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전쟁 (1)
최광규는 잠자코 앞쪽 벽을 바라본 채 입을 열지 않았다.
응접실 안에서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내들이 7,8명이나 서 있었지만 모두 조각품처럼 굳어 있다.
벽시계의 초침 소리가 크게 울렸다.
밤 12시20분이다.
장례식장에서 현장을 지휘하던 조 철은 습격을 받아 얼굴이 함몰되는 중상을 입고
지금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
아직 의식불명 상태인 것이다.
최광규의 시선이 옮겨지더니 갈라지고 낮은 목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경비를 강화해."
그 순간 사내들이 일제히 머리를 숙이며 외쳤다.
"예, 회장님."
사내들의 얼굴은 비장했고 그중 두어명의 눈은 젖어 있었다.
최광규가 말을 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놈이 만만한 놈은 아니다."
그리고는 최광규가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길게 숨을 뱉었다.
"내가 성급했고 오만했다. 내가 지구력만 유지한다면 이긴다."
최광규가 눈을 부릅뜨고 부하들을 보았다.
"그 놈이 유리한 점은 딱 한가지. 노출되지 않았다는 것 뿐이다.
그럼 우린 기다린다. 그 놈 꼬리가 잡힐 때까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은 최광규가 턱을 치켜들어 부하들에게 나가라는 시늉을 했다.
"넌 남아."
맨 끝으로 다가가는 이춘식을 손짓으로 부른 최광규가 소파에 등을 붙였다.
이춘식은 경호실의 2인자로 서열이 조 철 다음이다.
긴장한 이춘식의 시선을 받은 최광규가 입을 열었다.
"강한하고 나하고 둘 중에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전쟁이다."
눈을 치켜뜬 최광규가 말을 이었다.
"강한이는 강남경찰서 형사 박용수하고 수시로 연락을 하고 있을거다.
강한한테는 박용수가 보호자 노릇을 해왔으니까."
이춘식은 숨을 죽였다.
그러나 상대방은 경찰이다.
황택수를 납치했을 때도 박용수는 직접 최광규를 찾아와 내놓지 않으면 가만 안둘 것이라는
협박까지 한 놈이었다.
현직 경찰이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최광규가 한마디씩 또박또박 말했다.
"박용수를 처치해."
"네?"
놀란 이춘식이 머리를 들었다가 최광규의 시선을 받고는 소스라쳐 숨을 죽였다.
최광규의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안에서 불길이 타오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강한이의 수족을 자르는거야."
최광규가 잇사이로 말하자 이춘식이 헛기침을 했다.
"아주 없앨까요?"
처치하는 방법도 여러가지가 있다.
활동만 못하도록 하는 방법, 아주 병신을 만들어서 입도 못열게 하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죽여 없앨 수도 있다.
이춘식의 시선을 받은 최광규가 희미하게 웃었다.
"사고로 위장해서 아주 없애."
죽이라는 말이었다.
숨을 삼킨 이춘식이 머리를 숙였다.
"예, 회장님. 처리하겠습니다."
"뺑소니가 좋다."
"예, 회장님."
"그리고…."
최광규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이춘식을 보았다.
"증거를 없애라."
"예, 회장님."
다시 머리를 숙인 이춘식이 방을 나오고 나서 길게 숨을 뱉었다.
뺑소니 작업을 시킨 업자도 제거하라는 말이었다.
경찰을 없앤다는 것은 상황이 갈 데까지 갔다는 것을 의미했다.
지금까지 어떤 조직도 이런 일을 한 적이 없다.
그러나 명령을 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광규의 숙소인 노스탈자 호텔의 최상층에서 로비로 내려온 이춘식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던 부하들이 다가왔다.
경호실은 이제 이춘식이 리더였다.
"현금 1억 달러를 내지요."
강성호 회장이 차분한 표정으로 말하더니 옆에 앉은 강동수 부사장을 보았다.
"나하고 내 아들인 부사장의 지분을 합하면 34%가 됩니다.
장남인 강동호의 지분은 16%밖에 안됩니다.
그 놈이 지금 우호 지분을 모아 소송 중이지만 경영권은 가져가지 못할 겁니다."
강성호의 영어는 유창했다.
정확하게 말한 강성호가 똑바로 피터슨을 보았다.
"피터슨씨, 우리 극동건설이 대일건설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이라크에는 30년 전부터 진출해서
현지 사정에 익숙하고 특히 아파트나 공장 건설의 전문성이 뛰어납니다.
경영권 분쟁은 곧 끝날테니까 고려해 주십시오."
방안은 조용했다. 응접실 소파에 둘러 앉은 넷은 잠시 침묵했다.
피터슨과 브루스 해밀턴, 그리고 극동건설 강성호 회장과 차남이며 후계자인 부사장
강동수가 서로 마주보고 앉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명, 끝 쪽에서 넷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장미가 앉았다.
장미는 피터슨의 비서로 소개됐다.
그때 잠깐의 침묵을 깨고 피터슨이 입을 열었다.
"우린 미국 정부에 위험에 대비한 담보를 설정해 놓았습니다.
대충 20억 달러 가치의 부동산인데…."
정색한 피터슨이 강성호에게 물었다.
"만일 극동건설이 우리하고 제휴한다면 우리한테 담보를 얼마 내놓을 겁니까?"
"그건…."
조금 당황한 듯 강성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피터슨 컨설팅에서 오더를 수주할 때 보증 명목으로 미국 정부에 담보를 설정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제휴회사가 피터슨 측에다 담보를 내놓는다는 말은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피터슨이 다시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지요.
우린 대일건설 측에도 이 제의를 했습니다.
갑작스런 말같지만 우리만 위험 부담을 안고 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부사장 강동수가 물었다.
"얼마 정도의 담보가 필요합니까?"
"절반씩."
피터슨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우리가 20억을 이미 내놓았으니까 10억을 우리한테 담보물로 맡겨 주십시오."
"10억 달러를…."
강성호가 신음처럼 되풀이했을 때 피터슨이 말했다.
"물론 아까 말씀하신 1억 달러와는 별도가 되겠습니다."
"이라크에서 얼마 정도의 공사를 수주할 수 있을까요?"
정색한 강성호가 묻자 피터슨이 눈을 좁혀뜨고 웃었다.
"최소한 40억 달러, 많으면 55억달러쯤 될 겁니다.
그래서 최소가의 절반을 담보물로 내놓은 것이지요."
그리고는 피터슨이 머리를 젓는 시늉을 했다.
"우리만 위험 부담을 짊어질 수는 없죠."
강성호와 강동수가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10억 달러면 1조 가까운 금액이다.
그만큼의 부동산이나 동산을 담보로 맡기라는 말이었다.
이윽고 머리를 든 강성호가 피터슨에게 말했다.
"피터슨씨. 이틀만 시간 여유를 주시지요. 그때 대답을 드리겠습니다."
"그러지요."
웃음 띤 얼굴로 머리를 끄덕인 피터슨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정도는 여기서 기다리지요."
강성호와 강동수 부자와 악수를 나눈 피터슨이 현관 밖까지 나와 배웅을 했다.
그리고는 다시 로비로 들어서면서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극동건설이 10억 달러를 담보할 물건이 있을까?"
그러자 해밀턴이 대답했다.
"부동산과 건축 중인 아파트, 상가 등을 다 모으면 겨우 될 겁니다."
"대일건설은?"
"그쪽은 충분합니다."
해밀턴도 얼굴을 펴고 웃었다.
"보스. 놀랍습니다. 담보 이야기를 꺼내시다니요."
그 순간 해밀턴의 시선이 장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날 밤 11시반 경 이태원의 강성호 회장 저택 뒷문이 열렸다.
그러자 어둠속에서 나타난 한 사내가 그림자처럼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곧 문이 닫혔다.
다시 인적이 끊긴 주택가는 짙은 어둠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이곳은 차량 통행도 밤 10시 경이면 끊긴다.
"그래, 말씀을 들읍시다."
하고 응접실에서 마주보며 앉았을 때 강성호가 말했다.
얼굴이 굳은 강성호는 아직 경계를 풀지 않았다.
옆에 앉은 부사장 강동수도 마찬가지였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회장실 수행비서 안태호를 시중 들라는 명목으로 뒤에 서 있게 했고,
문 밖에는 경호원 겸 운전기사까지 기다리게 했다.
그들의 시선을 받은 강한이 입을 열었다.
"회장님께선 피터슨에게 끌려 들어가고 계시는 겁니다."
차분한 목소리로 강한이 말을 이었다.
"피터슨은 한국에 왔을 때 담보를 설정할 계획이 없었습니다.
건설업체를 만나 서로 경쟁하는 분위기를 알게 되자 담보를 내놓으라고 한 겁니다."
강한이 잠깐 숨을 돌렸을 때 방안 분위기가 조금 흔들렸다.
경계심이 풀린 대신 생기가 떠오른 것 같았다.
강동수의 눈이 번들거리기 시작한 것이 그 증거다.
강한은 심호흡을 했다. 장미가 강동수에게 전화해서 이번 피터슨의 비밀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하자 강동수는 펄쩍 뛰었다.
그러다가 와락 의심이 들었는지 두서없이 묻다가 장미한테 면박을 당했다.
"노랗게 질려서 더듬대던 분들이 의심도 많으시네.
한국 사람끼리 서로 돕자는건데 내가 누군지 알아서 뭘 할 건데요?
싫으면 관두시구요."
그러자 놀란 강동수는 만날 약속을 한 것이다.
물론 대리인은 강한으로 선정되었고, 장소는 강성호의 저택이다.
다시 강한이 말을 이었다.
"비자금으로 1억 달러를 내시겠다고 하셨죠?
그런데 대일건설은 650억 입니다.
대일 측 재정 상태와 경영관계가 나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피터슨은 대일 측에 기울어 있습니다."
그때 강성호가 입을 열었다.
"대일 측에도 담보 요청을 했습니까?"
"안했습니다."
머리를 저은 강한이 쓴웃음을 지었다.
"내일 다시 대일 유회장을 불러 극동에서 10억 달러 담보를 제공할 거라는
말을 할 예정이라는군요.
이번 담보건은 오늘 갑자기 피터슨이 끄집어낸 것이라고 했습니다."
모두 숨을 죽인 채 눈동자만 굴렸고 강한의 말이 이어졌다.
"서로 경쟁을 시켜 담보와 비자금 액수를 늘리려는 겁니다."
"그러면."
심호흡을 하고난 강성호가 정색한 표정으로 강한을 보았다.
"고견을 들읍시다."
이제는 믿고 맡기겠다는 표현이었다.
그러자 강한의 얼굴에 다시 웃음기가 떠올랐다.
"피터슨 옆에서 비서 행세를 하고있는 여자는 실은 제 동업자입니다."
"동업자라니요?"
하고 강동수가 묻자 강성호가 눈치를 주었다.
그러나 강한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예, 제 동업자는 지금 피터슨한테 일당 1백만 달러로 고용된 섹스 파트너지요."
그 순간 놀란 강동수가 입을 딱 벌렸고 뒤쪽 벽에 붙어 서있던 비서는 허리를 펴다가
하마터면 옆에 놓인 고려청자를 건드려 떨어뜨릴뻔 했다.
강성호만 잠자코 시선을 주고있다.
강한의 말이 다시 방을 울렸다.
"섹스 파트너로 간 이유는 피터슨의 껍질을 벗기기 위해서였지요.
물론 이번 이라크 복구 공사건도 포함이 됩니다."
머리를 든 강한이 똑바로 강성호를 보았다.
"현재 극동건설의 상황은 아주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희들하고 동업하시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자 강성호가 심호흡을 했다.
"뺑소니야."
경찰서 안 휴게실에서 만난 문병호 형사의 두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수염도 깎지 못한 부시시한 얼굴에 점퍼 깃에는 때까지 절어 있었다.
영락없는 노숙자 행색이었다.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은 문병호가 흐린 눈으로 강한을 보았다.
"가망없어."
강한은 머리를 숙였다.
어젯밤 모처럼 집에 귀가하던 박용수 형사는 집 앞 도로에서 차에 치어
지금 응급실에 있는 것이다.
장 파열에 뇌까지 다친 박용수는 지금도 의식불명 상태였는데
동료 형사 문병호는 병원에서 밤을 새우고 돌아온 참이었다.
"현장에 범퍼하고 라이트 깨진 조각이 떨어져 있었어. 끝까지 찾아낼 거야."
문병호가 기운없는 목소리로 말했을 때 강한이 머리를 들었다.
"최광규 짓입니다."
그러자 문병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럴 가능성도 있지.
지난번에 네 후배를 납치해 갔다고 박형사가 몇 번 찾아가 경고를 했으니까."
"틀림없습니다. 문형사님."
"나도 내 담당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조사할 거다."
"그 놈이 저 대신 박형사님을 해코지한 겁니다."
"너하고 최광규는 도대체 어떤 관계야?"
정색한 문형사가 묻자 강한은 어금니를 물었다.
다 밝힐 수는 없는 것이다.
박용수한테도 털어놓지 못한 일을 문형사한테 말할수가 있겠는가?
"개인적인 일입니다. 문형사님."
"그렇다면 너도 조심해야겠구나."
"예, 문형사님."
"병원에 제수씨가 와 있는데 안됐어."
화제를 돌린 문병호가 길게 한숨을 뱉었다.
"세살짜리 애를 업고 왔는데 정신을 못차리더구만.
초등학교 1학년짜리 애는 장모한테 맡기고 왔다는거야."
"……."
"20평짜리 연립에 전세 사는데 큰 일 났어.
내가 박형사 형편 뻔하게 아는데 말이야.
사고나면 본인은 차라리 나아.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죽으니까 말이야."
문병호가 일그러진 얼굴로 웃었다.
"남은 식구가 고생이지.
어린애 둘을 데리고 어떻게 살지?
뺑소니라 보상도 못받고 말이지."
머리를 숙인 강한은 대답하지 못했다.
강한이 경찰서 주차장에 주차된 차로 돌아왔을 때 기다리고 있던 백용철이 말했다.
"형님, 병원 근처에서 애들이 세팀을 찾아냈답니다."
강한이 뒷좌석에 오르자 승용차는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경찰서 정문을 나가면서 백용철이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놈들이 이 근처에서도 감시하고 있지 않을까요?"
강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병원 근처에서 최광규의 부하들을 찾아낸 것은 유기호였다.
유기호는 독자적인 팀을 만들어 강한의 일을 돕고있는 것이다.
경찰 출신으로 한때 최광규의 고문 역을 맡았던 유기호는 이제 확실하게 강한의 측근이 되었다.
그리고 또 있다.
머리를 돌린 강한은 뒤를 따르는 승합차를 보았다.
뒤쪽 유리창이 밀봉된 화물용 승합차에는 조재일과 부하들이 타고있을 것이다.
조재일 또한 별도 조직으로 강한의 경호를 맡고 있다.
"최광규가 애인을 숨겨 놓은 곳이 세곳으로 줄어 들었다는데요."
백미러를 향해 백용철이 말했다.
"셋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형님."
강한은 입을 열지 않았다.
세곳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은 곧 최광규 애인이 세곳중 한 곳에 있다는 말이었다.
이것도 유기호가 정보원을 동원해서 찾아낸 것이다.
백용철이 대답을 기다리는 듯 다시 백미러를 보았으므로 강한이 입을 열었다.
"기다려."
그리고는 덧붙였다.
"그 놈이 나하고 가까운 사람을 건드렸다고 나도 따라 하지는 않을거다."
강한이 이제는 잇사이로 말했다.
"그 몇배로 갚아줄 테니까."
대일건설 회장 유명철은 65세였지만 열 살은 젊어 보였다.
얼굴 피부는 반들거렸고 검고 짙은 머리에는 흰 머리도 보이지 않는다.
유명철이 정색하고 한국어로 말했다.
"좋습니다. 담보 10억달러를 내놓지요.
까짓것 남들이 다 하는데 내가 못한다고 하겠습니까?"
옆 자리에 앉은 전무 하용식이 유창한 영어로 통역을 했다.
통역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유명철이 말을 이었다.
"잘 아시겠지만 국동건설은 위험합니다.
경영권 문제가 법정에 가 있는데다 세금 때문에 회장이 구속될 지도 모릅니다."
다시 통역이 되는 동안 장미는 소리죽여 숨을 뱉었다.
피터슨과 해밀턴은 정색한 채 듣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웃고 있을 것이었다.
해밀턴은 조금 전에 그들에게 국동건설이 10억달러 담보에 1000억원의 비자금을
선급금 형식으로 내놓는다는 말을 해준 것이다.
하용식의 통역이 끝났을 때 피터슨이 말했다.
"미스터 유. 비자금을 1000억원으로 만들어 주시지요.
그렇게 해주신다면 대일건설과 계약하겠습니다."
하용식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유명철이 확인하듯 물었다.
"그럼 비자금 1000억에 담보 10억달러,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피터슨이 대답하자 유명철은 길게 숨을 뱉고나서 말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그러더니 하용식에게 지시했다.
"이라크 공사를 얼마까지 보장해 주겠다는 약속도 받아."
"예, 회장님."
이마의 땀을 닦지도 못한 하용식이 유명철의 말을 통역하자 피터슨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최소 40억달러입니다.
그것도 계약서에 포함시키지요."
"비자금은 언제까지 보내면 되느냐고 물어봐."
유명철의 말이다. 통역을 들은 피터슨이 정색하고 대답했다.
"내일 계약서 작성하고 절반인 500억, 그리고 이라크 공사가 시작될 때 나머지 500억."
그러더니 곧 덧붙였다.
"내일 받을 500억에 대해서는 내가 담보물을 드리지요.
그리고 이라크 공사가 시작될 때 그 담보물을 나한테 돌려주는 겁니다.
그것도 별도 계약으로 진행시키지요."
안전장치를 해주는 것이었으므로 통역을 듣고난 유명철이 만족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이의 없습니다."
"그럼 끝났군요."
피터슨이 유명철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웃었다.
"유회장님, 같이 일하게 되어서 기쁩니다."
"나도 영광입니다."
통역을 들은 유명철이 피터슨의 손을 힘차게 흔들었다.
이제 합의가 된 것이다.
그러고보면 어제 불려왔던 국동건설은 오늘 대일건설과의 합의에
촉진제 역할을 해준 셈이 되었다.
국동건설의 조건을 말해주고 대일건설 측으로부터
10억달러 담보와 1000억 비자금을 챙기게 된 것이다.
현관 밖까지 유명철을 배웅하고 응접실로 들어섰을 때 해밀턴이 먼저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보스, 잘 끝내셨습니다."
"한국인 기질을 좀 연구한 덕분이지."
피터슨이 옆을 따르는 장미를 향해 한쪽 눈을 감아 보이며 말했다.
"경쟁이 치열해서 절대로 지지 않으려고 한다는 거야.
손해가 날 망정 경쟁사에 오더를 뺏기지 않는다는군."
"대단한 성과입니다. 보스."
계단 밑까지 따라온 해밀턴이 계단을 올라가는 피터슨과 장미의 등 위에 대고 말했다.
"보스, 그럼 계약서 준비를 해놓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오늘 밤은 모처럼 서울로 나가 한 잔 마시도록 해."
장미의 허리를 껴안은 피터슨이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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