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여자

45. 밤의 전쟁 (2)

오늘의 쉼터 2014. 7. 30. 10:09

 

밤의 전쟁 (2) 

 

 

 

 

 

"어어억!"

 

몸 안에서 불끈하는 느낌이 들면서 피터슨의 신음이 터졌다.

그 순간 장미는 시선을 들고 벽시계를 보았다.

초침이 19에 붙어있다.

그렇다면 12초, 최장 기록이다.

 

"어어어어…."

 

다시 긴 신음과 함께 피터슨의 육중한 몸이 늘어지면서 덮쳐왔다.

장미는 숨을 죽였다.

그러나 한마디는 했다.

 

"오우, 예스."

 

거기에다 '오마이 갓'을 이어주려다가 이번에는 참았다.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하면 아무리 피터슨이 정신없다고 해도 책 읽는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이번에는 12초, 그러나 장미의 몸 위에 늘어진 피터슨은 100m를 전속력으로 달려온 것처럼

목구멍에서 쇳소리까지 내면서 거친 숨을 뱉는 중이다.

장미도 가만 있을 수가 없었으므로 따라서 가쁜 숨소리를 냈다.

하지만 피터슨의 몸이 점점 더 무거워지는 바람에 저절로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오, 달링."

 

그러나 장미의 립 서비스는 계속됐다.

 

"너무 좋았어요. 자기."

 

"정말이야?"

 

겨우 머리를 든 피터슨의 얼굴에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이, 이번은 좀 길었지?"

 

"그래요, 허니."

 

"얼, 얼마나 됐지?"

 

"너무 길어서 난 모르겠어."

 

"몇 분이나 됐나?"

 

그 순간 기가 막힌 장미가 입을 쩍 벌렸다가 닫았다.

피터슨이 농담하는 줄로 안 것이다.

지금까지 피터슨과 수십번 섹스를 했지만 시간에 대한 이야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응? 2분? 3분?"

 

피터슨이 다시 물었을 때 장미는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조루가 하고 나서 시간을 잊어버린 것이다.

피터슨 뿐만 아니라 김명준도, 이복만도 나중에는 다 그랬다.

1초가 1분같고 3초가 3분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장미가 가쁜 숨을 뱉으며 대답했다.

 

"모르겠어, 난 10분쯤은 된 것 같아."

 

"처음에는 1분도 안됐지?"

 

'1분이 뭐냐? 10초도 안됐다'고 하려다가 장미는 입을 다물었다.

이것이 진짜 기술이다.

남자를 절정으로 올려 놓으면서 시간을 잊게 만드는 기술,

짧은 시간에 대한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면 고수가 아니다.

겨우 호흡을 가눈 피터슨이 몸을 옆으로 굴려 장미에게서 떨어졌다.

섹스를 마친 후에 남자는 여자한테서 얼른 도망치려는 습성이 있다.

그런데 장미는 다르다. 사정을 하고 나서도 남자는 더 남아있고 싶어서 안달을 한다.

지금 피터슨도 마지못해 몸을 떼면서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고 10분도 되지 않아서 다시 덤벼들 게 뻔하다.

 

"로즈, 나하고 같이 가자."

 

그때 불쑥 피터슨이 말했으므로 장미는 얼굴에 웃음을 띄웠다.

벌써 열 번도 더 들은 말이다.

피터슨이 손을 뻗어 알몸인 장미의 허리를 감아 안았다.

 

"로즈, 내가 널 공주처럼 모실테니까. 응?"

 

피터슨은 장미를 로즈라고 부른다.

장미가 자신의 이름을 그렇게 풀이해줬기 때문이다.

장미가 피터슨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쓸었다.

 

"가끔 만나는게 나아요."

 

손을 아래로 내린 장미가 피터슨의 남성을 움켜쥐었다.

 

"그게 우리 서로한테 좋아요."

 

장미가 늘어진 남성을 몇 번 건드리자 곧 바람 빠진 튜브로 변했다.

 

"또."

 

장미가 다시 피터슨을 자극하며 웃었다.

 

"로즈, 넌 마녀야."

 

피터슨이 장미의 허리를 당겨 안으면서 말했다.

 

"너같은 여자는 정말 처음이야."

 

장미의 시선이 다시 벽시계로 옮겨졌다.

밤 10시22분17초가 되어 있었다.

 

 

 

 

 

다음날 오전 9시 반, 대일건설 회장 유명철은 회장실에서 두 사내와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유명철 옆에 상반신을 반듯이 세우고 앉은 하용식 전무의 얼굴은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아침부터 찾아온 두 손님은 국정원 경제처장 강재일과 보좌관 이시훈이다.

강재일과 하용식은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인사를 마친 뒤 유명철이 고개를 들어 강재일을 보았다.

아침부터 갑자기 찾아온 용건을 말하라는 표시였다.

대일건설은 업계 최선두로 매출액 기준으로 봐도 국내 12위 안에 드는 대기업이다.

장관도 미리 시간 약속을 하고 만나왔는데 국정원의 국장급 간부가 예약도 하지않고

찾아온 것이다.

 

 '어디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보자'

 

하는 표정이 유명철의 표정에 배어나와 있었다.

 

"이번에 방한한 피터슨과의 문제 때문입니다."

 

그렇게 강재일이 운을 뗐어도 유명철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눈만 두어번 깜박였을 뿐이다.

강재일이 말을 이었다.

 

"좀 곤란한 일이 발생할 것 같아서요."

 

이렇게 말하고는 강재일이 옆에 앉은 보좌관 이시훈을 보았다.

그러자 이시훈이 가방에서 소형 녹음기를 꺼내 탁자 위에 놓더니 버튼을 눌렀다.

모두의 시선이 녹음기에 모였고, 곧 녹음된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그런데 영어다.

그 순간 유명철이 퍼뜩 머리를 들고 하용식을 보았다.

피터슨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하용식은 이미 눈을 치켜뜨고 듣는 중이었는데 말이 잠깐 끊겼을 때

이시훈이 버튼을 눌러 녹음기를 끄더니 말했다.

 

"통역해 드리시지요."

 

그러자 하용식이 이마의 진땀을 손등으로 닦고 나서 통역했다.

"경쟁이 치열해서 절대로 지지 않으려고 한다는 겁니다.

손해가 날 망정 경쟁사에 오더를 뺏기지 않는다는군요."

통역이 끝나자 이시훈이 다시 버튼을 눌렀고, 다른 사내의 목소리가 울렸다.

해밀턴이다.

말이 끝났을 때 이시훈은 녹음기를 정지시켜 하용식이 통역하도록 했다.

 

"대단한 성과입니다. 보스."

 

그때 강재일이 입을 열었으므로 이시훈은 녹음기에서 손을 뗐다.

정색한 강재일이 유명철을 똑바로 보았다.

 

"그 전에 피터슨과 상담한 내용도 다 녹음되어 있습니다.

비자금 1000억을 조성해서 주기로 하셨더군요."

 

"저기, 그…."

 

한국말을 주고 받는데도 유명철이 어물거리면서 하용식을 보았다.

눈 주위가 상기되어 있었다.

그때 강재일이 말을 이었다.

 

"500억은 계약서 작성하고 나서 지급하고 나머지 500억은 공사 시작할 때

지급해주기로 하셨구요."

 

이제 유명철은 입을 꾹 다물었고 강재일만 말을 계속했다.

 

"담보 10억달러를 내놓고 말입니다."

 

"도대체…."

 

마침내 유명철이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이게 어떻게 해서 나왔습니까?"

 

"지금 이 테이프가 어떻게 나왔는지 따질 상황입니까?"

 

헛웃음을 웃고 난 강재일이 금방 정색하고 유명철을 보았다.

 

"이 테이프가 검찰에 들어가면 회장님은 외화 밀반출 시도를 한 증거가 잡히게 돼요.

무려 1억달러나."

 

"그게 다 국가를 위해서…."

 

"국가 좋아하시네."

 

불쑥 그렇게 뱉었던 강재일이 입맛을 다시더니 외면하고 말했다.

 

"실례했습니다. 제가 화가 나서 그만…."

 

그리고는 똑바로 유명철을 보았다.

 

"녹음 테이프에서 피터슨이 말한대로 회장님은 농락당하신 겁니다."

 

"40억달러 공사요. 잘 하면 다 떼고도 5억달러는 남습니다."

 

유명철이 안간힘을 쓰듯이 말했을 때 강재일이 머리를 저었다.

 

"포기하세요.

피터슨한테는 다른 핑계를 대고 말입니다.

이 상황에서는 대일건설이 피터슨과 제휴할 수 없습니다.

이 테이프가 있는 한 말입니다."

 

 

 

 

 

 전화기를 귀에 댄 해밀턴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니 뭐라구요? 못 오신다구?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 순간 장미는 옆에 앉은 피터슨의 얼굴이 굳는 것을 보았다.

해밀턴은 지금 대일건설 하용식 전무의 전화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 때 잠자코 듣기만 하던 해밀턴이 전화기를 내려놓고 피터슨을 향해 머리를 돌렸다.

 

"대일건설이 이번에 우리하고 같이 일하지 못하게 됐다는군요.

오늘 아침에 갑자기 세무감사를 하겠다는 국세청 통보를 받았답니다."

 

"세무감사?"

 

피터슨이 건조한 목소리로 되묻자 해밀턴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상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한국은 대기업들이 갑자기 세무감사를 받긴 합니다."

 

"대일도 문제구만."

 

"보스, 어떻게 할까요?"

 

해밀턴이 묻자 피터슨은 눈을 치켜떴다.

 

"뭘 어떻게 해?"

 

둘의 시선이 3초쯤 붙었다가 떼어졌다.

어젯밤 해밀턴은 대일건설과의 제휴 전야제 명목으로 한국에 데려온

수행원 20여명을 다 끌고나가 술을 마셨다.

서울의 특급 룸살롱에서 마시는 바람에 술값만 2만불이 넘게 나왔다.

그 때 다시 해밀턴이 입을 열었다.

 

"대일건설이 힘들다면 국동건설을 부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국동은 지금도 우리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피터슨이 눈만 깜박였으므로 해밀턴이 정색했다.

 

"보스, 국동도 같은 조건입니다. 우리가 손해볼 건 없습니다."

 

그러자 피터슨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좋아, 연락해."

 

해밀턴이 국동건설에 연락하는 동안 장미는 주방에서

주스를 따라와 피터슨과 해밀턴의 앞에 놓았다.

이윽고 국동의 부사장 강동수와 전화 연결이 됐을 때 방안엔

다시 긴장감이 흘렀다.

간단하게 인사를 마친 해밀턴이 바로 용건을 말했다.

 

"부사장님, 어떻습니까? 우리하고 계약할 준비는 됐습니까?"

 

그러자 스피커로 연결된 강동수의 목소리가 방안에 울렸다.

 

"해밀턴씨, 유감입니다.

우린 그 정도까지 내놓고 함께 일할 수는 없습니다."

 

그 순간 장미는 피터슨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는 것을 보았다.

당황한 해밀턴이 먼저 피터슨의 눈치부터 살피고 나서 말을 이었다.

 

"아, 그래요? 유감입니다.

우린 국동에 호의를 베푼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장미는 강동수의 말에 웃음기가 섞여있는 것을 알았다.

미국에서 석사 학위까지 받은 강동수의 영어는 유창했다.

그때 피터슨의 눈짓을 받은 해밀턴이 물었다.

 

"부사장님, 그럼 국동건설의 조건이 있습니까?"

 

"동등한 제휴라면 고려해 보지요."

 

"동등한 제휴라니요?"

 

"비자금 없이, 그리고 담보도 없는 동등한 관계 말입니다."

 

"허어."

 

기가 막힌 듯 해밀턴이 턱을 치켜들고 웃더니 강한 톤으로 말했다.

 

"부사장, 우릴 무시하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이건 예의에 어긋나는 겁니다."

 

"우리 국동건설이 경영권 분쟁 중이긴 하지만 세무관계는 깨끗합니다.

 

우리와 제휴하면 당신들도 깨끗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을텐데 안타깝습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해밀턴이 대놓고 투덜거렸을 때 피터슨이 손짓을 했다.

그러자 전화기를 손바닥으로 막은 해밀턴에게 피터슨이 말했다.

 

"다시 연락하겠다고 해. 우리가 검토하겠다면서 말이야."

 

의아한 표정을 지은 해밀턴이 강동수에게 그렇게 말하고 통화를 끝냈을 때 피터슨이 말했다.

눈을 치켜뜨고 있다.

 

"국동건설은 대일건설이 곧 세무감사를 받는다는 걸 알고 있는거야."

 

 

 

 

 

 

 

응접실로 안내된 강한이 소파에 앉은 지 1분도 안돼

회장 강성호와 부사장 강동수가 안으로 들어섰다.

둘 다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먼저 다가온 강동수는 강한의 손부터 잡았다.

 

"잘 되는 것 같습니다."

 

마주보고 앉았을 때 강동수가 말했다.

 

"저녁 때 전화가 왔는데 내일 오전에 우리 조건대로 계약을 하자는군요."

 

그러자 강성호가 입을 열었다.

 

"내일 계약이 되면 약속한 대로 사례비 2백억을 드리지요."

 

"감사합니다."

 

강한이 앉은 채로 머리를 숙여 인사하자 강성호가 환한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대일건설이 손을 떼게 되었는지 말해줄 수 있습니까?"

 

"녹음테이프를 국정원과 요직에 있는 분께 보냈기 때문입니다."

 

"으음."

 

긴장한 강성호, 강동수 부자가 시선을 주었다.

다음 말을 기다리는 표정이었다.

 

"대일건설과 피터슨의 상담 내용이지요.

비자금 1천억 지급 방법 등 범법 사실의 증거물을 건넨 거지요."

 

둘의 시선을 받은 강한이 말을 이었다.

 

"국정원 경제처에 테이프를 보낸 것은 국세청 감사보다

강력한 견제 효과가 있을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외화 밀반출로 반국가행위가 된다는 경고를 하려는 의도였지요."

 

"그렇지."

 

맞장구를 친 강성호가 강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요직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 듣고 싶은 눈치였다.

그러나 강한은 입을 다물었다. 요직은 바로 4선의원 이복만이다.

아직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복만은 테이프를 듣더니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꼴로 노발대발했다.

테이프를 받은 국정원 측이 대일건설이 피터슨과의 제휴를 거부하는 것으로

사건을 덮은 것도 이복만이 손을 썼기 때문이다.

국정원 입장에서도 그만하면 할 일은 충분히 한 셈이었다.

 

"능력이 뛰어나시오."

 

강성호가 말하더니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강한을 보았다.

 

"거기, 피터슨 옆에 있던 분하고 동업자라고 하셨지요?"

 

"예, 그렇습니다."

 

외면한 채 대답한 강한이 심호흡을 했다.

강성호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 지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도 녹음 테이프는 장미가 보내준 것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피터슨이 우리 조건을 순순히 받아들인 동기는 뭐지요?

그것도 몇시간만에 말입니다."

 

다시 강성호가 묻자 강한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것도 이복만의 영향력이다.

세계적 기업가인 피터슨이 한국의 기업과 권력의 실상을 모르겠는가?

피터슨은 오후에 4선의원인 이복만의 전화를 받았던 것이다.

 

"요직에 계신분이 국동건설을 추천해 주셨지요."

 

강한이 말하자 강동수는 입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그리고는 강한의 입을 바라보다가 단념한 듯 긴 숨을 뱉었다.

 

"대단하십니다."

 

다시 강성호가 칭찬했는데 정색한 표정이었다.

 

"정말 놀랍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상반신을 앞으로 내밀고는 강한을 보았다.

 

"이왕 이렇게 큰 일도 처리해 주셨으니 내 가정사를 부탁해도 될까요?"

 

그러더니 강한을 쏘아보는 두 눈이 금방 번들거렸다.

물기에 젖은 것이다.

그러자 강동수가 머리를 숙였고 강성호의 말이 이어졌다.

 

"알고 계시겠지만 내 큰 놈하고 나하고 법정 소송중입니다.

한마디로 경영권 싸움이죠."

 

이를 악물었다가 푼 강성호가 똑바로 강한을 보았다.

 

"내가 부덕해서 이렇게 세상 웃음거리가 되고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이 일을 빨리 끝내고 싶어서 그럽니다."

 

 

 

 

 

 

 

 

"6백만불 받았어."

 

던지듯 말한 장미가 소파에 등을 묻고는 한쪽 다리를 꼬고 앉았다.

그러자 가운이 젖혀지면서 하얀 허벅지에 팬티까지 살짝 드러났다.

강한은 길고 부드럽게 유연한 곡선을 그린 다리에서 시선을 뗐다.

이곳은 천안 교외의 안가였다. 피터슨과 헤어진 장미가 돌아온 것이다.

방금 샤워를 하고 나온 장미가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아 올리면서 말을 이었다.

 

"6박 7일의 섹스로는 아마 세계 신기록일걸?"

 

피터슨은 전용 비행기로 한국을 떠났는데 표정이 밝았다.

공항에서 한 인터뷰 장면이 조금 전에 TV로 생방송됐다.

피터슨은 국동건설과 제휴해 이라크 재건 사업에 참여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잊지못할 추억을 만들고 간다고 덧붙였다.

장미를 가리킨 것이었다.

 

"국동에서 2백억 받았어."

 

강한이 외면한 채 말하자

장미가 발을 흔들어 발끝에 걸려있던 슬리퍼를 떨어뜨렸다.

 

"이젠 좀 쉬어야겠어."

 

장미가 말했다.

 

"수배자 신세라 외국에 나갈 수는 없으니까 경치좋은 바닷가나 찾아 봐."

 

"그러지."

 

머리를 끄덕인 강한이 정색하고 장미를 보았다.

 

"남해안쪽 섬이 어때? 섬을 통째로 빌리든지 사든지 할테니까."

 

"맘대로."

 

하더니 장미가 강한을 마주보았다.

 

"왜? 같이 가려구?"

 

"싫으면 관두고."

 

"사내답게 말해."

 

장미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같이 가고 싶다면 가고 싶다고 말하란 말이야."

 

"그래, 같이 가고 싶어."

 

여전히 정색한 강한이 말을 이었다.

 

"섬을 알아보고 준비하는데 며칠 걸릴거야.

그동안 여기서 처리할 일도 있고."

 

"빨리 준비해."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장미가 말했다.

 

"씻어도 씻어도 몸에 붙은 오물이 떼어지지 않는 느낌이야.

어서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싶어."

 

"네가 괜찮다면."

 

강한이 똑바로 장미를 보았다.

 

"오늘밤 네 방으로 가도 될까?"

 

"웬일이래?"

 

피식 웃은 장미가 다리를 내리고는 가운 깃을 여미었다.

그러더니 발에 슬리퍼까지 꿰어 신었다.

몸을 반듯이 세운 장미가 눈을 가늘게 뜨고 강한을 보았다.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아니."

 

머리를 저은 강한이 말을 이었다.

 

"이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때는 무슨 때? 꼴리면 하는거지."

 

"넌 내가 널 좋아하고 있다는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어."

 

"또 춘향전 나오네."

 

"내가 참고 있다는 것도."

 

"참긴 뭘 참아. 딴 데서 회포 풀었으면서."

 

"네가 오물이 낀 기분이 된다는 것도 때가 됐다는 증거야."

 

"정초도 아닌데 역술인이 출현하셨군."

 

"우리가 오늘 밤 같이 지나고나면 기분이 좀 나아질거야."

 

"자신있니? 너 내 구조가 달라졌다는걸 알잖아?"

 

"난 안들어갔잖아?"

 

"10초 넘으면 내가 백만원씩 줄 게."

 

"그런다고 내가 주눅들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선 강한이 장미에게 다가가더니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는 다리 한쪽을 들어 슬리퍼를 벗겼다.

발목이 잡힌 장미의 발가락이 막 잡은 고기처럼 꿈틀거렸다.

장미는 놀란듯 눈만 크게 떴고 그 순간 강한이 발가락에 입술을 댔다.

그러자 장미의 발가락이 잔뜩 안으로 굽혀졌다.

어느덧 얼굴도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계속>

'소설방 > 강안여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47. 밤의 전쟁 (4)  (0) 2014.07.30
46. 밤의 전쟁 (3)  (0) 2014.07.30
44.밤의 전쟁 (1)  (0) 2014.07.30
43. 대작전 (5)  (0) 2014.07.29
42. 대작전 (4)  (0) 2014.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