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 18장 꿈꾸는 세상 [9]
(385) 18장 꿈꾸는 세상 <17>
라운지로 들어선 서동수에게 지배인이 다가왔다.
웃음 띤 얼굴이다.
“서 회장님이시지요? 손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지배인은 서동수를 알아보는 것 같다.
오후 6시 55분, 안쪽 밀실로 안내하면서 지배인이 말을 잇는다.
“TV에서 뵈었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이렇게 얼굴이 팔려서 제대로 연애도 못하겠군.”
서동수가 투덜거렸더니 지배인이 활짝 웃었다.
“호텔맨 입은 믿으셔도 됩니다, 회장님.”
밀실 앞에 선 지배인이 노크를 하더니 문을 반쯤 열고 비켜섰다.
안으로 들어선 서동수는 자리에서 일어서는 여자를 보았다.
그 순간 서동수는 숨을 들이켰다.
감동을 받은 것이다.
붉은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는 선녀 같았다.
잘록한 허리 곡선을 살린 드레스는 눈이 부셨다.
서동수와 시선을 마주친 여자가 웃음 띤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갸름한 얼굴과 맑은 눈, 눈초리가 조금 솟았고 쌍꺼풀은 없다.
적당하게 곧은 콧날과 살색 루주를 바른 입술이 반들거렸다.
키는 165㎝쯤 될까?
날씬한 몸매, 20대 후반쯤으로나 보이는 몸매와 얼굴이다.
“반갑습니다, 장치 씨. 미인이시네요.”
“감사합니다. 뵙게 되어서 영광이에요.”
장치의 손은 작고 부드러웠다.
원탁에 마주보고 앉았을 때 서동수가 지그시 장치를 보았다.
“한국인과 결혼한다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습니까?”
“전혀 없는데요.”
머리를 조금 기울이면서 장치가 웃었다.
가지런한 이가 드러났고 눈이 가늘어졌다.
그 순간 서동수는 목구멍이 좁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성욕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시치미를 뚝 뗀 얼굴로 장치를 보았다.
인간은 유일한 절제의 동물이다.
간음하는 생각을 할 때마다 벌을 받는다면 서동수는 십만 번도 더 죽었다.
“그래요? 민족이 달라도 괜찮아요?”
다시 물었더니 장치가 또 웃었다.
“중국어 잘하시니까 중국인처럼 느껴지는군요.”
“그런가요?”
“더구나 제 조상이 북방계예요. 아마 회장님의 조상과 같은 핏줄이 섞였을 수도 있지요.”
장치의 두 눈동자가 반짝였고 표정이 진지해졌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칠 때 이런 모습이 될까? 장치가 말을 잇는다.
“몽골 초원에서 일어난 원이 중국 대륙을 지배했을 때도 있었고 금, 청도 북방 민족이었죠.”
“…….”
“중국은 어느 소수민족이 지배를 해도 동화되어 대국을 이루었습니다. 저 또한 동화될 수 있어요.”
그 순간 서동수는 온몸에 차가운 기운이 덮였다가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정신이 번쩍 든 것이다. 곧 심장 박동이 빨라졌고 몸에 열기가 일어났다.
감동을 받은 것이다.
이제는 눈앞에 앉은 장치가 붉고 뜨거운 용암 구멍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을 빨아들여 녹여 없애는 구멍, 그리고 일체가 된다.
서동수가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장치 씨, 당신한테 빨려드는 것 같아.”
“하하.”
입을 딱 벌리고 짧게 웃은 장치가 눈을 흘기는 시늉을 했다.
“저는 불덩이가 날아오는 것 같아요.”
서동수는 이제 목구멍이 막힌 느낌을 받고는 입을 딱 벌렸다.
그 순간 눈앞에 아득한 중국 대륙이 펼쳐졌다.
만리장성을 넘은 칭기즈칸의 느낌이 이랬을까?
(386) 18장 꿈꾸는 세상 <18>
다음날 오전, 회사에 출근한 서동수에게 비서실장 유병선이 보고했다.
“북한 조평통 상임위 부위원장이란 분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서동수는 모니터에 뜬 주가 시세를 읽으면서 머리만 끄덕였고 유병선의 말이 이어졌다.
“베이징에서 뵙자고 하는데요, 이번 토요일 오후 4시에 이화원 근처의 영빈관 호텔입니다.”
“…….”
“오늘 중으로 연락 바란다고 했습니다.”
오늘이 목요일이니 토요일이면 이틀 후다.
하긴 칭다오에서 베이징까지는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다.
이윽고 모니터에서 시선을 뗀 서동수가 말했다.
“토요일에는 다른 스케줄이 있어.”
“아, 네.”
대답은 했지만 유병선은 당황했다.
토요일 스케줄은 없었기 때문이다.
서동수가 차분한 표정으로 유병선을 보았다.
“그리고 곧 아프리카, 중동 지역을 돌아볼 예정이니까 당분간 시간이 없어.”
“예, 회장님.”
분위기를 알아차린 유병선이 어깨를 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팔꿈치를 책상 위에 올려놓은 서동수가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리정산 서기한테 북한 측 이야기를 전해주도록.”
“예, 알겠습니다.”
유병선이 서둘러 방을 나갔을 때 서동수는 길게 숨을 뱉었다.
조평통 부위원장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신의주특구의 행정장관 취임에서부터 개발 계획에 이르기까지 협의해야 할 일은 많다.
의자를 돌린 서동수가 창 밖을 바라보았다. 맑은 날씨다.
황사가 약간 끼어 있었지만 오전 햇살이 공단의 건물들을 비추고 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방문이 열리더니 다시 유병선이 들어섰다.
“회장님, 리정산 서기님이십니다.”
서동수가 전화기를 들고 응답하자 곧 리정산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방금 연락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회장님께 접촉하는 북한 측 기관을 일원화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서기님.”
“그리고 회장님은 북한의 장관급 대우를 받으시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는 아무나 연락하지 못할 것입니다.”
리정산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띠어졌다.
“자신의 격(格)은 스스로 만들어야 할 때도 있지요, 잘하셨습니다.”
통화가 끝났을 때 서동수의 얼굴에도 웃음이 떠올라 있다.
중국기업 ‘동성’의 입장에서 보면 신의주특구 개발은 ‘윈윈’이다.
철저하게 사업적인 면에서 고려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주고받는다는 의미다. 준 만큼 받고 받은 만큼 주는 것,
그 한쪽 동성의 대표가 바로 나다.
서동수의 얼굴에 그렇게 쓰여져 있다.
오후 3시경이 되었을 때 서동수는 장치의 전화를 받았다.
“저, 베이징에 있어요.”
장치의 목소리는 밝았다.
서동수는 붉은 천에 싸인 장치의 몸을 떠올렸다.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장치가 말했을 때 서동수는 숨을 들이켰다.
어제는 라운지에서 식사만 하고 헤어졌을 뿐이다.
이런 표현은 물론 예외 몇은 제외하고 자신감을 단단히 갖춘 여자만이 할 수 있다.
“음, 나도 장치 씨의 몸이 눈앞에 아른거리던 참이오.”
화답했더니 장치가 소리 내어 웃었다.
“몸이? 역시 소문이 맞는 것 같군요.”
이 말도 험담 같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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