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대작전 (3)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은 김희선이 입을 열었다.
"미국에 있는 로이 피터슨의 수행 비서가 주선자야.
켐벨이라고 최측근이지. 그 놈이 채홍사 역할까지 다 하는거야."
강한과 장미는 듣기만 했고 김희선의 말이 이어졌다.
"켐벨에게 선을 대려고 할리우드의 바바라라는 거물한테 접근했어.
바바라는 배우 출신인데 지금은…."
"뚜쟁이가 되었구만."
장미가 말을 받았으나 김희선은 못들은 척 말을 이었다.
"바바라는 피터슨에게 여러번 여자를 공급했어. 물론 켐벨을 통해서 말이지."
"그래서요?"
짜증난 듯 장미가 이맛살을 찌푸리고 물었다.
소양강이 내려다보이는 강가의 모텔 커피숍에서 셋이 만나고 있다.
햇살을 받은 강물 표면이 고기 비늘처럼 반짝였다.
김희선이 다시 말했다.
"그 바바라한테 선을 댄 것이 나하고 형님 동생하는 오여사야.
걘 서울에서 잘 나가는 요정을 운영하다가 15년쯤 전에 미국으로 이민갔지."
"그럼 거기서는 뚜쟁이 짓으로 먹고 사는구만."
"바바라한테는 처음이야."
"도대체 뚜쟁이가 몇 명이야?
오여사, 바바라, 켐벨, 그리고 여기 계신 분하고."
손가락을 넷 꼽은 장미가 눈을 크게 떴다.
"넷이나 되네."
"그러니 내가 돈이 얼마나 들겠니?"
김희선이 눈을 흘겼다.
"내가 오여사한테 10만불 보냈다. 내 몫은 이미 그쪽에 다 뿌려진거야."
"그러니까 돈 더내란 말이에요?"
싸늘해진 얼굴로 장미가 묻자 김희선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번에는 20% 받아야겠다."
"안돼."
장미가 한마디로 거절했을 때 잠자코 듣기만 하던 강한이 말했다.
"내 몫에서 10% 드리죠."
강한이 눈을 치켜든 장미를 향해 웃어보였다.
"그래, 보너스도 다 네가 먹어."
"그럼 그렇게 알고 갈테니까."
가방을 챙긴 김희선이 생각났다는 듯이 머리를 들고 강한을 보았다.
"참, 매스컴을 피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안가를 준비해야 해.
서울 근처의 별장이 낫겠는데."
김희선이 웃음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김박사처럼 다루면 안될거야.
협박하면 둘 다 드러나게 되거든.
피터슨은 세계적 명사라 아주 위험해. 경비도 삼엄하고."
자리에서 일어선 김희선이 강한을 향해 한쪽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럼 5일후야. 준비들 잘 해놓고 있어."
김희선이 커피숍 밖으로 나갔을 때 장미가 쓴웃음을 지었다.
"저 할망구가 다 알고 있었네.
우리가 김가한테서 5억5000만원 뜯어낸 거 말이야."
강한은 잠자코 손목시계를 보았다.
오후 3시반이다.
그때 장미가 상반신을 펴더니 강한을 똑바로 보았다.
"이봐, 방 하나 빌려. 전망 좋은 데로."
시선을 둔 강한에게 장미가 말을 이었다.
"좀 쉬었다가 가자. 3시간쯤."
그러더니 강한의 표정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왜 그렇게 쪼는거야? 겁나니?"
"……."
"넌 내가 하는 걸 바로 코 앞에서도 본 작자야.
난 도무지 네가 남자 같지가 않으니까 쫄지마."
그때 강한이 자리에서 일어섰으므로 장미는 얼굴을 굳혔다.
강한이 커피숍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5분쯤 후였다.
장미는 강을 내려다 보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표정이 차분했다.
다가선 강한이 입을 열었다.
"가자."
장미가 시선도 돌리지 않았지만 강한은 말을 이었다.
"방 얻어놨어. 전망 좋은 곳으로."
그러자 장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강한이 몸을 돌렸고 장미가 뒤를 따랐다.
방에 들어선 장미는 가방을 소파 위로 내동댕이쳤다.
그러더니 베란다로 다가가 유리문을 열어 젖혔다.
거칠게 여는 바람에 소리가 크게 났다.
그러자 강바람이 휘몰려 들어와 커튼이 펄럭였다.
펄럭이던 커튼 자락이 장미의 상반신에 감겼다.
장미가 떼어내려고 했지만 엉킨데다가 서둘기까지 해서 겨우 풀려났다.
방 안으로 한발짝 물러선 장미가 씩씩거렸다.
얼굴이 붉어졌고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그때 강한이 다가와 베란다의 유리문을 다시 닫았다.
그러자 방안이 조용해졌고 커튼도 늘어졌다.
강한이 장미를 똑바로 보았다.
시선이 부딪친 순간 장미는 외면했다.
둘은 그렇게 선 채 3초쯤 가만 있었다.
그리고는 강한이 장미에게 한발짝 다가가 섰다.
장미는 시선을 옆쪽으로 돌린 그 자세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강한이 검지를 구부리고는 장미의 턱을 조심스럽게 받쳐 올렸다.
그 순간 턱이 들린 장미가 눈을 감았다.
강한은 머리를 숙였다. 장미의 입술이 천천히 다가왔다.
강한의 입술이 장미의 입술에 닿았다.
차가웠다.
그러자 조금 압박했을 때 장미의 입술이 열렸다.
강한은 장미의 허리를 두 팔로 감아 안았다.
그때 장미의 벌려진 입술 사이로 빠져나온 혀가 강한의 입 안으로 들어왔다.
달콤하고 뜨겁고 젤리처럼 말랑한 촉감.
그러나 강한 탄력으로 강한의 혀를 비비고 꼬고 밀어제꼈다.
어느덧 장미의 두 손은 강한의 목을 감싸안고 있었다.
강한은 장미의 입술을 차근차근, 그리고 여유있게 빨았다.
장미가 뜨거운 혀를 재촉하듯 비틀었고 앙탈을 부리듯 밀었지만 다 받아들였다.
그러자 장미의 숨소리가 가빠지기 시작했다.
얼굴은 붉게 상기되었고 두 눈을 크게 떴지만 초점이 잡혀있지 않았다.
"아, 자기야."
장미가 허덕이며 말했다.
"이런 느낌 처음이야."
그러나 장미의 다음 말은 강한의 입술에 의해 닫히고 말았다.
둘은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나 온몸이 빈틈없이 붙었고 장미의 한쪽 다리는 강한의 다리에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그때 강한이 장미의 입술에서 입을 뗐다.
그리고는 이마에 키스했다.
마치 여왕이 키스를 허락해준 것처럼 정중했다.
다음에는 눈에,
어느덧 강한의 두 손이 장미의 양쪽 볼을 감싸안고 있었다.
장미는 눈을 감았다.
장미의 양쪽 눈에 키스를 한 강한의 입술이 콧잔등으로 내려왔다.
콧잔등과 코 밑쪽,
그리고 다시 윗입술에 입을 맞췄을 때였다.
장미의 감겨진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쏟아졌다.
이제 장미는 두 손으로 강한의 허리를 감아 안고 있었다.
잠깐 멈칫했던 강한이 장미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입술로 핥았다.
그때 였다.
장미가 강한의 가슴을 두 손으로 밀면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만."
강한의 시선을 받은 장미가 웃었다.
부드러운 웃음이었다.
그러나 다시 두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쏟아졌다.
"이제 나에 대한 네 맘 알겠어."
장미가 차분하게 말하더니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러니까 이젠 그만해."
"커피 마실래?"
몸을 돌린 강한이 묻자
장미는 유리문 옆쪽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바람이 겁나는지 유리문은 열지 않았다.
"응, 설탕 넣지말고."
모텔 방이었지만 커피 포트에다 여러 종류의 커피가 준비되어 있었다.
강한이 커피를 만드는 동안 장미는 강을 내려다 보았다.
"참 좋다."
장미가 맑은 목소리로 감탄했다.
"좋긴 뭐가 좋아."
등을 보인 채 강한이 투덜거렸다.
"너, 내가 7초쯤 걸릴까 봐 미리 그만 두라고 한거지?"
그때 장미가 탁자위에 놓여있던 휴지통을 집어 강한에게 던졌다.
휴지통은 정통으로 강한의 등에 맞고 떨어졌다.
그때 강한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나도 네 눈물로 네 맘을 알았다."
황택수가 돌아온 것은 납치된 지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동안 황택수의 누나 황은숙이 실종 신고를 했고,
박용수는 동료 형사와 함께 두 번이나 최광규를 찾아갔는데
마지막에는 언론에 폭로하겠다고 최후 통첩을 했다.
황택수는 최후 통첩을 받은 다음 날 사당동 지하철 역에서 황은숙에게 전화를 했다.
황은숙과 박용수가 지하철 역으로 달려 갔을 때 황택수는 의자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더라고 했다.
"오락가락해."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키면서 박용수가 길게 숨을 뱉었다.
우선 황택수를 황은숙의 집에다 데려다 놓은 박용수가 경찰서에서 기다리고 있던
강한과 만난 것이다.
"외상은 없었다. 맞았느냐고 물어도 머리만 흔들고…, 그런데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야."
박용수가 눈을 치켜뜨고 강한을 보았다.
"약물 검사도 해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정신이 저 상태여서 제대로 진술을 받을 수도 없을 것 같아."
"가만 안둘 겁니다."
강한이 웅얼거리듯 말했지만 박용수는 알아 들었다.
입맛을 다신 박용수가 머리를 저었다.
"최광규가 결국 황택수 풀어 놓은 것 봐라.
요즘은 제멋대로 하다가 골로 가는 수가 있어, 법에 맡기도록 해."
"최광규를 법으로 처리하려고 세금 포탈하고 뇌물 먹인 리스트를 확보해서 고발했더니
변호사가 손을 들더군요."
눈만 크게 뜬 박용수를 향해 강한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거물들하고 엮여져 승산이 없다는 겁니다. 변호사도 거물급인데 겁이 난거죠."
"그래서?"
갈라진 목소리로 박용수가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최광규 회사 서류를 빼내 저한테 넘겼던 사람도 황택수 꼴이 되었습니다."
"……."
"최광규한테는 법보다 주먹이 더 효과적입니다. 형님."
"인마, 최광규 조직은 수백명이야. 보스급만 해도 수십명이다."
"하지만 최광규 한 놈만 자르면 다 끝납니다. 다른 놈들 한테는 관심 없습니다."
"안돼."
정색한 박용수가 머리를 젓더니 외면한 채 말했다.
"기다려."
"민이까지 그렇게 만들어서 돌아가신 아버지한테 면목도 없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강한이 말을 이었다.
"어쨌든 택수가 저 꼴로라도 돌아온 건 형님 덕입니다. 형님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난 내가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박용수가 따라 나오면서 강한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자주 연락해라."
박용수와 헤어진 강한이 이날은 백용철이 운전하는 차에 올랐다.
차가 경찰서를 빠져 나갔을 때 백용철이 말했다.
"택수 병원에다 입원시켜야겠다고 누님이 말하던데요."
"오늘 입원시킬 거야."
외면한 채 강한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상태까지 둘이 잡혔다가 풀렸났구만."
따지고 보면 강한은 동생 강민이 잡히지 않으려고 도망치다가 죽었으니 가장 큰 피해자였다.
한동안 말없이 운전을 하던 백용철이 입을 열었다."
"아예 죽여 없앱시다."
가라앉은데다 억양도 없는 말이어서 잠꼬대처럼 들렸다.
백용철의 말이 이어졌다.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어요."
"기다려."
"기다리다가 다 죽게요? 그놈부터 처리하고 다른 일 합시다."
백용철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감정이 살아났다.
백미러로 뒷좌석의 강한을 쏘아본 백용철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처리할게요. 방법을 생각했는데 엽총 하나만 구하면 돼요.
그럼 그놈이 아무리 경호를 많이 달고 있어도 한방이면 끝납니다."
눈을 부릅뜬 백용철이 강한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래서 뭐라고 했어?"
장미가 묻자 강한은 입맛부터 다셨다.
"내가 처리한다고 하고 겨우 달래 놓았어."
강한은 장미한테 백용철이 한 이야기까지 말해준 것이다.
이번에 구입한 여주 근처의 안가 안이었다.
창 밖으로 숲이 무성한 골짜기와 가로로 뻗은 흰 국도가 보였다.
본래 교회가 세운 양로원 건물이어서 2층 건물의 면적은 2백평 가까이 되었고,
창고에 식당까지 따로 있었지만 강한이 매입했을 때는 잡초가 무성한 폐가였다.
몇 년째 빈 건물로 방치되어 있던 것을 싼값에 매입한 것이다.
한동안 창밖의 골짜기를 바라보던 장미가 다시 물었다.
"그래, 어떻게 할거야?"
"그놈하고 나하고는 타협할 여지가 없어. 둘 중 하나가 없어져야 끝나는 일이야."
최광규 또한 정부 한미연을 납치당한데다 집안에 쌓아둔 엄청난 액수의 비자금을
강탈당한 입장이다.
강한보다 더 절치부심 하고 있을 것이었다.
장미의 시선을 받은 강한이 말을 이었다.
"박형사 말대로 법을 이용해야 해. 아무리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고 하지만 말이야. 솔직히."
강한이 머리를 돌려 장미를 보았다.
"최광규는 주먹으로 처리하기에는 너무 거물이야.
그래서 다 드러난다구.
그러니까 법 밖에 방법이 없어."
"한심하군."
어깨를 늘어뜨린 장미가 두 다리를 길게 뻗었다.
그러자 미끈한 종아리가 드러났고 발가락 끝이 밑쪽으로 잔뜩 굽혀졌다.
창가의 의자에 앉은 장미는 헐렁한 원피스 차림이었는데 맨발이다.
"이봐, 하나라도 확실하게 처리해."
장미가 정색하고 말했다.
"네가 네 주변 수습을 못하면 내가 집중할 수가 없단 말이야."
장미의 시선을 받은 강한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날 소양강가 모텔에서의 일이 있고나서 둘 사이는 긴장관계가 형성되어 있었지만
외면상으로 변화는 없다.
강한이 입을 열었다.
"이번에 피터슨 일을 처리하고 나서 그 놈을 잡기로 하지."
"어떻게 처리할 건데?"
"법과 주먹을 병행해야 할 것 같아."
"피터슨 이야기를 묻는 거야."
"100만달러에 알파가 있다고 했으니까 그 알파를 노리는 거지."
"노려? 기대한다는 표현을 안쓰는군."
"난 거지가 아냐."
"우리라고 해야 맞아."
"그래."
정색한 강한이 머리를 끄덕였다.
"우리는 알파를 노린다."
"방법을 말해."
"이번에 피터슨이 한국에 오는건
이라크 재건 사업에 한국 건설업체와 컨소시엄을 형성하기 위해서야."
그러자 이번에는 장미가 눈만 깜박였고 강한의 말이 이어졌다.
"한국군이 이라크에 파병된 대가로 한국은 바그다드 재건사업에 참여할 자격을 받았어.
그것이 약 87억달러, 8조7천억 사업이야."
"……."
"피터슨이 한국 건설업체하고 컨소시엄을 형성하면 아마 영향력이 더 강해질거야.
미국측 지분을 피터슨이 갖고 있을 테니까 말야. 한미 공동사업이 되는 거지."
"많이 공부했네."
"인터넷에 다 나와있어."
장미의 말을 자른 강한이 정색했다.
"피터슨과 손을 잡으려고 국내 대형 건설업체는 필사적으로 접근할 거야.
아마 로비 자금도 수백억씩 준비했겠지."
"그것이군."
이제는 지겹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장미가 강한의 말을 잘랐다.
"그 알파는 건설회사에서 우리가 받자는거야?"
"그렇지."
강한이 얼굴을 펴고 웃었지만 장미는 찡그렸다.
"이번에는 기록 경신을 못하겠는데. 오히려 그 반대가 되어야 할 것 같아. 안그래?"
그러나 당연히 강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차가 옆에 멈춰서자 양민정은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러나 운전석 반대편에 서 있었기 때문에 차 안은 보이지 않는다.
창에 짙게 선팅이 되어 있어서다.
강한이 그쪽 유리창을 내리자 양민정과 시선이 마주쳤다.
"타."
강한이 입만 벌리고 말하는 시늉만 했어도 양민정은 문을 열더니 옆자리에 앉았다.
바깥 공기에 섞여 옅은 향내가 맡아졌다.
강한이 잠자코 차를 발진 시켰을 때 양민정이 차 안을 둘러보는 시늉을 하면서 물었다.
"이거 벤츠죠?"
강한은 머리만 끄덕였다.
차를 본 양민정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강한이 차를 가지고 오겠다고 했을 때 양민정은 무슨 차인지 묻지 않았던 것이다.
벤츠도 여러 종류다.
중고시장에서 500만원이면 살 수도 있고,
지금 강한이 탄 벤츠 500은 수억이다.
그러나 양민정은 더이상 묻지 않았다.
벤츠 마크만 보고 놀랐을 뿐이다.
이것이 보통 사람들의 반응이다.
차는 실용가치보다 아직도 부의 상징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이윽고 차는 톨게이트를 향해 속력을 내어 달려 나갔다.
평일 오전 10시쯤이어서 고속도로 하행선은 통행량이 적은 시간대였다.
이날은 양민정과 실버타운 예정지로 가계약이 되어있는 충북 영동 근처의 임야를
둘러보기로 한 것이다.
복지연구소 소장 오성열은 요즘 신바람이 났다.
하루에 잠도 4시간 이상은 자지 않는다고 했다.
오성열은 정부 당국의 허가까지 받아냈을 뿐만 아니라 법인 등록까지 마쳤다.
한달만에 그 복잡한 수속을 마친 것이다.
이제는 공사만 남았다.
양민정은 오성열을 따라 세번이나 예정지를 다녀갔기 때문에 지리를 잘 알았다.
그동안 오성열이 몇번이나 강한에게 모시고 가겠다면서 연락했지만
미루다가 오늘 양민정과 보러가게 된 것이다.
오성열은 설계회사와 약속이 있어서 동행하지 못했다.
차가 톨게이트를 빠져 나갔을 때 양민정이 말했다.
"사장님 회사 구경하고 싶어요."
놀란 강한이 머리를 돌려 양민정을 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양민정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사장님 일하시는 거 보고 싶어서요."
"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서?"
"아뇨."
머리까지 저은 양민정이 정색했다.
"책상에 앉아있는 모습이 더 어울릴 것 같아요."
"칭찬이야?"
"그럼요."
저도 모르게 강한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지금 하고있는 일을 양민정이 알게 되었을 경우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상상도 하기 싫었다.
다시 양민정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사장님, 결혼하셨어요?"
"아니."
강한이 힐끗 양민정을 보았지만 시선이 만나지는 않았다.
그러고보면 양민정이나 오성열한테 개인적인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럴 기회도 없었지만 틈도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이번에는 강한이 물었다.
"양민정씨는 남자친구 있어?"
"있었지만 헤어졌어요."
"……."
"1년쯤 돼요."
그러더니 의자에 처음으로 등을 붙였다.
지금까지 강한이 불편하게 느낄 정도로 상반신을 세우고 앉아있었던 것이다.
그때 양민정이 말을 이었다.
"그 친구가 좋은 조건을 찾아 떠난거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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