."
"죽었어?"
"아직."
"핸드폰을 귀에 붙여."
"예, 회장님."
그러자 말을 다 들은 유석준이 휴대폰을 받아다가 이춘식의 귀에 붙였다.
그때 이춘식은 길게 늘어져 있었는데 눈은 떴다.
숨은 가늘게 뱉기만 하는 중이다.
그 순간 휴대폰에서 최광규의 말이 울렸다.
"날 배신하면 어떻게 된다는 거 네가 제일 잘 알거다."
그러더니 최광규가 낮게 웃었다.
"네놈이 강한한테서 30억을 받았다면서?
애들한테는 3억씩 준다고 했다가 1억 밖에 안줬고."
다시 웃음소리를 낸 최광규가 말을 이었다.
"나도 너한테 애플 클럽을 말로만 주었다가 되찾아간다. 그럼 잘 가거라."
그리고는 통화가 끊겼다.
차 안은 무거운 정적에 덮였다.
모두 입을 다물었고 이춘식은 눈을 뜨고 있었지만 이제 숨이 끊어졌다.
"시발, 휴지좀 더 줘."
뒷자리의 한대식이 피투성이가 된 손을 휴지로 닦으며 말했다.
"야, 빨리 좀 밟아."
차는 방향을 틀어 강북강변도로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자유로 쪽으로 달려 파주 근처의 야산에다 이춘식을 묻을 계획이다.
한대식은 이춘식이 데려왔지만 최광규한테서 출세를 보장받고 정보원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이춘식의 바지에 있던 휴대폰이 울렸으므로 한대식은 질색을 했다.
놀란 유석준은 머리를 돌려 이쪽을 보았다.
잠시 이를 악물고있던 한대식이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발신자 번호부터 보았다.
그러더니 심호흡을 하고나서 귀에 붙였다.
"여보세요."
그러자 굵은 사내의 목소리가 울렸다.
"누구야? 이춘식씨 전화 아닌가?"
"맞습니다. 형님은 잠깐 화장실에 가셨는데요."
한대식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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