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대작전 (5)
뒷쪽에 멈춘 차에서 김희선이 내리더니 곧장 다가왔다.
강한은 운전석 반대쪽 문을 열었다.
국도변의 간이 휴게소 주차장에는 차가 서너대 뿐이었고 밤이어서 인적도 없다.
열려진 문으로 김희선이 들어와 앉자 짙은 향수 냄새가 풍겨왔다.
밤 10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별장에서 3km쯤 떨어진 이곳에서 김희선을 만나기로 한 것이다.
"담배 피워도 돼?"
핸드백에서 담배를 꺼낸 김희선이 묻자 강한은 머리를 끄덕이며 차창을 조금 열었다.
담배에 불을 붙인 김희선이 창밖으로 한숨과 함께 연기를 뱉고 나서 말했다.
"합의했어. 3일 이후에 피터슨이 더 데리고 있겠다면 하루에 50만 달러씩 추가하기로."
그리고는 머리를 돌려 강한을 보았다. 정색한 얼굴이다.
"그런데 켐벨은 그럴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면서 웃더구만."
강한은 어두운 앞쪽 창밖만 보았고 김희선의 말이 이어졌다.
"그 일이라는거. 어떤건지 내가 알면 안될까?"
"김여사께 피해는 가지 않을 겁니다."
여전히 외면한 채 강한이 말하자 김희선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내가 무슨 욕심이 있어서 그러는거 아냐,
그 일에 대한 내 수수료는 없어도 돼.
그냥 내가 병신 되는 것 같아서 참을 수가 없단 말이야."
"……."
"따돌림받는 기분. 강사장은 겪어보지 못했을거야.
얼마나 기운 떨어지는지 알아?
지난 번 김명준이 일도 나중에 알고 나서…."
"피터슨하고 엮어지는 건설회사 양쪽에서 돈을 뜯어내는 거죠.
잘 되면 물량이 클겁니다."
"그럴 줄 알았어."
강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희선이 말했다.
"장미가 피터슨을 확 휘어 잡는다면 가능한 일이지.
피터슨으로서는 가능한 조건이라면 제 정부가 추천하는 회사하고 손을 잡겠지."
"그건 말도 안되는 일이죠."
핸들에 두손을 얹은 강한이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김희선이 담배를 창밖으로 던졌다.
"말도 안되다니?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피터슨 정도의 거물이 아무리 장미가 마음에 든다고
그런 큰 사업에 관여하게 놔 두겠습니까? 턱도 없지요.
장미가 아무리…."
말을 끊은 강한이 침을 삼키고 나서 김희선을 보았다.
"다 결정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피터슨과 손을 잡은 건설회사와의 이면 계약을 알아내
양쪽에서 돈을 뜯어낼 겁니다.
틀림없이 비밀이 있고 그 액수는 엄청날 겁니다. 몇조원대 공사니까요."
"그러면…."
김희선도 침을 삼켰다.
그리고는 눈을 치켜뜨고 강한에게 물었다.
"장미가 그걸…."
"다 녹음할 겁니다."
"경비회사 애들이 테이블 밑까지 다 기계로 조사했고
피터슨 패들이 와서도 더 꼼꼼하게 조사하던데."
"장미 몸까지 수색하지는 못할테니까요."
그리고는 강한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 아셨지요?"
"내가 도와줄 일이 없을까?"
다시 담배를 꺼내 문 김희선이 지긋한 시선으로 강한을 보았다.
"건설회사 접촉할 때든가 말이야."
"손이 필요하면 말씀 드리지요."
"아까도 말했지만 수수료는 필요없어."
"입단속만 잘 해주시면."
강한이 정색하고 김희선을 보았다.
"저하고 장미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요."
"알아."
머리를 끄덕였던 김희선이 강한의 시선을 맞받았다.
"저렇게 장미 내놓고 속상하지 않아? 내가 둘 사이를 잘 아니까 하는 말이야."
그러자 강한은 외면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으으음."
장미가 욕실로 들어서자 피터슨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욕조에 누워있던 피터슨이 상체를 세웠는데 부릅뜬 눈이 번들거렸다.
"아름답다."
피터슨이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디즈니 만화영화에 나오는 요정같군."
"보지 마세요."
두 손으로 숲을 가리면서 장미가 눈을 흘겼다. 장미는 알몸이다.
"들어와."
피터슨이 두 팔을 벌렸으므로 장미는 조심스럽게 욕조 안에 발을 넣었다.
"잠깐만."
그 때 피터슨이 장미의 한쪽 다리를 잡아들더니 발 등에 입술을 붙였다.
"발이 예쁘다."
장미의 발가락에도 입을 맞춘 피터슨의 얼굴은 만족감으로 환해져 있었다.
둥근 욕조는 둘이 나란히 앉아도 여유가 있을 만큼 컸다.
피터슨이 장미의 어깨를 당겨 나란히 앉았다.
밤 11시가 되어가고 있다.
응접실에서 꼬냑을 반 병 쯤 나눠 마신터라 장미의 얼굴은 조금 상기되었다.
"피곤하지 않아요?" 장미가 묻자 피터슨이 대답 대신 어깨를 당겨 안았다.
그리고는 입술이 다가왔으므로 장미는 눈을 감았다.
피터슨의 입술이 부딪쳤고 입을 열라는 듯이 입술 안을 문질렀다.
장미가 입을 열자 혀가 들어왔다. 두껍고 뻣뻣한 혀였다.
온몸을 맡긴 장미는 차츰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논다는 것을 오래 전에 터득한 장미였지만
이 순간에는 항상 가슴이 메인다.
그때 피터슨의 손이 장미의 숲을 덮었다.
그리고는 샘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잠깐만."
몸을 비튼 장미가 피터슨의 남성을 손으로 움켜쥐고 말했다.
"여기서는 싫어요."
"그래, 나가자."
급해진 피터슨이 사방으로 물을 튀기면서 일어섰다.
그러더니 마악 일어서는 장미의 몸을 번쩍 안아 들었다.
"장미,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한테 맡겨."
장미의 뺨에 입술을 붙인 피터슨이 가쁜 숨을 뱉으며 말했다.
둘은 몸을 닦지도 않고 침실로 들어섰다.
장미의 몸을 침대 위로 내던진 피터슨이 눈을 번들거리며 물었다.
"장미, 어떻게 해줄까?"
"전 몰라요." 눈을 감은 채 장미가 말했다.
"당신 좋을대로."
"위에서?"
"오케이."
장미는 피터슨이 서둘러 몸 위로 오르는 것을 느꼈다.
"으으음."
피터슨이 다시 위에서 장미의 몸을 내려다 보는 것 같다.
탄성이 울리더니 피터슨이 가쁜 숨을 뱉으며 말했다.
"장미, 넌 가만 있어도 돼." 피터슨은 친절했다.
언론 보도를 보면 망나니짓도 자주 했다는데 침실 매너는 좋았다.
침실 매너가 좋다고 말해준 여자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때 피터슨의 몸이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아유."
장미가 커다랗게 비명을 질렀지만 일부러 뱉었다는 것을 피터슨이 알 리가 없다.
"으으음."
피터슨의 신음이 다시 울렸다.
그때 장미는 심호흡을 했다.
피터슨이 움직이기 시작했으므로 버릇처럼 숫자가 세어졌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허리에 힘이 들어간다.
일곱, 여덟, 아홉, 열, 장미가 열까지 세었을 때였다.
숫자 하나 셀 때마다 숨이 끊어질 듯이 숨소리를 뱉던 피터슨이 털썩 장미의 몸 위로 엎어졌다.
"윽…."
장미는 피터슨이 폭발한 것을 알았다.
"아아아아."
피터슨의 입에서 길게 굵은 탄성이 뒤늦게 터져나왔다.
그리고 소리쳤다.
물론 영어다.
"오우, 원더풀 월드!"
장미가 별장으로 들어간 지 사흘째 되는 날 아침, 강한은 전화를 받았다.
"나야."
장미의 차분한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울려 나왔을 때 강한은 창밖의 하늘을 보았다.
가을 하늘은 맑았다. 구름 한 점이 푸른 하늘에 붙은 듯 떠있었는데 어쩐지 춥게 느껴졌다.
그때 장미가 말했다.
"뭐라고 말이라도 해야될 것 아냐?"
"그래."
정신을 차린 듯 강한이 휴대폰을 고쳐쥐었다.
"별 일 없지?"
"피터슨이 떠나는 날까지 같이 있겠다고 했어."
장미가 억양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하고 같이 떠나자는 걸 다음 기회로 미뤘어."
"잘됐군."
"뭐가? 미룬 것이 말이야?"
"아니, 계약 연장이."
"참, 하루에 100만 달러야."
"뭐라고?"
눈을 크게 뜬 강한의 귀에 장미의 말이 울렸다.
"하루에 100만 달러씩 받는다구. 10억, 알겠어?"
"으음."
"그 뚜쟁이는 하루 50만 달러로 합의하면서도 가능성이 없을 것 같다고 빈정댔는데 100이야."
"……."
"뚜쟁이한테 수수료는 50만 달러 기준으로 줘야 해. 알았지?"
"알았어."
"켐벨인지 케멜인지 내시같은 비서 놈한테 내 구좌 불러줬으니까 거기로 입금될 거야,
매일. 그러니까 네가 체크해 봐."
"알았어."
"그런데 왜 기운이 없니? 어젯밤 술퍼먹은 거야?"
"아니?"
"여자 만나서 몸 풀었어?"
"아니."
"너, 그렇게 성의없게 대답할 거야?"
"어젯밤에 황택수가 죽었어."
다시 하늘을 올려다 본 강한이 말했다.
조금 전에 보았던 구름은 사라졌고 푸른 하늘만 남아 있었다.
하늘이 더 춥게 느껴졌다. 놀란 장미가 입을 다물었으므로 이번에는 강한이 말을 이었다.
"병원에 입원시켰는데 9층 옥상으로 올라가 뛰어내렸어."
"……."
"지금 황택수 누님 만나고 나온 길이야. 그래도 누님이 정신을 놓지 않아서 다행이다."
"다행은 무슨 다행."
장미가 내쏘듯이 말했다.
"그 놈, 그 세균 덩어리 같은 놈을 진작 죽였어야 해."
"어쨌든 여기는 신경쓰지 말고 네 일이나 잘…."
"허리 열심히 들고 있으니까 걱정마."
"……."
"첫날은 평균 6초로 세 번 뛰었어."
"……."
"어제는 평균 10초쯤 되었나봐. 그놈 되게 좋아하더라. 시간 늘어났다고."
"……."
"오늘도 저녁밥 먹자마자 2층으로 올거야.
2층에서 나 옆에 두고 일 다해. 전화하고 보좌관 부르고,
이미 건설회사 둘 만났는데 내일까지 둘 더 만나면 결정할 것 같아."
"……."
"다 녹음해 놓았으니까 걱정마."
"조심해."
강한이 겨우 말했을 때 장미의 말이 이어졌다.
"현재까지는 대일건설이 가장 유력한 것 같아. 그쪽에서는 비자금 650억을 낸다던데."
그러더니 서두르듯 말했다.
"끊어.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
통화가 끊기자 강한은 길게 숨을 뱉었다.
그리고서 차의 시동을 걸고는 주차장을 빠져 나왔다.
황택수는 약물 중독이었는데 자살해버린 것이다.
"보스, 국동건설은 1억 달러까지 내놓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해밀턴이 열심히 말했다.
40대 중반쯤으로 피부는 팽팽했지만 복부 비만이었고 대머리였다.
분홍색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은 해밀턴이 말을 이었다.
"내일 만나시면 강회장한테 확인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이봐, 벅."
피터슨은 자신의 경제 고문이며 피터슨 컨설팅 대표인 브루스 해밀턴을 애칭으로 부른다.
해밀턴의 시선을 받은 피터슨이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대일건설은 회사 가치와 매출액,
한국내 기업 순위에서도 국동건설 보다 월등히 앞서 있더구만,
그렇지?"
"그렇습니다. 보스."
"그리고…."
피터슨이 탁자 위에 놓인 서류를 집어 들더니 머리를 들고 창가에 앉은 장미를 보았다.
"장미, 침실에서 내 안경 좀 가져다 주지 않겠어?"
"네, 보스."
웃지도 않고 그렇게 대답한 장미가 재빠르게 일어나더니
침실에서 안경을 가져다 주었다.
안경을 쓴 피터슨이 서류를 보고 말했다.
"조사부에서 나온 서류인데 국동건설은 작년 말부터 강회장하고
장남이 주도권 싸움으로 법정에까지 다녀왔어.
강회장이 차남한테 경영권을 물려주려고 했기 때문이라는군."
"예, 저도 들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이라크의 사업을 잘 진행할 수 있을까?
공사 따내고 회사가 쪼개진다면 이 약속은 어떻게 할건데?"
"그, 그건…."
"아버지가 한 약속이라 난 모른다고 새 회장이 말하면 곤란해지지 않겠어?
대놓고 내놓으라고 할 수도 없고 말이야."
"그렇습니다. 보스."
"일단 내일 국동건설 강회장은 만나보기로 하자구."
"알겠습니다. 보스."
이마의 땀을 닦은 해밀턴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허둥대며 응접실을 나가자 피터슨이 머리를 돌려 장미를 보았다.
어느새 피터슨의 얼굴에 웃음기가 띄워져 있었다.
"장미, 재미없지?"
"아뇨."
TV에서 시선을 돌린 장미가 따라 웃었다.
볼륨을 낮춘 TV를 보는 시늉을 하고 있었지만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다 들었다.
피터슨이 앉아있는 소파 팔걸이 밑에 감춰놓은 소형 녹음기가 모든 대회를 다 녹음하고 있다.
손목시계를 본 피터슨이 장미에게 두 손을 벌렸다.
"장미, 이리와."
"보스, 오후 5시반 밖에 안됐어요."
정색한 장미가 나무래듯 말하자 피터슨이 피식 웃었다.
"보좌관 미팅은 6시야, 30분이나 시간이 있어, 장미."
"밤이 될 때까지 참아요, 보스."
"이봐, 10초인데 뭘 그래?"
그러더니 장미의 시선을 받고는 다시 피식 웃었다.
"장미, 난 너 같은 여자는 처음이야."
"그런 이야기는 당신한테서 100번도 더 들었어요."
"널 이제야 만나다니."
자리에서 일어선 피터슨이 장미 앞으로 다가와 섰다.
벌써 바지 앞쪽이 솟아올라 있었다.
"장미, 원피스는 치켜 올리고 팬티만 벗으면 되지않아?"
"팬티 입지 않았어요."
그러자 흥분한 피터슨이 그 자리에서 바지와 팬티를 끌어 내렸다.
그리고는 장미의 원피스를 들치더니 신음했다.
"으음."
장미를 소파 위에 엎드리게 한 피터슨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장미, 미안해. 하지만 다 너 때문이야."
짧은 시간에 대한 사과인 것이다.
장미는 심호흡을 했다.
그때 다시 강한의 얼굴이 떠올랐다.
요즘은 꼭 그런다.
차 안으로 들어온 박영무가 조 철에게 말했다.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조 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장례식장 건너편 주차장에는 차도 많았고 오가는 사람들로 혼잡했다.
밤이 될수록 더 늘어나서 한쪽에서는 술에 취한 문상객끼리 싸움까지 벌어졌다.
병원 영안실은 네 곳이 다 차있기 때문이다.
창밖으로 싸움판을 구경하던 조 철이 입맛을 다셨다.
"내일 아침 화장터까지 따라간다. 그러니까 교대 시간까지 긴장 풀지말고 감시하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하고 박영무가 다시 승합차 밖으로 나갔지만 짜증을 참고 있는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났다.
그 때 앞쪽 조수석에 앉아있던 고상규가 말했다.
"제 동생이 죽었을 때도 안왔던 놈입니다. 여기 올 리가 없습니다."
황택수의 장례식장에 배치된 인원은 총 25명.
그야말고 새나가지 않도록 겹겹이 둘러싸 놓았지만 이틀째 강한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의자에 등을 붙인 조 철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조 철도 같은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했다가는 당연히 긴장이 풀릴테니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나았다.
"형님, 마실 걸 좀 가져올까요?"
고상규가 반쯤 문을 열더니 물었다.
"피곤하실텐데 맥주나 좀 드시지요."
밤 11시반이 되어가고 있었다.
지금 이 시간이면 조철은 대부분 술을 마셨다.
룸살롱이나 가라오케, 나이트클럽 중 하나에 들어가 있을 때였다.
룸살롱 한 곳은 직접 운영하고 있고, 10여곳의 유흥업소는 관리를 맡고 있다.
괜찮은 아가씨는 당연히 조 철에게 1번 순위가 돌아왔으니 밤은 천국이었다.
밤만 되면 온 몸에서 활기가 솟아났는데 조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조 철이 잠자코 있는 것을 승낙으로 받아들인 고상규가 밖으로 나갔다.
룸살롱 지배인을 맡고있는 고상규는 눈치가 빠르다.
조 철은 입을 쩍 벌리고는 하품을 했다.
사흘째 강한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느라 집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옷도 차 안에서 갈아입었다.
그러나 보스 최광규의 강한에 대한 원한을 생각하면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는 것이다.
만일 조금이라도 조 철이 소홀했던 것이 밝혀지면 최광규는 칼부림을 하고도 남는다.
다시 한번 하품을 하고 난 조 철이 문득 옆에 놓인 휴대폰을 집었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오유진한테 전화를 하려는 것이다.
만일 보스 최광규가 오유진을 먼저 보았다면 틀림없이 애인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조 철의 가슴이 떨렸다.
룸살롱 '헤라'에서 오유진을 본 순간 조 철은 다급해져서 숨길 생각부터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날 밤에 오유진을 거처로 삼고있는 오피스텔로 데려와 동거를 시작했다.
그때 문이 열렸지만 조 철은 휴대폰의 버튼을 누른 채 돌아보지도 않았다.
고상규가 들어온 줄 알았기 때문이다.
버튼을 누른 휴대폰을 귀에 붙이고나서 머리를 든 조 철은 숨을 멈췄다.
바로 옆에 강한이 앉아 있었던 것이다.
"여보세요."
조철은 수화구에서 울리는 오유진의 맑은 목소리를 들은 순간에
두 눈과 콧잔등 한복판이 부서졌다.
"억."
입에서 외마디 신음을 뱉은 조철이 뒤로 넘어지면서 창에 뒷머리가 부딛쳤다.
강한은 쇠뭉치를 낀 주먹을 다시 치켜 들었다가 내렸다.
이미 조 철의 얼굴 한복판은 부서져 있었기 때문이다.
"어어."
충격으로 두 눈이 반쯤 튀어나온 조 철의 입에서 가늘고 긴 신음이 터져나왔다.
늘어진 채 조 철은 꿈틀거리고 있었지만 일어날 기력도 사라졌다.
강한은 조 철을 내려다 본 채 심호흡을 했다.
이놈은 황택수를 납치해간 현장 지휘자였을 것이다.
몸을 돌린 강한이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싸우던 문상객들이 몰려서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상복에 두건차림의 강한은 그들과 함께 도로로 나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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